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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49화 (14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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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8장.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존재한다(3)

티티팅!

미세한 세침들이 벽에 막힌 것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마치 풍뎅이의 날갯짓처럼 숨 한 번 들이켤 사이에 담호의 육체는 수십, 수백 번의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담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흐릿하게 보였다.

“헉!”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괴사에 좌신충이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순간 담호의 몸이 충차처럼 쏘아졌다.

만년 거암으로 이뤄진 성벽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충보였다. 거기에 파성추까지 더해졌다.

콰지직!

묵철로 만든 쇠창살이 수수깡처럼 박살 났다.

좌신충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노, 놈을 막아랏!”

좌신충이 급히 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수하들이 다시 절명탈혼침을 발사했다. 백여 발의 미세한 침이 다시 담호를 덮쳐 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절명탈혼침. 일반적인 무인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을 만큼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었지만, 방패를 익힌 담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위이잉!

담호가 다시 한 번 방패를 펼쳤고, 미세한 세침은 방패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수많은 세침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쾅!

그 순간 담호의 강렬한 진각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러자 바닥에 흩어져 있던 세침들이 폭풍에 휩쓸린 먼지처럼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휘릭!

담호가 전신의 모공을 통해 내기를 발산했다. 그러자 허공에 떠오른 절명탈혼침이 바람을 타고 반대편으로 쏘아졌다.

원통을 들고 있던 무인들이 졸지에 절명탈혼침을 뒤집어썼다.

“크아악!”

“으악!”

절명탈혼침에 격중당한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절명탈혼침이 꽂힌 피부가 녹아내리고, 이내 뼈가 드러났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 어?”

간수가 놀라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의 앞에 서 있던 무인들이 혈수가 되어 녹아내리고 있는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후웅!

담호가 몰고 온 강력한 바람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퍼석!

순간 간수의 머리가 마치 두부처럼 부서져 나갔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허우적거리다가 무너져 내렸다.

간수는 머리를 잃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겐 행운이었는지 몰랐다. 다른 이들의 죽음은 그처럼 간단하지 않았기에.

쾅!

담호의 일격에 사람의 몸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하늘을 날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반격을 하려 했을 때는 이미 담호가 그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어?”

그 순간 담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막대한 공력이 집약된 손바닥을 흔들었다.

쩌어엉!

“커헉!”

“켁!”

담호를 중심으로 반경 삼 장 안에 있던 이들의 고막과 코에서 갑자기 피가 터져 나왔다.

단공벽(斷空壁).

공기의 결에 충격을 주어 충격파를 발산하는 수법.

방패에서 영감을 얻어 더욱 발전시킨 공격.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로 펼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었다. 삼면이 막힌 동굴 안이었기에 단공벽의 위력이 더욱 증폭되었다.

단공벽은 비단 무인들의 목숨만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과 다리를 구속하던 금마구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만년묵철로 만들어진 금마구는 종잇장처럼 찢기고 갈라져 있었다.

담호가 손목을 비틀자 손목에 채워져 있던 금마구가 힘없이 부서졌다. 다리에 찬 금마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존자는 단 한 명, 동굴 입구까지 달아난 좌신충뿐이었다.

“흐엑! 어, 어떻게?”

좌신충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어렸다.

그와 함께 왔던 무인들은 모두 흑수채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반항 한 번 못 한 채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꿈에서 볼까 두려운 끔찍한 모습에 좌신충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영활하게 돌아가던 머릿속이 텅 비어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사이 담호가 그에게 걸어왔다.

왼쪽 다리를 살짝 절면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마침내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담호는 그의 코앞에 서 있었다.

콰직!

담호의 주먹이 예고도 없이 그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크에엑!”

전신을 관통하는 고통에 좌신충의 허리가 새우처럼 휘었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좌신충의 무공 수위는 꽤나 대단했다. 적어도 녹림 안에서는 그의 생명을 위협할 만한 고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고수가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공의 격차 때문이 아니었다. 담호라는 인간이 발산하는 가공할 존재감과 질식할 듯한 살기에 전의를 잃고 만 것이다.

좌신충이 입을 떡 벌린 채 꺽꺽거렸다.

담호가 손을 뻗어 좌신충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우욱! 아, 앙…… 돼!”

좌신충의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저항하려 했지만 담호의 억센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벌려진 입으로 혈루단장산이 든 죽이 쏟아져 들어왔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결국 좌신충은 죽을 모두 삼켜야 했다.

“끄으으!”

담호가 손을 놔주자 좌신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뱃속을 칼로 난자하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쿠웩!”

구역질을 하자 조각난 내장이 섞인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부릅뜬 두 눈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혈루단장산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위력이었다. 문제는 혈루단장산을 구한 이가 바로 좌신충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구한 독에 자신이 죽어 가고 있었다.

좌신충이 고개를 들어 담호를 올려다봤다.

“사, 살려…….”

“그리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도 조윤산보다는 편히 죽는 거니까.”

담호가 좌신충을 지나쳤다.

좌신충이 손을 뻗어 담호의 다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덜덜 떨리기만 할 뿐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끄아아악!”

좌신충의 처절한 비명을 뒤로하고 담호는 걸음을 옮겼다.

참회동 입구에서부터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비좁은 잔도 너머 수많은 무인들이 운집해 있는 것이 보였다.

좌신충이 혹시 몰라 예비로 데려온 무인들이었다.

참회동에서 좌신충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밖에 있던 이들은 영문을 몰라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 순간 참회동 입구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불길한 기운을 발산하는 검은 일색의 남자는 바로 담호였다.

“헉!”

“서, 설마 안에 들어갔던 이들이 모두 몰살당했단 말인가?”

그들의 불안감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모두 진정하라. 잔도만 틀어막으면 된다.”

예비 무인들의 우두머리인 소명웅이 크게 소리쳐 소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소요가 가라앉기는커녕 마치 전염병처럼 무리 전체로 번져 갔다.

“끄아아!”

그 순간 좌신충의 비명이 마지막으로 크게 울려 퍼지더니 뚝 끊겼다. 사람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고, 그사이 담호는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발을 절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로 대지를 딛고, 왼쪽 다리를 끌었다.

그 엇박자의 걸음이 사람들의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우와악!”

“다, 달아나야 해!”

몇몇 무인들이 무기를 버린 채 달아나려 했다.

“도망가면 채주가 살려 줄 것 같아? 죽으나 사나 우리는 그를 막아야 한다고. 이 개자식들아.”

소명웅이 무기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에 많은 무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담호에 대항하려 했다.

그 순간 담호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

한 점의 빛도 담겨 있지 않은 검은 눈빛.

지옥으로 통하는 무저갱처럼 그 어떤 감정의 편린도 담기지 않은 눈빛을 보는 순간 그들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호랑이 앞에 선 사슴처럼 천적 관계가 형성됐다.

담호의 눈빛을 받은 이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려 왔다.

도주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 순간 담호가 소명웅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소명웅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체념의 빛이었다.

그는 마치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담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치 죽음을 알고 있는 소가 스스로 도부(屠夫)를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소명웅은 이를 악물고 반항하려 했다. 하지만 담호의 존재감은 그의 심혼을 장악하고 있었다.

소명웅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담호의 존재감에 질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담호가 입을 열었다.

“조윤산은 어디 있지?”

“초, 총채주의 거처에……. 사, 살려 주십시오. 저, 저희는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소명웅이 애원했다.

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왔다. 오줌을 지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소명웅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계속 애원했다.

죽기 싫었다.

아니, 죽더라도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이런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무언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그렇게 될 거라고 자신했었다. 그래서 조윤산을 따랐고,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순간 담호의 무심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도 그랬지.”

“네?”

“옆집에 살던 형이 그랬어. 너에게 애원했었지. 살려 달라고.”

“무, 무슨?”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형을 보면서 너는 비웃었어. ‘이 모자란 새끼야! 조금은 더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보라고.’ 그렇게 말했지.”

소명웅은 담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담호는 마치 그를 미리 알고 있었단 듯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명웅은 맹세코 단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얼굴을…… 이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남자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단 한 번 보면 평생을 잊을 수 없는 남자.

그가 바로 담호였다.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군.”

“그게…….”

소명웅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표정이 변했다.

“그래, 그런 거야. 당한 자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가해한 놈은 두 다리를 뻗고 살아가지. 그리고 그런 기억 자체가 없었다는 듯이 잊어버리지.”

“대, 대협! 저는 정말 대협이 누군지 모릅니다.”

“내 이름은 담호야. 너희들은 권마라고 부르지.”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흑호단이 몰살시킨 태백산 자락의 조그만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지.”

“그럼?”

소명웅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제야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 순간 담호가 웃었다.

“이제 알겠지? 네가 왜 죽는지.”

“으아아!”

소명웅이 비명을 지르는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그의 입에 틀어박혔다.

이빨이 모조리 부서지며 담호의 주먹이 입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끄으으!”

“그때 말했잖아.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고.”

담호의 스산한 목소리가 소명웅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기억났다.

조윤산의 얼굴에 자상을 만들고, 동료를 죽였던 악귀 같은 소년.

악귀가 괴물이 되어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사, 살려 줘!’

그가 애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쾅!

그 순간 그의 머리가 부서져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으아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인들이 놀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뛰었다.

지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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