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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51화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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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1장. 마인이 황산을 피로 물들이다(1)

담호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특유의 엇박자 걸음이 사람들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마치 수백 마리의 개미가 제멋대로 기어 다니는 것처럼 전신이 근지러웠다.

눈꺼풀이 제멋대로 경련을 일으키면서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들끓는 기혈을 진정시키려는 순간 거대한 압력이 온몸을 덮쳐 왔다.

쾅!

산 정상에서 굴러온 바위에 부딪친 것처럼 산산이 짓이겨진 종오의 몸이 허공을 날아갔다.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두 눈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지고, 칠공으로 피를 토해 내는 종오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등룡대의 무인들은 종오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담호가 다음 희생자를 찾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씨발!”

“조져! 그래 봤자 절름발이에 불과해.”

그들의 무기가 공기를 가르며 담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담호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방비 상태 그대로 몸을 던졌다.

티티팅!

날카로운 검신이 담호의 몸에 닿았다 싶은 순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금구자가 펼쳐진 것이다.

“헉!”

담호의 몸에 닿자마자 튕겨 나간 검의 궤적에 서 있던 등룡대의 무인 한 명이 기겁을 했다. 그것이 그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쾅!

폭음과 함께 그의 머리가 호박처럼 터져 나갔다.

회백색 뇌수와 선혈이 등룡대 무인들의 얼굴을 덮쳤다.

“크윽!”

몇몇 무인들이 엉겁결에 눈을 감았다. 그중 한 무인은 순간 목에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담호의 손이 목을 휘감은 것이다.

그가 놀라서 눈을 뜨려는 순간 고개가 팩 하고 돌아갔다.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파골음이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혀를 길게 내밀고 죽은 무인의 모습이 사람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담호는 서두르지 않았다.

특유의 엇박자 걸음걸이로 사람들을 향해 다가갈 뿐이다. 그런데 그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의 동료가 죽어 나갔다.

어떤 이는 전신이 고깃덩이처럼 짓이겨졌고, 어떤 이는 목이 부러졌다.

각기 사인은 달랐지만, 보기에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아직 살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우와악!”

“도, 도망쳐야 해.”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뇌리 속을 채운 단어는 단 하나였다.

대적불가(對敵不可).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존재.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담호는 그렇게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었다.

살아 있는 등룡대의 무인들이 무기를 버린 채 사방으로 튀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은 등룡대주 유광천 단 한 명뿐이었다.

“으으!”

그가 담호를 보며 진저리를 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도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은 졸개에 불과했지만, 그는 등룡대의 대주였다. 그에겐 물러설 곳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죽든 살든 이곳에서 끝을 봐야 했다.

“네놈도 결국은 피륙으로 이뤄진 인간일 터.”

쉬악!

유광천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 붉은 기운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강렬한 열기를 토해 냈다.

염화적멸(炎火寂滅)의 초식.

현재 유광천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초식이었다.

“죽어랏! 이 괴물 같은 자식아.”

유광천이 담호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후웅!

강렬한 검기가 열기를 동반한 채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이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담호는 유광천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허리를 바싹 숙인 채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치이익!

등줄기를 유광천의 검이 훑고 지나갔다. 옷이 갈라지면서 긴 자상이 생겨났다.

하지만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겨우 피륙의 상처일 뿐이다. 중요한 근육은 전혀 손상이 없었다. 그 말은 곧 무공을 펼치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뜻.

그의 주먹이 유광천의 복부에 작렬했다.

퍼엉!

“크헉!”

유광천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주먹이 부딪친 곳은 복부인데 등이 터져 나갔다. 강력한 경력이 뱃속을 관통해 등으로 발출되었기 때문이다.

유광천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입으로는 죽은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꺼으으!”

그의 입술을 비집고 기괴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담호가 무너져 내리는 유광천의 목을 붙잡아 일으켰다.

새까만 담호의 눈동자 안에 공포에 질린 유광천의 얼굴이 맺혔다.

“너, 너?”

유광천이 손을 뻗어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담호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그의 몸이 거칠게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의 동체가 나뒹구는 곳은 바로 묵일광의 발치였다.

“사, 살려 줘. 일광.”

그가 묵일광에게 애원했다.

비굴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에 묵일광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유광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하는 남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묵일광이 도끼를 들었다.

“좀 사내다워 보라구.”

“우, 우린 친구였잖아.”

“아까까지는 그랬지.”

“이익! 이 개자식아. 우리의 옛 정리를 모두 잊었단 말이냐?”

“그래! 모두 잊었어.”

쉬각!

순간 묵일광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유광천의 머리가 두 조각나며 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이 등룡대주 유광천의 최후였다.

“크윽!”

묵일광이 비틀거렸다.

마지막 힘을 모아 유광천을 죽이긴 했지만, 그가 입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아가씨.”

묵일광이 대답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어디서도 담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형님.’

“후욱! 후욱!”

황경문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덩달아 어깨가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아수라지옥도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장내는 죽음의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수십 명의 무인이 시신이 되어 황경문의 발치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흐른 피가 바닥에 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황경문이 허리를 쭉 펴며 입을 열었다.

“겨우 이 정도냐? 식전 운동 거리도 안 되는구나.”

패왕도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은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패왕채의 정예들이 동요를 일으켰다.

그 순간 조윤산이 외쳤다.

“겁먹지 마라. 허장성세에 불과하다. 폐혈산과 산공독에 중독된 늙은이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다.”

“허장성세라…….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이 황경문, 아직 죽지 않았다.”

황경문이 조윤산이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앞을 패왕채의 무인들이 가로막았다.

“비켜랏!”

“그럴 수는 없습니다. 곱게 죽음을 맞이하십시오. 총채주.”

“그렇다면 베는 수밖에…….”

황경문이 도에 공력을 주입해 휘둘렀다.

후웅!

강력한 도기에 두 명의 무인이 목숨을 잃었다.

황경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의 손으로 키운 패왕채의 정예들을 죽이는 이 상황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수십 년을 함께했기에 혈육 이상의 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쌓아 온 정이 단 한순간의 욕망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힘들었다.

황경문의 시선이 윤충을 향했다.

패왕채의 이인자이자 황경문의 의동생인 윤충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패왕채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충아.’

그는 지금도 윤충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푹!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등에 일검을 허용했다.

“크윽!”

고개를 돌리니 금호채주 오종삼이 ‘씨익’ 웃고 있었다.

“맛이 어떻소? 채주.”

“네가?”

“호랑이도 늑대에게 죽을 수 있는 곳이 강호가 아니겠소? 흐흐!”

“그래! 그런 곳이 강호지. 허나 한 가지 네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이 뭐요?”

“내가 호랑이인 것은 맞지만, 너는 늑대가 아니다.”

“엉?”

후웅!

그 순간 황경문의 패왕도가 오종삼을 양단했다.

오종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황경문이 그런 오종삼을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너는 개다. 그것도 똥이나 먹고 사는 똥개.”

툭!

두 동강이 난 오종삼의 몸뚱이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직 황경문은 죽지 않았다.

패왕도라는 별호는 허투루 얻은 것이 아니었다.

폐혈산에 중독되고, 산공독 때문에 공력이 소실되고 있었지만 황경문이라는 인간은 강했다.

탓!

황경문이 대지를 박차고 조윤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조윤산이다. 놈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무지막지한 패기를 발산하며 달려드는 황경문의 모습에 조윤산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순수한 무공만 놓고 보자면 조윤산은 결코 황경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황경문의 대적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싸움이란 것이 꼭 정면 대결로 승부가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이다.”

조윤산이 크게 소리쳤다.

쉬쉭!

순간 창문을 뚫고 수십 자루의 단창이 날아왔다. 단창의 끝에는 은빛 쇠사슬이 달려 있었다.

이대로 패왕도를 휘두르면 조윤산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목숨 또한 장담할 수 없다.

황경문이 도를 휘둘러 창을 쳐 냈다.

수십 자루의 창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쇠사슬의 끝을 잡고 있는 무인들이 손을 흔들자 독사처럼 되살아나 황경문을 공격했다.

촤르륵!

수십 줄기의 쇠사슬이 황경문을 중심으로 교차했다.

황경문은 졸지에 쇠사슬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은빛 쇠사슬뿐이었다.

쇠사슬이 뱀이 똬리를 트는 것처럼 급속히 황경문을 조여 왔다.

“이날을 위해 준비한 사형금혼진(蛇形禁魂陣)이다.”

조윤산의 입가에 승자의 미소가 떠올랐다.

사형금혼진은 황경문과 같은 절대고수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일인(對一人) 진법이었다.

단창에 달린 사슬은 특별한 방법으로 정련해 제아무리 고수라도 쉽게 자를 수 없었다.

조윤산은 흑수채의 정예들을 뽑아 수년 동안 사형금혼진 하나만 수련시켰다. 그 덕에 그들의 사형금혼진은 완숙의 경지에 달했다.

쇠사슬 사이로 우두커니 서 있는 황경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다.

창밖에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안으로 난입했다. 그들의 손에는 길이가 일 장이 넘는 장창이 들려 있었다.

“찔러!”

조윤산의 명령에 부하들이 쇠사슬 사이로 장창을 찔렀다. 그 어디에도 황경문이 피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잡았다.’

조윤산이 쾌재를 불렀다.

이날을 위해 몇 년을 준비했다.

황경문만 제압한다면 녹림을 접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슴 가득 환희가 올라오는 그 순간이었다.

푸확!

갑자기 황경문을 중심으로 환한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녹왕전에 있는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바, 반탄강기(反彈罡氣)?”

쿠콰가각!

순간 모든 것이 부서졌다.

녹왕전도, 황경문을 에워싼 쇠사슬도.

조각조각 부서진 쇠사슬의 편린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은빛 기류가 녹왕전 안에 있던 사람들을 강타했다.

“크헉!”

쿠쿠쿵!

거대한 녹왕전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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