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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52화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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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1장. 마인이 황산을 피로 물들이다(2)

무너진 녹왕전에서 자욱한 회색 먼지가 일어났다.

회색빛 먼지 사이로 드러난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사형금혼진을 펼쳤던 무인들의 전신에는 부서진 쇠사슬의 파편이 박힌 채 절명해 있었다. 수십 명의 무인들이 반탄강기를 이용한 공격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쿨럭!”

황경문이 피를 토해 냈다.

그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반탄강기는 가공할 위력을 자랑했지만, 그만큼 막대한 공력의 소모를 요했다. 폐혈산과 산공독에 중독되고도 펼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무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황경문에겐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반탄강기를 사용한 대가로 공력이 바닥났다. 이젠 산공독에 대항할 힘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흐으!”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크윽!”

“제기랄! 죽다 살았네.”

그 순간 폐허 곳곳에서 무인들이 몸을 일으켰다.

조윤산과 윤충 같은 수뇌부들이었다. 위기의 순간 그들은 필사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고,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황경문의 강함에 질렸다.

설마 폐혈산과 산공독에 중독되고도 반탄강기를 펼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무위였다.

하지만 황경문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늙은 호랑이의 이빨이 드디어 빠졌구나.”

황경문은 도를 지지대 삼아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그의 숨통을 끊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웠다.

조윤산이 득의 어린 미소를 지으며 황경문에게 다가갔다.

“총채주.”

“놈!”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은 고통 없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조윤산의 조롱에 황경문이 이를 악물었다.

공력을 끌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단전의 공력은 바닥이 난 지 오래였다.

주르륵!

입가를 따라 죽은피가 흘러내렸다.

조윤산이 낭아도를 들어 황경문의 목을 겨눴다.

“당신이 그렇게 아끼던 딸도 곧 당신의 뒤를 따르게 될 테니 너무 원통해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흐흐! 그 전에 물론 실컷 즐겨야겠지만.”

“너?”

“그년은 원래부터 내 것이었습니다. 내 물건을 당신이 빼앗아 갔지요.”

조윤산의 얼굴엔 한 줄기 광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리라.”

황경문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윤산은 비웃음이 담긴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황경문은 이빨이 빠진 호랑이였다. 설령 힘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 자리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제 당신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녹림은 새로운 영웅을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너는 아니야.”

그 순간 들려온 낯선 목소리.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에 조윤산은 전신의 피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조윤산이 급히 뒤돌아봤다. 그러자 낯익은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너는 권……마?”

그는 바로 담호였다.

담호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주위의 공기가 싸늘히 식었다. 조윤산과 윤충 등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조윤산이 물었다.

“좌신충은 어떻게 되었느냐?”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설마?”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조윤산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담호가 그를 보며 웃었다.

“아직 기억해 내지 못했나 보군.”

“네놈……. 대체 내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동안 마음 편히 살았나 보군. 아니면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든가.”

담호가 황경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기세에 압도당한 조윤산 등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특히 이가흔이 느끼는 공포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담호를 다시 보자 그날 느꼈던 치욕과 두려움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녀의 전신은 마치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다.

그에 윤충이 미간을 찌푸렸다.

‘좋지 않아.’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무인들이 담호 단 한 명의 기세에 압도당했다. 이래서는 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윤충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다.

조윤산이 황경문의 목에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더 이상 다가오면 총채주의 목숨은 보장하지 못한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잖아.”

담호의 대답에 조윤산이 말문이 턱 막혔다.

쾅!

그 순간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그의 몸이 충차처럼 조윤산을 향해 쏘아졌다.

“크윽!”

조윤산은 황경문의 목을 겨눴던 낭아도를 휘두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멈춰랏!”

조윤산의 수하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

쉬가악!

날카로운 검기와 도기가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순간 담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방패가 펼쳐진 것이다.

티티팅!

방패에 부딪친 도와 검들이 일제히 튕겨 나갔다.

그 순간 담호의 손바닥이 허공을 후려쳤다. 공기의 결에 충격을 주는 단공벽이었다.

쩌어엉!

“크윽!”

“흐어억!”

조윤산의 수하들이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쓰러지는 수하들 너머 경악하고 있는 조윤산의 얼굴이 보였다.

담호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크득! 제기랄.”

백록채의 채주 곽삼이 담호를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상황이야 어떻든 간에 조윤산은 그들의 구심점이었다. 조윤산이 무너지면 오늘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그들은 천하에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죽어랏! 이 악귀 같은 자식.”

곽삼은 혼신의 힘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에는 도기가 맺혀 있었다.

그는 이 한 수로 담호를 죽이지는 못해도 물러서게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단 한 번만 물러서게 하면 돼. 그럼 어떻게든 수가 생길 거야.’

그래서 아낌없이 공력을 도에 주입했다.

지이잉!

그의 도가 도명을 터트렸다.

턱!

하지만 도명은 끝까지 울려 퍼지지 못했다. 담호의 손에 덥석 잡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은망수를 펼쳐 도를 잡은 담호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도가 중간에서 뚝 부러졌다.

담호는 부러진 도편을 그대로 곽삼의 이마에 박았다.

푹!

“끄으으!”

곽삼이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이 악귀 같은 놈!”

조윤산이 치를 떨며 혼신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담호를 물리치지 못하면 그에게 남은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그도 악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낭아도에 공력을 주입했다.

츄화학!

순간 거친 도기가 낭아도에서 폭출 해 나왔다.

잠시 일렁이던 도기는 곧 뚜렷한 도의 형상을 갖췄다. 길이가 무려 반 장여에 달할 정도였다.

“도강(刀罡)이다.”

“와! 채주가 도강을 펼쳤다.”

도강을 알아본 흑수채의 무인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절대강자의 상징이라는 강기. 조윤산은 이제까지 자신의 성취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윤산은 이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공력을 주입했다.

본능이 속삭였다.

단 일격에 담호를 쓰러트려야 한다고. 그러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거라고.

츄화학!

도강이 천지를 두 동강 낼 듯 담호를 향해 떨어졌다.

순간 담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예의 방패를 펼친 것이다. 그리고 도강이 그의 전신을 직격했다.

쿠와아앙!

폭음이 터져 나오며 담호의 몸이 들썩였다.

어깨에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근육이 갈라지고 시뻘건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율스러운 통증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담호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고통을 양분으로 삼아 분노를 키운다.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담호는 웃었다. 그 모습이 조윤산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으아아!”

그 순간 담호가 몸통으로 조윤산을 들이받았다.

콰앙!

조윤산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나마 격돌하는 순간 내공을 끌어 올려 전신을 보호했기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조윤산은 최대한 냉정하게 이성을 유지하며 반격을 하려 했다.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그의 골반에 작렬했다. 파성추를 펼친 것이다.

콰득!

“끄어어!”

조윤산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전신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골반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허리 밑으로 감각이 없는 것이 그의 추측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조윤산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그 순간 담호의 주먹이 다시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우지끈!

왼쪽 갈비뼈가 송두리째 부서졌다.

“크아악!”

조윤산의 처절한 비명성이 패왕채에 울려 퍼졌다.

그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제야 담호가 멈춰 섰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전신을 붉게 적신 그의 모습은 혈귀를 연상케 했다.

담호가 갈라진 어깨를 슬쩍 바라보았다. 근육이 갈라져 뼈가 보일 정도의 중상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남의 몸인 것처럼.

담호가 갈라진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보기 흉하게 쫙 벌어졌던 상처가 오므라들면서 흘러내리는 피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근육의 수축을 이용한 담호만의 지혈법이었다.

“저, 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윤충이 말을 더듬었다.

담호는 윤충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단 한 명 조윤산에게 꽂혀 있었다.

“끄으으!”

고통을 참느라 조윤산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담호가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군.”

“대체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끝까지 기억해 내지 못하는군. 그럴 줄 알았어.”

“너?”

“괜찮아. 이제 기억해 낼 테니까.”

담호가 품속에서 무언가 꺼냈다.

그것은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자기병이었다.

사삭!

담호가 자기병을 흔들자 안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조윤산은 오싹한 기분에 진저리를 쳤다.

왜인지 이유는 몰랐다.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크윽! 그게 뭐냐?”

“궁금해?”

담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반대로 조윤산의 표정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촌각이라도 먼저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런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부스러진 골반 때문이다.

그제야 조윤산은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담호가 그런 조윤산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선을 맞췄다.

부르르!

조윤산의 몸이 떨렸다.

담호가 자기병 마개를 조금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무언가 조그만 물체가 기어 나왔다.

다리가 여섯 개에 조그만 더듬이가 달린 생물체는 바로 개미였다.

오랫동안 안에 갇혀 있었던 듯 밖으로 나온 개미는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담호는 개미를 조윤산의 뺨 위에 올려놨다.

“어, 어?”

“지옥혈의라는 놈이야. 아주 독한 놈이지. 한번 물리면 스스로 죽고 싶어질 만큼.”

콱!

순간 지옥혈의라는 개미가 조윤산의 뺨 위에 나 있는 상처를 깨물었다.

“끄으으!”

조윤산이 몸을 떨었다. 지옥혈의에게 물린 곳이 퉁퉁 부어오름과 동시에 엄청난 가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담호가 자기병의 마개를 조금 더 열었다. 그러자 지옥혈의가 수십 마리나 더 기어 나와 조윤산의 몸에 올라탔다.

“아, 안 돼!”

조윤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순간 수십 마리의 지옥혈의가 그의 몸 곳곳을 깨물었다.

“으아아악!”

조윤산이 몸을 비틀었다. 엄청난 가려움증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담호가 그런 조윤산을 빤히 내려다봤다.

“아, 너의 뺨에 나 있는 그 상처. 내가 만든 거야. 이십 년 전에…….”

“그, 그럼?”

그제야 조윤산은 담호를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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