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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54화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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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2장. 모든 만남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1)

후두둑!

붉은 비가 쏟아졌다.

흩뿌리는 붉은 비는 패왕채를 선홍색으로 물들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마치 꿈결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할 만한 광경이었다.

퍼엉!

굉음과 함께 암귀의 몸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조각난 육편과 피가 다른 암귀들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일반적인 무인들이라면 동요할 만도 하건만 암귀들의 얼굴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꼭꼭 숨어 살았던 암귀들이었다. 그들은 마교의 영광을 위해서 얼마든지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죽엇!”

그들은 목숨을 도외시하고 담호를 공격했다.

쾅!

담호의 일격에 암귀가 또 한 명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살려 둔다면 그는 분명 본교의 큰 후환이 될 것이다.’

담호와 같은 존재는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원한이라도 끝까지 기억해 복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마교와 담호는 이미 은원을 맺었다. 이대로 담호를 살려 보내면 그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무공을 펼쳤다. 삼십 년이나 은밀하게 익혀 온 무공의 최절초를 아낌없이 풀어냈다.

어지간한 중소 문파 서너 개를 하룻밤 만에 지워 버릴 수 있는 전력들이 최선을 다해 담호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담호의 전신에도 조금씩 상처가 늘고 있었다. 어지간한 공격은 금구자로 흘려보냈음에도 말이다.

콰직!

파성추가 선두에서 달려오던 무인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담호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오른발이 기이한 곡선을 그렸다.

우지끈!

“크헉!”

탄마각이 상대의 가슴을 뚫었다.

끝이 아니다.

바닥에 착지한 담호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상대의 멱살을 잡았다.

“어, 어?”

상대의 몸이 용권풍에 휩쓸린 것처럼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어지는 반전. 머리와 다리가 뒤집혔다.

지천격이었다.

콰지끈!

바닥에 처박힌 상대의 머리가 수박처럼 부서져 나갔다. 거꾸로 처박힌 채 잠시 허우적거리던 몸뚱이가 힘없이 무너졌다.

스각!

그사이 담호는 옆구리에 일검을 허용했다. 하지만 담호는 멈추지 않았다. 겨우 피륙의 상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덴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삼격포영권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오던 세 명의 암귀를 침몰시켰다.

담호의 발치에 시신이 쌓였다.

하나, 둘, 착실히 늘어난 시신이 금세 산을 이뤘고, 바닥엔 피 웅덩이가 고였다.

담호는 암귀들의 피를 뒤집어쓴 채 전진하고 있었다. 그가 가는 길 끝에 윤충이 존재했다.

지금 이 순간 윤충의 얼굴은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삼십 년이나 심혈을 기울여 키운 암귀들이 담호의 손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암귀는 검은 해일이 되어 담호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의 파상공세로도 담호의 전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담호는 해일을 가르는 검이었다.

벌써 오십여 명의 암귀들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암귀들의 피를 뒤집어쓴 담호의 모습은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이, 이놈!”

이 이상 암귀를 잃었다가는 녹림을 도모하기는커녕 목숨을 보존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윤충은 자신이 나서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챠아앗! 청련살풍(靑聯殺風)!”

마교의 비공 중 하나인 청살마공(靑煞魔功)이 펼쳐졌다.

푸른색 강기가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담호가 충보를 펼쳐 강기를 회피하려는 순간이었다.

덥썩!

갑자기 암귀 세 명이 담호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같이 가는 거다, 권마!”

“억겁의 성화여! 우리를 지켜 주소서.”

담호를 붙잡고 있는 암귀들의 목소리엔 맹목적인 광기가 담겨 있었다.

마교에서는 죽음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가리켰다. 그러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마교를 위해 죽는 것은 끝없는 영광이었으며, 죽어서도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담호는 그들의 눈에 어린 광기를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암귀들이 내뿜는 맹목적인 광기에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광기는 담호에게 하등의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담호가 양팔을 가슴에 모았다. 그러자 팔을 잡고 있던 두 명의 남자가 덩달아 끌려왔다.

콰앙!

그 직후 강기가 격중했다. 담호가 오히려 암귀를 방패로 이용한 것이다.

강기에 적중된 암귀들이 어육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담호는 다리를 붙잡고 있던 암귀의 머리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퍼석!

암귀의 머리가 두부처럼 힘없이 부서져 나갔다.

담호가 머리를 잃은 암귀의 몸통을 걷어찼다.

쉬익!

암귀의 몸통이 허공을 날아갔다. 그곳에 윤충이 있었다.

“크윽!”

제아무리 냉철한 윤충이라지만 삼십 년이나 정을 나눠 온 수하의 시신이 날아오는 데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윤충이 이를 악물고 장을 휘둘러 암귀를 쳐 냈다.

퍼엉!

그의 일장에 암귀의 시신이 터져 나갔다.

암귀의 피로 목욕을 한 담호는 혈인을 방불케 했다.

그는 결코 자신에게 달려드는 암귀들을 살려 두지 않았다. 암귀도 필사적으로 담호를 공격했지만, 애초에 역량의 차이가 너무 났다.

암귀들은 수십 년을 고련해 왔지만 정체가 드러날까 우려해 단 한 번도 실전에서 마교의 무공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어색함이 존재했다.

반면 담호는 수없이 실전에서 무공을 사용했다.

그의 독행류는 실전을 통해 강해졌고, 피를 보는 데 그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어떻게 절름발이가?”

윤충은 도저히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힘들게 쌓아 온 모든 것이 담호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권마(拳魔).

이제야 그는 담호의 별호에 왜 마(魔)가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담호는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였다.

피에 굶주렸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피로 떡진 머리칼 사이로 검은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가 실로 무서웠다.

“으으!”

그의 입술을 비집고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제껏 그가 공포심을 느낀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마교의 사대군장(四大軍將) 중 한 명인 강위.

강위는 무공의 고하를 떠나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원초적인 기세가 있었다.

그는 강위 이상의 기세를 지닌 무인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담호의 기세는 강위를 오히려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덜덜!

피부에 소름이 일어나고, 몸이 절로 떨려 왔다.

무공의 고하에 상관없이 담호의 기세에 질려 버리고 만 것이다.

아직 살아 있는 암귀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대주, 도주하십시오.”

“우리가 놈을 막겠습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담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담호는 그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적어도 사대군장이나 칠대마인 정도가 되어야만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대군장과 칠대마인은 모두 마교의 최정상 무인들.

강호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지만, 일단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면 재앙(災殃)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이었다.

일전에 무림맹의 추적조들을 전멸시킨 십리무생(十里無生) 소천산이 바로 칠대마인의 일원이었다.

암귀들은 담호를 그들과 동급의 무인으로 봤다.

사대군장이나 칠대마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봤다면 경악했을 만한 평가였다.

콰앙!

담호의 일격에 서너 명의 암귀들이 어육처럼 짓이겨져 날아갔다.

수많은 이들을 죽였지만, 담호의 전신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크윽!”

결국 윤충은 도주를 택했다.

치욕스럽지만 지금은 훗날을 기약할 때였다.

아직 살아 있는 암귀들이 일제히 담호를 공격했고, 윤충은 몸을 돌려 도주했다.

쿠콰콰쾅!

그 순간 엄청난 폭음이 패왕채를 뒤흔들었다.

충격은 윤충의 등판에도 전달됐다.

‘대체?’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하지만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담호의 피로 얼룩진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았다.

후두둑!

그의 주위로 시뻘건 고깃덩이들이 떨어져 내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화학!

그 순간 강력한 풍압이 그의 등을 덮쳤다.

윤충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순간 무언가 그의 등줄기와 뒤통수를 훑고 지나갔다.

“크윽!”

마치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에 윤충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눈앞에 담호가 서 있었다.

단공벽으로 암귀들을 날려 보낸 후 충보를 펼쳐 윤충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혈천각을 펼쳐 윤충을 공격했다.

간발의 차이로 윤충이 혈천각을 피했지만, 그의 등 뒤에는 담호의 다리가 스쳐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옷이 찢어지고, 살가죽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구한 것이다.

하지만 윤충의 위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쉬익!

담호의 주먹이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단양타였다.

윤충은 급히 청살마공을 펼쳐 전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각도로 휘어져 들어온 담호의 주먹은 그의 어깨를 강타했다.

퍼억!

윤충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다시 담호의 단양타가 날아왔다. 윤충은 급한 대로 공력을 끌어 올린 채 팔뚝으로 담호의 주먹을 막았다.

쾅!

마치 쇠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강렬한 충격과 함께 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전율스러운 통증에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던 표정이 무너졌다.

담호의 단양타가 연이어 날아왔다.

똑같은 초식, 똑같은 궤적의 공격이었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

윤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록 초라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 역시 강기를 발출할 수 있는 고수였다.

윤충은 강기를 끌어 올려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채 공력을 운용하기도 전에 단양타가 격중 했다.

언뜻 보기엔 가벼워 보이지만 단양타에는 막대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단양타에 격중 될 때마다 윤충이 애써 끌어 올렸던 공력이 흐트러졌다.

코피가 터지고, 전신에 멍이 급속히 늘어났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윤충의 가슴에 허점이 드러났다.

쐐애액!

순간 탄마각이 날아왔다.

퍼억!

“크엑!”

탄마각을 복부에 허용한 윤충이 기괴한 신음성을 터트렸다. 그런 그의 얼굴에 담호의 무릎이 작렬했다.

윤충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담호가 무너져 내리는 윤충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담호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는 윤충의 눈에 공포가 담겼다.

윤충을 상대하면서 담호는 절학이라 할 만한 초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양타와 탄마각의 조합만으로 절대고수라 할 수 있는 윤충을 무너트린 것이다.

“사지를 부러트리고, 뼈를 갈아 마신다고?”

“그, 그건…….”

뿌드득!

순간 담호가 윤충의 양팔을 잡아 비틀었다. 고통으로 윤충의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 오른발로 그의 양쪽 무릎을 가격했다.

퍼벅!

무릎이 박살 나면서 윤충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는 편히 앉을 수도 없었다. 담호가 다시 한 번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악귀 같은 놈!”

“그래! 그게 나야.”

“저주받을 것이다.”

“기대하지.”

담호가 윤충의 몸을 허공으로 뽑아 들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지천격이었다.

콰아앙!

대지와 부딪친 윤충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잠시 허우적거리다가 무너져 내리는 윤충의 동체.

장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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