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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58화 (15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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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3장. 난세의 비가 내리면, 잠룡(潛龍)이 움직인다(2)

음유경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단정하기만 하던 그녀의 옷매무새는 흐트러진 상태였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은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수풀을 헤쳐 나오느라 그녀의 머리와 어깨에는 나뭇가지와 낙엽 들이 붙어 있었다.

장경각을 빠져나온 직후 소림의 추적이 시작됐다. 소림사의 무승들은 집요하게 그녀를 추적했다.

기지를 발휘해서 몇 차례나 무승들을 따돌렸지만, 결국 숭산을 절반도 내려오기 전에 무승들과 한차례 격돌했다.

소림의 무승들은 치가 떨리도록 강했다. 개개인의 무위는 음유경에 비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합공은 그녀를 곤경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산문에 맡겨 두었던 검만 있었어도 조금 더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을 적수공권으로 상대하느라 시간이 길어졌다.

그사이 숭산 전체에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음유경으로서는 빠져나올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돼.”

그녀가 다시 움직이려 할 때였다.

“아미타불!”

우렁찬 불호와 함께 일단의 승려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머리에 아홉 개의 계인을 찍은 노승려와 백여 명의 젊은 승려들이었다. 그중에는 소천도 끼어 있었다.

노승려가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시주는 어디서 오신 누구신가? 소림은 멋대로 들어왔다가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저잣거리가 아닐세.”

노승의 불호는 광문, 나한전(羅漢殿)의 전주였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무인들은 나한전 소속의 내로라하는 무승들이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이는 바로 음유경이었다.

‘어쩔 수 없다. 전력을 다해 저들을 물리친 후 이곳을 빠져나간다.’

결심을 굳힌 음유경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기(魔氣)? 마교의 도당인가?”

그는 수양이 깊은 고승이었다. 당연히 마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

“아미타불! 마교도가 소림까지 침투해 오다니.”

승려들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그 순간 광문이 외쳤다.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펼쳐 마녀를 제압하라.”

승려들은 지체하지 않고 음유경을 향해 백팔나한진을 펼쳤다. 백팔나한진은 대일인진법(對一人陣法)으로는 고금제일의 위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천고의 절진이었다.

일단 백팔나한진이 펼쳐지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음유경이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위잉!

백팔나한진이 발동된 순간 음유경이 양손을 활짝 펼쳤다. 순간 강력한 기운이 백팔나한을 향해 발출되었다.

마교의 절학인 암천열화수((暗天熱火手)가 펼쳐진 것이다.

“크흑!”

“헉!”

절묘한 시점에 이뤄진 공격은 백팔나한진의 맥을 가닥가닥 끊어 놨다.

음유경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하얀 손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성명절기인 낙월신검(落月神劍)을 맨손으로 펼치는 것이다.

쉬쉭!

그녀의 하얀 손에 기(氣)가 맺혔다. 그 모습이 검과 비슷했다.

“크헉!”

“억!”

승려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감히!”

크게 노한 광문이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을 펼쳤다.

콰르르!

엄청난 기운이 음유경을 향해 밀려갔다.

음유경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의 예상보다 광문의 무공 수위가 훨씬 더 높았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상대하면 내가 불리하다.’

결국 그녀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광문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스스슥!

그의 몸이 순식간에 아홉 개로 늘어나는가 싶더니 음유경 앞에서 차곡차곡 합쳐졌다.

소림최고의 보법 중 하나인 연대구품(蓮臺九品)이 펼쳐진 것이다.

순식간에 음유경의 전면에 접근한 그가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후웅!

보리옥룡인(菩提玉龍印), 소림의 칠십이종 절예 중 당당히 상단에 이름을 올린 절학이 펼쳐진 것이다.

백팔나한을 이끄는 수장답게 광문의 무공은 엄청났다.

너무나 절묘한 시기에 펼쳤기에 음유경으로서는 완벽히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콰앙!

“흑!”

굉음과 함께 음유경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녀의 입가로 한 줄기 혈흔이 내비쳤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녀의 움직임이 더뎌졌다.

백팔나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음유경을 에워쌌다.

우웅!

백팔나한진이 발동됐다.

백여덟 개의 선장(禪杖)이 음유경을 공격해 왔다.

퍼버벅!

음유경은 암천열화수를 펼쳐 대항했다. 하지만 검도 없이 맨손으로 백팔나한진을 상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후웅!

백팔나한진을 중심으로 강력한 기운이 몰아쳤다. 엄청난 압력이 음유경 한 명에게 집중되었다.

“흐윽!”

음유경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검만 있었어도…….’

낙월신검만 펼칠 수 있다면 백팔나한진을 깨지는 못해도 시간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맨손으로 펼치는 낙월신검의 위력엔 한계가 있었고, 그 정도로 천고의 절진이라는 백팔나한진을 깰 수는 없었다. 거기에 소천과 광문이 퇴로마저 막고 있었다.

음유경은 점점 궁지에 몰렸다.

전신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고, 기혈이 들끓어 제대로 내공을 운용할 수 없었다.

광문이 그 광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마녀를 잡는 즉시 십방금제술(十方禁制術)을 펼칠 것이다.”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소천이 반문했다.

십방금제술은 마인의 내공을 금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수법이었다. 문제는 십방금제술을 받은 이는 단순히 내공을 금제당할 뿐 아니라 심신이 철저히 망가져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폐인이 된다는 것이다.

“마인에게 베풀어 줄 자비 따윈 없도다.”

“알겠습니다.”

광문의 단호한 음성에 소천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전히 그는 십방금제술을 펼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강호 최고의 기재라는 구무룡의 일원이었지만, 실상 그가 직접 다른 무인들과 싸워 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백팔나한진이 싸우는 것을 방관하는 것이 아닌 직접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광문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소림사는 그만큼 소천을 공을 들여 키우고 있었다. 단순히 구무룡의 일원이 아니라 그 이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천은 차기 강호를 이끌어 나갈 자.

단 한 번의 패배도, 그 어떤 흠집도 있어서는 안 됐다.

그렇기에 광문은 소천이 싸움을 참관하는 것까지는 허락했지만, 직접 싸우는 것은 불허할 수밖에 없었다.

‘백팔나한진이 발동한 이상 하늘이 무너져도 마녀가 빠져나갈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백팔나한진엔 천년 소림의 정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일개인이 백팔나한진을 깬 적은 소림의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웅!

시간이 지날수록 백팔나한진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 또한 백팔나한진의 또 다른 공능이었다.

마치 톱니바퀴 물리듯 빈틈없이 이어지는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해 가고,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실제로 지금 음유경은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백팔나한진에 어려 있는 현기가 내 공력을 가닥가닥 끊고 있어.’

그 때문에 음유경은 공력을 운용하는 데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공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자 초식이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게다가 수중에 검도 없으니 본신 실력의 삼 할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퍼억!

그 순간 음유경은 어깨에 일격을 허용했다.

정련된 무쇠로 만든 선장은 그 어떤 신병이기보다 무서웠다. 타격을 받는 순간 몸을 비틀어 최대한 충격을 흘려보냈지만, 어깨가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음유경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최후의 수법을 써야 하나?’

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전력이 아니었다. 낙월신검 말고도 그녀에겐 비장의 수가 존재했다.

문제는 비장의 수를 사용하면 후유증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족히 몇 달은 운신조차 힘들 만큼.

지금 같은 시기에 몇 달의 공백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녀가 이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남은 공력을 끌어 올렸다.

웅웅!

음유경을 둘러싼 공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광문이 소리쳤다.

“마녀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백팔나한진의 운용을 개벽진천하(開闢振天下)로 바꾼다.”

개벽진천하는 백팔나한진 중 최강의 위력을 가진 공격법이었다. 이제까지 그 어떤 마인도 개벽진천하의 위력 앞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콰콰콰!

백팔나한진을 중심으로 대기가 소용돌이쳤다. 거대한 압력이 만들어졌으며, 그 모든 것이 음유경 단 일인에게 집중됐다.

그그극!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압력에 음유경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신의 핏줄이란 핏줄이 모두 불거져 나오고, 두 눈의 미세혈관이 모조리 터져 눈이 온통 붉게 변했다.

“쿨럭!”

음유경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피를 토했다. 그래도 그녀는 애써 참으며 비장의 수를 사용하려 했다.

그때였다.

―힘을 빼고 압력에 순응해.

갑자기 한 줄기 전음성이 그녀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순간 음유경은 두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왔구나.’

그녀는 애써 끌어 올렸던 공력을 흩트려 버리고, 전신에 힘을 모조리 뺐다.

“마녀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광문의 얼굴에 희색이 도는 그 순간이었다.

촤르륵!

갑자기 기다란 줄이 독사처럼 날아와 음유경의 허리를 휘감아 말아 올렸다.

“방조자다.”

“마녀를 구하려 한다. 막앗!”

백팔나한진을 펼치던 승려들이 기함하며 음유경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파바바박!

그 순간 음유경을 휘감은 줄이 독사처럼 좌우로 크게 요동쳤다. 그녀의 주위에 있던 승려들이 줄에 얻어맞아 좌우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선장을 지지대 삼아 가까스로 백팔나한진을 유지했다.

그사이 줄이 음유경을 하늘로 뽑아 올렸다.

“어림없다.”

보다 못한 광문이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백팔나한들이 뒤따랐다.

음유경의 신형이 그들에게 잡히기 직전이었다.

“혈살우(血殺雨).”

갑자기 한 줄기 사자후가 울려 퍼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강기로 이뤄진 비가.

쿠콰콰콰콰!

“크헉!”

“말도 안 되는.”

광문과 백팔나한진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강기를 하나만 만들어 내도 절대고수 대접을 받는 곳이 강호다. 구대문파 중 태두라고 불리는 소림사에도 강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고수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강기의 비라니?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천외천의 광경에 그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쿠와아앙!

백팔나한진과 강기의 비가 격돌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렸고, 대기는 미친 듯이 요동쳤다. 거대한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아름드리나무들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고, 거대한 바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바탕 일진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드러난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마치 화산이라도 폭발한 것처럼 일대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곳곳에 승려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천운이 도와줬는지 다행히 죽은 자는 없었지만, 백팔나한들의 얼굴엔 참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적이라 자부했던 백팔나한진이 깨졌다.

불패의 전설이 무너진 것이다.

“이럴 수가!”

광문의 하얀 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음유경을 구해 간 이는 분명 혼자였다. 단 일인에 의해 불패의 전설이 무너졌다.

“대체 그자가 누구이기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강렬한 위기감이 엄습했다.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절대고수의 출현이었다. 그의 등장이 강호에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광문이 주위를 둘러봤다.

백팔나한들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서도 소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소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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