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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62화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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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4장.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있다(3)

담호의 시선이 객잔 한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그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호가 그들에게 말했다.

“모두 나가.”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객잔의 문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객잔 안의 모든 이들을 죽이려는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무서웠지만, 담호의 존재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담호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간담이 약한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말았을 정도였다.

늑대가 아무리 무섭다고 하지만 호랑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금 객잔 안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딱 그랬다.

그들은 서둘러 객잔 밖으로 몸을 피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그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담호의 눈빛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온몸이 산산이 찢겨 나갈 것 같은 압박감에 그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것은 남궁장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를 꽉 문 채 담호를 노려보았다. 그의 핏발 선 눈에 살기가 어렸다.

‘하필 이곳에서 본가의 생사대적인 권마와 조우하다니.’

황혜령을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무림맹의 공적이 된 담호였다. 이미 각 문파와 세가에는 담호를 만나면 그를 척살하거나, 무림맹에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다.

싸울 여건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문제는 지금의 전력으로 담호를 과연 상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객잔 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남궁장경은 가장 날랜 무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너는 지금 뒷문으로 빠져나가 본가에 권마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전음을 받은 수하가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남궁장경이 앞으로 나섰다.

“감히 본가의 일에 관여를 하다니, 간덩이가 단단히 부었구나. 권마.”

그가 일부러 기세를 피워 올렸다.

바로 근처에 종리연과 화노가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남궁장경의 기세에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정신을 차리고 공력을 끌어 올렸다.

그때였다.

콰앙!

갑자기 담호가 벼락처럼 뒤쪽을 향해 일권을 날렸다.

“크억!”

순간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던 남궁세가의 무인이 비명과 함께 벽에 처박혔다. 담호가 격공장(隔空掌)을 펼친 것이다.

담호는 처참하게 짓이겨진 시신을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누가 나가도 된다고 했지?”

“크윽!”

남궁장경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담호가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손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어떤 무인이라도 남궁세가라는 이름 앞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설령 구대문파에 속한 무인일지라도 말이다.

그 정도로 남궁세가라는 이름 넉 자가 주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수백 년 동안 쌓아 온 명문의 명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남궁세가를 상대함에 있어 담호는 추호의 위축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종리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담호 단 한 명의 기세에 밀려 주춤거리는 꼴이라니. 마치 기세 좋게 짖던 개들이 호랑이를 만나 꼬리를 말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권마가 무섭다고 하더니, 이유가 있었군요.”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화노가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담호가 보여 주는 압도적인 존재감은 전성기의 화노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남궁장경이 기가 죽을 수 없다는 듯이 외쳤다.

“감히 남궁세가를 건드리다니.”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먼저 건든 것이 아니야. 너희가 건든 거지.”

“으윽!”

“난 먼저 이곳에 와 있었고, 식사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너희들은 나를 죽이려 했고.”

담호가 남궁장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쪽 발을 저는 엇박자의 걸음이 남궁장경의 심혼을 무섭게 옥죄어 왔다.

“나는 궁금해.”

“뭐, 뭐가 말이냐?”

“너희들의 그 오만함이. 그 멋대로인 사고방식이. 왜 너희들은 멋대로 타인을 겁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반대로 자신이 그런 꼴을 당했을 때는 못 견뎌 하는지 말이야.”

“으윽!”

“나도 알아. 힘이 있으니까 그러고 싶겠지. 멋대로 폭력을 휘둘러도 누구 한 명 제대로 대항할 수 없으니까.”

담호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남궁세가 무인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묻고 싶어. 재밌나? 그렇게 하면.”

“…….”

남궁장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담호의 질문은 남궁장경의 가슴속 기저에 가라앉은 그 어떤 감정을 건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담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담호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담호의 물음은 남궁세가의 소속원이라는 그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박살 내고 있었다.

결국 남궁장경이 속마음을 감추려고 큰 소리를 쳤다.

“마음대로 지껄이는 헛소리를 더 이상 들어 줄 수 없구나. 놈을 쳐랏.”

“와아아!”

기다렸다는 듯이 남궁세가 무인들이 큰 함성을 내뱉으며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개떼처럼 달려드는 남궁세가 무인들을 보며 담호가 중얼거렸다.

“난 하나도 재미없어.”

주먹을 꽉 쥐었다.

“이따위 짓.”

가슴속 깊은 곳에 열화가 들끓어 올랐다.

“사람을 죽이는 일. 하나도 재미없다고. 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절대 망설이지 않을 거야.”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충보가 펼쳐지고, 뒤이어 파성추가 펼쳐졌다.

쾅!

굉음과 함께 눈앞에서 누군가의 생명이 꺼졌다.

피가 튀고 살점이 우그러졌다.

담호의 전신이 피로 얼룩졌다.

“이 괴물 같은 놈아!”

남궁장경의 처절한 외침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뇌음이 터져 나왔다.

쿠와앙!

객잔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남궁세가 무인들 세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이야아아!”

남궁장경이 담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쉬아앙!

검신을 타고 폭출 해 나온 검기가 공기를 갈랐다.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

남궁세가의 검공 중 상위에 속한 절예.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초식인 뇌운단파(雷雲斷破)가 담호를 향해 펼쳐졌다.

창궁전에서도 당당히 상위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남궁장경이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친 초식이었다. 당연히 위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의 상대가 담호라는 것이다.

강호에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많은 이들과 싸웠다.

찰나의 순간에 승부의 맥을 짚어 내는 감각은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

담호는 순간적으로 뇌운단파의 파탄을 감지하고 몸을 날렸다.

기이잉!

그의 오른발이 허공을 갈랐다.

탄마각(彈魔脚)이었다.

쾅!

남궁장경이 펼친 뇌운단파가 탄마각에 부딪쳐 소멸됐다.

탄마각을 펼친 담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담호의 왼발이 바닥을 살짝 찍으며 동체가 회전을 했다. 뒤를 이어 채찍처럼 다시 오른발이 튀어나왔다.

또다시 탄마각을 펼친 것이다.

쾅!

뇌음이 터져 나오고 남궁장경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입가엔 선혈이 내비쳤고,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는 연이은 충격에 풀어헤쳐진 지 오래였다.

“이익!”

남궁장경이 이를 악물며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에겐 공격할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쾅!

담호의 팔꿈치가 옆구리에 처박혔다.

고통으로 눈이 크게 떠지는 찰나 담호의 주먹이 안면을 강타했다.

콰드득!

남궁장경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극심한 통증과 함께 파골음을 들었다. 파골음이 자신의 안면을 유지하고 있던 뼈가 부서지는 소리라는 것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 전에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털썩!

안면이 처참하게 짓이겨진 남궁장경의 시신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으으!”

“저럴 수가!”

아직 살아 있는 남궁세가 무인들이 진저리를 쳤다.

남궁장경은 남궁세가와 창궁전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 그런 그가 별반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줬다.

턱!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던 무인들의 걸음이 벽에 막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무인들이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담호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

“같이 죽자, 권마.”

그들의 처절한 외침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종리연은 눈을 감았다.

결과가 뻔히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다. 마치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쾅! 쾅!

고막을 아프게 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장내에 있던 생명이 하나둘씩 꺼져 갔다.

마침내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객잔 안에 있던 무인들은 모두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쉼터가 되어 주었을 따뜻한 공간에는 오직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종리연이 감당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우욱!”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런 종리연의 얼굴은 눈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아가씨!”

화노가 급히 종리연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나는…….”

말과 달리 종리연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여기 잠시 앉아 계십시오.”

화노가 종리연을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게 했다. 종리연은 의자에 앉아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화노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온몸이 피에 젖은 채 눈을 흉흉하게 빛내는 담호의 모습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였다.

화노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노강호였지만, 담호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심을 갖게 만드는 존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잠시 숨을 골랐다.

담호와 마주 서기 위해선 그 역시 용기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담…… 대협!”

담호가 고개를 들어 화노를 바라봤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담호의 두 눈을 마주하게 되자 화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을 도운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감사의 인사를 할 필요도 없어.”

“하지만…….”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들이 죽는 일도 없었겠지.”

담호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에 화노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휴!”

결국 화노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오랜 강호의 경험으로 그는 담호와 같은 자를 상대함에 있어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선을 긋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낼 필요가 없었다.

화노가 냉정을 되찾은 데 반해 종리연은 아직까지 정신이 혼미했다.

생명을 살리는 자신과 정반대인 지점에 선 인물.

그의 몸에서는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권마…… 죽음을 내리는 자.’

종리연은 더 이상 담호를 응시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담호의 모습은 계속해서 어른거려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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