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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65화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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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5장. 악연(惡緣)은 질기게 이어지는 법이다(3)

“아파도 참아야 해.”

“걱정하지 마요, 언니. 이젠 아픔도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곽연의 말에 종리연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담요를 벗기자 드러난 곽연의 팔다리는 마른 장작을 연상시킬 정도로 빼빼 말라 있었다.

곽연은 손만 대도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육신으로 이제까지 잘도 버텨 왔다. 그런 곽연이 너무나 대견스러웠고, 또 안타까웠다.

“우선 언니가 너에게 약을 복용시킬 거야. 그런 다음 침술을 펼칠 것이고. 그런 과정이 모두 세 번 반복될 거야.”

“세 번이나요?”

“그래! 네 몸을 잠식한 병마가 지독해서 어쩔 수가 없어.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렇다고 너를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다는 장담은 하지 못해.”

“고마워요, 언니. 저를 위해 방법을 찾아줘서.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난 언니를 원망하지 않아요.”

오랜 시간 동안 병마와 싸워 왔기에 곽연은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 그런 어른스러움이 종리연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종리연이 곽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작하자.”

“네!”

종리연은 미리 준비한 탕약을 곽연이 마시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보통의 한약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종리연이 힘들게 구한 십여 가지의 재료가 들어 있었다.

곽연이 꿀꺽꿀꺽 탕약을 마셨다.

잠시 후 아랫배에서 열기가 치솟아 오르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종리연은 그런 곽연의 몸을 조심스럽게 뉘인 후 품에서 은침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침술을 시전하기 전에 곽산에게 두개의 봉지를 넘겼다.

“아버님께서는 이 약들을 달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제시간에 달여서 제가 말할 때 넘겨주셔야 해요. 그래야 연이를 구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의 님. 제 딸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제가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곽산이 조심스럽게 약봉지를 받아 들면서 대답했다.

종리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술을 펼치려 할 때였다.

“아가씨!”

밖에서 화노의 음성이 들려왔다.

“왜 그러나요?”

“서두르셔야겠습니다.”

“네?”

종리연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모옥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검은 인영들이 보였다.

검왕대 중 일부였다.

“제가 그들을 막겠습니다. 그동안 아가씨는 치료를 최대한 빨리 끝내십시오.”

“알았어요.”

종리연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미 곽연에게 약을 복용시켰다. 침술을 펼쳐서 약력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곽연의 심맥을 상하게 만들 것이다.

되돌릴 수도, 쉬어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갈 때였다.

종리연이 급히 곽연의 몸에 은침을 꽂기 시작했다.

생사현혼침(生死懸魂針).

곽연을 살리기 위해 종리연이 만들어 낸 침술이었다.

과연 생사현혼침이 통할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여러모로 시험을 해 봤겠지만, 불행히도 종리연에겐 여유가 없었다.

‘반드시 살려 낼게.’

종리연은 생사현혼침을 펼치면서 다짐했다.

촤앙!

그 순간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검왕대와 화노가 격돌한 것이다.

이제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종리연의 손길이 빨라졌다.

***

불쑥!

부러진 가슴뼈가 살가죽을 뚫고 밖으로 삐져나왔다.

남궁소명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뼈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쿵!

남궁소명의 육중한 동체가 그대로 넘어갔다.

“소명!”

근처에 있던 무인이 남궁소명을 불렀지만, 이미 그는 숨이 끊어진 뒤였다.

“이 녀석!”

무인의 눈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남궁소명은 그의 사촌동생이었다. 삼십 년 전에 같이 검왕대에 발탁되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

마교와의 격전에서도 살아남았던 남궁소명이 담호의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허망한 최후였다.

죽은 이는 비단 남궁소명만이 아니었다. 벌써 십여 명의 검왕대가 목숨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담호가 방패를 펼치면서 쇠뇌와 암기를 이용한 공격은 위력을 잃었다.

담호는 검왕대 한가운데로 뛰어듦으로써 싸움을 난전으로 이끌었다. 피아 구별할 수 없이 치고받는, 소위 개싸움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무리 한가운데 난입한 담호 때문에 검왕대는 다른 병장기는 모두 버리고 검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담호가 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쉬이익!

검기가 맺힌 검이 날아왔다.

검왕대는 놀랍게도 전원이 검기를 발산할 수 있는 고수들로 이뤄져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들이었다.

비록 담호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많은 피해를 봤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반격했다.

찌이익!

담호의 옷자락이 검에 길게 찢겨 나갔다. 찢겨져 나간 옷 사이로 속살이 드러난 상처가 보였다.

전율스러운 고통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지만 담호는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자를 확실하게 죽였다.

퍼석!

사람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가며 피 보라와 산산이 조각난 골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윽!”

졸지에 동료의 육편을 뒤집어쓴 검왕대의 무인들이 곤혹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그 순간 담호의 몸이 팽그르 돌더니 양팔이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단양타의 일격이었다.

콰콱!

주먹에 콧등을 격중당한 무인들의 안면이 함몰되며 무너졌다.

“이익!”

옆에 있던 동료가 죽어 나가는 광경에 무인들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동료의 죽음은 그들을 더욱 악에 받치게 만들었다.

그들도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남궁세가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검왕대가 동원되고도 담호 한 명을 어쩌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남궁세가를 비웃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됐다.

“죽엇!”

검왕대의 무인들은 집요하게 담호를 공격했다.

목숨은 내놓은 지 오래였다.

자신의 한 목숨 희생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동료들이 담호를 죽일 수만 있다면.

담호는 미친 악귀처럼 날뛰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악마 같은 권에 검왕대의 무인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대가로 검왕대의 무인들도 담호의 몸에 악착같이 상처를 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했다.

그들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 담호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임무였다는 것을.

‘저자의 광기는 죽여야만 끝난다.’

‘권마는 다른 누군가에게 사로잡힐 사람이 아니다.’

‘이 한 목숨 버려서라도 반드시 놈의 발목을 잡겠다.’

광기가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수천 역시 그런 전장의 광기를 느끼고 흠칫 몸을 떨었다.

검왕대 백 명이 모조리 동원됐다. 그중 이십 명을 빼돌려서 종리연을 잡는 데 보냈지만, 그래도 팔십 명의 검왕대라면 그 어떤 절대고수라도 상대할 수 있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런 전력이 동원되고서도 담호 한 명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담호의 광기는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악귀 같은 놈!’

수천이 치를 떨었다.

검왕대를 동원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담호의 광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수천마저도 진저리 치게 만들고 있었다.

담호와는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놈을 죽이지 못하면 남궁세가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천은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담호 같은 성격을 가진 자가 화해를 할 리 없었다. 그는 일단 적이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끝까지 달라붙을 거머리 같은 존재였다.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그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스릉!

수천이 검을 꺼내 들었다.

이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이제는 자신 역시 싸움에 뛰어들어야 할 때였다. 그래야만 검왕대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 악귀 같은 놈!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수쳔은 남궁세가의 비전검공인 천풍십삼절(天風十三絶)을 펼쳤다.

쉬가악!

그의 검에서 발산된 날카로운 검기가 담호의 뒤통수를 노렸다.

캉!

그러나 담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을 휘둘러 그의 검을 튕겨 냈다.

푸화학!

담호의 몸이 제자리에서 회전을 하면서 오른팔이 채찍처럼 튀어나왔다.

단양타의 일격이 수천의 검신에 작렬했다.

내장까지 찌르르 울리는 강렬한 충격. 하지만 담호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쉬악!

파성추가 들이닥쳤다.

수천이 급히 왼손 바닥을 활짝 펼쳐 담호의 주먹을 막았다.

남궁세가의 장법인 천뢰장(天雷掌)이었다.

콰앙!

“크흑!”

수천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오며 몸이 들썩였다. 천뢰장으로 막았는데도 강렬한 충격이 내장을 관통한 것이다.

수천이 비칠비칠 뒤로 물러났다.

담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검은 장포를 흩날리며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마신을 연상케 했다.

“놈을 막아!”

“대주를 구해야 한다.”

수천의 위기 앞에 검왕대의 무인들이 앞을 다퉈 뛰어들었다.

쾅쾅!

“크엑!”

“악!”

뇌음이 터져 나오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바닥엔 어육처럼 짓이겨진 검왕대 무인들의 시신이 나뒹굴었다.

부하들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수천의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부하들의 개입이 조금만 늦었어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그가 되었을 것이다.

“크윽!”

수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깨달았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담호를 어찌할 수 없음을.

담호는 삼십 년 전 남궁세가에 침입했던 마교의 고수들보다 강하고 악독했다.

일만 명이 한 사람을 당해 내지 못하는, 가히 만부막적(萬夫莫敵)의 위용이었다.

일개인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죽일 수 없었다. 극단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수천이 외쳤다.

“놈은 천급(天級) 무인이다. 혈산화를 펼쳐라.”

남궁세가에서는 성취도와 위험도에 따라 강호의 무인들을 단계적으로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고수라고 알려진 무인들이 인급(人級).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고수, 구대문파의 문주나 장로들이 지급(地級)이다.

천급은 단순히 무위가 강하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강호에 미칠 수 있는 위험도가 거대 문파를 능가할 때만 받을 수 있었다.

마교의 교주와 사신제가 이에 속했다.

즉 수천은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담호를 그들과 동급의 위험도를 가진 무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검왕대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단호했던 그들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초탈한 듯 보였다.

검왕대의 무인 중 한 명이 담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들고 있는 검은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무방비 상태로 몸을 날린 것이다.

“같이 지옥으로 가는 거다, 권마.”

콰앙!

순간 검왕대 무인의 몸이 담호의 지척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혈산화(血散花).

자신의 몸을 폭발시켜 상대와 동귀어진 하는 최후의 수법이었다.

부서진 뼛조각과 육편이 암기가 되어 담호를 덮쳤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담호가 급히 방패를 펼쳐 전신을 보호했다. 하지만 창졸지간에 펼쳤기에 완벽히 방어하지 못했다.

붉게 물든 뼛조각이 그의 옆구리와 어깨에 꽂혀 있었다.

“으하하! 아직 끝이 아니다, 권마.”

콰앙!

다시 한 번 검왕대의 무인이 혈산화를 펼쳐 동귀어진 했다.

피의 폭풍이 담호를 덮쳤다.

“이 한 몸 희생해 강호의 정의를 드높일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나의 희생은 강호와 남궁세가가 기억해 줄 것이다.”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또 한 명이 혈산화를 펼쳐 자폭했다.

살아남은 검왕대의 무인들은 동료들의 희생을 방패삼아 담호를 공격했다.

“절대 너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지옥 밑바닥으로 돌아가라, 권마여.”

쉬아악!

폭풍 같은 검풍이 담호를 향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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