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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66화 (16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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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6장. 하나를 받으면 열을 돌려준다(1)

쿠콰가각!

산사태가 나면 이럴까? 수백, 수천의 거대한 바위들이 바닥을 구르며 갈리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수십 명의 고수들이 혈산화로 자폭을 했다. 뼈와 살이 암기가 되었고, 사방으로 튀는 피가 독이 되었다. 거기에 살아남은 자들의 몸을 돌보지 않는 공격까지.

검왕대의 무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악귀에 가까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검왕대의 무인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마치 타인의 일인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졌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이 남궁세가를 위한 거라고 여겼다.

감당하지 못할 상대를 죽이기 위해 키워진 집단.

검왕대가 그랬다.

수천이 이를 꽉 물었다.

‘네놈은 모른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자가 얼마나 절박한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남궁세가였다.

지금의 위용을 갖추기 전까지 남궁세가가 얼마나 많은 고비와 위기를 넘겼는지 손으로 셀 수조차 없었다. 어떤 때는 진짜 멸문 직전까지 갔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절대고수에 의해서.

그때 남궁세가는 깨달았다. 수백, 수천의 무인이 있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남궁세가의 전전 대 가주였던 남궁선월은 검왕대를 만들었다.

비밀리에 기재들을 뽑아 특별한 방법으로 수련을 시켰다. 그들에겐 남궁세가의 수많은 영약과 비급들이 투입되었다.

거기까지가 남궁세가의 수뇌부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검왕대에겐 한 가지 비밀이 더 있었다.

그것이 바로 혈산화였다.

최후의 동귀어진 수법. 자신의 한 목숨 버려서라도 반드시 상대와 함께 폭사하는 것.

거기에 남은 검왕대 무인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이어졌다.

콰콰쾅!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일대가 흔들리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턱!

단 일 수에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 낸 수천이 후들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했다. 그것은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검왕대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느낌이 있었어.’

‘놈은 죽었다.’

한두 명이 아니다. 거의 십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검에 감촉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담호가 죽었다고 확신했다.

마침내 먼지가 가라앉고 장내의 전경이 드러났다.

모두의 눈앞에 드러난 전경은 지옥을 연상시킬 정도로 끔찍했다.

방금 전까지 함께 웃고 숨 쉬던 동료들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산이 해체되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갈가리 찢겨진 고깃덩이와 뼈, 그리고 핏물이 내를 이뤄 흘렀다. 그 한가운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가슴에는 누군가의 뼛조각이 박혀 있었고, 옆구리와 허벅지에는 커다란 구명이 뚫려 있었다. 그 외에 자잘한 상처는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등에 꽂혀 있는 두 자루의 검이었다.

그중 한 자루는 수천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죽은 검왕대 무인의 것이었다. 두 자루 검은 모두 깊숙이 박혀 있었는데, 상처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담호의 몸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검붉은 피로 물들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산발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마치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이미 서너 번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중상이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아직까지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였다. 하지만 수천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담호는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와 같은 상처를 입고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것이 수천이 알고 있는 지극히 타당한 상식이었다.

수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제 알겠지? 남궁세가의 무서움을. 남궁세가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언제든 이 한 목숨 초개처럼 버릴 수 있다.”

“…….”

“네놈은 절대 남궁세가를 건드려서는 안 됐다. 네놈의 만용과 무모함이 생을 단축시켰다. 죽어서도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수천이 뒤돌아섰다.

살아남은 검왕대 무인의 수는 겨우 이십여 명. 종리연에게 보낸 이십여 명까지 더하면 겨우 사십 명만이 살아남은 셈이다.

일백 명의 검왕대 중 육십 명이 담호 한 명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믿을 수 없는 피해였다.

이제 다시 검왕대를 재건하려면 많은 시간과 엄청난 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수천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남궁세가에 남아도는 것이 인재였고,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엄청난 자금이 있으니까.

그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소리쳤다.

“신의를 잡아간다. 그 후 권마와 연관이 있는 자들을 찾아내어 모조리 죽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삭초제근(削草除根).

강호를 살아가는 자라면 누구나 후환을 남겨 두길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궁세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번쩍!

담호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어 금방이라도 핏물을 왈칵 쏟을 것 같았다.

“저, 저?”

그 광경을 본 검왕대의 무인이 말을 더듬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던 몸도 언제부턴가 똑바로 서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가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등에 박혀 있던 검신이 잡혔다. 살이 베어져 나가며 피가 났다. 하지만 담호는 오히려 힘을 줘서 검을 빼냈다.

스윽!

검이 살과 근육을 가르며 빠져나오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전장에 울려 퍼졌다. 순간 검왕대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목이 베여 나가는 듯한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담호가 또 한 자루의 검을 뽑았다.

스으윽!

검이 뽑혀 나온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때였다.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쫙 갈라져 있던 상처가 갑자기 오므라들었다. 그러자 출혈이 조금씩 멈췄다.

점혈을 하는 것이 아닌 근육을 조여 출혈을 막은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담호가 가슴에 박힌 누군가의 뼛조각을 뽑아냈다.

파삭!

뼈가 그의 손에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놈!”

수천이 그런 담호를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연신 경종이 올리고 있었다. 몸이 먼저 위기감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천은 그런 몸의 반응을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상대는 움직이기도 힘든 중상을 입었다. 그런 몸으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겁먹지 마라. 죽기 직전에 허세를 부리는 것이 분명하니까.”

그 순간 담호의 시선이 수천을 향했다.

좋은 것을 배웠다.

검왕대가 펼친 동귀어진의 수법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이런 식의 공격에 무방비로 있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깨달았다.

그동안 너무 쉬웠다.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지 못해 방심했었던 건지도 몰랐다. 방심은 자만으로 이어졌고, 자만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부러진 뼛조각이 한쪽 폐를 찔렀는지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래도 담호는 웃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살아 있는 자는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으니까.

팟!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걸레가 된 몸으로 충보를 펼친 것이다.

수천이 눈을 크게 치떴다. 설마 담호가 그 몸으로 자신을 노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도 내로라하는 고수. 비록 음지에서 활동하지만 그 무위만큼은 남궁세가의 장로들보다도 월등했다.

“놈!”

츠츠츠!

검이 없기에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천뢰장을 펼쳤다. 그의 전면에 뇌기의 막이 형성됐다.

쾅!

그 순간 담호의 전신이 뇌막에 격돌했다.

강렬한 충격에 뇌막이 크게 출렁이며 수천까지 들썩였다. 수천의 입가에 혈흔이 내비쳤다.

“악귀 같은 놈! 대주님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겠느냐?”

“제발 죽어랏!”

뒤늦게 검왕대의 무인들이 담호를 공격했다.

그런 그들의 눈엔 공포와 분노의 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들은 담호라는 인간 그 자체에 공포를 느꼈다. 담호의 강함과 집요함에 진저리가 났다.

저런 상처를 입고도 미쳐 날뛰다니.

오늘 확실히 죽이지 못하면 그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엔 절박함이 가득했다. 때문에 그들은 이 한 번의 공격에 전력을 다했다.

콰콰콰!

엄청난 기파가 담호를 향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순간 담호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후웅!

그의 몸이 초진동을 일으켰다. 방패를 펼친 것이다.

티티팅!

방패에 부딪친 적들의 공세가 빗겨 나갔다.

담호의 손바닥이 공기를 때렸다. 공기의 결에 충격을 주어 고막을 파괴하는 수법 단공벽(斷空壁)이었다.

“크윽!”

“헉!”

고막이 파괴된 무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콰아!

담호의 주먹이 연이어 아홉 번이나 허공을 질렀다.

구중포(九重砲)가 펼쳐진 것이다.

콰콰콰쾅!

연이어 폭음이 터져 나오며 검왕대 무인들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안 돼!”

수천이 그 광경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저들이 죽으면 검왕대의 맥이 모두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순식간에 스무 구의 고깃덩이가 더 생겨났다. 피에 물든 그들의 시신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악귀 같은 놈!”

수천이 노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턱!

담호의 억센 손이 그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콰득!

그 순간 수천의 옆구리에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담호의 주먹이 작렬한 것이다.

“커헉!”

수천이 피를 토했다.

우지끈!

다시 한 번 담호의 주먹이 옆구리에 처박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옆구리 쪽 뼈가 송두리째 박살 났다는 사실을.

담호가 수천의 몸을 높이 쳐들었다.

바닥에서 떨어진 발이 실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흔들렸다.

담호가 그대로 수천의 몸을 바닥에 처박았다.

쾅!

“크악!”

수천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척추가 박살 나고, 뒤통수가 깨져 엄청난 양의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담호의 폭력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콰득!

담호가 발을 들어 수천의 복부를 내리찍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수천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수천은 악착같이 담호의 얼굴을 보고자 눈을 치떴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담호.

분명 엄청난 중상을 입고 있는데, 그의 얼굴엔 그 어떤 고통의 빛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마치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지상 목표인 듯 수천을 잘근잘근 짓밟고 있었다. 자신의 상처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다, 달라!’

그제야 수천은 깨달았다.

담호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오직 파괴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

‘애초에 이자와 척을 지는 게 아니었어.’

뒤늦은 후회가 그의 머리를 잠식했다.

“사, 살려…… 두 번 다시 남궁세가는 다시…….”

그는 담호에게 화평을 요청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콰직!

담호의 주먹이 그의 머리에 처박혔기 때문이다.

머리가 박살 났다.

그것이 음지에서 남궁세가를 수호해 온 수천의 최후였다.

그제야 담호가 주먹질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크으!”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근육을 조여 애써 지혈해 두었던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흘렀다.

정신이 다 아찔하고 눈이 침침했다.

스윽!

담호가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그러자 시야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흐으!”

담호가 거친 숨소리를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주저앉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의 적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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