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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67화 (16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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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6장. 하나를 받으면 열을 돌려준다(2)

“약을 줘요.”

종리연은 곽연에게 두 번째 약을 먹였다.

곽연은 처음보다 한결 나아진 안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했다.

챙!

밖에서는 여전히 화노와 검왕대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연신 폭음이 터져 나오고 강렬한 기파가 모옥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사현혼침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종리연의 무서운 집중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았다.

푹! 푹!

종리연은 거침없이 곽연의 전신에 은침을 꽂았다. 벌써 두 번째 펼치는 생사현혼침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첫 번째 생사현혼침을 펼쳤던 은침이 검게 변색된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잠재되어 있던 나쁜 기운이 은침을 변색시킨 것이다.

‘침을 놓는 자리가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연이는 죽는다. 집중해라, 종리연.’

종리연은 스스로를 다그치며 침을 놓았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곽산은 그런 종리연의 모습을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지막 탕약을 끓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쾅!

갑자기 굉음과 함께 모옥의 한쪽 벽면이 터져 나갔다. 뒤이어 강렬한 바람이 모옥 안에 휘몰아쳤다.

“아, 안 돼!”

곽산은 필사적으로 탕약기를 자신의 몸으로 보호했다. 뜨거운 불길에 왼팔이 화상을 입었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탕약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곽산이 급히 종리연을 바라봤다.

종리연의 머리와 어깨에는 잘게 부서진 나무 조각들이 수북했다. 그녀 역시 폭발에서 무사하지 못한 것이다.

분명 종리연도 많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다.

곽산이 그녀를 불렀다.

“아가씨!”

“난 괜찮아요. 아저씨는 탕약을 마저 달이세요.”

“알……겠습니다.”

종리연의 대답에 곽산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검왕대를 상대하던 화노가 곁눈질로 종리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생사현혼침을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검왕대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 내지 못했기에 모옥의 벽이 무너졌다.

화노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검왕대를 상대했다.

시간은 그에게서 젊음을 앗아 갔지만 대신 노련미와 경험을 주었다. 화노는 모자란 무력을 경험으로 대신하며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 결과 다섯 명의 검왕대 무인들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 대가로 그는 전신 곳곳에 상처를 입었다.

깊은 자상이 물고기 아가미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화노는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검왕대의 합공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돌아갔다.

서걱!

검왕대 무인의 검이 화노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화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경이 끊어졌는지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화노는 본능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가씨!’

목숨에 미련 따윈 없었다.

종리연에게 구함받아 사는 여벌의 목숨이었다. 진즉에 죽었어야 할 목숨, 몇 년을 더 살았다.

“챠앗!”

화노가 아직 남아 있는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후웅!

공기가 일렁였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검왕대의 부대주 남궁성찬이 소리쳤다.

“모두 조심하라.”

“늦었다. 파황혈마장(破皇血魔掌)!”

화노가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쿠콰콰!

순간 핏빛 기류가 그의 손바닥에서 발산됐다.

“이, 이건?”

“마기(魔氣)다.”

검왕대 무인들이 경호성을 내뱉으며 권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십여 명의 무인들이 핏빛 기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으아악!”

“크악!”

핏빛 기류에 휩쓸린 검왕대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의 뼈와 살이 녹고 있었다.

끔찍하리만큼 무서운 위력에 겨우 살아남은 검왕대 무인들이 진저리를 쳤다.

“이게 무슨?”

단 일 장에 사람의 뼈와 살을 녹이는 무공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한편 파황혈마장을 펼친 화노는 무릎을 꿇은 채 피를 왈칵 토해 냈다. 바닥과 그의 가슴이 붉게 물들었다.

‘크윽! 역시 무리인가?’

몇 년 전 종리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했지만, 내공은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파황혈마장은 극악한 마공이었다. 몸이 온전해도 반발력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불완전한 상태로 펼치니 그 반발력이 화노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화노가 고개를 들어 전면을 바라봤다.

아직도 다섯 명의 검왕대가 건재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파황혈마장을 피한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반면 화노는 파황혈마장의 반발력으로 내장이 산산조각 나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강한 내공으로 겨우 숨을 잇고 있지만, 이미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검왕대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 역시 화노의 상태를 눈치챈 것이다.

부대주인 남궁성찬이 명령을 내렸다.

“너희 둘은 신의를 데려와라.”

“예!”

검왕대 두 명이 종리연을 향해 다가갔다.

종리연은 세 번째 생사현혼침을 펼치고 있었다. 가장 큰 고비에 들어선 것이다.

누군가에게 방해를 받는다면 곽연은 둘째치고 종리연까지 위험해진다. 하지만 검왕대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 안 돼!”

곽산이 양팔을 펼치며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전신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얼굴은 새파랗게 변해 있었지만, 그래도 용케 피하지 않았다.

“흥!”

하지만 검왕대 무인들이 그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코웃음을 치며 곽산을 걷어찼다.

“안 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화노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곽산은 이미 가슴을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자기 걱정이나 하시지. 늙은이.”

남궁선창이 화노를 향해 천뢰장을 펼쳤다.

‘아, 안 돼!’

생사현혼침을 펼치고 있던 종리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화노의 위기 앞에 부동심이 깨졌다.

은침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확히 침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연이를 구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화노의 죽음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 몇 년 동안 화노는 그녀의 보호자이자 가장 가까운 친인이었다.

종리연이 그만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콰앙!

갑자기 한 줄기 굉음이 전장에 울려 퍼지더니 거센 바람이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종리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걸레처럼 다 찢어진 흑의를 입고 있는 남자의 등은 온통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발밑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검왕대의 무인 두 명이 고깃덩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아!”

종리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바로 담호였다.

그가 남궁선창과 검왕대 무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발을 전다면 분명 왜소해 보일 텐데 담호는 그렇지 않았다.

움찔!

담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남궁선창과 검왕대 무인들이 뒤로 물러났다. 담호의 박력에 압도당한 것이다.

“흐으!”

담호의 입술을 비집고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으으! 어떻게?”

남궁선창이 말을 더듬었다.

그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담호가 나타났다는 것은 수천이 죽었다는 뜻. 그리고 그와 함께한 팔십여 명의 검왕대가 전멸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수천은 오랫동안 남궁세가의 음지에서 수호해 온 자였다. 결코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네놈…… 인간이 맞느냐? 어떻게 그 많은 자들을…….”

남궁선창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백 명의 검왕대 중 살아남은 자는 겨우 셋. 이런 전력으로는 담호를 어찌할 수 없었다. 담호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말이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담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만큼 끔찍한 상처가 전신을 도배하고 있었다.

남궁선창이 검왕대와 눈빛을 교환했다.

‘허세다.’

담호의 상태와 호흡,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속전속결!’

이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쉬아악!

그들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그 순간 담호가 움직였다.

쾅!

담호의 몸통이 제일 먼저 좌측에 있던 무인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무인의 가슴이 움푹 함몰되며 피를 토해 냈다. 담호는 무인의 피를 뒤집어쓴 채 그대로 밀어붙였다.

“크윽!”

한참 기세를 살려 검을 휘두르던 남궁선창이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이대로 검을 휘두르면 수하의 몸이 자신의 검에 두 동강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숨이 끊어진 것이 확실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검으로 수하의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 남궁선창의 운명을 갈랐다.

담호의 주먹이 남궁선창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퍼엉!

“커헉!”

주먹은 오른쪽 옆구리에 작렬했는데, 왼쪽 옆구리가 터져 나갔다.

옆구리에 구멍이 뻥 뚫리고 내장이 흘러나왔다.

입을 떡 벌린 남궁선창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져 갔다.

“으으! 안 돼.”

혼자 살아남은 검왕대의 무인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백 명이 함께 왔는데 살아남은 이는 그 혼자였다.

“궈, 권마…….”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검왕대가 몰살을 당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담호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다리를 절고 있었다.

순간 무인의 자신이 살아남을 한 가지 가능성을 봤다.

타앗!

그가 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펼쳤다.

‘놈은 절름발이. 결코 나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수치스럽다고 해도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본가에 놈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것이 그가 도주하는 이유였다.

덥썩!

그 순간 누군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화노였다. 그가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무인을 붙잡은 것이다.

“이익! 놔라.”

무인이 화노의 다리를 떨쳐 버리려는 순간이었다.

쉬악!

담호가 파성추를 펼쳤다.

강렬한 기파가 해일처럼 밀려와 그의 전신을 덮쳤다.

풍압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이어 담호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작렬했다.

쾅!

무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마지막 무인까지 쓰러트린 담호의 몸이 비틀거렸다.

털썩!

담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목숨이 위험한 내외상을 입고 무리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담호는 이를 악물고 암혼심공을 운용했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목숨이 위험했다. 끝까지 정신 줄을 붙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해야 했다.

화노가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담호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눈에 어린 빛은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그의 몸은 이미 회생 불능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제까지 버틴 것이 기적이었다.

“천사(天邪)를 조…….”

화노의 입술이 달싹거리다가 멈췄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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