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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68화 (16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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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6장. 하나를 받으면 열을 돌려준다(3)

푹!

종리연은 조심스럽게 마지막 은침을 꽂았다. 그녀가 은침을 꽂은 대상은 바로 담호였다.

담호는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만큼 망가져 있었다. 가슴엔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옆구리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려 내장이 환히 보일 정도였다.

그 외에도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가 여러 군데였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종리연은 그런 담호를 위해 회혼활침대법(回魂活針大法)이라는 비전의 침술을 사용했다.

회혼탈침대법은 그녀의 비전 중 하나로 막대한 심력이 소모되기에 잘 사용하지 않는 침술이었다. 하지만 담호의 상태가 워낙 최악이었기에 부담을 무릅쓰고 펼쳤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그저 지켜보는 것뿐.’

회혼활침대법을 펼치고서도 그녀는 담호의 회생을 장담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의원의 길을 걸은 그녀였지만 담호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전신에 도배한 환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쉽지 않을 거야.’

종리연은 담호의 곁에 앉아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처음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래서 종리연이 포기하려는 순간이었다.

치이익!

담호의 전신이 마치 용광로에 들어간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로 인해 땀이 증기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종리연이 눈을 크게 치떴다.

담호의 몸에서 발산되는 증기엔 악취가 가득해서 맡는 이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종리연은 뛰어난 의원답게 담호의 상태를 파악했다.

‘몸 안에 쌓인 독기와 노폐물이 발산되고 있다는 증거.’

문제는 그녀가 펼친 회혼활침대법에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혼활침대법은 어디까지나 꺼져 가는 미약한 내기에 불을 지펴 주는 응급조치에 지나지 않았다.

담호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렬해졌다. 종리연은 그 때문에 담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야 했다.

뚝뚝!

담호의 모공을 통해 노폐물이 발산되었고, 끔찍하게 벌어진 상처에는 진물과 죽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회복력이었다.

‘회혼활침대법에 나도 모르는 공능이 있었던가? 아니, 회혼활침대법은 단지 꺼져 가는 불씨에 기름 한 방울을 던져 준 거에 불과해. 저 남자의 강함이…… 저 남자가 익힌 심법이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는 거야.’

담호의 몸 안에서는 암혼심공이 움직이고 있었다.

화산의 중천심결을 토대로 마교의 심법을 더해 만들어진 암혼심공은 담호의 선천지기를 자극했다.

선천지기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생명력이었다. 강한 선천지기를 가지고 태어난 자는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는 반면, 약한 선천지기를 가지고 태어난 자는 몸이 약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단명하기 일쑤였다.

다행히도 담호의 선천지기는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다. 암혼심공은 그런 담호의 선천지기를 강하게 자극했다.

마치 폭력을 행사하듯 선천지기를 때려서 강제로 활성화시켰다. 암혼심공과 어우러진 선천진기는 망가진 담호의 육체를 천천히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종리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원으로 평생을 지내 온 그녀였지만, 이렇게 강력한 자가 회복력은 듣도 보도 못했다.

“독행류라고 했던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유파의 탄생이구나. 저렇듯 강한 무력에 회복력이라니.”

종리연이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의 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오자 곽산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종리연은 흔들리지 않고 세 번째 생사현혼침을 성공시켰다. 덕분에 곽연은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흉험했는지는 곽산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종리연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병마의 근원을 제거했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에요. 제가 써 준 대로 약초를 달여 먹여야 해요. 최소 세 달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가씨. 아가씨가 써 준 약초는 제가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당장 이곳을 떠나세요. 이곳에서 혈겁이 일어난 걸 알면 남궁세가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아가씨는?”

“전 저 사람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해요.”

종리연이 슬쩍 모옥 안에 있는 담호를 바라보았다. 담호는 아직도 한참 운공 중이었고, 언제 끝날 줄 몰랐다.

“그럼 저희도 남겠습니다, 아가씨.”

“그럴 필요 없어요.”

“하지만…….”

“난 의원이에요. 의원이 환자를 두고 도망갈 수는 없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서 연이를 데리고 떠나세요. 어렵게 구한 목숨 헛되이 잃을 수는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결국 곽산은 힘겹게 대답했다.

곽연을 구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힘겹게 살아왔다. 지옥 같은 기다림이 겨우 끝났는데 다시 곽연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결국 곽산은 곽연을 데리고 모옥을 떠났다. 종리연은 멀어지는 부녀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한 곳은 모옥 뒤쪽의 공터였다.

그곳에 갓 만든 무덤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노의 무덤이었다.

“화노.”

종리연이 손을 뻗어 무덤의 봉분을 어루만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화노의 본명도 알지 못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알려 달라고 조를걸.”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화노와의 인연은 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그녀는 의원으로서의 명성을 막 날리던 시점이었다. 환자를 진맥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름 모를 호숫가에서 쓰러져 있는 화노를 발견했다.

당시 화노는 엄청난 중상을 입고 있어 기식이 엄엄했다. 종리연은 그런 화노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했다.

겨우 목숨을 구한 화노는 그 후로 종리연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동행했다. 화노는 종리연과 격의 없이 지냈는데, 자신의 과거만큼은 입을 꾹 다물고 알려 주지 않았다.

알려 준 것은 화노라는 이름뿐. 하지만 그마저도 진짜 이름이 아닐 확률이 컸다.

언제고 꼭 알아내야지 하면서 뒤로 물러났는데, 이제 그의 본명을 알아낼 기회는 영영 사라진 것 같았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종리연은 봉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담호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의 운공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았지만, 담호의 몸 안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암혼심공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담호의 통제하에 있던 암혼심공이 선천지기와 어울려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제멋대로 날뛰었다.

담호는 암혼심공을 제어하는 것을 포기하고 관조했다. 억지로 통제하려 할수록 암혼심공이 더 거세가 폭주했기 때문이다.

“크윽!”

대신 이를 악물었다.

고통을 참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담호는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미친 듯이 날뛰던 암혼심공의 내력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한껏 달아올랐던 선천지기도 원래의 차분함을 되찾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후우!”

담호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바로 종리연이었다.

“아! 깨어났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에 담호의 모습이 맺혀 있었다. 담호는 영문을 몰라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운공을 하기 전 기억이 떠올랐다.

검왕대를 모조리 죽였을 때 담호는 빈사상태였다.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 만일 제때 종리연이 회혼활침대법을 펼치지 않았다면 목숨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내가 운공한 지 며칠이나 지났지?”

“오늘로 사흘째예요.”

종리연의 대답에 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흘이라면 남궁세가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담호가 몸을 일으켰다.

사흘이나 운공을 하느라 굳어 있던 몸의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내상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외상은 아직 완치되지 않았단 말이에요.”

종리연의 만류에 담호가 슬쩍 상처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처럼 아직 외상은 완치되지 않았다. 겨우 딱지가 내려앉아 지혈된 수준이다. 조금만 무리해도 상처가 터지고 피가 철철 흐를 것이다.

그러나 담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극심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에휴! 고집쟁이 같으니라구.”

그런 담호를 보며 종리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담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집마저 이리 강할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이 옷 입어요. 곽 아저씨 옷 중에서 가장 멀쩡한 거니까요.”

종리연이 담호에게 곱게 접힌 옷을 내밀었다.

담호가 입고 있던 옷은 다 찢어지고 헤져 치부만을 겨우 가리고 있었다. 거의 알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담호에게 옷을 건넨 종리연이 얼굴을 붉히며 뒤돌아서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잠시 기다리자 담호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전투가 벌어졌던 밖의 풍경은 실로 살벌했다. 그나마 시신은 곽산이 대충 치웠기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곳곳에 혈흔이 남아 있는 데다 파리마저 들끓었다.

“일단 이곳을 떠나죠.”

종리연이 서둘러 말했다.

담호 때문에 억지로 이곳에 눌러앉아 있어야 했던 종리연이었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휘파람을 불었다. 종리연은 그런 담호를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의문은 금세 풀렸다. 잠시 후 새까만 말이 쏜살같이 이곳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검은 말은 바로 흑귀였다. 흑귀는 순식간에 도착해서 반갑다고 담호의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담호는 그런 흑귀의 뺨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흑귀가 진정되자 담호가 종리연에게 말했다.

“타!”

“지금 같이 말을 타자는 건가요?”

“싫다면 혼자 걸어 내려가든가.”

“에휴!”

종리연이 한숨을 내쉬며 흑귀에 올라타고, 담호가 그녀의 등 뒤에 앉았다.

“가자!”

흑귀가 미친 듯이 대지를 박차며 산 아래를 내려갔다.

“아아!”

전신에서 느껴지는 거센 풍압에 종리연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거친 바람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익숙해지니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주위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강한 체취 때문이었다.

의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 상당수가 남자였지만 그 누구도 담호처럼 강한 체취를 풍긴 사람은 없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강렬한 체향에 종리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얼굴은 붉게 물들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종리연은 담호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담호가 떠나고 잠시 후 누군가 모옥이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오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평소 여유가 넘치던 그의 얼굴은 철갑을 씌운 듯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눈앞에 갓 만들어진 듯한 커다란 봉분이 있었다.

남궁천이 봉문을 향해 손을 살짝 휘저었다. 그러자 봉분의 흙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한쪽으로 밀려났다.

봉분에 가려져 있던 구덩이에는 스무 구의 시신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검왕대가 몰살을 당하다니.”

노인의 이름은 남궁천. 대남궁세가의 가주였다.

검왕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그가 직접 움직인 것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수천과 다른 검왕대의 시신을 직접 확인한 남궁천이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마저 모조리 죽었다는 것을 지금 확인했다.

“허! 어이가 없구나. 설마 검왕대가 단 한 명에 의해 몰살을 당하다니.”

그의 음성엔 허탈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남궁세가를 지키던 가장 큰 전력이 덧없이 사라졌다. 그것도 단 한 명에 의해.

제아무리 남궁세가라고 하지만 검왕대를 다시 키우려면 족히 수십 년의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남궁세가는 엄청난 전력의 공백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더군다나 소가주인 남궁무진의 상태는 더 나빠져서 이젠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가 없었다.

“놈! 반드시 죽이겠다.”

검왕(劍王) 남궁천이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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