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169화 7장. 권마(拳魔)와 검왕(劍王)이 부딪치다(1)
“후아! 살 것 같구나.”
초연운이 차가운 바람을 폐부 가득 들이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커다란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초연운이 미소를 지으며 크게 말했다.
“지아자희(知我者希)는 즉아귀의(則我貴矣)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드문 것은 그만큼 내가 존귀한 것이다.”
“또, 또 있는 척한다.”
“하여간 시간 나면 문자 쓰는 버릇은 여전하다니까.”
초연운의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무인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비난했다. 그에 초연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시끄러워! 이것들아.”
“우와! 저 인상 쓰는 것 봐.”
“인상만으로 사람 잡겠는데. 안 본 사이에 성격이 더 더러워졌네.”
“이전에도 안 좋았는데, 더 안 좋아졌으면 최악이네.”
초연운은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주위에서는 수십 마디 말이 튀어나왔다.
시장통을 연상시키는 광경에 초연운이 한껏 인상을 썼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무인들은 그런 초연운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웃고 떠들었다.
“썩을! 모양 안 나네. 이 자식들하고 함께하는 게 아니었는데.”
초연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무인들은 모두 백전문의 제자들이었다.
장일산과 함께 무림맹에 합류한 이들 중 일부가 초연운과 합류한 것이다.
“우리는 사형하고 함께하는 것이 좋은 줄 아슈? 그런 말 하지 마시구려.”
“맞소! 하필 사형과 함께라니.”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 왔기에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때문에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물론 그 어떤 말은 속을 박박 긁기도 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초연운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한 자루 검을 껴안은 채 불어오는 강바람에 삼단 같은 머리를 흩날리는 아름다운 여인.
‘해소월.’
그녀는 바로 해남파의 소문주인 해소월이었다.
해소월의 주위에도 해남파의 무인들 십여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초연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해소월에게 걸어갔다.
“오오!”
“용기 있는데.”
그에 백전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초연운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그런 것 아니거든. 이 짐승 같은 것들아.”
“크하하!”
그에 백전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초연운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해 소저.”
“예! 초 소협.”
해소월이 난간에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해 소저와 해남파가 배정받은 곳도 산서성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정확히는 산서성 북부 일대예요.”
“나와 사제들이 맡은 곳이 산서성 남부 일대니까 아무래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겠군요.”
“그럴 것 같네요.”
해소월이 담담히 대답했다.
운남성에 있는 천화궁이 마교에 멸문한 이후 무림맹엔 비상이 걸렸다.
이쪽은 본진이 환하게 드러나 있는데 반해 마교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마교의 전력은 물론이고 본단의 위치까지 하나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 때문에 무림맹은 마교를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에서는 적의 본단을 파악하는 데 모든 전력을 투입했다. 하오문이 동원된 것도 모자라 젊은 무인들을 강호 곳곳에 내보내 탐문하게 했다.
초연운과 해소월도 그와 같은 임무를 받았다.
그들은 각자 백전문과 해남파의 사형제들을 이끌고 산서성 일대를 누벼야 했다.
두 문파의 무인들은 서로 상반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백전문의 무인들이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면, 해남파의 무인들은 절제된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백전문의 무인들이 대사형인 초연운에게 마음껏 농담을 하고 웃는 데 반해, 해남파의 무인들은 해소월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초연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모르니까 만일을 대비한 비상 연락망을 공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해소월이 흔쾌히 대답했다.
“산서성 태원에 임가 주루라는 곳이 있습니다. 백전문의 은퇴한 제자가 운영하는 곳인데, 혹시라도 저희 백전문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곳에 연통을 넣으십시오. 그러면 언제라도 달려가겠습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니, 항상 임가 주루에 신경을 써 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초연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해소월이 그를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인간에게서 소식은 좀 있었습니까?”
초연운은 정확히 누군가를 지칭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소월은 단숨에 그가 말하는 이를 알아차렸다.
“전혀요.”
“그렇군요. 그 인간이 안휘성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는데 그 후론 소식이 영 없군요.”
“…….”
“하여간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초연운이 아는 그는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니까.
해소월이 강을 바라봤다.
‘담호.’
그녀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현재 강호에서 담호의 악명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권마라는 별호는 마교 못지않은 공포로 강호에 군림하고 있었다. 적어도 강호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담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수많은 이들이 담호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속한 해남파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장로인 백경검객 오군의부터 말단 제자들까지 많은 이들이 담호를 두려워하고 또 증오하고 있었다.
담호는 강했다.
흔히들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불리는 구무룡이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그는 이미 후기지수가 아닌 강호 최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모두에게 선망의 시선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그는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해소월은 그런 담호의 행보를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담호는 웃옷을 벗은 채 개울에 들어가 있었다.
차가운 물로 몸에 묻은 피와 먼지를 닦아 냈다. 상처에 차가운 물이 닿을 때마다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담호는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물을 뒤집어썼다. 그때마다 극한까지 단현된 근육이 꿈틀거렸다.
“휴우!”
수욕을 끝낸 담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냈지만, 아직도 전신에서는 짙은 혈향이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이를 죽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죽인 이들의 피는 몸에 깊이 각인되어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업이었다.
담호는 개울을 나왔다.
그때 종리연이 근처의 수풀을 헤치고 나오며 말했다.
“찬물은 몸에 좋지 않아요. 뭐, 이미 수욕을 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요.”
그녀의 손에는 몇 가지 약초가 들려 있었다. 담호가 수욕을 하는 사이 근처 숲속에서 찾아낸 것들이었다.
종리연은 넓적한 돌멩이로 약초들을 곱게 빻았다.
“이것을 상처 부위에 발라 줄게요. 그나마 외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녀는 담호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곱게 빻은 약초를 상처 곳곳에 덕지덕지 처발랐다.
약초가 닿은 상처에서 불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찬물이 닿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통증이었다. 하지만 담호는 신음성 한 번 내뱉지 않았다.
종리연이 그런 담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역시 그렇군요.”
“뭐가 말이지?”
“자신의 고통에 그렇게 무감각하니 다른 이의 고통에도 무감각할 수 있는 거겠죠.”
“…….”
“뭐가 그렇게 당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조금은 여유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 다 됐어요.”
짝!
마지막으로 약초를 바른 부위를 때리며 종리연이 손을 털었다. 담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종리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종리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배시시 웃었다.
“자, 이제 출발하죠.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같이 갈 텐가?”
“어머! 그럼, 이대로 숙녀를 내버려 두고 갈 건가요?”
“나와 함께 가서 좋을 것은 없을 텐데.”
“남궁세가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인가요?”
“…….”
“저도 그래요. 보다시피 남궁세가의 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안휘성에서는 있을 수 없어요. 많은 것을 원하지도 않아요. 안휘성을 벗어날 때까지만 동행해 줘요.”
“갈 곳은 있나?”
“하남성 여남(汝南)에 저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어요.”
“또 환자인가?”
“의원이니까요. 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야죠.”
“그런데 왜 남궁세가에 가지 않았지?”
“남궁세가에는 저 말고도 훌륭한 의원이 많아요. 하지만 연이에겐 저밖에 없었죠.”
“그 때문에 남궁세가와 척을 지게 되었는데도?”
“어쩔 수 없죠.”
종리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의술을 펼치다 보면 수많은 유혹이 들어와요. 권력을 가진 자들일수록 생명 연장의 욕구가 강하고, 그들은 돈과 권력이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굴복을 하다 보면 정작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의술을 펼칠 수가 없어요.”
“그들이 두렵지는 않나?”
“당신은요? 권마라면서요. 수많은 이들을 죽였고, 또 강호 무림의 공적이 되었잖아요. 당신은 어떤가요?”
“신경 쓰지 않아.”
“저도 마찬가지예요. 신경 쓰지 않아요.”
종리연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담호가 그런 종리연을 잠시 바라봤다.
하남성 여남이라면 어차피 화산파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돌아갈 일도 없었고, 시간을 따로 소모할 일도 없었다.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럴지도 모르죠.”
“그래도 함께 가겠다는 건가?”
“어쨌거나 여자 혼자 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그런가?”
“그래요. 강호란 곳은 여자 혼자 다니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죠. 특히 저처럼 어여쁜 여자는요.”
종리연이 미소를 지었다.
담호가 말없이 뒤돌아섰다. 그러자 종리연이 당황하며 따라왔다.
“왜요? 저 안 예뻐요? 그런 이야기 많이 듣는데.”
“…….”
“진짠데.”
종리연이 떨어질세라 담호의 곁에 바싹 붙었다. 그녀는 연신 생글거리고 있었다.
“타.”
담호는 그녀를 흑귀에 태웠다.
종리연은 거절하지 않고 흑귀에 올라탔다. 그리고 담호도 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담호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왜 그러세요?”
종리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 흑귀를 타고 이곳에서 멀리 떠나.”
“예?”
“손님이 찾아왔어.”
“손님이라면?”
종리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순간 공기가 차가워지며 그녀의 피부에 소름이 올라왔다.
“이건?”
“……….”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경을 칼로 후비는 듯한 날카로운 기파와 일대를 장악한 강력한 기파가 느껴졌다.
상대는 단 한 명이다.
하지만 우습게 볼 수 없다.
혼자서 이 일대를 자신의 존재감으로 가득 채운 무인이 어찌 평범할 수 있을까?
담호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수백여 장 밖에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정상의 나뭇가지가 아찔하게 흔들렸다.
회초리만큼이나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누군가 있었다.
가슴에 검을 들고 있는 오십 대 초중반의 노인.
노인을 보는 순간 종리연은 보이지 않는 칼로 가슴을 난자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거, 검왕(劍王)?”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거대한 나무 위에 서 있는 노인은 바로 남궁천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검객으로서 검의 극의에 이르렀다는 절대의 무인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드디어 만났구나. 권마!”
그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박찼다. 활처럼 휘어졌던 나뭇가지가 남궁천을 쏘아 보냈다.
단번에 수십 장의 거리를 도약하는 남궁천, 하지만 담호와 거리는 아직도 수백 장이 남아 있었다.
남궁천의 몸이 속절없이 낙하할 때 갑자기 품에서 검이 빠져나와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탁!
남궁천은 발보등공의 경공술로 자신의 오른발로 왼발 등을 박차고 검에 올라탔다.
순간 종리연의 비명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어, 어검비행술(御劍飛行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