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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화 7장. 권마(拳魔)와 검왕(劍王)이 부딪치다(3)
담호의 전신에 기이한 열기가 퍼져 나갔다. 그의 전신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증기가 되어 발산됐다.
그런 담호의 모습을 보면서 남궁천이 눈을 빛냈다.
왼쪽 팔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혈천각에 얻어맞은 어깨가 탈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냥 쭉정이는 아니란 말이군.”
콰득!
남궁천이 강제로 어깨를 끼워 맞췄다. 지독한 통증이 뇌리를 자극했지만 무시했다.
이 정도의 고통은 무공을 익힐 때 수도 없이 경험했다. 탈골되었던 어깨가 금세 퉁퉁 부어올랐지만, 어차피 그는 오른손잡이라 상관없었다.
“편하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다니. 후회하게 될 거다.”
“난 후회 따윈 안 해.”
뒤늦은 참회, 혹은 미련.
그런 감정이 자리를 잡을 공간 따윈 담호의 가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팟!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충보가 펼쳐졌다.
순간 남궁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어리석은! 그 보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남궁천이 다시 한 번 무한신보를 펼쳐 담호의 충보를 피했다.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담호의 뒤쪽으로 쇄도하는 남궁천, 그의 손에 들린 검이 매섭게 빛을 냈다.
그 순간이었다.
쾅!
담호의 발이 거세게 바닥을 굴렀다.
그의 오른발이 발목까지 바닥을 파고들었다. 천근추를 펼쳐 강제로 충보를 멈춘 것이다.
그그극!
압력이 가중되면서 다리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고, 담호의 얼굴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담호가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하며 전신에 가해졌던 압력을 해소했다.
“음!”
담호의 배후로 접근하던 남궁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담호의 반응 때문이었다.
쩌엉!
담호가 단공벽을 펼쳤다.
공기의 결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남궁천의 고막도 타격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이명이 울려 퍼지면서 남궁천의 균형이 살짝 흔들렸다. 담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담호의 장심이 남궁천의 가슴에 닿았다. 오지암파경(五指巖破勁)을 펼치려는 것이다.
퍽!
그 순간 정신을 차린 남궁천이 검병으로 담호의 손등을 내리치며 급히 떨어졌다.
“놈!”
쉬앙!
거리를 벌리면서도 검을 휘둘러 담호를 공격했다.
순간 담호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한 바퀴 몸을 돌렸다. 다리가 채찍처럼 튀어나왔다.
탄마각이었다.
쐐애액!
터엉!
남궁천의 머리를 노렸지만, 검면에 막혔다. 검신이 활처럼 휘어지더니 담호의 몸을 튕겨 냈다.
다행히 담호의 공격을 막았지만, 그 충격으로 단정히 묶었던 남궁천의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남궁천의 눈에 노기가 떠올랐다.
“감히!”
남궁천이 들고 있던 검을 담호를 향해 던졌다.
팽그르!
검이 회전을 하며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담호가 고개를 숙이며 검을 피했다.
담호는 그대로 남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이 없는 남궁천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이는 순간이었다.
“위험해요.”
등 뒤에서 종리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뇌리를 울리는 격렬한 위기감.
담호는 본능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쉬가각!
그 순간 화끈한 통증이 등을 휩쓸고 지나갔다. 고개를 다시 드니 그의 등을 스쳐 지나가 허공에서 회전하는 검이 보였다.
허공에서 궤도를 바꾼 검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담호를 공격했다.
‘이기어검(以氣馭劍).’
뜻으로 검을 조종하는 전설적인 경지.
쉬아앙!
공기가 갈라지며 은빛 검신이 담호의 목을 노렸다.
담호가 은망수로 검을 쳐 냈다. 하지만 튕겨 나간 검은 팽그르 돌아 다시 담호의 요혈을 노렸다.
인간이 직접 펼치는 검술은 아무래도 이래저래 제약이 많기 마련이다.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어검으로 펼치는 검술은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핏!
담호의 옷자락이 잘려 나갔다.
그런 담호를 보며 남궁천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제왕심공(帝王心功)이라는 남궁세가 최고의 내공심법을 익힌 남궁천이었다. 제왕심공으로 쌓은 그의 내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웠다.
그의 내력이 바닥나지 않는 한 이기어검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남궁천은 이기어검으로 제왕검형을 펼쳤다. 그렇지 않아도 압도적인 위력을 갖고 있는 이기어검에 제왕검형의 묘리가 더해지자 위력이 배가됐다.
쐐애액!
날카롭게 휘도는 이거어검 앞에 담호의 모습은 풍전등화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아아!”
종리연의 입술을 비집고 절망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틀렸어.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이기어검은 못 이겨.’
자신의 한 목숨 어떻게 되는 것은 아깝지 않았으나, 자신 때문에 담호까지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담호는 이기어검에 의해 극한의 궁지에 몰려 있었다. 어떻게 해도 이기어검을 뚫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남궁천의 몸에는 손 하나 대지 못하고 있었다.
담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절망하고 지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담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 낸다.’
그것이 암형권, 담호의 독행류다.
우웅!
담호가 방패를 펼치자 몸이 초진동을 일으켰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는 이기어검을 향해 충보를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천이 비웃음을 지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이기어검의 위력은 절대적이다.
맨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방패라는 초진동 방어 기공이 뒷받침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푸욱!
이기어검이 방패를 뚫고 들어왔다. 살이 찢겨져 나가고, 검 날이 가슴의 근육을 가르며 들어왔다.
“커헉!”
담호가 피를 토했다.
검 날이 그의 한쪽 폐를 관통해 등 뒤로 비집고 나갔다. 폐에 구멍이 나면서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공기의 유입이 반으로 줄어들면서 담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꺼멓게 변했다.
검에 가슴을 꿰뚫린 담호의 몸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허리를 잔뜩 숙인 채 피를 흘리는 담호의 모습을 보며 남궁천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것 보거라. 크하하!”
그의 웃음이 대지를 울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담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코와 입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턱을 타고 흐른 피는 가슴까지 붉게 적시고 있었다.
“크르륵!”
한쪽 폐가 쪼그라들면서 기괴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담호의 눈빛은 결코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거칠고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잡……았다.”
“뭐?”
“너의 검!”
가슴을 꿰뚫은 검이 담호의 손에 잡혀 있었다.
파캉!
담호가 힘을 주자 검신이 중간에서 부러졌다. 담호가 부러진 검편을 버렸다. 아직도 반쪽의 검신이 가슴을 관통한 채 꽂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 하지만 극한으로 단련된 담호의 육체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상처 주위의 근육이 조여지며 출혈을 최소한으로 막았다. 폐의 상처 역시 쪼그라들면서 외부로 공기가 새어 나가는 것이 멈췄다.
“후읍!”
담호가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공기가 유입되자 볼품없이 오그라들었던 폐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탓!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그의 주먹이 공기를 갈랐다.
급속히 확대되는 담호의 모습에 남궁천이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습관처럼 검을 휘두르려 했는데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호신강기를 펼쳤다.
쾅!
호신강기 위로 담호의 일격이 작렬했다. 은빛 막이 출렁이면서 남궁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크윽! 건방진…….”
호신강기로 막았는데도 강렬한 충격이 내장을 찌르르 울렸다. 전신을 관통하는 충격에 남궁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분노가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검이 없다고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였다.
당연히 남궁세가의 검뿐만 아니라, 권공까지 모조리 섭렵했다. 검이 없어도 그는 무적이었다.
남궁천이 남궁세가의 비전권공인 구벽신권(九劈神拳)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가장 큰 패착이 되었다.
그가 구벽신권으로 전환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담호는 놓치지 않았다.
쾅!
담호의 주먹이 남궁천의 팔뚝 위로 작렬했다. 그 때문에 구벽신권이 중간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익!”
남궁천이 이를 악물며 다시 구벽신권을 펼치려는 순간 담호의 전신이 눈앞에서 흐릿하게 변했다.
방패가 펼쳐진 것이다.
그 상태로 담호가 주먹을 날렸다.
주먹, 다음에 팔꿈치, 그리고 몸통과 무릎 공격이 작렬했다. 담호의 몸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연환공격.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
육체를 한계까지 쥐어짜 펼치기에 전신에 막대한 부하가 걸리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담호도 익히기만 했지 실전에서 펼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될 수 있으면 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슴에 꽂힌 검신이 육합혈산하를 펼칠 때마다 그의 가슴을 마구 헤집었다. 간신히 진정시켰던 육체가 마구 피를 흘렸지만, 담호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공격했다.
콰콰쾅!
굉음이 울려 퍼지고 남궁천의 몸이 흔들렸다.
주먹을 막으면 팔꿈치가 들어오고, 팔꿈치에 신경을 쓰는 순간 무릎이 날아왔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엄청난 압박감과 충격.
콰직!
“큭!”
담호의 공격을 막은 팔뚝에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남궁천의 입술을 비집고 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팔뚝 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이런 개 같은…….”
남궁천이 욕설을 내뱉으며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마치 전신이 아교의 늪에 빠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육합혈산하를 펼치면 담호의 전신에서 가공할 인력(引力)이 발생되어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당겼다. 남궁천 역시 담호의 인력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피에 절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담호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등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름. 남궁천이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남궁천의 팔뚝이 부러지면서 나타난 찰나의 파탄.
육합혈산하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터엉!
양팔이 활짝 벌려지고, 주먹, 팔꿈치, 어깨, 몸통 공격이 폭풍처럼 이어졌다.
콰가가가각!
“크헉!”
주먹을 맞은 얼굴이 모로 튕겨 나가고, 무릎이 작렬한 허리가 새우처럼 꺾였다. 다시 그 위에 몸통 공격이 작렬하고, 활짝 펴진 손바닥이 남궁천의 턱을 강타했다.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다. 피가 흐르고, 침이 튀었다. 동공이 흐릿해지고, 머리에 이명이 울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정신을 잃었을 상황, 하지만 그는 남궁천이었다.
검왕 남궁천.
정신이 희미해진 상황에서도 오른손이 검결지를 만들었다.
손가락에 맺히는 희미한 기운, 검결지로 검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쩌어엉!
그들이 최후의 손속을 교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