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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8장.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피 냄새를 지우지는 못한다(2)
종리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눈앞에 담호가 누워 있었다. 담호의 모습은 다 찢어진 걸레처럼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가슴의 상처였다.
그의 가슴에는 아직도 부러진 검신이 박혀 있었다. 폐를 관통한 검신은 등 뒤로 삐죽 삐져나와 있었는데, 섣불리 뽑았다가는 엄청난 출혈 때문에 손쓸 수도 없이 죽을 수 있었다.
신의라고 불리는 종리연조차도 손을 데는 것이 두려울 정도의 중상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담호가 제아무리 초인적인 체력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단련된 육체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이대로 방치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구나.”
결심을 굳힌 종리연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지금 그녀와 담호가 있는 곳은 안휘성 북부의 이름 없는 야산 으슥한 동굴 안이었다.
남궁세가의 추적을 우려해 마을이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들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담호의 치료에 필요한 약재를 구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종리연이 품에서 은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현재 그녀의 수중에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은침 하나로 담호의 생명을 구해야 했다. 완치를 시키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숨은 잇게 만들어야 했다.
“반드시 살려야 해. 힘내자, 종리연!”
종리연은 스스로를 격려하며 담호를 바라봤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담호의 얼굴. 정신을 잃었는데도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괜찮을 거야. 그는 강하니까.”
종리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얗고 조그만 손으로 담호의 가슴에 박힌 검신을 잡았다. 그러고는 힘껏 당겼다.
푸화학!
매끄러운 검신이 뽑혀 나오면서 엄청난 양의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종리연은 급히 검신을 버리고 담호의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혈도를 짚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혈도를 짚는 것만으로도 지혈이 됐다. 하지만 담호의 상처는 너무 크고 깊어서 쉽게 지혈이 되지 않았다.
종리연의 하얀 손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하던 담호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이대로 조금만 더 피가 흐른다면 담호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었다.
“빨리 피를 멈춰야 해.”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종리연이 갑자기 겉옷을 벗었다.
찌이익!
겉옷을 갈기갈기 찢어 담호의 상처에 쑤셔 박았다. 그러자 분수처럼 터져 나오던 피가 조금은 멈췄다.
종리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호의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먼저 구멍이 난 폐를 봉합하고, 뒤이어 가슴과 등에 난 상처를 꿰맸다.
종리연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은침을 담호의 전신에 꽂기 시작했다.
생사현혼침(生死懸魂針).
곽연을 구하기 위해 펼쳤던 침술을 담호에게 펼쳤다.
생사현혼침을 펼치는 것은 종리연에게도 큰 모험이었다. 생사현혼침은 곽연을 구하기 위해 만든 침술이지, 담호에게 맞는 침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리연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미리 준비한 약재를 복용시키며 세 번을 연거푸 펼쳐야 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약재도 없었다.
종리연은 신중하게 생사현혼침을 펼쳤다.
담호의 전신엔 은침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은침이 꽂힌 자리에서 죽은피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담호를 내려다보던 종리연이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질경이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종리연은 질경이를 돌멩이로 짓이겨 즙을 만들었다.
“후!”
종리연이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조심스럽게 담호의 전신에 꽂힌 은침을 뽑았다.
그때까지도 담호는 미동 하나 없었다.
종리연은 담호의 상처에 짓이긴 질경이를 덕지덕지 처발랐다.
질경이는 예로부터 지혈과 상처 소독에 좋기로 유명했다. 빈사 상태에 빠진 담호에게도 통할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는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하아!”
마침내 질경이를 모두 바른 종리연이 한숨과 함께 동굴 벽에 등을 기댔다. 기력이 모두 탕진되어 똑바로 앉아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종리연은 벽에 등을 기댄 상태 그대로 담호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나머진 그의 의지와 하늘의 뜻에 달렸다.”
그녀는 부디 담호가 무사히 살아나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화노를 만났다.
화노는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잘 있는 거죠?”
종리연이 물었지만, 화노는 대답 대신 미소만 보여 줬다.
“보기 좋아 보이네. 난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종리연이 괜히 투정을 부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선명한 화노의 모습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사부가 죽은 이후 천하에 홀로 남겨진 그녀를 화노는 마치 친딸처럼 보살펴 주었다. 그 덕에 마음 놓고 의술을 펼칠 수 있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화노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종리연은 손을 뻗어 화노를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환상처럼 화노의 모습이 흩어지고 그녀의 손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화노!”
종리연이 큰 소리로 화노를 부르며 눈을 떴다.
그녀의 고운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흐흑!”
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이상하게 감정이 북받쳐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혼자라고 생각하니 더 서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나타나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줬다.
“아!”
놀라서 고개를 드니 담호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어 기괴할 정도로 창백한 얼굴이 무섭게 보였지만, 종리연은 그마저도 반가웠다.
와락!
종리연이 자신도 모르게 담호를 힘껏 끌어안았다. 담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신음 하나 내뱉지 않았다.
현재 그는 간신히 정신만 차린 상태였다. 극한까지 단련된 육체와 암혼심공, 그리고 종리연의 적절한 치료가 만나 이뤄 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미안해요.”
뒤늦게 종리연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담호에게서 후다닥 떨어졌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민망함과 부끄러움으로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신세를 졌군.”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신세를 졌죠.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종리연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담호는 그런 종리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비록 상처를 입고 지쳤지만 그의 눈빛은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종리연은 그런 담호의 눈빛을 차마 마주 보지 못했다.
담호는 더 이상 종리연을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 상태를 관조했다.
외상은 둘째치고 내력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기맥과 심맥까지 망가졌다. 이런 상태로는 정상적으로 내력을 운용할 수 없었다.
‘엉망이군.’
아니, 단순히 엉망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무공을 익힌 이래 이렇게 몸이 엉망이었던 적은 없었다.
종리연의 침술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숨을 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놈들은?”
“놈들요?”
“남궁세가 말이야. 분명 추적대가 따라올 거야.”
“모르겠어요. 전 그냥 말이 달리는 대로 몸을 맡겨서.”
“밖에 흑귀가 있나?”
“예! 아직 있을 거예요.”
종리연의 대답에 담호가 눈을 빛냈다.
담호가 몸을 일으키기 위해 힘을 줬다.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큭!’
담호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그것 조금 힘을 주었을 뿐인데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무리하면 안돼요. 당신은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
이곳에 계속 머물다간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지금 몸 상태로는 절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담호는 종리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고 전신에서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래도 담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진짜?”
종리연이 그런 담호를 질렸다는 듯이 바라봤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회복력과 초인적인 의지였다.
담호는 벽을 짚으면서 겨우 걸음을 옮겼다.
히힝!
동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흑귀가 반갑다는 듯이 담호의 얼굴에 뺨을 비볐다.
담호가 말없이 흑귀의 목덜미를 두들겼다.
“가지.”
“어디로 말인가요?”
“놈들의 추적을 떨쳐 낼 수 있는 곳으로.”
담호가 간신히 흑귀의 등에 올라탔다. 약간 무리했다고 상처가 터져 다시 혈흔이 내비쳤다.
그런 담호의 모습에 종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가요.”
“위험할 거야.”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인 담호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그녀도 흑귀의 등에 올라탔다.
종리연이 담호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가요.”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흑귀의 배를 가볍게 찼다. 그러자 흑귀가 기다렸다는 듯이 무섭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담호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는 세상에 나온 이후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적수 한 명 만나지 못했기에.
하지만 이젠 확실히 알았다. 세상은 넓고 진정한 강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해질 이유를 찾았다. 그러니까 더 강해질 것이다.
담호와 종리연이 떠나고 거의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동굴 입구에 일단이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입니다. 그들의 흔적이 이곳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무리의 선두에 있는 뱁새눈의 사내가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인이 허리에 찬 검을 꺼내 들었다.
“모두 조심하라. 상대는 권마다.”
“예!”
그들은 바로 남궁세가에서 보내온 추적대였다. 희미하게 남은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추적해 온 것이다.
추적대는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담호가 운신이 불가능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극도의 긴장감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동굴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뱁새눈의 사내가 바닥에 남은 흔적을 살폈다.
“떠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온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놈의 흔적이 맞는가?”
“맞습니다. 족적과 옷자락이 일치합니다.”
“제기랄!”
우두머리가 애꿎은 벽에 일격을 날렸다.
퍼석!
그의 주먹이 손목까지 벽에 처박혔다.
우두머리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추적해 왔는데 막상 담호가 이곳을 떴다고 하니 허탈한 것이다.
“절대 놈이 회복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남궁세가엔 초비상이 걸렸다.
남궁세가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검왕대가 몰살을 당했고, 가주인 남궁천 역시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남궁천의 상태는 너무 처참해서 언제 완벽하게 회복할지 기약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남궁세가의 전력이 반 이상 날아간 셈이다.
그 모든 것이 담호 단 한 명에 의해 일어났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다.
이대로 담호를 놓친다면 남궁세가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그 후환이 끝이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남궁천은 정신을 잃기 전에 반드시 담호를 추적해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우두머리 남자가 급히 다른 무인에게 말했다.
“이대로 놈을 놓쳐서는 안 돼. 너는 개방과 하오문에 협조를 구해 놈의 흔적을 추적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놈을 추적한다.”
“존명!”
명령을 내리는 자나, 받는 자나 얼굴엔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들은 두려웠다.
이대로 담호를 놓친다면, 그래서 담호가 완전히 회복된다면 남궁세가는 그야말로 최악의 적과 조우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 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해.”
우두머리 사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