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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81화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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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2장. 혼돈의 바람은 북에서 불어온다(3)

담호의 눈만큼이나 검율천의 눈 또한 깊고 검었다. 도저히 속내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검……율천?”

어디선가 분명 한 번 들어 본 이름이다. 하지만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는지 쉽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왠지 기억을 더듬는 듯한 담호의 얼굴을 보면서 검율천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알고 있는가?”

“어쩌면?”

“그것 참 흥미롭군. 천하에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채 열 명이 넘지 않을 텐데.”

마치 산책을 나온 듯 여유로운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담호와 무척이나 친한 사이로 착각할 만큼 친근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순간 담호의 뇌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기억 하나.

“천……금마옥.”

자신이 십이 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던 곳.

그곳에 새겨져 있던 글귀 하나.

[검율천, 이곳에 친구들을 묻다.]

무려 십이 년이나 봐온 글귀였기에 아직도 기억이 선명했다.

순간 여유롭던 검율천의 얼굴에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다.

“천금마옥에 있었나?”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잃었지.”

검율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오래된 기억을 더듬던 그의 눈빛이 더할 수 없이 깊게 침잠됐다.

억지로 봉인했던 기억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랐다.

“십여 년 전에 천금마옥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화산파의 어린 도사 하나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매몰되었다는 이야기도.”

“…….”

“그게 자네였군.”

담호와 검율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담호의 눈빛이 일렁거렸다. 격랑이 이는 담호의 눈빛은 보통 사람은 감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포악했다. 하지만 검율천은 그런 담호의 눈빛을 보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고생했겠군. 나도 경험해 봤지만 천금마옥의 삶이 결코 녹록한 것은 아니지.”

“…….”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나는 자네의 적이 아니니까. 적어도 지금은. 오히려 나는 자네에게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지. 자네와 신의 덕분에 막 회복되게 되었으니까.”

“…….”

“명천이 바로 막내일세. 이제 신의 덕분에 그 아이가 회복하게 되었으니 나도 한시름 놨네.”

“환골탈태는?”

“오음신단(五陰神丹)이라는 영약을 미리 복용시켰네. 허약한 상태의 명천에겐 아무 소용이 없지만, 정상적인 기혈을 회복한 상태라면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지. 환골탈태를 한 것은 나로서도 의외였지만.”

“종리연을 이용했군.”

“그 수밖에 없었네. 막내를 구하려면.”

“그를 많이 아끼나?”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내 혈육이나 다름없지.”

“그도 천금마옥 출신이겠군.”

담호의 말에 검율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순순히 인정했다.

“맞네!”

“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나 보군.”

“…….”

이번엔 검율천이 침묵했다.

담호가 다시 물었다.

“음유경도 그에 속하나?”

“하! 이거 우습게 볼게 아니었군. 자네, 정말 예리하군. 유경까지 연결 지어 생각하다니.”

“맞나?”

“맞네! 그녀는 나의 가장 큰 지지자일세.”

“신무월이란 자도 있었지.”

“하! 제기랄! 이거 밑천 한번 거하게 털리는군. 맞네! 그 아이가 셋째일세. 그러게 조심하고 다니라니까.”

검율천이 큰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음유경에 신무월, 그리고 명천 모두 검율천을 따르고 있다. 누구 한 명 평범한 이가 없었다.

“뭐지? 마교의 교주라도 되나?”

“아닐세! 나는 오히려 교주를 증오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

“왜지?”

“천하의 혼란을 원치 않으니까.”

“나보고 믿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믿지 않아도 상관없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믿게 될 테니까.

“웃기는군.”

검율천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담호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거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맹수 같군.’

음유경에게 담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과장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담호의 기파는 오히려 듣던 것보다 사납고 위협적이었다.

“자네가 믿든 안 믿든 상관없네. 말했다시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테니까.”

“너에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거야.”

퍼석!

담호가 검율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밟은 기왓장이 먼지처럼 부서졌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담호가 한쪽 발을 끌면서 다가왔다. 마치 심해에 빠진 것처럼 가공할 압력이 검율천의 전신을 짓눌렀다.

검율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듣던 대로군.’

담호가 어떻게 해서 천금마옥에서 지금과 같은 강함을 손에 넣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강함은 검율천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지금 몸 상태로 가능할까?’

검율천은 잠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담호의 포악한 살기에 마치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처럼 피부가 아팠다. 이 정도의 살기를 경험하는 것은 검율천도 처음이었다.

소림의 백팔나한진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살이 떨렸다.

‘이자라면…….’

검율천의 눈이 번뜩였다.

출구가 보이지 않던 암흑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기분이었다.

결심을 굳힌 검율천이 허리에 걸려 있는 도를 잡았다.

스릉!

매끄러운 도신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녀석이다. 도에 이름 따윈 없었다. 검율천에게 중요한 것은 도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내공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한가였으니까.

쿵!

그 순간 담호가 기와를 박찼다.

그 충격으로 담호의 발밑을 받치고 있던 저택의 천장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쿠콰콰!

폭풍이 밀려온다.

도의 손잡이를 움켜잡은 검율천의 손등에 굵은 힘줄이 도드라져 나왔다.

“챠앗!”

후웅!

검율천의 도가 공기를 갈랐다.

혈살우(血殺雨).

소림사 불패의 전설인 백팔나한진을 무너트린 전적이 있는 초식이 담호를 향해 펼쳐졌다.

쿠콰콰콰!

강기가 비가 되어 쏟아졌다.

순간 담호의 몸이 흐릿해졌다. 호신기공인 방패가 발동한 것이다. 마치 풍뎅이의 날개처럼 담호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런 담호의 동체 위로 강기의 비가 쏟아졌다.

퍼버버벅!

담호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실핏줄이 터진 두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디붉었다.

딤호의 몸을 직격한 강기는 튕겨 나가거나 소멸됐다. 강기는 막았지만, 물리적인 충격은 그대로 담호의 몸 안에 축적됐다.

내장이 울리고, 기혈이 들끓어 올랐다. 하지만 담호는 충보를 멈추지 않았다.

강기의 비를 뚫자 검율천이 보였다.

파성추가 펼쳐졌다.

검율천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견뎌 줄 수 있을까?’

힘주어 잡고 있는 도의 상태가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검율천에겐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담호의 주먹과 검율천의 도가 격돌했다.

쩌어엉!

순간 파열음과 함께 압축되었던 공기가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폭풍은 저택을 무너트리고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검율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친구!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걸세.”

뒤이어 검율천이 허공 십여 장 위로 치솟아 올랐다. 신룡처럼 솟아오른 검율천은 이내 유성처럼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담호는 주먹을 꽉 쥔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먹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 발치엔 산산이 부서진 도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검율천의 도가 담호의 파성추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푸스스!

담호의 전신에서 강렬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눈이 사납게 빛났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내보인 무력은 그야말로 호각.

담호가 모든 것을 내보이지 않았듯 검율천 역시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한다면 무승부가 맞을 것이다.

잠시 검율천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담호가 명천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담호와 검율천이 격돌한 일대는 마치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초토화되었다. 거의 십여 채에 이르는 저택들이 폭삭 무너진 채 먼지만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 정도 피해라면 일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잔해 사이에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명천의 집 역시 반파가 되어 있었다. 벽은 무너져 내부의 모습이 환히 드러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종리연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담호가 가볍게 내공을 주입하자 종리연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잠시 영문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보던 종리연이 초토화된 주위를 둘러보며 놀랐다.

“헉!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명천은?”

“예?”

담호의 물음에 종리연이 잠시 대답을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기억이 돌아왔다.

“노인이 갑자기 미안하다면서 수혈을 짚었…….”

“역시 그런 거였나?”

“무슨?”

담호가 몸을 일으켰다.

집안 어디서도 명천과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검율천은 담호와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단지 명천과 노인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려고만 한 것이다.

담호가 발을 끌면서 근처에 무너진 집의 잔해를 뒤졌다. 하지만 어디서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일대를 사들여 비어 두었던 것인가?’

검율천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했다.

일대의 모든 집을 사들임으로써 외부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명천을 보호했다. 그만큼 명천이 그에겐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일 터.

담호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종리연을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종리연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명천과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놈의 정체는?”

“저, 저도 몰라요. 그냥 사부가 반드시 치료해 줘야 할 사람이라고만 해서.”

“당신의 사부는 어디 있지?”

“이……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담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명천의 치료법은 사부가 대부분 구상한 거였어요. 두 사람의 관계를 물어본 적이 있지만, 대답해 준 적은 없어요.”

생각해 보면 그녀의 사부는 무척 신비한 사람이었다. 하늘에 닿은 의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배경이나 출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는 하나뿐인 제자 종리연에게도 자신의 신분은 철저히 숨겼다.

“사부는 내가 자유롭게 살길 바랐어요.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하나도 말씀해 주시지 않았어요. 알게 되면 인과에 얽히게 된다면서…….”

결국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담호는 종리연의 표정에서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결국 검율천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셈이다.

“재밌군!”

담호가 으르렁거렸다.

그의 시선이 검율천이 사라진 곳을 향했다.

검율천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지만, 담호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와의 인연은 이제 시작이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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