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182화 3장. 용과 호랑이의 시대(1)
“몸은 좀 어떠하냐?”
“최고예요.”
검율천의 물음에 명천이 그렇게 대답했다.
명천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명천의 미소에 검율천도 환한 웃음을 지었다.
검율천이 손을 뻗어 명천의 머리를 거세게 쓰다듬었다. 머리가 헝클어졌지만 명천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커다란 사내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십 수 년 전 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눈앞의 남자만 보고 따라왔다. 그 덕에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마워요, 대형.”
“형이 아우 챙겨 주는 게 뭔 대수라고 이러는 줄 모르겠구나.”
“그래도 대형이 아니었으면 이제까지 살지 못했을 거예요.”
“쯧! 쓸데없는 소리. 그런 잡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고 몸 회복에만 최선을 다하거라. 다행히 운이 따라 줘서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니까.”
“예!”
명천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때 명천을 수발들던 노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눈시울을 붉힌 채 명천을 바라봤다.
“공자님, 정말 다 나으셨군요?”
“그래! 이제 다 나았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야노.”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야노라고 불린 노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야노의 모습에 검율천이 혀를 찼다.
“쯧!”
“죄송합니다, 대공자.”
“됐소! 야노가 정 많은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검율천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야노는 그런 검율천을 존경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검율천을 처음 만난 것은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검율천의 나이 겨우 열두어 살.
보통 아이들이라면 사리분별도 제대로 하기 힘든 나이에 지옥 같은 곳에 던져졌다. 스스로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검율천은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보살폈다.
명천도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명천은 특히 병약해서 죽을 확률이 가장 높던 아이였다.
자신의 한 몸 챙기기에도 버거울 텐데 검율천은 그런 명천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명천을 완쾌시키기까지 했다.
전대 신의와 연을 맺은 것도 결국은 명천을 낫게 하기 위함이었다. 전대 신의가 죽자, 그의 제자에게까지 인연이 이어지게 해서 결국은 병마에서 해방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검율천이 보여 준 집요함과 심모원려(深謀遠慮) 한 대계는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 온 야노까지도 전율하게 만들었다.
‘대체 이분의 한계는…….’
야노는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몸서리를 쳤다.
벌써 이십 년이나 검율천을 지켜봤지만,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명천이 입을 열었다.
“이젠 대형이 짊어진 짐을 제가 조금은 나눠 가질게요.”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알고 있어요.”
“녀석!”
검율천이 명천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명천은 흔히들 말하는 천재였다. 그는 무척이나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 덕분에 위기를 넘긴 것이 몇 차례였는지 모른다.
명천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지병 때문에 몸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지병을 털어 냈으니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하하! 우리 막내가 나았다면서요?”
웬 사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등에 공작의 꽁지깃 같은 검갑을 차고 있는 사내는 바로 신무월이었다. 신무월의 등장에 명천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둘째 형!”
“어라? 얼굴색 좋아진 거 보게. 정말 다 나았구나.”
신무월이 명천을 와락 끌어안았다.
명천은 반항하지 않고 신무월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신무월은 그런 명천의 등을 한참이나 토닥거렸다.
“녀석, 살 좀 붙어야겠다. 이게 뭐냐? 뼈다귀만 남아서.”
“이제 많이 먹어서 살 좀 찌고 그럴게요.”
“그래! 그래야지.”
신무월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그가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검율천을 바라봤다. 검율천은 말없이 신무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무월은 그런 검율천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대형.”
“그래!”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도 고생 많았다.”
“이제야 드디어 모두가 모였군요. 무려 십오 년이나 걸려서…….”
“그래! 오래 걸렸지.”
“사저가 없는 게 아쉽군요. 사저만 있었으면 거하게 잔치라도 하는 건데.”
신무월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삭주로 갔다. 그리고 나도 삭주로 갈 것이다.”
“삭주는 왜?”
“등천소가 그곳으로 갔다.”
“등천소? 설마 혈해판관 말씀입니까?”
“그렇다.”
“미친!”
신무월의 입에서 대번에 욕설이 쏟아졌다. 그리고 검율천은 그런 신무월의 마음을 이해했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 소천상도 그곳으로 향할지 모른다.”
“십리무생, 그 살인광까지? 제길! 교주가 단단히 미쳤군요.”
등천소와 소천상 모두 마교 내에서도 가장 손속이 잔혹하기로 소문이 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걸린 자들치고 좋은 최후를 맞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등천소와 소천상은 무공의 특성상 대량 살상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움직였다 함은 곧 엄청난 학살이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교주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자칫하면 되돌릴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제길!”
“무월, 너의 임무가 가장 중요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놈들의 꼬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잡힐 듯하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요.”
“음!”
“저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명천!”
신무월의 대답에 검율천이 명천을 불렀다.
“예! 대형.”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 즉시 무월과 함께 움직여라. 놈들을 옭아맬 방법을 찾아봐.”
“그렇지 않아도 이미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요.”
“진짜?”
신무월이 반색을 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이런 느낌일까? 명천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무월이기에 훨씬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밥값도 못해 죄송했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어이쿠! 요, 이쁜 녀석!”
신무월이 다시 한 번 명천을 콱 껴안았다. 그에 명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컥! 형, 숨이 막혀요.”
“그래! 숨 막히면 안 돼지. 하여간 고맙다.”
야노는 그 광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검율천을 중심으로 단단히 뭉친 이들.
그때는…… 이십 년 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다. 그 당시 너희들이 이렇게 단단히 뭉칠 거라고 이야기했다면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때 신무월이 한마디를 꺼냈다.
“참, 권마와 격돌했다 들었습니다.”
“그랬지.”
“어땠습니까?”
신무월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강하더구나.”
“어느 정도입니까?”
“최선을 다해야 할 상대.”
“그 정도입니까?”
신무월의 얼굴에 경악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검율천은 그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무공뿐만 아니라 심기, 마음, 그리고 인간 자체가 강했다.
그 때문에 신무월도 그를 인정하고 대형으로 모셨다. 검율천이 아닌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위에 있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담호가 강하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사저인 음유경을 곤란하게 만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었으니까. 하지만 대형인 검율천이 자신과 동등한 상대로 인정할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떻게 천금마옥 안에서 그 정도의 강함을 손에 넣은 줄은 모르겠지만 그는 강하다. 사신제와 교주, 사대군장을 제외하면 그와 정면으로 부딪쳐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미친!”
“그래! 미친 수준의 강함이지.”
검율천이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담호와 격돌했던 도는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호구는 반치 정도 찢겨 있었다. 이 정도 상처를 입은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럼 도는?”
“부서졌다.”
“큿! 그 명도가…….”
“어차피 신외지물에 불과할지니 아까울 것 없다. 도가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남자다.”
“으음!”
검율천의 대답에 신무월이 침음성을 흘렸다. 검율천을 안 지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그가 이렇게 누군가를 극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승부를 낼 것을 그랬나?’
문득 아쉬움이 밀려왔다.
검율천이 그런 신무월의 속내를 눈치채고 말했다.
“담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을 찾는 데 주력하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야노.”
“말씀하십시오.”
“유경을 도와주시오.”
“삭주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나도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삭주로 갈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음!”
검율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콰르르!
언제부턴가 뇌우가 작렬하고 있었다. 벼락이 떨어지고 거센 바람에 창문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담호.’
뇌우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 남자가 떠올랐다.
담호는 뇌우를 닮았다.
거침없이 몰아치고, 결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는.
‘그라면…….’
***
“휴!”
현소 진인이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이른 봄. 아직도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있는 텃밭 때문이었다.
그다지 크다 할 수 없는 텃밭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현소 진인과 아이들이 먹을 만한 채소들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화산을 내려온 이후 현소 진인은 항상 자급자족을 했다. 주머니 속의 돈이 부족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화산에 있을 때도 풍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 먹고사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화산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만 먹고살 수 있었다.
처음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해 고생도 많이 했고, 굶기도 했었다. 몇날 며칠을 굶은 후에야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약초를 캐는 것이었다. 다행히 현소 진인은 약초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처음엔 순수하게 약초만 캐서 팔았지만, 나중엔 청명환(靑命丸)이라는 보양단을 제조해서 팔았다. 청명환은 보양단으로 인기가 좋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다.
덕분에 부족하나마 아이들을 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힘이 부쩍 부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할부지.”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어린 여아가 현소 진인에게 아장아장 걸어왔다.
“힘들지?”
조그만 손에 들린 하얀 손수건을 내미는 어린 여아. 현소 진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현소 진인이 손수건을 받으며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안 힘들단다.”
“진짜?”
“그럼!”
“할부지, 힘들면 안 돼.”
“그럼! 할부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 우리 하영이가 있으니까.”
“헤헤!”
하영이라 불린 여아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현소 진인은 마냥 웃을수 없었다.
하영이는 고아였다. 다행히 현소 진인이 구할 수 있었지만, 몸이 너무 약해서 성장이 더뎠다.
‘이 아이들을 끝까지 보살펴야 하는데.’
화산파의 제자들이 그를 찾으러 온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할부지.”
“응?”
“또 얘기해 줘.”
“또?”
“응! 삼촌 이야기해 줘.”
하영이 아예 현소 진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어린 하영은 담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현소 진인이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