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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85화 (1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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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4장. 운명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1)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불야성을 이뤘던 낙양 시내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둠이 찾아온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유독 낙양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이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시뻘건 화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담호의 심장을 자극한 기파는 바로 화염이 피어오른 곳에서 시작됐다.

방금 전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기파는 실로 강렬하면서도 불길했다. 담호도 서늘함을 느낄 만큼.

“마교……인가?”

담호가 차갑게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마교와 다른 문파가 충돌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하 곳곳에서 그들의 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담호의 눈에는 그 어떤 감흥도 없었다.

마교와 천하가 싸우든 말든 그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문제는 화염이 피어오르는 곳이 담호가 머무는 객잔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객잔에 머물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굉음과 화염에 놀라 깨어난 상태였다.

“무슨 일인가요?”

옆방에서 자던 종리연도 깨어나 담호의 방을 찾아왔다. 그녀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별일 아냐.”

“별일이 아니라뇨? 저렇게 화염이 치솟고 있는데.”

종리연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콰아앙!

그 순간 무언가 날아와 그들이 머물고 있는 객잔에 처박혔다.

“아악!”

종리연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담호의 품에 안겼다.

“끄으으!”

벽에 처박힌 물체는 바로 사람이었다. 전신이 피로 물든 사람은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무심히 그를 바라보던 담호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피를 뒤집어쓴 채 꿈틀거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담호가 종리연을 품에서 떼어놓은 후 남자에게 다가갔다.

“크으!”

피투성이 남자는 마치 문어처럼 축 늘어진 채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엄청난 충격을 입은 남자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아 세상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래서 담호의 얼굴을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담호는 남자를 알아봤다.

“호경.”

“누……구?”

힘없이 대답하는 남자는 바로 화산파의 호경이었다.

호경을 바라보는 담호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였다.

무너진 벽을 뚫고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낭아곤을 든 무인이었다.

그는 바로 온상천의 부하였다. 호경은 온상천에게 부상을 당해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중상을 입고 이곳에 처박히고 말았다.

낭아곤을 든 무인은 호경의 숨통을 확실히 끊기 위해 다가왔다. 어느 정도 시력이 돌아온 호경의 눈에 무인의 모습이 보였다.

호경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놈들은 마교의 무인이오. 어서 도망가시오.”

자신도 중상을 입었으면서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호경이었다. 그런 호경의 모습이 낭아곤을 든 무인을 자극했다.

“흥! 네놈 목숨이나 걱정하거라. 어차피 여기에 있는 연놈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낭아곤을 든 무인이 흉흉한 살기를 발산하며 다가왔다. 담호와 종리연은 그의 안중에 없었다. 낭아곤을 살짝 휘두르기만 하면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호경이 담호와 종리연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어서 도망쳐!”

후웅!

그 순간 낭아곤이 날아들었다. 호경이 검을 들어 낭아곤을 막았다. 하지만 검을 잡은 그의 손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끝인가?’

호경의 눈에 암담한 빛이 떠오른 그 순간이었다.

쿠와앙!

“크억!”

굉음과 함께 호경을 덮쳐 오던 무인이 비틀거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낭아곤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가슴에는 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끄으으!”

호경을 공격하던 무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통나무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무인이 무너진 자리에 담호가 서 있었다. 그가 위기의 순간 마교의 무인을 죽이고 호경을 구한 것이다.

호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그를 공격한 마교 무인의 무위는 실로 무서웠다. 화산파의 일대제자라는 호경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담호는 단 일격에 그런 마교의 무인을 분쇄했다.

호경의 상식으로는 감히 재단하기 힘든 엄청난 무위였다.

담호가 뒤돌아서 호경을 바라봤다. 순간 호경이 눈을 잔뜩 찌푸렸다. 담호의 얼굴이 왠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담호가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왼쪽 다리를 살짝 저는 모습을 본 순간 호경의 뇌리에 어떤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천……경?”

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솔직히 담호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화산에 있을 때도 스치듯 몇 번 본 것이 전부였기에. 하지만 그가 다리를 전다는 사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에 눈앞에서 보여 준 가공할 무위.

두 가지 사실을 더하니 눈앞에 있는 사내가 담호라는 확신이 들었다.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구나. 정말 천……경이 맞구나. 어떻게 네가 이곳에?”

“그러는 당신은 이곳에 웬일이지? 화산은 이곳에서 먼 곳에 있을 텐데.”

“크윽! 사부를 따라왔다가.”

무심코 대답하던 호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제야 사부가 마교에서 나온 고수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가 담호의 손을 붙잡았다.

“천경, 사부를 구해다오. 사부가 위험…….”

호경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그러면서도 부여잡은 담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어찌나 꽉 잡았는지 담호의 손에 피가 돌지 않을 정도였다. 종리연이 급히 호경을 안아 들었다.

그녀가 품에서 은침을 꺼내 들며 말했다.

“어서 응급조치를 해야 해요. 이분은 내게 맡기고 당신은 어서 이분의 사부를 구해요.”

“…….”

“그렇게 멍하니 서 있을 거예요?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당신과 연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대로 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면 당신의 사부가 좋아할까요?”

종리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담호가 움직이지 않자 그녀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최소한 당신 사부를 만났을 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니에요. 부탁이에요. 제발 저들을 구해 줘요.”

담호가 몸을 돌렸다.

저 멀리 온상천과 현광 진인, 그리고 광해가 한데 어울려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담호가 그곳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처참하게 부서진 객잔을 무대로 온상천과 현광 진인, 그리고 광해는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비단 싸우는 것은 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온상천의 수하들과 소림사의 제자들 역시 온 힘을 다해 격돌하고 있었다.

거리엔 검기와 도풍이 난무했다.

온상천은 흑심마수를 펼쳐 현광 진인과 광해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가 수장을 휘두를 때마다 현광 진인과 광해는 감히 맞받아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현광 진인과 광해 역시 내로라하는 고수들. 그들은 흑심마수를 피하면서도 화산과 소림의 절기를 펼쳐 반격을 했다.

쿠콰쾅!

그들의 격돌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객잔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일대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화양객잔과 인근 객잔에 머물던 사람들은 날벼락을 피해 사방으로 달아났다.

“아악!”

“살려 줘!”

거리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광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다른 곳도 아닌 불문 소림의 제자였다. 때문에 인명을 누구보다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싸움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니 자연 손속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온상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우습게 보였던가? 격전 중에 한눈을 팔다니.”

그의 손이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광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자신의 실책을 눈치챈 광해가 급히 수비식을 펼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는 수 없이 광해는 내공을 가슴에 집중했다.

흑색의 수장이 광해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직!

“크헉!”

광해가 비명과 함께 뒤로 훌훌 날아갔다.

“사부님!”

소림사의 제자들이 그런 광해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발목은 온상천의 수하들에게 잡혔다.

부웅!

낭아도가 거칠게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소림사의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온상천이 광해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몸을 날렸다. 현광 진인이 필사적으로 그 앞을 막아섰지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해 보였다.

“사부님! 크흑!”

광해의 직계 제자인 우천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사부의 위기를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저주스러웠다.

“네 목숨이나 걱정하거라, 땡중!”

온상천의 부하가 우천의 목을 향해 낭아도를 날렸다. 광해에 정신이 팔린 우천은 미처 대비할 수 없었다.

우천은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을 각오했다.

퍼엉!

그 순간 폭음과 함께 우천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거센 압력과 바람이 그의 몸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우천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머리를 잃은 채 비틀거리고 있는 몸체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그를 사납게 몰아치던 온상천의 부하였다.

“무슨?”

우천이 눈을 부릅떴다.

쿵!

머리를 잃은 몸체가 썩은 통나무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로 미뤄 보아 온상천 부하의 머리를 날려 버린 것이 남자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 저자가 누구기에…….’

검은 상하의에 검은 피풍의, 그리고 피와 땀에 전 흑발. 마치 남자는 검은색에 미친 사람 같았다.

남자가 팔을 크게 휘둘러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걷는 모습이 무언가 이상했다.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더 들썩이고 있었다. 왼발을 절기 때문이다.

순간 우천의 머리에 한 남자의 별호가 떠올랐다.

‘권마!’

세상엔 수많은 무인이 존재한다. 싸움이 일상다반사다 보니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무인도 많았다. 외팔이 무인도 있었고, 절름발이 무인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권마만큼 강렬한 존재감과 위상을 갖지 못했다. 특히 한 번이라도 그와 대면했던 이들은 아예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릴 만큼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느꼈다.

우천은 검은 일색의 남자가 권마라고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커헉!”

쾅!

남자의 앞을 호기롭게 막아섰던 온상천의 부하가 가슴이 함몰되어 날아갔기 때문이다.

어떻게 남자가 움직이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저 눈앞에 희끗해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남자는 온상천의 부하 앞에 도달해 있었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남자의 무위에 우천과 소림사의 제자들이 입을 떡 벌렸다.

콰쾅!

“크아악!”

“마, 막아! 으악!”

그들이 그토록 고전하던 상대들을 남자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무너트리고 있었다.

남자는 바로 담호였다.

담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스산했다.

눈빛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고, 입술은 꾹 다물어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온상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광 진인은 이미 한계에 달했는지 사색이 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발의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 더 이상 무공을 펼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상천은 어쩐 일인지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현광 진인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공기를 타고 온상천의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다.

“무슨?”

현광 진인의 눈이 온상천의 시선이 바라보는 곳을 향했다.

온상천은 한쪽 다리를 끌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담호를 긴장된 시선으로 바라봤다.

담호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주위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반대로 그의 신경은 한껏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됐다.

온상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담호를 노려봤다. 그리고 입을 열어 대화를 시도했다.

“너는 누구…….”

쾅!

그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고 온상천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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