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186화 4장. 운명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2)
현광 진인과 광해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혼자만의 힘으로도 현광 진인과 광해를 압도했던 온상천이었다. 두 사람에게 악몽을 선사했던 온상천이 담호의 일격에 날아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누구보다 가장 간담이 서늘한 이는 담호에게 갑작스러운 일격을 허용한 온상천이었다.
급히 흑심마수의 절초를 펼쳐 몸을 보호했지만 양팔이 퉁퉁 부어오르고 내장이 찌르르 울렸다.
온상천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바닥에 착지했다. 불시에 일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경지에 이른 고수다운 민첩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착지한 순간 온상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쐐애액!
어느새 그가 착지한 자리를 향해 담호가 쇄도해 들었기 때문이다.
충차처럼 맹렬한 돌진, 이어 연계되는 파성추.
“또 당할 줄 아느냐?”
온상천이 흑심마수의 최절초인 흑무관천(黑霧貫天)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 맺혀 있던 검은 기운이 창의 형태로 바뀌면서 담호의 미간을 노렸다.
후웅!
순간 담호의 몸이 흐릿해졌다.
방패를 펼친 것이다.
티잉!
흑무관천이 방패에 부딪쳐 튕겨 나갔다.
“젠장!”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결과 온상천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담호가 용납하지 않았다.
쾅!
온상천의 팔에 작렬하는 파성추.
“크억!”
팔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고통에 온상천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 앞으로 달려드는 동작이 더 빠른 게 당연하다. 온상천의 실책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
그 찰나의 실책이 가져온 결과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턱!
담호의 솥뚜껑 같은 손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온상천이 대경실색하며 담호의 손을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강철 집게처럼 억센 담호의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마치 무가 뿌리째 뽑히듯 온상천의 몸도 허공으로 뽑혀 올랐다.
두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지고, 아찔한 부유감이 온상천을 급습했다. 그 직후 그의 몸이 반전됐다.
머리에 피가 쏠리며 눈이 시뻘개졌다. 그리고 바닥이 급속히 확대됐다.
지천격(地天擊).
대지를 무기로 하는 담호만의 내리꽂기가 펼쳐진 것이다.
“크윽!”
온상천은 혼신의 내력을 끌어올려 전신을 보호하며 머리를 필사적으로 비틀었다.
쿠와앙!
그 직후 그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거꾸로 처박힌 온상천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왼쪽 어깨가 내려앉았다. 탈골 되었다거나 부러진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송두리째 짓이겨져 내려앉은 것이다.
온상천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헉헉!”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고통을 호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의 앞엔 담호가 서 있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수많은 싸움을 해 온 온상천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싸움도 방금 전에 겪었던 아찔한 순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뇌리는 하얗게 변해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담호 때문이었다.
단 세 수만에 상대는 그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너, 너는 누구냐?”
온상천이 피를 토하며 물었다.
대답을 한 이는 담호가 아닌 현광 진인이었다.
“절름발이……. 너는 천경이구나.”
담호를 알아본 현광 진인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를 한번 흘깃 바라보기만 했을 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온상천이 이를 악물었다.
‘권마라니?’
담호의 악명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강호 대부분의 소문이 그렇듯 권마에 대한 소문 역시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부딪친 담호의 무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한쪽 발을 저는 것은 담호에게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금마사자께서 네놈을 조심하라고 하더니.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순간 담호의 눈이 빛났다.
금마사자는 그의 손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금마사자와 연관이 있었나?”
“크윽!”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온상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와 금마사자가 연관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그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 입을 막는 것.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도 내심 강하다고 자부했었지만, 담호의 강함은 그와는 차원이 달랐다.
온상천이 웃었다. 비릿한 살기가 담겨 있는 웃음을.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생존을 포기한 자의 웃음은 처절했다. 그는 살아남기를 포기했다. 대신 담호만큼은 확실히 저승길 동무로 삼을 생각이었다.
“챠핫!”
그가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투둑!
얼굴의 핏줄이 도드라져 나왔다. 기혈을 역행시킬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 모습을 본 현광 진인이 소리쳤다.
“동귀어진의 수법이다. 피하라, 천경.”
실제로 온상천은 담호와 함께 동귀어진 할 생각이었다.
역혈폭마공(易血暴魔功).
자신의 몸을 폭사시켜 상대와 함께 동귀어진 하는 극악한 수법이었다.
온상천이 멀쩡한 한쪽 손으로 담호의 허리를 휘감으며 소리쳤다.
“같이 가는 거다, 권마.”
온상천이 몸을 폭사시키려는 그 순간이었다.
빠각!
그의 머리가 모로 덜컥 돌아갔다. 담호의 무릎이 안면에 작렬한 것이다. 코와 안면부가 함몰되고 피가 사방으로 흩뿌렸다.
온상천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담호가 다시 한 번 지천격으로 그를 대지에 내리 꽂았다.
쾅!
이번에 머리부터 제대로 꽂혔다.
대지와 부딪친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며 골수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역혈폭마공은 미처 펼치지도 못했다.
그것이 온상천의 최후였다.
“…….”
장내에 질식할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소림사의 제자들은 물론 현광 진인과 광해 역시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담호를 바라봤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소림의 승려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의 눈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눈앞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였다.
“천경.”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현광 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제야 담호가 고개를 돌려 현광 진인을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현광 진인은 한겨울 설원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듯한 한기를 느꼈다.
담호의 입술은 고집스레 다물어져 있었다. 그리고 존장인 현광 진인에 대한 존경심도 보이지 않았다.
“천경…… 아니, 담호라고 불러야겠구나. 네 스스로 화산의 제자가 아니라고 선포했으니.”
“여긴 어쩐 일이지?”
그제야 담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에 존장에 대한 존경이나 배려 따윈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현광 진인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강호는 강자가 지배하는 세계.
더구나 화산은 예전에 담호를 버림으로써 더 이상 그의 사문이라고 자처할 수 없었다.
“휴우!”
현광 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을 화산에서만 살아온 그에게 담호와 마주한 상황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보다시피 소림과 의논할 것이 있어 찾아왔단다. 비록 마교에 들켜 급습을 받았지만.”
“사부님!”
그때 담호가 머물던 객잔에 처박혀 있던 호경이 현광 진인을 향해 달려왔다. 종리연의 조치 덕분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사부님.”
“난 괜찮다.”
“다행입니다.”
호경이 눈물을 흘렸다.
현광 진인이 그런 호경의 등을 토닥이며 담호에게 말했다.
“고맙다.”
“고마울 것 없어. 사부 때문이니까.”
“사부? 아, 현소 사형 말이구나.”
“그래!”
담호의 마음속에 화산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소 진인은 담호가 아니었다.
화산파는 현소 진인의 모든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담호는 현광 진인의 위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구할 수 있는데도 구하지 않았다면 현소 진인이 슬퍼했을 테니까.
담호가 물었다.
“사부는 잘 있겠지?”
“현소 사형은…….”
현광 진인이 말을 망설였다.
순간 담호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사부에게 무슨 일 있나?”
심장을 옭죄어 오는 살기에 현광 진인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살기를 발산하는 담호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이상 담호의 살기에 노출되었다가는 심맥이 터질 것 같았기에 현광 진인이 급히 대답했다.
“현소 사형은 지금 화산에 없단다.”
“무슨 말이지? 없다니.”
“네가 새외에서 실종된 후 현소 사형도 화산을 떠났다.”
“사부가?”
“너를 버린 화산을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 때문에 장문인도 사람을 보내 현소 사형을 찾고 있다.”
“…….”
“미안하다. 화산은 너에게 정말 잘못한 것이 너무 많구나.”
현광 진인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때 호경이 그들 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경, 현소 사백은 삭주에 있을 확률이 높다.”
“무슨 말이지?”
“장문인께서 운경 사형께 현소 사백을 찾을 것을 명하셨다. 그리고 지금 운경 사형은 며칠째 삭주에 머물고 있다. 정황상 그곳에 현소 사백이 머물고 있을 확률이 높다.”
“삭주에…….”
담호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이제까지 당연히 화산에 머물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부였다. 화산을 떼어놓은 삶을 생각할 수 없었던 사부였기에.
그런 사부가 화산을 떠났다. 그 이유가 담호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사부.’
현소 진인이 화산을 떠나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호경이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퍽!
이마가 깨지고 피가 튀었다. 그래도 호경은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다, 천경. 네가 화산에서 배척받을 때 모른 척했던 나를 용서하거라. 그때는 네가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미처 몰랐다.”
“…….”
“이제 와서 이렇게 사죄하는 나의 비겁함을 마음껏 욕해라.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구나.”
호경이 눈물을 흘렸다.
잠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담호가 몸을 돌렸다.
호경이 고개를 들어 그런 담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차라리 욕이라도 했으면 가슴에 진 바윗돌 같은 압박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을 테데 담호는 무심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천……경.”
호경이 손을 뻗어 담호를 잡으려 했다. 그 순간 현광 진인이 그의 손을 잡았다.
“사부님?”
“아서라. 그는 이미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일대종사. 화산의 얄팍한 울타리 안에 그를 가둘 수 없다.”
현광 진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덩달아 호경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담호를 바라보는 광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저자가 강호 공적 권마?’
직접 목도한 담호의 무위는 소문을 한참이나 웃돌고 있었다.
더 강하고, 믿을 수 없이 잔인했다.
광해의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번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