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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90화 (1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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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5장. 모르는 사이에 원한이 쌓인다(3)

담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핼쑥해져 있었지만, 안색은 오히려 더 좋아져 있었다.

그가 종리연에게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운공을 한 지 세 시진이 넘었어요.”

“정말인가?”

“벌써 해가 졌잖아요.”

종리연의 대답에 담호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의 말처럼 사위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독의 정체는 밝혀냈나?”

“아니요. 생전 처음 보는 독이에요. 부식독의 일종 같은데 너무 지독해서 해약을 찾기 힘들어요.”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인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일단은 독의 성분부터 알아야 하는데, 벌써 시신들이 부패해서 제대로 된 독을 얻을 수가 없어요. 완전한 독을 얻어야만 그나마 해약을 만드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어렵다는 뜻이군.”

“이런 종류의 극독을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에요. 독에 능통한 사람이 수많은 독의 배합을 시도한 끝에 만들어 낸 걸 거예요. 어쩌면 독인일지도 모르구요.”

“독인?”

“네! 독공을 익힌 무인. 특별한 심법과 특별히 조합된 독을 장기 복용하면서 내력을 키우는 거죠. 피와 장기, 그리고 내기에 극독이 함유되게 돼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독인이 되는 거죠.”

종리연의 설명에 담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빛났다.

‘독인이란 말이지?’

그녀의 말처럼 단순하게 독을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독공을 익힌 독인이 나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어떤 것이든 세상엔 큰 재앙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저도 해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연구하겠지만, 그러려면 반드시 신선한 독이 필요해요.”

종리연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무인들끼리 검과 도로 싸우는 것은 상관없었다. 그래 봤자 자신들끼리 죽고 죽이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독은 달랐다.

독은 직접 싸우는 이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까지 죽인다. 독을 잘못 사용하면 수백 명의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종리연은 독을 싫어했다. 의원의 관점에서도,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도 말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이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독에 중독될 수 있었다. 담호는 나뭇가지를 주워와 시신들을 불태웠다.

불타는 시신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길을 떠났다.

이미 밤이 늦었기에 적당한 곳에서 노숙을 했다.

노숙을 하는 내내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종리연은 그녀 나름 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담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담호는 혈맥이 더 넓어지고 탄탄해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개울 정도의 크기였다면 지금은 강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막히는 곳도 없었고, 휘돌아 가는 곳도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내기가 운용됐다. 무엇보다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이었다.

담호가 눈을 감았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담호와 종리연은 길을 떠났다.

종리연은 이번에도 시신이 있으면 어쩔까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길가엔 더 이상 시신들이 보이지 않았다.

종리연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독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밤을 꼴딱 새우고 만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독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런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독 종류,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독에만 몰두하던 종리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앞에 조그만 마을이 있어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가지.”

담호의 말이 마치 바짝 마른 논에 내리는 비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하지만 마을에 들어간 순간 종리연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이 너무 조그마해서 제대로 된 객잔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마을에서 제법 큰 축에 속하는 집의 문을 두들길 수밖에 없었다.

“뉘시오?”

문이 살짝 열리며 문틈으로 칠십 대 후반의 노인이 얼굴을 빠끔히 드러냈다. 낯선 외인을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문 사이로 진한 약초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냄새에 종리연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행객인데 해가 지고 갈 곳도 없어 혹시 이곳에서 하루 신세를 질 수 없는지 여쭙고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게…….”

노인이 말끝을 흐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집에 들이기 싫다는 빛이 역력했다. 특히 담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어르신, 저희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대가는 충분히 드리고,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을게요.”

“할아버지, 누가 왔어요?”

그때 문안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웬 소년이 문틈으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종리연과 소년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소년이 활짝 웃었다.

“아! 의원님!”

“너는?”

종리연이 눈을 크게 치떴다. 문틈으로 고개를 내민 소년은 바로 운마도강선에서 그에게 진맥을 받은 남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손자의 반응에 노인이 물었다.

“아는 분이시냐?”

“그럼요! 아빠를 진맥해 주고 약도 처방해 주신 의원님이에요.”

“아!”

노인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경계의 빛이 어느새 사라졌다. 노인이 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 아들의 은인이셨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아들과 손자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노인이 담호와 종리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말은 저에게 주세요. 저희 집 마구간에 넣을 게요. 헤헤!”

소년이 담호와 종리연에게서 말들의 고삐를 넘겨받았다.

노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자 대화를 듣고 나온 아비와 마주쳤다. 아비가 활짝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이렇게 빨리 다시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저씨!”

뜻밖의 인연에 종리연이 반색을 했다.

아비의 이름은 임이청이었다.

이곳은 임이청이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 마을이었다. 그것도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말이다.

임이청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컸고, 방에도 여유가 있었다. 특히 북방의 사합원 구조라 외부에서는 내부를 절대 들여다볼 수 없었다.

임이청은 담호와 종리연을 극진히 대접했다.

밥도 내오고, 술도 가져왔다. 그리고 종리연이 수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너무 과하다고 극구 사양하는 종리연에게 그는 말했다.

“의원님 덕분에 배앓이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덕분에 어젯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대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행이에요. 많이 좋아지셨다니.”

“그런데 어쩌다 이 시간에 여기에 오신 겁니까? 저희와 비슷하게 출발하셨을 텐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요. 어쨌거나 쉬시는 동안만큼은 편히 쉬시고, 될 수 있으면 내일은 일찍 출발하십시오.”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종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임이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마을에 무림인이 들어와 있습니다.”

“무림인 말인가요?”

“예! 어젯밤에 들어와 지금 촌장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을 분위기가 무척이나 흉흉합니다. 그러니 의원님도 밤에 돌아다니시지 마십시오.”

임이청은 신신당부를 했다.

그의 분위기로 미뤄 보아 마을 사람들이 무림인들에게 무척이나 시달린 것 같았다.

“알았어요. 조용히 머물다 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의원님.”

그 후로도 임이청은 종리연과 더불어 한참을 대화를 나눴다. 임이청의 아들도 말들을 마구간에 넣은 후 대화에 합류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담호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유진문은 무림맹 오행대(五行隊) 중 금무대(金武隊)의 이 조장이었다.

오행대는 무림맹의 실질적인 무력조직이었는데, 이름 그대로 화수목금토(火水木金土) 다섯 개의 조직으로 나눠져 있었다.

화룡대(火龍隊), 수왕대(水王隊), 목령대(木靈隊), 금무대(金武隊), 무토대(務土隊).

오행대는 각자의 특성에 맞게 임무에 배치되었는데, 금무대는 일종의 척후대와도 비슷했다.

금무대는 전부 십여 개의 대(隊)로 이뤄져 있었는데 중원 전역에 흩어져 정보를 수집하고, 적의 척후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유진문은 금무대의 이 조장으로 산서성과 하남성의 경계에서 마교의 동향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활동하고 있었다.

“제기랄!”

유진문이 왼쪽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의 왼쪽 어깨엔 아직도 상흔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어제 낮에 입은 상처였다.

그가 이끌던 금무대 이 조는 어제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사십여 명의 부하들 중 스무 명을 잃고 급히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독만 아니었다면…….”

놈들이 뿌린 독이 문제였다.

얼마나 지독한지 독에 중독된 즉시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진문은 결국 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전장을 빠져나와 도주하긴 했지만 상처를 입은 부하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 마을이었다.

그는 촌장 집을 찾아와 쉴 곳을 요구했다. 평범한 시골 마을 촌장이 무인들의 살벌한 기세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촌장은 겁에 질려 자신의 집을 금무대에게 내줘야 했다. 주인을 내쫓은 금무대의 무인들은 촌장의 집을 자신들의 집처럼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었다.

“놈들이 독을 사용하고 있단 사실을 어서 맹에 알려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까운 무림맹 지부로 가고 싶었지만, 부상자들이 문제였다.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부하들 중 일곱 명이 검상을 입었다. 전서구도 잃어버린 지금 그들을 이곳에 두고 움직일 수 없었다.

유진문이 답답한 상황에 이빨을 빠득 갈고 있을 때였다.

“조장!”

수하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유진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해진 신경에 거슬린 것이다.

위축될 만도 하건만 수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 마을에 낯선 자들이 들어왔답니다.”

“낯선 자?”

“예! 신분을 확인해야지 않겠습니까? 혹시 마교의 추적대일지도 모르니.”

“음!”

수하의 말에 유진문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교의 무인들에 대패해 도주해서 마음이 불편하던 차였다. 마교라면 아예 치가 떨렸다.

“칼 맞아서 신음하는 놈들 빼고 멀쩡한 놈들 다 나오라고 해.”

“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가자.”

유진문이 수하들을 이끌고 임이청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의 전신에서는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쾅쾅!

그들이 임이청의 집 정문을 마구 두드렸다.

“무슨 일입니까?”

임이청이 살짝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유진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 외인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들의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

“예?”

임이청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유진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왜 그러는가?”

“그냥……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그럽니다요. 저희 집에 온 손님들인데 왜 무사님들이 그분들을 보시고자 하는지.”

임이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유진문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우리는 무림맹의 금무대다. 마교와 연관이 있을지 모르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저희 집 손님들은 마교와 관련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판단한다. 정말 마교도가 아니라면 겁먹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떳떳하게 나와서 신분을 밝히면 그만일 터. 설마 우리가 아무나 마교도로 몰아간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닙니다. 제가 어찌…….”

임이청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 입장에서는 귀한 손님을 모셔 두고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을 뿐, 감히 무림맹에 밉보일 용기 따윈 없었다.

“잔말 말고 자네 집의 손님더러 나오라고 하게.”

“그게…….”

“감히 무림맹을 무시하는 것이냐?”

그래도 망설이자 유진문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렸다.

그때였다.

“아저씨, 제가 나갈게요.”

임이청의 뒤쪽에서 종리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 의원님?”

“괜찮아요. 저희 때문에 아저씨가 곤란을 겪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종리연이 임이청을 밀어내고 문밖으로 나왔다.

유진문을 비롯한 금무대 무인들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의 예상을 뒤집고 나온 이가 묘령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무척 아름답기까지 했다.

종리연이 금무대의 무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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