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191화 6장. 나무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1)
종리연은 궁벽한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미모는 어디가나 눈에 확 띄었다.
유진문은 불과 하루 전에 수하들을 잃었다는 사실도 잊고 종리연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것은 그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흠흠!”
하지만 유진문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그의 기침을 신호로 수하들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소저는 뉘십니까?”
“제 이름은 종리연이라고 해요.”
“종리연?”
유진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 들은 것인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종리 소저는 무슨 일로 이 마을에 오신 겁니까?”
“지나가다 우연히 들렀어요.”
“우연히 들렀단 말입니까?”
유진문의 의심 섞인 시선으로 종리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종리연은 떳떳했다.
“그래요.”
“그 말을 믿으란 말입니까?”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요?”
“일행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도 나오라고 하십시오. 함께 신분 검증을 해야겠습니다.”
“하!”
종리연이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에는 담호가 있었다. 그를 억지로 앉히고 홀로 나온 것도 문제를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호가 움직이면 피바람이 분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봐왔기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종리연이었다.
종리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저희는 반드시 확인해야겠습니다.”
유진문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종리연의 거절에 그렇지 않아도 불편하던 심기가 폭발한 것이다.
“안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나오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교도라고 판단하고 제압할 테니까.”
“하!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우린 무림맹의 무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아!”
종리연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모든 일은 그녀의 손을 떠났다.
그녀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담호를 부르려 할 때였다.
“아악! 여보!”
갑자기 옆집에서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무대의 무인들과 종리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집으로 향했다. 그 순간 옆집에서 중년 여인이 뛰쳐나왔다.
“우리 애 아빠가 쓰러졌어요. 애 아빠 좀 살려주세요.”
맨발로 뛰쳐나온 중년 여인이 금무대 무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금무대의 무인들이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으며 이유를 물으려고 할 때였다.
“모두 물러서요.”
갑자기 종리연이 외쳤다.
“네?”
“독이에요. 모두 물러서세요.”
“헉!”
금무대의 무인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종리연은 흰 천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검게 변한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도, 독이라니?”
갑작스러운 종리연의 말에 여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종리연이 대답하려는 찰라 여인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가 토한 피에서 지독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무슨?”
유진문이 다가오려 하자 종리연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지독한 극독이에요. 가볍게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중독될 수 있어요.”
“그런…….”
종리연이 중년 여인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편의 시신이 보였다. 그도 중년 여인처럼 바닥에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다.
종리연이 외쳤다.
“다른 집도 혹시 중독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세요. 혹시 중독자가 있다면 절대 접촉하지 마세요.”
“의……원이십니까?”
“그래요. 시간이 없어요. 어서 움직여요.”
“알겠습니다.”
유진문은 수하들에게 다른 집들을 살피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마을을 뒤지는 사이 종리연은 부부의 시신을 자세히 살폈다. 한참을 살피던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시신이 급격히 부패했기 때문이다.
“이건…….”
어젯밤 불태웠던 시신들이 떠올랐다.
유진문의 얼굴에도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 역시 수하들이 독에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설마 마교가…….”
그가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어둠에 잠긴 마을 어디에도 마교로 짐작할 만한 무인은 보이지 않았다.
병풍처럼 커다라면서도 넓적한 바위 아래 매부리코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은 길쭉한 무언가를 손에 잡은 채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으득! 으드득!
노인이 턱을 움직일 때마다 뼈를 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의 손에 들린 것은 머리를 잃은 뱀이었다. 노인의 손과 입으로 뱀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노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우물거렸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누군가 소리도 없이 나타나 노인의 앞에 부복했다.
“다녀왔습니다, 주군.”
“놈들은 어떻게 지내더냐? 소광.”
“예상대로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흐흐! 버러지 같은 놈들이 머리까지 나쁘군.”
매부리코 노인의 입에서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것처럼 거북한 웃음이었다.
매부리코 노인을 바라보는 소광의 눈에는 은은한 공포심이 담겨 있었다.
노인 주위로 어둠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뱀이 그의 주위에 똬리를 틀고 앉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서울 정도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노인의 이름은 사우연, 별호는 천독제(天毒帝)였다.
사우연은 내뱉는 숨결만으로도 일대에 있는 생명체를 중독시킬 수 있는 독인(毒人)이었다.
그에겐 만독이 무용이었다. 오히려 독은 그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촉매에 불과했다. 수많은 독을 흡수한 그의 몸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극독이었다.
소광은 사우연이 가장 믿는 수하였다. 오랜 시간 사우연을 따라다닌 덕분에 독공 몇 가지를 전수받아 독을 사용하는 데 능숙했다.
소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젠 어떡할까요?”
“알면서 무얼 묻느냐? 흐흐!”
사우연이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허면…….”
“스스로 정의롭다고 자부하는 놈들일수록 불가항력의 상황에 처했을 때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이지.”
“…….”
“계속해서 은밀히 하독 하다 보면 놈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날 거야. 훌륭한 여흥거리가 되겠지. 흐흐!”
인간을 밑바닥까지 밀어놓고 그들의 반응을 즐기는 것은 사우연의 오랜 취미였다.
다른 마교도들이 종교적인 신념과 분노로 움직이고 있었다면 사우연은 오직 자신의 정신적인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흐흐흐!”
어둠 속에서 사우연의 웃음소리가 깊이 울려 퍼졌다.
***
한참이나 시신을 살피던 종리연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비슷하지만 달라. 하지만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해.’
실로 지독한 극독이었다. 일반인은 이런 독에 중독되면 절대 살 수 없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내공으로 방비할 수 있는 종류의 독이 아니었다. 일단 독에 중독되면 운공을 하기도 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담호처럼 극강한 내공과 제독단의 도움이 있다면 모르지만 일반적인 무인들은 절대로 이 독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전처럼 부식독이 아니라서 치료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유진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마을 주민 십여 명이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시…… 생존자는 없겠군요.”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으음!”
“독의 정체는 밝혀내셨습니까?”
“아직요.”
종리연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독의 정체가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극독은 처음이었다.
“그럼 해독제는?”
“휴! 독을 구하기 전까진 불가능해요.”
종리연의 대답에 유진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종리연을 경계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이 어제 오후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적들은 그들의 경계를 뚫고 하독 했다.
그야말로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었다.
수하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질문을 하는 수하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가득했다. 다른 이들도 동요를 하고 있었다.
“일단 경계를 철저히 해. 개미 새끼 한마리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격리해.”
“예?”
뜬금없는 말에 수하가 영문을 알지 못해 눈만 끔뻑거렸다. 그러자 유진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사람들에게서만 중독 증상이 나타나고 있잖아. 우리까지 중독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격리시키라고.”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말뜻을 알아들은 수하들이 마을 사람들을 격리시키기 시작했다.
중원을 지키기 위한 전쟁 중이었다. 어느 정도 희생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진문의 시선이 문득 종리연을 향했다.
그제야 종리연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은 동행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종리 소저. 이제 동행이 누군지 밝히십시오.”
“그건…….”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습니까?”
유진문이 종리연을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이상했다. 하필 종리연이 마을에 들어온 시점에 중독된 이들이 나타났던 것. 그리고 제일 먼저 독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까지도 말이다.
‘어쩌면 그녀가 마교의 주구일지도 모르지.’
일단 한번 의심이 고개를 쳐들자 종리연의 모든 것이 수상하게 보였다.
그의 전신에서 절로 살기가 발산됐다.
종리연이 급히 변명했다.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어서 안에 있는 자보고 나오라고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스르릉!
유진문이 검을 꺼내 종리연을 겨눴다.
시퍼렇게 벼려진 검신이 섬뜩하도록 시린 빛을 발산했다.
유진문의 살기를 마주한 종리연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설마 유진문이 이렇게 다짜고짜 검을 겨눌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그 검 집어넣어.”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부르르!
순간 유진문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고 단순히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쳐졌다.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가 용기 내어 소리쳤다.
“누, 누구냐?”
스륵!
그 순간 담호가 집밖으로 나왔다.
담호의 모습을 본 순간 유진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일색의 남자가 걸어왔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엇박자의 걸음.
도무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없는 무심한 표정과 한없이 깊은 눈동자.
유진문의 입술을 비집고 비명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궈, 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