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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92화 (1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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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6장. 나무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2)

무림맹이 결성되던 시기 유진문은 낙양에 머물렀다. 그래서 남궁세가와 담호의 충돌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오대세가의 하나인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담호에게 괴멸되는 충격적인 모습을 목도했기에 그가 담호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담호의 무위를 목도한 처음 며칠은 악몽을 꾸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단숨에 담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무슨 문제 있나?”

“그게 아니라…….”

유진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아 있던 금무대 무인들도 급격한 동요를 일으켰다.

‘권마라니?’

‘저자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자들 중 권마의 전설을 모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강호 제일의 살인마.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대한 무력.

이제까지 그와 격돌했던 이들 중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이는 거의 없었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사신.

강호는 권마를 그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담호가 무림맹이 지정한 공적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한 명 담호를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죽는다.

담호는 그 어떤 위협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의원이 권마와 동행이었다니. 제기랄!’

유진문은 끝까지 종리연의 일행을 확인하고자 한 자신의 집요함을 저주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게 가슴 졸일 일은 없었을 텐데.

담호가 유진문을 향해 다가왔다.

유진문은 감히 물러설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담호를 바라봤다.

지척까지 다가온 담호의 시선이 유진문이 들고 있는 검을 향했다.

“덤빌 건가?”

“예? 아, 아닙니다.”

유진문이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검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검을 버렸다.

무인이 적 앞에서 검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저자는 권마다. 강호 제일의 살인마란 말이야. 난 살고 싶어. 살고 싶다고.’

전의(戰意)? 싸울 각오?

그런 것도 어느 정도 대등한 상대에게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담호는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무서운 상대였다.

종리연이 담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유진문은 종리연의 이름이 왜 이렇게 낯익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신의 종리연.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는 자신의 아둔함을 탓했다.

담호의 시선이 종리연을 향했다.

“괜찮나?”

“괜찮아요.”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잖아.”

“그러네요.”

종리연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결국 담호까지 나서고 말았다. 그녀가 원치 않던 결과였다.

담호가 나서면 필연적으로 일대가 피바다가 된다. 이번 경우에는 그가 나서지 않아도 피바다가 될 것 같았지만.

담호는 더 이상 유진문과 금무대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중년 부부의 시신이었다.

그들의 시신은 어느새 부패해서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이대로 약간의 시간만 흐른다면 한줌의 핏물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역시 그 독인가?”

“비슷해요.”

“차이가 있다는 건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은 분명해요. 차이가 있다면 먼젓번 독이 몇 배는 더 지독하다는 것 정도예요.”

“같은 독이라도 펼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나?”

“그럴 수도 있어요. 하나의 스승 밑에서 의술을 익힌 사형제들끼리도 차이가 나는 것처럼 독공을 익힌 자들 역시 체질과 심법, 그리고 체내에 잠복해 있는 독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나요.”

“그럼 사형제, 혹은 사제가 온 것일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아요. 모든 것은 이론일 뿐이니까요.”

“자, 잠깐! 그럼 독인이 한 명이 아니란 뜻입니까?”

이제까지 숨죽이고 있던 유진문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명의 독인도 감당하기 힘든 판국에 두 명 이상의 독인이라니.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추측일 뿐이야.”

담호는 무심히 대답했지만, 유진문은 더 이상 냉정할 수 없었다.

“맙소사! 독인이라니…….”

그가 아는 강호란 검과 도 같은 병장기, 혹은 권장으로 승부를 내는 공평한 세상이었다. 가진바 무력과 지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담호가 아무리 무섭다고 하지만, 그 혼자서 수천, 수만 명을 홀로 죽일 수는 없다. 아니, 그 어떤 무인도 불가능했다. 설령 마교의 교주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독이 개입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용하기에 따라 독 한 병으로도 능히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다.

더군다나 온몸이 극독으로 이뤄진 독인이라면 그 파괴력이 어떠할지는 감히 상상하기 두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되면 사천의 당문이 나서야 해. 마교의 독인에게 대항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당문? 확실히 그들이라면…….”

종리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문은 독과 암기의 명가였다. 두 가지 모두 강호인들이 금기시하는 것들이다 보니 될 수 있으면 외부에서의 활동을 자제하고 사천성 안에서만 활동했다.

사천성 안에서 당문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청성파와 아미파가 존재했지만, 그 어떤 이름도 당문 앞에 자리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당문은 대대로 독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수많은 독을 연구하고, 해약을 만들어 내고, 마치 세상의 모든 독을 다 파악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처럼 그렇게 집착했다.

그들이라면 독인에 대한 확실한 방비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지금 수천 리 먼 사천성에 있다는 것이다.

유진문이 수하 중 한 명을 불렀다. 금무대의 무인 중 가장 몸이 가볍고 경공이 뛰어난 무인이었다.

“일몽, 너는 지금 당장 무림맹으로 달려가 독인이 출현했음을 알리거라. 반드시 당문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는 말도 전하고.”

“알겠습니다.”

“너의 발에 무림맹의 미래가 달렸다. 반드시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맡겨 주십시오.”

수하가 대답과 함께 비장한 표정으로 마을을 빠져나갔다.

비록 성급하긴 하지만 유진문은 지도자로서는 꽤 유능한 인재임은 분명했다. 독인의 출현에 당황하면서도 냉정하게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부하를 내보낸 유진문이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아직도 두려움의 빛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이겨 내고 입을 열었다.

“담 대협께서 무림맹과 악연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옛 원한은 잠시 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동의 적?”

“마교 말입니다. 담 대협도 마교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제법이군!”

담호의 말에 유진문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담 대협은 부디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냥 지켜보란 이야긴가?”

“이건 저희들의 싸움입니다.”

유진문이 이를 악물었다.

담호가 서늘한 시선으로 유진문을 바라봤다. 유진문은 눈이 충혈되면서도 담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속은 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만일 담호가 싫다고 한다면 독인과 싸우기도 전에 그와 충돌하게 된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너무나 뻔했다.

‘전멸하겠지.’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게 되면 무림맹의 권위에 너무 큰 타격을 입는다.

담호가 물었다.

“진심인가?”

“진심……입니다.”

유진문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담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담호는 유진문을 빤히 바라봤다. 유진문은 감히 담호의 시선을 마주 보지 못했다.

긴장감에 주먹을 꽉 쥐고 있는데, 담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지켜보지.”

“감사합니다.”

그제야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금무대의 무인들도 그만큼 큰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게 봉합되자 종리연의 굳은 얼굴도 조금은 풀렸다.

“유 대협.”

“말씀하십시오, 종리 소저.”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중독되었는지 알아보겠어요.”

“감사합니다.”

“혹시 모르니 마을의 우물물을 마실 때는 반드시 은침으로 독이 있는지 확인하고 드세요.”

“물론입니다.”

유진문이 힘차게 대답한 후 물러났다. 그러자 금무대의 무인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마디씩 했다.

“정말 그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권마와 협조했다는 사실이 무림맹에 알려진다면 분명 조장에게 죄를 물을 겁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협조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죄를 묻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모두 경계를 강화하라.”

“알겠습니다.”

유진문은 스무 명의 무인들을 이인 일조로 나눠 주변을 철저히 경계케 했다.

식수원인 우물을 검사했다. 다행히 독은 검침되지 않았다.

종리연이 담호에게 다가왔다.

“정말 그들에게 말한 것처럼 지켜보기만 할 건가요?”

“약속했으니까.”

“그렇군요. 알았어요. 그럼 저는 마을 사람들을 돌보면서 독에 대해 알아볼게요.”

종리연이 종종 걸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격리된 곳으로 향했다.

혼자 남은 담호는 커다란 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서 유진문과 금무대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을 감았다.

변고가 생긴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으아악!”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새벽하늘에 울려 퍼졌다. 경계를 돌던 무인들이 비명이 울려 퍼진 곳으로 달려왔다.

“이럴 수가!”

“진평이…….”

금무대 무인 두 명이 독에 중독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내공을 운용에 독에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에 피거품을 문 것이 무척이나 심각해 보였다.

“어떻게?”

유진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인 일 조로 움직이며 철저하게 주변을 경계했다. 이상이 없음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수하들이 중독되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소식을 들은 종리연이 달려왔다.

“조그만 더 버텨요. 반드시 버텨요. 어떻게든 낫게 해 줄 테니까.”

그녀는 품에서 은침을 꺼내 중독된 무인들의 요혈에 꽂았다.

잠재된 양기를 북돋는 혈들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이야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지만, 이들은 내공을 익힌 무인들. 어떻게든 기운을 북돋아 독에 저항하게 한다면 반드시 치료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담호도 그렇게 해서 독을 몰아냈다.

이들의 내공 수준이 담호에 비할 수 없이 미약했지만, 자신의 침술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사이 이들을 진맥하면서 해약을 만들 생각이었다.

“끄으으!”

“크헉! 괴로워!”

중독된 무인들이 마구 발버둥을 쳤다.

종리연은 그들을 안으로 옮기게 했다.

“절대로 직접적으로 이들과 접촉해서는 안 돼요. 그랬다가는 여러분까지 중독되게 돼요.”

“알겠습니다.”

마침내 중독된 무인들이 격리되었다. 종리연은 입과 코를 천으로 가린 채 그들을 보살폈다.

“제발 그들을 살려 주십시오.”

“최선을 다할게요. 그러니까 조장님도 더 이상 중독되는 사람이 없도록 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유진문의 대답이 무색하게 중독자가 네 명이 더 나왔다. 그사이 가장 먼저 중독된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종리연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없이 새롭게 중독된 이들을 보살펴야 했다.

종리연은 필사적이었다.

“한 가지 독이 아니야. 최소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이상의 독이 섞였어.”

그녀는 마을 약초꾼의 집을 뒤져 모든 약재를 가져 왔다.

종리연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해독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해독단을 복용시켰어도 중독된 무인들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종리연은 무인들의 상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청월초는 빼야 해. 열이 너무 치솟아. 그럼 감광초를 넣어야 하나?”

그녀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종리연은 필사적으로 해독단의 배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사이 두 명이 죽고, 두 명이 더 중독됐다.

종리연의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갔고, 금무대 무인들 사이에도 공포가 전염됐다.

그토록 엄밀하게 방비를 했는데도 동료가 중독이 되었고, 또 죽었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유진문이 필사적으로 그들을 통제했다. 하지만 불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갔다.

사건은 다음 날 밤이 되었을 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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