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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93화 (1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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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6장. 나무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3)

“흐억!”

따로 격리된 마을 사람들 전체가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이 흙빛이 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호흡은 거칠었고, 전신엔 굵은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은 금방이라도 피를 쏟아낼 듯 했다.

“어떻게?”

종리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게 엄중하게 방비를 하고, 독이 퍼지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마을 사람들 전체가 중독이 되고 말았다. 중독된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들을 흔쾌히 재워 준 임이청 일가도 있었다.

종리연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서 괴로워했다. 특히 임이청 일가까지 중독된 것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살릴 수 있겠습니까?”

“살려야죠.”

“하지만…….”

유진문이 말끝을 흐렸다.

내공을 익힌 무인들조차도 얼마 버티지 않고 목숨을 잃었는데, 그렇지 못한 일반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유진문이 쓰러져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미 그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서 사신을 걷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가망이 없어. 포기해야 해.’

그는 금무대의 조장이었다.

아직 멀쩡한 이들이라도 살려서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했다.

종리연은 필사적으로 해독단의 배합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중독된 금무대의 무인들도 살리지 못했는데,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유진문은 조용히 밖으로 나와 아직 중독되지 않은 무인들을 불러모았다.

“모두 사태의 심각성은 알고 있겠지?

무인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이 마을에 더 머물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말입니까?”

“그렇다.”

수하의 물음에 유진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결정해야 하는 위치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소를 희생시킬 수도 있었다. 그래야만 한다면 말이다.

그새 몇 명이 더 죽었다. 살아남은 이는 겨우 십여 명 정도. 세 명이 종리연의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일몽을 보냈지만 그가 살아서 무림맹에 갔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곳 전체를 중독시킨 자라면 일몽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을 테니까.”

“일몽이 죽었을지도 모른단 말입니까?”

“그래! 이제 우린 결정을 해야 해.”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유진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포기하고 자력으로 빠져나간다.”

또다시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권마는…… 어떻게 합니까?”

“권마?”

“그가 우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두고 보겠습니까?”

“그럴 거야.”

“예? 어떤 근거로?”

“그는 세상 혼자 사는 인간이야. 그가 우리가 나가는 것을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리고 어차피 그 모르게 나갈 거니까 상관없어.”

“그래도 야반도주라니.”

“작전상 후퇴라고 해 두지. 우리가 살아야 무림맹도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 명분도 충분해.”

유진문의 말엔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금무대의 무인들이 넘어갈 만큼 말이다.

유진문이 곁에 있던 무인에게 물었다.

“권마는 지금 어디 있지?”

“자신의 거처에 있습니다.”

“그럼 빠져나가는 데 문제는 없겠군.”

“그렇습니다.”

“잘됐군! 지금 마을을 빠져나간다.”

“바로 말입니까?”

“그래! 지금 당장.”

유진문이 바로 움직였다. 그의 뒤를 금무대 무인들이 따랐다.

그들은 어둠을 헤치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이젠 이것밖에 남지 않았어.”

종리연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약초에 고정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약초와 다른 은은한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광혈초(狂血草).

흔히 보기 힘든 희귀한 약초였다.

언뜻 보면 구엽초 비슷해 보이지만 약효는 전혀 달랐다. 광혈초는 약간을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로 독약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됐다.

“이독제독(以毒制毒).”

종리연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지난 사흘 동안 지겨울 정도로 마을을 지배하는 독과 싸웠다.

‘이 독의 주인은 미치광이야. 그는 사람들이 쉽게 죽는 것을 원치 않아. 최대한 고통을 느끼다 죽는 것을 원해. 수많은 독을 배합해서 쉽게 해독할 수 없게 만들었어. 그 모든 독을 하나로 결합하는 성분이 있어. 그것을 파괴해야 해. 그렇게 되면 그 모든 독을 하나하나 해독할 수 있을 거야.’

종리연은 광혈초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문제는 누구부터 광혈초를 복용시키느냐였다.

종리연의 시선이 아직 살아 있는 금무대 무인들을 향했다. 동료들이 모두 죽고 살아남은 이는 단 두 명.

그들은 동료들이 버리고 간 줄도 모르고 누워 있었다.

광혈초를 시험하려면 그들이 제격이었다.

종리연은 유진문을 찾아 광혈초를 사용해도 되냐고 물어보려 할 때였다.

“당신 마음대로 해.”

어디선가 담호가 나타나 그렇게 말했다.

“예? 그래도 어떻게…….”

“내 말대로 해.”

종리연이 잠시 담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담호의 얼굴에서 그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았어요. 당신이 그렇다면야…….”

“시작해!”

“당신은요?”

담호의 시선이 바닥에 누워 있는 임이청 일가를 향했다.

하룻밤 그를 머물게 해 주었던 임이청 일가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했다. 만일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다른 이들처럼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저렇게 만든 자들을 잡아야지.”

“하지만 어떻게요? 우린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는데. 당신도 금무대 때문에 거의 집 안에만 있었잖아요.”

“집 안에 있었다고 해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그럼?”

종리연이 담호를 빤히 바라봤다.

답을 구하는 그녀의 눈빛에도 담호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구구절절 떠드는 대신 직접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높다란 나무 위에 서 있는 소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바람은 독을 쓰는 자들에겐 최고의 도구였다. 어떤 덜 떨어진 이들은 직접 접근해서 접촉을 통해 중독시키곤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력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소광이 건너편에 있는 나무를 바라봤다. 그곳에 그의 동료가 있었다. 그 너머에도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우연에게 용독술을 전수받은 이들이었다. 용독술은 완숙한 경지까지 익혔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인은 되지 못했다.

사우연은 독공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그 자신은 불세출의 천재였기에 그 모든 것을 익혔지만, 소광 등은 그 정도의 재목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극히 일부분인 용독술만을 전수받았을 뿐이다.

완전한 독인은 오직 사우연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우연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충실한 수족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독술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용독술을 펼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우연은 그들에게 각자 다른 독을 사용하는 법을 전수해 줬다. 하나하나가 무서운 극독이었지만, 더 무서운 것은 두개 이상의 독이 사용되었을 때였다.

서로 다른 독이 합쳐져 전혀 새로운 독으로 탄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독을 해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지난 며칠 동안 소광은 동료들과 함께 바람을 타고 독을 날려 보냈다. 어떤 날은 두 명이서 전혀 다른 독을 날려 보냈고, 어떤 날은 세 명이 독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다섯 명이 모두 모여 독을 날려 보내는 날이었다. 한꺼번에 다섯 가지 독을 흘려보낸다면 마을 안에서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하지.

소광의 전음에 동료들이 독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들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소광의 주머니에 있는 독은 화혈독(化血毒), 남만의 숲 속 깊은 곳에 사는 특별한 독 두꺼비에게서 추출한 것이다.

그가 화혈독을 바람에 날려 보내려 할 때였다.

콰앙!

갑자기 그가 올라가 있던 나무가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굉음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뭐, 뭐야?”

소광이 기겁을 해서 다른 나무로 몸을 날렸다.

쾅!

그가 다른 나무에 착지하는 그 순간 다시 한 번 굉음이 터지더니 나무가 쓰러졌다.

소광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착지하려는 순간 나무는 또다시 쓰러졌다.

그가 발을 디뎠다 하면 나무가 뇌음과 함께 쓰러졌다. 결국 소광은 바닥으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가 딛고 있던 나무를 쓰러트린 것이다.

“누구냐?”

소광이 노성을 터트리며 화혈독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화혈독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사우연 정도의 독인이라면 모를까? 화혈독은 소광에게도 위협적이었다. 때문에 소광은 숨을 참으며 뒤로 물러났다.

턱!

“컥!”

그 순간 그의 목이 누군가의 억센 손에 잡혔다.

소광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고 입을 떡 벌렸다.

그 순간 커다란 주먹이 입에 작렬했다.

콰직!

주먹이 이빨을 모조리 부수고 들어와 입안에 처박혔다. 소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만 부들부들 떨었다.

그 순간 소광의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가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쿠와앙!

대지가 울었다.

소광의 척추가 으스러지고 팔 다리가 기형으로 꺾였다. 소광이 피를 울컥 토했다.

눈앞에 뿌옜다. 누군가 자신의 목을 틀어쥐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냐고?’

그가 절규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상대는 대답 대신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수했다.

콰지끈!

쇄골이 무너지고, 양 무릎이 박살났다. 극심한 고통에도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는 사실이 소광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도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독을 이용해 금무대와 마을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소광이었다. 그제야 그는 그들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누구냐고?’

그의 소리 없는 절규에도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혈독이 담겨 있는 주머니를 그의 입에 모조리 털어 넣었다.

‘아, 안 돼!’

입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에 소광이 힘껏 도리질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지의 상대는 그의 입에 화혈독을 모조리 부은 후 한 걸음 물러섰다. 그제야 소광은 상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짐승 같은 눈동자를 한 검은 일색의 사내.

그는 바로 담호였다.

담호는 파황추로 소광이 서 있던 나무들을 모조리 부쉈다. 그리고 그가 착지하기를 기다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부글! 부글!

소광의 입에서 화혈독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피거품이 피어오르고 소광이 발작을 일으켰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백 명을 한꺼번에 죽일 만한 독을 모조리 입안에 털어 넣었으니, 제아무리 독에 면역이 되어 있더라도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끄아아!”

소광이 마지막으로 크게 비명을 내지르더니 숨이 끊어졌다. 화혈독의 가공할 독성에 안구와 목이 제일 먼저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녹아내리는 소광의 모습은 차마 꿈에 나타날까 끔찍했다. 하지만 담호는 그 모든 광경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켜봤다.

유진문과 금무대가 보이지 않는 적들을 방비한다고 나돌아 다닐 때 담호는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하독 하는지 연구했다.

담호의 기감에도 걸리지 않고 하독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독에 중독된 이들이 생겨났다.

담호가 내린 결론은 그들이 접근하지 않고 독을 뿌린다는 것이었다. 접근하지 않고도 하독 할 수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인 우물에 독을 뿌리는 것, 혹은 바람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우물은 확인했으니 남은 것은 바람을 이용해 하독 하는 것.

담호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확인하고 거슬러 올라왔다. 그리고 소광을 만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담호의 눈빛이 사납게 빛났다.

소광의 죽음을 인지한 그의 동료들이 사방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역습을 당한 사냥개는 주인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담호는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바람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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