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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194화 (1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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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7장. 독(毒)보다 독한 의지도 있다(1)

금산경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입안에서는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실체화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억센 손길 때문이었다. 솥뚜껑만큼이나 커다란 손은 그의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비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입을 막은 상대가 다른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콰드득!

‘끄으으!’

마치 압착기에 짓이겨진 것처럼 그의 어깨가 사내의 손아귀에서 으스러졌다.

비명은 사내의 손바닥에 막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끔찍한 고통에 금산경은 눈물을 흘렸다.

몸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고, 전신의 핏줄이 모조리 불거져 나왔다.

‘네놈은 누구냐?’

금산경은 사내의 정체를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대신 사내는 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콰직!

순간 금산경의 머릿속에서 뇌성벽력음이 울려 퍼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굳이 직접 만져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갈비뼈가 족히 서너 대는 부러졌음을.

금산경이 울컥 피를 토해 냈다. 덕분에 금산경의 입을 틀어막은 사내의 손도 붉게 물들었다.

다시 한 번 사내의 주먹이 금산경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그나마 겨우 버티던 나머지 뼈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크흐흑! 그만…….’

금산경은 애원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금산경의 간절한 눈빛을 무시했다.

사내는 실로 무서웠다.

그의 무자비한 폭력에 금산경은 무너져 내렸다.

금산경은 결코 이렇게 쉽게 폭력에 굴복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가 행하는 침묵의 폭력은 그의 정신을 기저에서부터 송두리째 붕괴시키고 있었다.

금산경은 혼자의 힘으로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철저히 망가졌다. 그제야 사내가 금산경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리고 물었다.

“누구야?”

“무, 무슨?”

“너희들의 주인.”

사내는 바로 담호였다. 금산경은 마을에서 독을 뿌리고 도주하던 독인들 중 하나였다.

금산경이 펑퍼짐한 소매 안에 숨겨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소매에 숨겨 둔 독을 이용해 담호를 중독 시키려는 것이다.

순간 담호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금산경의 손가락을 잡아 힘을 주었다.

와드득!

“크아악!”

금산경의 다섯 손가락이 맷돌에 갈린 것처럼 처참하게 짓이겨졌다.

담호가 금산경의 발을 걷어찼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정강이뼈가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금산경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금산경은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나, 나는…….”

금산경이 그래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담호의 눈빛이 더욱 스산하게 변했다. 순간 금산경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고 사색이 되었다.

“우리는 사우연 대협의 수하들이오.”

“사우연?”

“그렇소! 신교 내에서는 그분을 천독제라고 부르오.”

처음 입을 여는 것이 힘들었지, 일단 입이 열린 다음에는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털어 냈다.

금산경은 주군인 사우연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사우연은 수많은 독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데다가 그 자신도 독으로 똘똘 뭉친 고금에 드문 독인이었다.

“모든 것을 알려 줬으니 나는 살려 주시오.”

“내가 왜?”

“다 말했으니까…….”

“내가 살려 준다고 말했었나?”

“서, 설마?”

“나는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아. 하지만 너에겐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어.”

“이 악……마 같은 놈!”

“남을 죽일 수 있으면, 너도 죽을 수 있는 거야.”

“이익!”

금산경이 발작적으로 몸을 날리며 입을 크게 벌렸다. 손발이 부러졌으니 입으로라도 담호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것이다.

그의 입이 담호의 목에 닿기 직전 시야에 무언가 희끗거렸다.

퍼석!

그리고 그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담호의 단양타가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린 것이다.

담호는 바닥에 떨어지는 금산경의 시신을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사냥개는 비단 금산경 한 명만이 아니었다. 사냥개는 여러 마리 더 남아 있었고, 그들은 주인인 사우연에게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딴에는 흔적을 감춘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담호의 눈에는 그들의 족적이 또렷하게 보였다.

담호는 그들의 족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냥했다.

사우연의 수하들은 독을 쓰는 데 무척이나 능했지만, 단순 무력으로는 감히 담호에 비할 수 없었다.

그들은 미처 독을 사용하기도 전에 담호에게 제압당했다. 그리고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담호의 손속엔 추호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무자비하게 사우연의 수하들을 사냥했다.

“끄으으!”

또 한 명의 독인이 담호의 손에서 생을 마감했다.

담호는 그의 시신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걸음을 옮겼다.

츠으으!

그 순간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모조리 곤두설 만큼 섬뜩한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아울러 역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독향(毒香)이었다.

담호는 암혼심공을 끌어올려 외부의 기운을 차단한 채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수록 독향은 독해져만 갔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독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피를 토하고 죽을 정도로 강한 독기가 담겨 있었다.

담호의 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독향의 근원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숲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츠츠츠!

그것들은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말이다.

‘뱀?’

담호는 꿈틀거리는 숲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수천, 수만 마리의 뱀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그 한가운데 매부리코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루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괴인의 표정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그런 모습이 더 기괴하게 보였다.

그때 괴인의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남자가 소리쳤다.

“저자입니다. 저자가 동료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는 바로 사우연의 수하로 담호의 마수에서 벗어난 최후의 일인이었다.

남자의 목소리에 노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끔찍한 사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던 뱀들이 요동을 쳤다. 노인의 몸에서 흘러나온 사기는 뱀들을 덮쳤다. 감당할 수 없는 사기에 뱀들이 몸부림을 치며 노인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츄화학!

사기에 휩싸인 뱀들이 요동을 쳤다. 순식간에 살이 마르고, 껍질과 뼈만 남았다. 뱀들이 머금고 있던 독기가 허공중에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괴인의 모공을 통해 흡수됐다.

순식간에 노인의 주위에 뱀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후아!”

노인이 크게 숨을 들이 쉬자 허공에 남아 있던 독기가 모조리 흡수되었나.

수하가 노인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주군! 놈은 본교를 위협하는 수라가 분명합니다. 어서 처단하여 신교를 보호해야…….”

“시끄럽구나.”

노인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순간 수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끄윽!”

그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두 눈은 붉게 충혈 된 채 부릅떠지고,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독에 중독된 것이다.

“주, 주군…….”

“도망쳐 온 사냥개 주제에 이리 시끄럽다니. 쯧!”

노인은 수하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수하는 잠시 경련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수하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끊는 그의 모습은 소름 끼칠 만큼 무서웠다.

노인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네놈은 누구냐?”

“담호.”

“호! 권마?”

“그래!”

“그 반응을 보니 네놈은 스스로를 거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쯧!”

노인, 천독제 사우연이 혀를 찼다.

그의 눈에서는 사기 어린 기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수하의 숨통을 끊었건만 그의 눈에는 그 어떤 죄책감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 약간의 독공을 전수해 주었을 뿐, 그들은 사우연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의 독공은 너무나 방대하고 깊어서 익힐 만한 이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사우연도 제자를 두고자 했지만, 그만한 재능을 가진 자를 찾지 못해 아직까지 진전을 전수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사우연의 독공에 대한 자부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츄화학!

사우연이 손바닥을 내젓자 강력한 바람이 일어나 주위에 있던 뱀들의 사체를 휩쓸어 갔다.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뱀들의 사체.

바닥이 드러났고, 그 안에 감춰져 있던 풍경이 드러났다.

이제까지 뱀들에 뒤덮여서 보이지 않던 그곳에 시신이 몇 구 있었다. 사우연의 수하처럼 삐쩍 마른 몰골로 모든 원기를 빼앗긴 시신이었다.

시신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어 있었지만 담호는 단숨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금무대의 조장 유진문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제 한 목숨 살겠다고 은밀히 마을을 빠져나갔던 이들이 이곳에서 볼품없는 시신이 되어 나뒹구는 것이다.

사우연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왜? 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우냐?”

“아니!”

“그럴 줄 알았어. 제 한 목숨 살겠다고 동료들을 버리고 도주하는 것은 무인이 할 짓이 아니지.”

“그들은 내 동료가 아니야.”

“뭐, 아니래도 상관없고. 어차피 너 역시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사우연의 눈 전체가 검게 물들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스산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기는 독기와 결합되어 일대를 스멀스멀 잠식해 갔다.

그때였다.

터엉!

갑자기 사우연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갔다. 담호가 날린 격공장이 그의 머리에 격중 된 것이다.

“크으으!”

사우연이 머리를 산발한 채 다시 고개를 돌려 담호를 노려봤다. 그런 그의 얼굴엔 황당, 당혹,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혹시 몰라 몸에 둘러 두었던 호신독강(護身毒罡)이 아니었다면 방금 전 일격으로 머리가 터져 나갔을 것이다.

“네놈!”

“넌 말이 너무 많아.”

그의 격공장이 지나간 곳을 중심으로 일대를 잠식하던 독기의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담호가 사우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쿵!

엇박자의 걸음이 사우연의 심장을 불안하게 자극했다.

상대가 제아무리 권마라는 별호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지만 사우연 기준에서 보면 한낱 절름발이에 불과했다.

절름발이.

인간적으로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인이라는 존재로 한정을 짓는다면 심각한 결격 사유가 발생한다.

무인은 궁극의 완성을 추구하는 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단 한 점의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흔히들 말하는 상승지경에 들기 위해서는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 어떤 것이라도 균형에서 어긋나면 결코 상승지경에 들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담호는 굉장히 특이한 존재에 속했다.

몸의 균형이 어긋난 절름발이가 권으로 일가를 이뤘다. 아니 단순히 일가를 이룬 것뿐만이 아니라 강호의 최상위에 있는 고수들에게 두려움을 줄 정도의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연구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사우연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미소 띤 모습이 두려운 남자.

그가 이렇게 웃을 때면 일대는 죽음의 대지가 된다.

쿠우우!

그의 몸에서 자욱한 독기가 흘러나왔다.

“너, 곱게 죽을 수 없을 줄 알거라.”

천고의 독인이 독기를 대방출했다. 그가 발산한 독기가 해일처럼 담호를 덮쳐 갔다.

그 순간 담호가 오른쪽 발을 강하게 내디뎠다.

쿵!

대지를 울리는 강렬한 진각.

담호의 몸이 사우연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향해 전진했다.

충보(衝步), 그리고 파성추가 펼쳐졌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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