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195화 (1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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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7장. 독(毒)보다 독한 의지도 있다(2)

사우연을 둘러싼 호신독강이 크게 출렁였다.

마치 유리로 만든 벽에 실금이 가듯 호신독강의 표면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사우연의 얼굴에도 균열이 일었다.

“건방진!”

사우연이 크게 노해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콰아아!

충층혈독수(充層血毒手).

그의 몸 안에 쌓인 독기를 담아 펼치는 장법이었다.

장력이 미처 닿기도 전에 강력한 독기가 느껴졌다. 그의 핏속을 흐르는 독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독보다도 강렬했다. 피 한 방울만으로도 능히 성인 수십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치명적인 독이 담긴 일장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담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단공벽(斷空壁)을 펼쳤다.

공기의 결에 충격을 주어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고음의 음파를 발생시키는 수법.

쩌어엉!

공기의 결이 터지면서 일어난 충격파는 단숨에 충층혈독수에 담긴 독기를 흩트려 버렸다.

충격파가 덮치면서 사우연의 얼굴이 크게 물결쳤다. 하지만 사우연도 절대의 경지에 들어선 고수. 그의 반응은 실로 눈부셨다.

충층혈독수의 절초인 독왕천하(毒王天下)의 수법을 펼쳐 담호의 주먹을 막은 후 입을 크게 벌렸다.

후아!

그의 입에 어려 있던 독기가 숨결을 타고 담호의 얼굴을 훅 덮쳐 왔다.

입과 코를 막아서 독기를 완벽히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눈이 따끔거렸다. 이대로 독기에 더 노출된다면 아무리 내공으로 보호하고 있더라도 실명하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독기였다.

담호는 눈을 감았다.

빛이 사라지고 암흑이 찾아왔다. 그래도 담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무려 십이 년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 왔던 담호였다. 어둠이 빛보다 익숙했고, 공기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다.

퍼엉!

담호의 강력한 일격이 터져 나왔다.

허공을 격해 적을 때리는 수법인 격공장이었다. 강호에서 고수라고 자부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평범한 수법이었지만, 담호의 손에 펼쳐진 격공장은 그 위력이 남달랐다.

사우연은 마치 커다란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휘청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담호가 그를 덮쳐들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그 사이로 번뜩이는 두 눈의 흉광(凶光). 그리고 사위를 잠식하는 엄청난 살기.

평범한 사람이라면 담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지만, 사우연은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다.

뒤로 물러나는 그의 몸 주위로 녹광이 번뜩였다.

천독강(天毒罡).

독으로 강기를 만들어 냈다.

천독강이 덮쳐 왔다. 피할 곳은 없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담호가 택한 것은 방패였다.

초진동 상태에서 그의 몸이 천독강과 부딪쳤다.

콰앙!

굉음이 터져 나오고 담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입가엔 옅은 혈흔마저 내비쳤다. 그의 안색이 흑색으로 변했다.

강기 자체의 위력은 해소했지만, 독기가 그대로 전신을 덮쳤기 때문이다.

모공을 통해 혈관으로 파고든 독은 그의 내부 장기를 금방이라도 중독시킬 듯 무섭게 세를 확장했다. 그 순간 담호의 몸 안에서 강력한 기운이 일어나 전신을 휘돌았다.

암혼심공이 발동한 것이다. 암혼심공으로 일어난 기운은 몸 안에 파고든 독기를 태워 버렸다.

이전에 독에 중독되었을 때 담호는 독기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냈고, 실제로 응용해 냈다.

사우연이 발산하는 독기는 그때의 독기와 비할 수 없이 지독했다. 하지만 근본을 파고들면 마치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았다.

사우연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담호가 예상보다 훨씬 더 자신의 독공을 잘 견뎌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녀석 독에 면역이 있던가?’

간혹 그런 자들이 있긴 했다. 독공에 조예가 있다거나, 익힌 내공 심법 자체에 제독(制毒)의 묘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그런 자들은 독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게 마련이다. 어설픈 독공을 익힌 자들이 그런 존재들을 만나면 낭패를 면치 못하게 된다. 하지만 사우연은 그런 어설픈 독공을 익힌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왜 천독제라고 불리는지 똑똑히 알려 주마.”

쿠우우!

순간 사우연의 몸에서 발산되는 천독강의 위력이 더욱 증폭됐다. 대지가 녹아들어 가고, 일대의 공기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사우연을 중심으로 방원 이십여 장이 완전히 죽음의 대지가 되었다. 공기 자체가 독으로 바뀌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었다.

그 한가운데 담호가 있었다.

담호가 제아무리 고수라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을 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독기로 가득 찬 공기가 그의 전신을 압박했다.

그때 다시 사우연이 담호를 향해 천독강을 날렸다.

뿌드득!

담호의 발이 독으로 흐물흐물해진 대지를 깊이 파고들었다. 종아리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고 목과 손등 위로 굵은 힘줄이 튀어나왔다.

터엉!

그가 대지를 박찼다.

마치 발버둥과 같은 담호의 움직임에 사우연이 냉소를 피워 올렸다.

“흥! 마지막 발악인가? 소용없다.”

사우연이 독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그의 몸 안에 잠재해 있는 가장 근원적인 독인 지옥혈독(地獄血毒)이 폭풍처럼 방출됐다.

지옥혈독은 그가 이제껏 흡수한 수많은 독의 결정체였다. 사우연을 이루는 근간이자,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절독이었다.

담호를 확실히 제거하기 위해 그는 비장의 패를 꺼냈다.

지옥혈독이 폭풍이 되어 담호를 덮친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

담호의 전신이 떨리는가 싶더니 그를 중심으로 기(氣)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맹수의 어금니처럼 걸리는 모든 것을 물어뜯을 사나운 기의 폭풍이 폭발했다.

폭마경(爆魔勁).

단공벽과 오지암파경, 그리고 방패가 합일된 독행류 공방일체(攻防一體)의 초식.

남궁세가의 정예와 검왕(劍王) 남궁천과의 싸움은 담호에게 커다란 숙제와 함께 심득을 남겼다.

수많은 적들을 상대하면서도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며, 절대의 고수를 상대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공. 그 결과물이 바로 폭마경이었다.

콰콰콰!

암혼심공으로 쌓은 내력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담호의 전신을 맹렬히 휘돌며 지옥혈독이 담긴 기류와 부딪쳤다.

불꽃이 피어나면서 순간적으로 일대가 붉게 물들었다.

폭마경을 휘두른 채 전진하는 담호, 지옥혈독을 방출하며 그를 막으려는 사우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눈에 띄게 동요하는 사우연에 비해 담호의 눈빛엔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사우연은 분명 절대고수였다.

아마 일반적인 무인이었다면 그와 상대하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고 위축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우연과 대면한 무인들 중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담호는 달랐다. 수많은 격전을 치르면서 담호는 누구보다 강한 담력과 결코 굴하지 않는 정신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차이는 눈빛으로 나타났다.

죽음마저 오시하는 담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사우연은 등골이 서늘해져 옴을 느꼈다.

‘위험해!’

쿠와앙!

그 순간 그들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독기가 담긴 광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고, 방원 오십여 장이 초토화되었다. 대지와 바위가 녹아들었고, 아름드리나무는 뿌리부터 썩어 들었다.

쿨럭!

담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각혈했다.

그의 가슴 섶과 무릎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담호는 오히려 후련하다고 생각했다.

피와 눈물을 통해 몸 안에 남아 있던 독기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담호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의 삼 장 앞에 누군가의 팔이 떨어져 있었다. 담호는 팔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사우연.’

그가 도마뱀처럼 팔을 하나만 남긴 채 도주한 것이다.

푸스스!

주인 잃은 팔이 독기에 녹아들었다.

담호가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다리를 끌며 사우연의 흔적을 추적했다.

사우연과의 격돌은 그의 전신에 심상치 않은 내상을 안겼다. 몸 안을 파고들었던 독 대부분을 배출했지만, 그래도 운공요상을 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해야 후유증이 남지 않을 터였다.

그 사실을 담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호소를 무시하고 움직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사우연의 도주로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인 마교의 무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당혹한 빛이 역력했다.

그들이 하늘처럼 우러러보았던 사우연이었다. 마교에서는 사우연을 보좌하기 위해 그들을 파견했지만 평소 그들이 나설 일은 없었다.

독공을 익힌 자가 아니면 사우연의 곁에 다가갈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찍이 떨어져 따르며 뒤처리나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사우연이 패퇴해 도주하다니,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상대는 절대의 독인 사우연의 팔을 잘라 낸 괴물. 그들은 옥쇄를 각오하고 담호와 맞섰다.

담호가 충차처럼 그들을 향해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콰쾅!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담호의 앞을 막아섰던 자들이 피 떡이 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나뒹구는 자들 중 제대로 된 형체를 남긴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신을 뒤로한 채 담호가 걸어갔다.

비록 다리를 절어서 빠른 속도로 달릴 수는 없지만, 담호에게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과 강인한 인내심이 있었다.

담호라는 이름의 늑대는 사우연의 흔적을 쫓았다.

“크으!”

한쪽 팔을 잃고 경공을 펼치는 사우연의 얼굴엔 당혹함과 공포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비록 사대군장이나 칠대마인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마교 내에서 그의 위세는 그들 못지않았다.

오히려 독을 사용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마교에서는 사우연을 칠대마인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로 분류했다.

그런 사우연이 지금 팔을 잃고 꼬리를 만 개처럼 도주하고 있었다. 사우연은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서 빨리 이 꿈이 끝나길 바랐다.

저 앞에 절벽이 보였다. 절벽 아래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엔 배 한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절벽의 높이만 오십여 장(150m)이 넘었다. 마음이 급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안전이 우선이었다.

결국 사우연은 절벽을 돌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강가에 도착했다.

“어서 타십시오, 독제시여.”

미리 연락을 받고 배를 준비한 마교의 무인이 사우연을 맞았다. 사우연은 대답할 여유도 없이 배에 올라탔다.

끼이익!

사우연이 배에 타자마자 무인이 노를 저었다. 배는 조금씩 강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사우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흑!”

안도감이 지나간 후엔 수치심과 분노감이 치솟아 올랐다.

“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담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담호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이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뒤이어 팔을 잃은 어깨에서 고통이 찾아왔다.

푸쉬쉬!

상처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강과 배 바닥에 떨어졌다.

“끄어어!”

노를 젓던 무인이 피에 함유된 독기에 중독되어 숨이 끊어졌고, 강에서 죽은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낸 채 떠올랐다.

“망할!”

노잡이를 잃은 사우연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노잡이가 죽었으니 자신이 직접 노를 저어야 했다.

그는 이 모든 원인이 담호에 있다고 생각했다.

“놈! 이제부터 두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것이다. 네놈이 먹는 모든 식수, 음식에 독을 뿌릴 테니까. 너와 연관 있는 모든 자들을 중독시켜 죽일 것이다. 네놈과 손가락 하나라도 접촉한 자는 천하에서 가장 처참한 죽임을 당할 것이다. 크하하하!”

광기가 가득한 그의 웃음이 강에 울려 퍼질 때였다.

탓!

갑자기 절벽 위에 검은 그림자가 치솟아 올랐다. 하늘 높이 비상한 검은 그림자는 그대로 사우연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쐐애액!

오십 장이 넘는 높이에서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검은 그림자는 바로 폭마경을 두른 담호였다.

엄청난 가속도가 붙으며 그의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이고 폭마경과 충돌한 공간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제아무리 강인한 육체를 가진 자라도 무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담호의 눈빛엔 그 어떤 망설임이나 흔들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반드시 사우연을 죽이겠다는 의지만 있을 뿐.

사우연은 그런 담호의 눈빛을 보고 망연히 중얼거렸다.

“미친…….”

콰아앙!

그 순간 담호가 사우연에게 그대로 내리꽂혔다.

배가 산산이 부서지고, 하늘 높이 물줄기가 치솟아 올랐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강물, 그 위로 먹물처럼 번져 가는 검은 핏물.

이제까지 수많은 생명을 잉태했던 강에 죽음이 내렸다. 수많은 물고기가 배를 뒤집은 채 떠올랐다.

푸확!

잠시 후 검게 물든 강에서 담호가 걸어 나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고 전신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담호의 눈빛은 여전히 흉흉했다.

그의 등 뒤로 산산이 부서지고 짓이겨진 시신 한 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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