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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01화 (2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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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화 1장. 사부는 눈물을 흘리고, 제자는 사자후를 터트린다(1)

처음 그 소리가 들렸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스르륵! 쿵!

다시 한 번 발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심령을 불길하게 자극하는 엇박자의 걸음.

한쪽 발로 대지를 강하게 찍고, 반대쪽 발로 바닥을 끄는 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소천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별거 아닌 발소리가 묘하게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천산은 불편한 심기를 억지로 참으며 마지막 탄주를 하려 했다.

쿠웅!

그가 비파의 현을 튕기는 순간 발자국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그에 소천산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따앙!

“크윽!”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현이 비명과 함께 끊어졌다.

소천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비파를 내려다보았다. 천하에서 가장 질기다는 천잠사를 꼬아 만든 현이었다. 수만 번을 탄주해도 끊어질 리가 없는 귀물이었다.

그런 귀물이 끊어졌다는 사실이 그의 기분을 바닥 끝까지 떨어트렸다.

“누구냐?”

그의 눈이 사납게 빛나며 불길한 발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저 멀리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쪽 발을 내딛고, 다른 발을 끄는 남자.

누가 봐도 절름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토록 뜨겁게 달아올랐던 공기가, 광기로 가득 찼던 전장이 그가 등장하면서 차갑게 식어 갔다.

치열하게 싸우던 무림맹과 마교의 무인들은 움직임을 멈춘 채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 뗄 수가 없었다.

남자의 강렬한 존재감이 그들에게 집중을 강요하는 것이다.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모든 무인들이 남자를 바라봤다.

소천산도, 등천소도, 현검진인도, 그리고 현소 진인도…….

“아!”

무너진 담장 사이로 아득히 보이는 절름발이 남자를 보는 순간 현소 진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하게 펄럭이는 검은 피풍의, 그리고 살짝 저는 왼발.

너무 멀어 얼굴조차 구별할 수 없었지만, 현소 진인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현소 진인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 왔다.

“호, 호야!”

그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저 멀리 보이는 담호를 향해. 하지만 담호가 잡힐 리 없었다.

현소 진인이 뻗었던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며 오열했다.

“흐흑! 호야!”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가슴을 적셨다.

“할부지. 으앙!”

현소 진인이 눈물을 흘리자 어린 하영이가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울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이제까지 힘겹게 현소 진인 등을 보호하던 초연운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악몽 같던 탄주가 끝난 것만으로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담호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삭주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는 표정에 변화 하나 없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담호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히익!”

“으음!”

그와 눈을 마주친 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을 무심히 지나쳤다.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그의 시선이 어느 한순간 고정됐다. 별채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목구비조차 구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눈에 알아봤다.

‘사부.’

현소 진인이 담호를 한눈에 알아본 것처럼 담호 역시 단박에 그를 알아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잘 있었느냐? 호야.’

‘사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담호가 현소 진인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네놈은 누구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담호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소천산이 그의 앞을 막고 노려보고 있었다.

담호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소천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묻지 않았느냐? 어서 썩 정체를 밝혀라.”

“…….”

“그래도 네놈이…….”

소천산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그 순간이었다.

탓!

갑자기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충보를 펼친 것이다.

대화도, 예고도 없이 충차처럼 몸을 날려 쇄도하는 담호의 모습에 소천산이 기겁을 했다.

“미친!”

하지만 그는 마교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인 칠대마인의 일인이었다. 다급한 와중에도 비파의 남아 있는 현을 튕겼다.

따라랑!

가공할 음파가 그대로 담호를 덮쳐 왔다.

얼굴의 살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옷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가슴이 진탕되고 심맥이 흔들렸지만, 담호의 사나운 눈빛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콰아앙!

음파의 벽을 뚫고 담호의 파성추가 소천산의 몸통에 그대로 작렬했다.

“으음!”

소천산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갔다. 그런 그의 입가엔 옅은 혈흔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비파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담호의 공격을 비파로 막아 냈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쉬아악!

담호의 이 격, 삼 격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소천산은 급히 품에서 옥소를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구름 같은 경기가 일어나 담호를 덮쳐 갔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소천산의 몸이 들썩였다.

그 순간 담호가 먼지를 뚫고 나타나 소천산을 향해 쇄도했다.

‘분명 절름발이 아니었나?’

급박한 상황에서도 소천산은 그런 의문을 가졌다. 그만큼 담호의 몸놀림은 장애가 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쾌했다.

쾅!

짧은 단양타의 일격이 소천산의 몸을 두들겼다.

“큭!”

소천산이 휘청이면서 옥소를 휘둘렀다. 그의 옥소엔 어느새 강기가 맺혀 있었다.

음공의 대명사로 알려진 소천산이지만, 간단한 강기 정도는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퍼억!

강기가 맺힌 옥소가 담호의 어깨에 작렬했다. 그 순간 폭마경이 일어나 강기를 날려 버렸다.

“어?”

당연히 이번 일격으로 담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거라 생각했던 소천산이 당황했다. 그리고 담호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덥석!

담호가 소천산의 멱살을 십자로 교차해 잡았다. 지천격을 펼치려는 것이다.

소천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두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면서 소천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절대고수답게 그의 반응은 눈부셨다.

퍼버벅!

그의 옥소가 담호의 몸통을 순식간에 서너 번이나 강타했다. 그 충격으로 담호의 손이 풀리고 말았다.

자유를 찾은 소천산이 급히 뒤로 물러나며 옥소를 입에 가져갔다.

살천마음(殺天魔音)을 불려는 것이다.

십리멸절음이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광역 음공이라면 살천마음은 음파를 한 점에 집중시키는 대일인(對一人) 전용 살상 음공이었다.

십리멸절음의 위력을 고스란히 일 점에 집중시키는 것이기에 위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만 불면 돼.’

일단 살천마음만 펼칠 수 있다면 담호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그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언제 타격을 입었냐는 듯이 담호의 주먹이 소천산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쾅!

굉음과 함께 소천산의 몸이 들썩였다. 다행히 팔꿈치로 막아 내긴 했지만 충격으로 내장이 진탕되었다.

쉬이익!

담호의 다리가 채찍처럼 뻗어 왔다.

소천산은 옥소를 부는 대신 휘둘러 전신을 보호했다.

빠각!

다리와 옥소가 부딪쳤다.

소천산의 내공이 주입된 옥소는 그 어떤 신병이기보다 강하고 날카로웠다. 그는 담호의 다리를 단숨에 동강 낼 각오로 전신의 내공을 주입했다. 하지만 담호의 다리를 동강 내기는커녕 옥소를 잡은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다.

‘무슨 놈의 몸뚱이가 이리 단단한 거지?’

하지만 의문을 풀 사이도 없이 담호의 공격이 이어졌다.

소천산의 바로 코앞에서 단공벽이 펼쳐졌다.

충격파가 발산되면서 소천산의 고막에 충격을 주었다.

위잉!

갑작스러운 이명에 소천산이 순간적으로 균형 감각을 잃고 머리를 흔들었다.

찰나의 흔들림에 불과했다. 하지만 담호에겐 그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퍽!

단양타가 소천산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던 소천산의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살천마음을…….’

그 와중에도 소천산은 본능적으로 옥소를 불려고 했다. 일단 살천마음만 연주할 수 있으면 일발 역전도 가능했다.

그 순간 담호의 장심이 그의 가슴에 밀착했다.

후웅!

오지암파경이 경력을 발산했다.

소천산의 가슴이 나선형으로 움푹 파였다.

“크헉!”

뼛속까지 울리는 끔찍한 고통에 결국 소천산이 비명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담호가 무방비 상태로 비틀거리는 소천산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정신이 없었지만 소천산은 담호가 다시 지천격을 펼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놈!”

한가하게 옥소를 불 여유가 없기에 소천산은 몸 안의 내기를 한꺼번에 방출해 호신강기를 펼치려 했다.

뿌득!

그 순간 담호가 소천산의 한쪽 팔을 비틀었다. 팔이 마치 꽈배기처럼 뒤틀리면서 뼈가 산산이 부서졌다.

부러진 뼈가 팔을 뚫고 삐죽 튀어나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소천산의 내기가 흩어졌다. 당연히 호신강기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담호가 다시 소천산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잡았다. 그리고 지천격이 펼쳐졌다.

마치 폭풍에 휩쓸린 나무처럼 소천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두 다리가 허우적거리는가 싶더니 소천산의 몸이 뒤집혀 대지를 향해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모두의 심장을 강타하는 굉음과 함께 소천산의 몸이 거꾸로 처박혔다. 먼지가 일어나고 대지가 고통의 울음을 토해 냈다.

“…….”

장내에 정적이 찾아왔다.

적아를 불문하고 모두의 눈이 부릅떠져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거짓말 같은 광경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소천산은 칠대마인의 일인이자 음공의 대가였다.

한번 탄주하면 십 리 안의 생명체를 몰살시킨다는 전설적인 음공의 소유자인 그가 옥소 한 번 변변히 불지 못하고 담호의 손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단 한 번만 살천마음을 연주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소천산에게 그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않고 폭풍처럼 몰아쳐 그의 숨통을 끊었다.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그 모든 광경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광경이 그들의 침묵을 강요했다.

그토록 가공할 기세로 소천산을 몰아쳤건만 담호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거꾸로 처박혔던 소천산의 몸이 무너져 내렸지만, 담호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쿵! 스르륵! 쿵! 스르륵!

그의 발소리가 사람들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담호가 향하는 곳에 현소 진인이 있었다. 담호는 다른 곳엔 시선도 주지 않고 오직 현소 진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맹목적인 눈빛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으으! 어떻게 저런 자가…….”

“십리무생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다니.”

“절망의…… 마인이 나타났다.”

마교의 무인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뒤돌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썰물처럼 빠지는 마교 무인들의 모습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푸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숨을 죽인 채 담호를 지켜봤다.

그사이 담호가 별채 앞에 도착했다.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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