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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04화 (2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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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2장. 호랑이를 눈앞에 두고도 고양이로 생각한다(1)

담호와 현검 진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현검 진인의 눈이 섬전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사위를 압도하는 강력한 존재감과 무시무시한 기백에 운경이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을 정도였다.

현검 진인은 날카롭게 벼려진 명검이었다. 그가 발산하는 기파는 검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치명적이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기파가 담호를 정면으로 덮쳐 왔다. 하지만 담호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담호가 물끄러미 현검 진인을 바라봤다. 말도 없었다. 그런 담호의 태도에 현검 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현검 진인은 평생을 타인을 내려다보던 사람이었다. 누구를 내려다보는 것만 익숙했지, 타인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은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현검 진인에게 내려다보는 듯한 담호의 눈빛은 견디기 힘든 굴욕감을 주었다. 그래서 현검 진인은 분노했다.

“어디서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냐? 감히 존장을 그렇게 노려보다니. 네 사부가 도대체 어떻게 너를 가르친 것인지 모르겠구나.”

“내 사부가 어때서?”

“뭐라?”

“사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당신의 열등감에 사부를 끼워 넣지 말라고.”

“열등감?”

“아닌가?”

현검 진인의 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반대로 그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차가워졌다.

“네가 조그만 무력을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감히 사문의 존장을 무시하다니.”

“사문의 존장이 여기 어디에 있지?”

“너?”

“나이가 많다면 존장인가? 한때 같은 곳에 몸을 담고 있었으면 무조건 존중을 받아야 하는가?”

“너는 세상의 질서를 부정할 셈이냐?”

“그런 게 세상의 질서라면 부정해 주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망언을 내뱉는구나. 너는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알고는 있는 것이냐?”

현검 진인의 목소리에 스산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현검 진인은 담호를 설득할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다. 무작정 배척하기엔 그의 강대한 무력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호와 몇 마디 대화해 보고 알았다.

담호는 결코 고개를 숙이거나, 기존의 질서에 순응할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검 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산파에 대한 존중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이 현검 진인을 분노케 했다.

“네가 부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화산파가 네놈의 뿌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네 사부인 현소가 화산파의 장로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래서 이 정도로 참는 거야. 사부가 화산파를 끔찍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당신은 이곳에 두 발로 서 있지도 못했을 거야.”

“감히! 네놈이…….”

이쯤 되자 현검 진인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노기가 폭발했다.

현검 진인의 전신에서 발산된 가공할 기파가 일대를 잠식해 갔다. 순간 담호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했다.

물기 하나 없이 마른 논처럼 감정 없던 눈동자에 살기로 가득한 차가운 비가 내렸다.

담호의 눈빛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현검 진인의 가슴을 후벼 팠다. 현검 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검의 손잡이를 잡아 갔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둘 사이에 낀 운경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현검 진인과 담호가 격돌하면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때였다.

“두 분 그쯤 하시지요.”

심후한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 퍼졌다.

웅웅!

마치 거대한 범종이 곁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그에 현검 진인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검병에서 손을 떼며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검객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검객의 뒤로 젊은 무인이 보였다.

검객이 두 사람에게 포권을 취했다.

“소생은 종남파의 염중화라고 합니다.”

“종남진검?”

“그렇습니다, 현검 진인. 오랫동안 흠모해 온 화산제일검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종남진검(終南眞劍) 염중화.

구대문파 중 하나인 종남파 제일의 무인이 바로 염중화였다. 오죽했으면 그의 별호가 종남진검일까?

그는 종남을 지키는 검이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종남을 벗어나는 일이 없는 염중화였다. 그런 그가 이곳에 나타났단 사실 자체가 종남파가 얼마나 사안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종남파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청년은 바로 그의 제자인 천강공자(天强公子) 금한수였다.

구무룡의 일원이자 종남파 제일의 후기지수라 불리는 남자였다. 조용히 서 있지만 그의 굳건한 존재감은 유독 도드라졌다.

금한수의 시선은 담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엔 강한 승부욕이 어려 있었다.

젊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담호의 명성은 이미 천하를 울리고 있었고, 강호 최고 수준의 고수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구무룡의 일원으로 최고의 후기지수로 인정을 받는 금한수와 같은 자는 당연히 승부욕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염중화와 금한수는 예전에 담호를 본 적이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십삼 년 전에 마교의 무인들을 추적할 때 함께했던 절름발이 소년이 지금 눈앞에 있는 권마와 동일 인물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담호는 한눈에 그들을 알아보았다.

그때는 누구도 담호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었다. 그저 불쌍한 절름발이라 생각해서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뿐.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는 강한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담호는 변함없건만 그의 명성과 무력이 사람들의 시선을 그렇게 바꿔 놓은 것이다.

오직 강자만이 주목을 받고, 제 의지대로 행할 수 있음이다.

그것이 강호의 인심이었다.

금한수가 현검 진인과 담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소생은 종남의 금한수라고 합니다. 두 분 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네가 종남 제일의 기재인 천강공자군.”

“과대평가된 별호라 부끄러울 뿐입니다. 진인의 제자인 명경 도장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합니다.”

“흥!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 예가 과하면 오히려 부족한 만 못하다고 했네.”

현검 진인이 코웃음을 쳤다.

금한수의 기도는 그의 제자인 명경에 못지않았다. 실제로 싸워 보기 전에는 누가 우위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금한수의 무위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현검 진인이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염 대협께서는 어찌 본파의 일에 끼어드시는 것이오?”

“현검 진인과 담 대협이 싸우면 누군가는 크게 다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림의 큰 손해일 테니까요.”

“지금 이 아이의 편을 드는 것이오?”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는 것뿐입니다.”

“이성?”

“그렇습니다.”

“이 아이가 강호의 공적이라는 것은 알고서 하시는 소리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허나 십리무생 소천산을 죽임으로써 무림맹의 많은 이들을 구한 것 또한 사실이지요. 공과가 비등하니, 마냥 강호 공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염중화의 능글맞은 태도에 현검 진인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화산파와 종남파는 예로부터 섬서성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문파 사이의 경쟁심은 무척이나 유명했다.

화산파가 성하면 종남파가 쇠했고, 반대로 종남파가 성세를 떨칠 때면 화산파가 몰락을 하곤 했다.

당연히 두 문파의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고, 그들 간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십 년 전 화산파가 마교에 의해 큰 타격을 입은 후 섬서성의 주도권은 종남파가 가져갔다. 때문에 현검 진인을 비롯해 화산파의 수뇌부들은 종남파에 결코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공과가 상쇄되니 마냥 강호 공적으로 몰 수 없다? 그것이 종남의 뜻이오?”

“비단 종남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염중화는 현검 진인의 사나운 눈빛을 담담히 받아 냈다.

현검 진인이 화산제일검이라 하지만, 염중화는 그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 역시 종남제일검이라 불릴 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현검 진인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담호건 염중화건 간에 단숨에 도륙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녹록한 자가 없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흥!”

결국 현검 진인이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사숙!”

그 뒤를 운경이 급히 따랐다.

사정이야 어쨌건 그는 화산파의 제자였다. 현검 진인을 따라가야 했다.

담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현검 진인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담 대협, 강호 공적으로 지목된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오. 종남파의 힘이라면 그런 오명 정도는 간단히 씻어 줄 수 있을 테니까.”

“…….”

담호가 염중화를 바라봤다.

예전보다 한결 더 능글맞아진 모습이었다. 예전의 그는 마치 고고한 학 같았는데, 지금은 세상만사 다 경험한 백전노장 같은 모습이었다.

담호는 염중화가 호의로 개입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별다른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당신들은 여전하군. 그때와 똑같아.”

“뭐가 말입니까?”

“역시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

염중화와 금천수는 담호의 말투에서 그가 자신들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언제 우리 본 적이 있습니까?”

“십삼 년 전 천양현 윤가장.”

“그럼?”

먼저 기억을 떠올린 금한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교의 흔적을 쫓기 위해 무당파, 화산파, 종남파가 주축이 되어 추적대가 급조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절름발이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설마 당신이?”

“이제 기억나나 보군.”

“어떻게?”

금한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화산파의 제자이면서도 화산파에서 무시를 당했던 어린 소년. 당시 금한수는 담호를 없는 사람 취급했었다.

절름발이라고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직접 신경을 쓸 만큼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염중화 역시 담호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의 보잘것없던 소년이 이렇게 거물이 되다니. 정말 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구나.’

모두가 무시하던 절름발이 소년은 이제 강호의 최고수가 되어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이런 인연도 있구려. 이 염 모는 진심으로 담 대협에게 감탄했소. 수많은 역경을 헤쳐 온 그대의 집념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오. 모쪼록 앞으로도 부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소.”

“그것은 당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순간 금한수가 살짝 노기를 떠올렸다. 광오한 담호의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염중화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물론이오. 그럼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소. 부디 편히 쉬시오.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소이다.”

“다시 뵙겠소.”

금한수가 염중화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금세 별채에서 멀어졌다. 마침내 담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염중화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으허허! 정말 재미있구나.”

“뭐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그럼 너는 재밌지 않느냐?”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금한수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구무룡이라 불리는 또래의 무인들에게 유달리 강한 승부욕을 느끼는 금한수였다. 하물며 담호는 그보다 나이도 어렸으며 몸조차 불편했다. 그런 주제에 그보다 훨씬 더 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엄청난 명망을 누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반드시 그를 뛰어넘고 말겠다. 강호의 정상에 우뚝 서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금한수가 굳게 다짐하고 있을 때 염중화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에게 그렇게 경쟁의식을 가질 필요 없다.”

“어째서입니까?”

“그는 너무 강하다.”

“예?”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마련이지. 지금이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강호가 얼마나 흉험한지. 단순히 힘만 세다고 생존할 수 있는 녹록한 곳이 아님을.”

염중화가 빙긋 웃었다. 의미심장한 그의 웃음에도 금한수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그는 훌륭한 도구다. 사람을 죽이는 데 그만큼 적합한 도구는 존재하지 않지. 하지만 그것이 그의 한계다. 결국 그는 도구로 이용되다가 망가질 것이다. 네가 할 일은 그를 질투하는 것이 아닌, 얼마나 잘 이용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으음!”

“화산파는 정말 바보 같구나. 제 스스로 명검을 버렸으니. 하하하!”

염중화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그제야 금한수는 굳었던 얼굴을 조금 풀었다.

‘그렇다. 그래 봤자 그는 혼자서 날뛰다 죽을 운명. 나는 다르다. 명문 종남파의 장문인이 되어 천하에 우뚝 군림할 것이다. 그래, 포용하자. 그게 뭐 어렵다고. 그게 안 된다면…….’

금한수는 구무룡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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