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207화 (207/500)

 207

207화 3장. 모든 일에는 책임이 뒤따른다(1)

현소 진인은 별채의 마당을 홀로 거닐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십삼 년 만에 만난 제자는 이제 거목이 되어 있었다. 화산파라는 제약을 벗어던진 제자는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을 자연스럽게 흩뿌리고 있었다.

그런 제자의 모습이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담호는 고독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가 걷는 길에 자신이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휴!”

현소 진인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사숙!”

“운경아.”

조용히 별채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바로 운경이었다. 그가 현소 진인을 향해 다가왔다.

“네가 여긴 어인 일이냐?”

“잠이 오지 않아서…….”

“너도 그런 것이냐?”

“그럼 사숙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구나.”

“저도 어쩌다 보니…….”

운경이 말끝을 흐렸다.

현소 진인이 그런 운경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담호를 천금마옥에 두고 나온 것은 그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십 수 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운경아.”

“예! 사숙.”

“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예?”

“네가 유독 호에게 차갑게 대한 것도 다 화산을 위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를 대함에 있어 한 점의 사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도. 호도 살아 돌아왔으니 이젠 가슴속에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거라.”

“사……숙?”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느냐? 나와 호는 괜찮으니 이젠 스스로를 용서하거라.”

현소 진인의 따뜻한 말에 운경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운경의 어깨가 자신도 모르게 들썩였다.

현소 진인이 그런 운경을 조용히 품에 안았다.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운경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얼마나 화산을 사랑하는지. 화산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네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그렇단다. 화산을 위해서라면 이 늙은 목숨 기꺼이 바칠 수 있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 목숨이 값어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화산만큼이나 우리들의 목숨 또한 소중하고 귀하단다. 너는 화산파의 기둥, 이제 그만 죄책감을 풀고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거라.”

“감사……합니다. 사숙!”

운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소 진인의 따스한 말에 그간 가슴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확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에서 시작된 온기는 그의 전신으로 번져 갔다.

“나야말로 고맙다, 운경아. 그래도 너만은 균형을 잡아 줘서. 네가 있어 화산의 미래가 밝구나.”

“사……숙!”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운경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현소 진인이 해 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소 진인이 미소를 지으며 운경을 바라봤다.

담호를 생각하면 화산을 떠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운경을 보자니 화산을 떠날 수 없었다.

피잉!

그 순간 한 줄기 파공성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사숙! 조심하십시오.”

운경이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재빨리 반응했다.

어느새 그의 손엔 검이 들려 있었고, 현소 진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챙!

운경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무언가 쇳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운경의 검에 부딪쳐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 물체는 은빛 암기였다.

“누구냐?”

운경이 현소 진인의 앞을 막아선 채 소리쳤다. 그의 음성이 신호라도 된 듯이 사방에서 암기가 날아왔다.

쉬쉬쉭!

운경이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二十四手梅花劍)을 펼쳐 자신과 현소 진인을 엄밀히 보호했다.

수많은 암기들이 검막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운경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없었다. 뒤이어 습격자들이 별채의 담벼락 위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습격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복면을 착용하고 있어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대체?”

현소 진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곳은 삭주 지부의 별채였다. 무림맹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인들이 곳곳에서 포진하고 있었다. 수천 명이 넘는 인의 장벽을 뚫고 외부에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적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를 의미했다. 삭주 지부의 경계망이 뚫렸다거나, 내부의 누군가 도와주었다는 것.

습격자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외쳤다.

“쳐랏!”

습격자들 중 일부가 운경과 현소 진인을 향해 달려들었고, 나머지는 담호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별채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 안 돼!”

그 광경을 본 현소 진인이 급히 소리쳤다.

콰아앙!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별채가 산산이 부서졌다. 폭풍 같은 기파가 주위를 휩쓸고, 별채를 덮쳐 가던 습격자들 십여 명이 피 떡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권마다.”

“모두 조심해!”

습격자들이 경호성을 터트렸다.

부서진 별채 한가운데 담호가 서 있었다.

담호의 눈빛은 지옥의 무저갱처럼 끝도 없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빠!”

“형!”

그의 주위에 겁에 질린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습격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습격자들은 담호보다 아이들을 노렸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담호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 그로 인해 허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기이잉!

담호의 다리가 허공에 곡선을 그려 냈다. 혈천각이었다.

퍼버버벅!

그의 다리에 걸린 세 명의 습격자들이 머리가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담호는 탄력을 살려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공중에서 파성추와 단공벽을 연이어 펼쳤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습격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동료들의 죽음에도 습격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담호보다 아이들을 노리며 시선의 분산을 유도했다.

혼자만이라면 누구보다 강한 담호였지만, 아이들을 모두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들은 집요하게 아이들을 노렸다.

“아악!”

아이 하나가 어깨에 검을 맞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피륙의 상처에 그쳤지만, 아직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상처였다.

담호가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 습격자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습격자가 급히 도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콰앙!

담호의 주먹이 작렬하는 순간 습격자의 몸이 터져 나갔다. 말 그대로 폭발해 산산이 조각난 것이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조각난 육편과 내장 조각이 사람들의 몸에 튀었다.

제아무리 무공을 익힌 이들이라지만 습격자들 역시 인간이었다. 끔찍한 동료의 모습에 그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담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콰콰콰!

그의 전신에 폭마경이 휘돌았다.

“크아악!”

“아악!”

폭마경에 휩쓸린 자들이 마치 걸레쪽처럼 찢겨 나갔다.

그래도 담호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희생자를 찾아 눈을 번뜩이는 그에게 누군가 소리쳤다.

“우리예요. 멈춰요.”

고개를 돌리니 해소월과 종리연이 보였다.

해소월이 아이들 앞에 서며 소리쳤다.

“아이들은 내가 지킬게요.”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아이들을 지키는 것만이라면 해소월에게 맡겨도 됐다.

문제는 운경이었다. 운경이 최선을 다해 현소 진인을 지키고 있었지만, 한계에 달해 있었다.

담호가 급히 현소 진인을 향해 충보를 펼쳤다.

단순한 직선의 보법.

적을 살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법이 펼쳐지자 담호가 충차처럼 무섭게 쇄도했다.

콰콰쾅!

“크악!”

“억!”

담호에게 걸린 모든 것들이 부서졌다.

습격자들의 가슴이 함몰되고, 머리가 부서져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담호의 눈에 어린 살기가 사방으로 발산됐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악귀 같았다.

“헉!”

담호와 정면으로 마주한 습격자의 눈에 공포의 빛이 어렸다. 무섭게 살기를 발산하는 담호의 얼굴이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되었다.

퍼석!

그의 머리가 수박처럼 부서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앞으로 걷다가 이내 썩은 통나무처럼 ‘쿵’ 하고 쓰러졌다.

“호야!”

홀로 고군분투하던 운경의 얼굴에 반색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체력이 한계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습격자들 중 한 명이 은밀히 현소 진인의 배후로 접근했다. 담호와 다른 습격자들에게 정신이 팔린 운경은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 안 돼!”

운경이 급히 현소 진인의 배후로 접근한 습격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습격자의 손이 움직였다.

쉬악!

그의 손을 떠난 비도가 현소 진인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이 담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담호가 속도를 높이며 손을 뻗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비도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비수는 그의 손을 벗어났다.

“안 돼!”

운경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흐윽!”

현소 진인도 위기를 느끼고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퍽!

“크헉!”

간발의 차이로 가슴 대신 어깨에 비도가 처박혔다. 비도는 손잡이만 남기고 박혀 있었다.

현소 진인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부!”

처음으로 담호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가공할 살기가 삭주의 밤하늘에 퍼져 나갔다. 잠들어 있던 무인들이 살기에 놀라 일어났고, 짐승들마저 공포에 떨었다.

“너?”

담호가 비도를 날린 습격자를 향해 충보를 펼쳤다.

“도주해!”

우두머리 습격자가 소리치면서 뒤로 몸을 날렸다. 이제까지 죽일 듯 달려들던 습격자들이 마치 썰물이 빠지듯 일제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담호는 다른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한 명, 사부에게 비도를 날린 우두머리를 추격했다.

“천경아!”

등 뒤에서 운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담호의 신경은 단 하나, 비도를 날린 우두머리에 쏠려 있었다.

쿵!

대지를 박차는 순간 그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비록 한쪽 다리가 온전치 못해 오랜 시간 속도를 유지하기는 힘들었지만, 단시간 유지되는 그 폭발력만큼은 여타 경공술을 능가했다.

쏴아아!

“헉!”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파에 우두머리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담호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였다.

분노로 점철된 사나운 눈빛과 짐승의 노린내가 훅 하고 그를 덮쳐 왔다.

‘제길!’

콰앙!

그 순간 우두머리 남자는 집채만 한 바위가 자신을 덮치는 충격을 느껴야 했다.

엄청난 충격에 가슴뼈가 산산이 부서지고, 내장이 짓이겨졌다. 안구 한쪽이 가공할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가고, 나머지 한쪽도 온통 실핏줄이 터져 온 세상이 붉게만 보였다.

“쿨럭!”

바닥에 널브러진 우두머리 남자가 피를 토해 냈다.

콰득!

담호가 그의 오른팔을 밟았다. 그러자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누구야?”

스산하게 가라앉은 담호의 음성이 별채에 울려 퍼지는 순간 모두가 몸을 떨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