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208화 3장. 모든 일에는 책임이 뒤따른다(2)
“흐으!”
우두머리 남자가 입을 떡 벌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온몸이 해체되는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담호가 그의 왼쪽 무릎을 지그시 밟았다.
우두둑!
무릎 연골이 박살이 났다.
“끄어어!”
우두머리 남자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담호가 그의 가슴에 한쪽 발을 올려놓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우두머리 남자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보냈나?”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심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남자는 담호의 목소리 안에 담긴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큿!”
우두머리 남자의 입가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웃음 같기도 하고, 거친 숨소리 같기도 한 기괴한 신음성이었다.
“말하면…… 살려 주겠는가?”
“아니!”
“크큭!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나도 살길 포기했어.”
까득!
우두머리 남자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자 어금니가 깨지면서 숨겨져 있던 독액이 목구멍을 타고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즉효성 맹독이었다.
우두머리 남자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죽지만, 너의 끝도 그리 좋지 않을 거야. 너의 지옥은 이제 시작이니까. 너와 관련 있는 모든 자가 목표가 될 것이다. 흐흐! 상상이 가느냐? 너는 철저히 혼자 고립될 것이다.”
숨이 끊어져 가면서도 우두머리 남자는 저주를 쏟아 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담호의 눈빛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죽기 전에 알아 둬.”
“뭘 말이냐?”
“난 반드시 네 정체를 밝혀낼 거야. 그래서 너와 연관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일 거야. 처, 자식, 부모, 너와 핏방울 하나라도 섞여 있는 자라면 모조리 찾아내서 처참하게 죽일 거야.”
“너?”
우두머리 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맹독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가고 있었지만, 담호의 목소리는 그의 정신을 일깨우기 충분했다.
“과연 누가 더 빠를까?”
“끄으으!”
상상을 초월하는 담호의 대답에 우두머리 남자가 입에 피거품을 물었다.
맹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극한의 고통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담호가 진짜로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담호의 행보를 보면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켰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제야 우두머리 남자는 자신이 담호를 잘못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안 돼!”
그가 손을 뻗어 담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움직임을 잃은 지 오래였다.
우두머리 남자의 눈에서 생명이 꺼져 갔다. 하지만 죽어 가면서도 그는 마지막 미련의 끈을 놓지 못했다.
“제……발 가족만은…….”
“그럼 대답해. 어디야?”
“마, 마……교. 가족들은 살……려…….”
그 말을 끝으로 우두머리 남자의 숨이 끊어졌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우두머리 남자는 가족에 대한 걱정을 했다.
담호가 숨이 끊어진 우두머리 남자의 복면을 벗겼다. 그러자 강맹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담호는 중년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괜찮아?”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초연운이 물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삭주 지부 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수천 명의 무인들이 물 샐 틈 없이 경계하고 있는데 수십 명이 넘는 습격자들이 별채를 공격할 때까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말이 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습격자들은 어느새 도주해서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지?”
“이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겠나?”
“용모파기를 그려 놓으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알아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았어.”
초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호가 현소 진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현소 진인에게는 이미 종리연이 붙어 있었다.
현소 진인의 안색이 파리했다. 그는 담호가 왔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부는?”
“목숨은 건졌어요. 그러데…….”
“뭐지?”
“비도에 극독이 묻어 있었어요.”
종리연의 대답에 담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에 종리연이 급히 말을 이었다.
“재빨리 비도를 뽑았지만 적잖은 양의 독이 이미 체내에 침투했어요.”
“해독할 수 있겠나?”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해요. 대신…….”
종리연이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말해.”
“대신 독이 머리와 심장으로 침투하기 전에 가수면 상태로 유도해야 해요.”
“가수면?”
“말 그대로 억지로 잠을 재워 혼수상태로 만드는 거예요. 체온이 떨어지고, 신체 활동이 느려지면 독의 활동 또한 크게 약화돼요. 그사이 치료를 하는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그건 장담할 수 없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종리연이 담호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어느 때보다 확신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지.”
“걱정하지 마요. 난 신의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음!”
종리연은 해소월의 도움을 받아 현소 진인을 안으로 옮겼다.
“으와앙! 할부지.”
“할아버지.”
아이들이 현소 진인을 따라가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담호의 눈에 짙은 살기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때 운경이 다가왔다.
“미안하구나. 내가 부족해서 사숙을 지키지 못했구나. 널 볼 면목이 없다.”
“…….”
“정말 미안하다.”
운경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얼굴엔 현소 진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득했다.
담호는 말없이 운경을 바라봤다.
운경이 현소 진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운경을 탓할 생각 따윈 없었다.
담호는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하고 있었다. 삭주 지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계심을 푼 자신에게.
담호의 심장은 분노했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가운 분노는 사람의 이성을 일깨운다.
지금 담호의 상태가 그랬다.
담호가 별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연운이 따라붙었다.
“어디를 가는 거야?”
초연운의 물음에도 담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걸을 뿐이었다.
평상시와 똑같은 걸음걸이였다. 표정 역시 그대로였다.
“헉!”
“으음!”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본 무인들이 기겁을 했다. 소름이 끼치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친구. 진정하라구.”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초연운이 담호를 만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멈추십시오.”
대신 삭주 지부의 무인들이 담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여긴 지부장님의 거처입니다. 지부장님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비켜!”
담호의 한마디에 지부장의 거처를 지키던 무인들이 얼어붙었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엔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의무감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담호가 난동이라도 부리면 그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만큼 담호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그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 있었다.
담호는 얼어붙은 무인들을 뒤로하고 지부장 거처로 들어갔다.
“이것 참!”
그 뒤를 따르는 초연운이 혀를 내둘렀다.
쾅!
문이 부서지고 안에 있던 지부장 공손중과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무, 무슨 일입니까?”
“누구야?”
“예?”
“당신이 내통했나?”
“무슨?”
담호의 기백에 공손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단지 시선을 마주했을 뿐인데 전신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이 아파 오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이곳이 감히 어디라고 난동을 피우는 것이냐? 진정하지 못하겠느냐?”
그때 공손중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도사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는 바로 현검 진인이었다.
담호의 시선이 현검 진인을 향했다. 그러자 현검 진인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발산되었다. 화산제일검답게 그의 기세는 검처럼 날카로웠다.
“크흑!”
“흠!”
방 안에 있던 이들이 현검 진인의 기세에 짓눌려 신음성을 토해 냈다. 졸지에 담호와 현검 진인 사이에 끼게 된 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담호가 현검 진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별채에서 적들의 습격을 받았어.”
“우리도 방금 그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뭐가 말이냐?”
“무림맹에서 파견한 수많은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적들이 이곳을 습격했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건…….”
담호의 말에 현검 진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수천 명의 무인들이 삭주 지부 내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담호와 현소 진인이 수십 명의 적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담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둘 중 하나야. 내부에 방조자가 있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무림맹 내부에 섞여 들어왔거나.”
“…….”
담호의 말에 현검 진인을 비롯해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담호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이곳에 없다.
배신자가 있거나, 애초부터 저들이 우리 사이에 침투해 있거나.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올라왔다.
담호가 공손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느 쪽이지?”
“무슨?”
“당신이 방조했나?”
“아, 아니오. 내가 그럴 리가…….”
공손중이 당황해 급히 손사래를 쳤다.
담호가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찾아내! 어디서 구멍이 뚫렸는지.”
“건방지구나. 감히 무림맹의 지부장을 겁박하다니.”
현검 진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호성을 터트렸다. 감히 자신을 무시하고 지부장을 겁박하는 담호의 모습이 분노를 부채질했다.
규율과 기강이 사라진 무림은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짐승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지금 담호가 행하고 있는 행동은 무림의 질서와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곧 현검 진인의 강호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검 진인의 살기가 담호를 덮쳤다. 순간 담호의 고개가 현검 진인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새까만 눈동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당신은 참견하지 마.”
“네가 감히 존장을 무시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무사하지 않으면?”
“내가 너의 버릇을 고쳐 주겠다. 겨우 쥐꼬리만 한 힘으로 세상 전부를 억누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녀석아.”
현검 진인의 화가 폭발하며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담호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순간 담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담호를 향해 밀려오던 기세가 거대한 벽에 막힌 듯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콰앙!
담호의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뇌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