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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09화 (20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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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화 3장. 모든 일에는 책임이 뒤따른다(3)

퍼엉!

현검 진인이 벽을 뚫고 튕겨 나왔다. 머리가 헝클어졌지만,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찌르르!

검을 잡은 손이 울리고 있었다.

무너진 담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온다.’

현검 진인이 검을 휘둘렀다.

화학!

순간 그의 앞에 붉디붉은 매화가 꽃을 피워 냈다. 검기로 만들어 낸 매화였다.

혈매화검(血梅花劍).

제자 명경을 위해 만들어 낸 그만의 검공이었다. 하지만 명경이 펼치는 것과 그가 펼치는 것의 위력은 천양지차였다.

콰앙!

파성추와 혈매화검이 격돌했다.

현검 진인이 피워 낸 혈매화가 만개하기도 전에 사그라들었고, 담호의 어깨에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담호는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현검 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검 진인도 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의 철검이 담호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쏘아졌다.

카카캉!

담호의 주먹과 철검이 격돌했다.

인간의 살이 아무리 질겨도 쇠붙이인 검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어린아이 손가락만 한 크기의 검에도 상처를 입는 것이 인간의 연약한 육신이었으니까.

하지만 담호는 사람들의 상식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은망수(銀網手)를 운용한 그의 주먹은 기의 그물이 감싸고 있었다. 기의 그물은 현검 진인의 철검에서 그의 주먹을 보호했다.

카카카캉!

주먹과 검이 격돌하면서 연신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혈매화가 지고 피기를 반복했고, 부서진 검기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흥! 제법이구나.”

격렬하게 검을 휘두르면서도 현검 진인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담호의 무력에 놀라고 있었다.

제자 명경을 위해 만든 혈매화검은 능히 강호의 수위를 차지할 절학이었다. 그런 절학을 담호는 아무렇지 않게 해소하고 있었다.

명경이 왜 담호에게 당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담호의 무위는 도저히 후기지수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현검 진인조차도 살이 떨릴 정도로 말이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했다.

담호는 절대고수였다. 적어도 그의 무력은 자신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웅!

담호를 적수로 인정하자 그의 기도가 바뀌었다. 아울러 그가 펼치는 검법도 달라졌다.

쉬잉!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쩌엉!

가벼운 일격인 듯했는데 맞받아친 담호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현검 진인의 검과 격돌한 주먹에 생채기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현검 진인은 검을 계란을 잡듯 가벼이 쥐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손과 손잡이 사이엔 약간의 공간이 있고, 검이 홀로 빙글빙글 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현검 진인의 손에서 자전(自轉)을 하고 있는 검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쉬익!

현검 진인이 다시 한 번 담호를 향해 검을 흩뿌렸다.

특별한 초식이나 절학을 펼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횡으로 긋는 평범한 초식. 그런데도 담호는 피할 수 없었다.

무릇 무공이 극에 달하면 평범한 초식에도 수많은 이치와 힘을 담을 수 있게 된다.

현검 진인의 경지가 그랬다.

초식의 구애도 받지 않고 형식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곧 절초가 되는 경지.

이른바 신검합일을 뛰어넘는 심상합일(心狀合一)의 경지였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진정한 심검(心劍)의 경지에 들게 된다. 현검 진인이 그토록 원하는 경지였다.

쐐애액!

현검 진인의 검이 무섭게 날아들었다.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절초가 되고, 마음먹은 대로 내력의 수발이 이뤄졌다.

마치 춤추는 무희처럼 현검 진인의 동작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동작에 담긴 검의(劍意)는 실로 살벌했다.

쩌어엉!

쇳소리와 함께 담호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렸다.

찰나의 격돌에 벌써 서너 군데의 상처를 입었다. 예리하게 갈라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섬뜩함이, 그 차가움이 담호의 정신을 일깨웠다.

화학!

폭마경이 그의 전신을 휘돌았다.

날카로운 궤도를 타고 오던 현검 진인의 검이 폭마경에 의해 살짝 뒤틀렸다.

담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콰아아!

오지암파경이 작렬하고 현검 진인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담호가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혈천각과 탄마각이 번갈아 펼쳐졌다.

쾅! 쾅! 쾅!

굉음이 연신 터져 나오고 현검 진인이 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뒤로 밀려났다.

담호의 가슴에서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명색이 사부 현소 진인의 사형이라는 현검 진인이었다.

사제가 그토록 심한 부상을 입었다면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제일 먼저 달려와야 했을 사람도 현검 진인이었다.

그런 자가 아집을 내세워 권위를 세우려 하고 있었다. 명문정파에서 온갖 혜택을 받고 성장했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존재라는 오만함과 아집. 그 선민사상이 담호의 가슴에 잠재해 있는 분노를 분출하게 만들었다.

‘부술 것이다.’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른 자의 저력이 무엇인지, 항상 밟히기만 했던 잡초의 근성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단공벽이 공기의 결에 충격을 주었다.

쩌어엉!

현검 진인의 공격이 상쇄됐다.

그의 검에 실금이 거미줄처럼 번져 갔다. 처음으로 현검 진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단양타의 일격이 다시 검에 작렬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구도 한계에 달해 있던 검이 마치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졸지에 무기를 잃었다. 하지만 현검 진인은 두려운 표정 하나 없이 비산하는 검편 사이를 쇄도했다.

화산파 최고의 경공이라는 암향부동(暗香浮動). 그윽한 향기가 은은히 떠돌듯이 현검 진인 역시 그렇게 담호에게 다가왔다.

현검 진인 정도 수준의 무인에겐 검이 없어도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손날이 검이 되었다.

타다다닥!

담호의 주먹과 현검 진인의 손날이 수십 번이나 부딪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현검 진인이 맨손으로 펼치는 검술은 완벽했다. 하지만 검을 대신하는 그의 손날은 그렇지 못했다.

“크윽!”

그의 손이 퉁퉁 부어올랐다.

현검 진인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담호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흉악한 눈동자가 유독 현검 진인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현검 진인이 고통을 참으며 다시금 손으로 검초를 펼쳤다.

담호가 등을 둥그렇게 말았다. 풍뎅이의 둥그런 몸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낸 방호기공인 금구자였다.

현검 진인의 공격이 사선으로 튕겨 나갔다. 그사이 현검 진인의 가슴이 활짝 열렸다. 그 틈을 담호가 충보로 파고들었다.

쾅!

파성추가 작렬했다.

현검 진인이 명경에게 혈매화검을 전수할 때 담호와 현소 진인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수법들이다.

충보와 파성추가 기본이 되어 지금의 독행류가 만들어졌다.

“커헉!”

현검 진인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다행히 급히 공력을 끌어 올려 가슴을 보호했기에 외상을 입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대신 내장이 진탕되며 기혈이 들끓었다.

현검 진인에겐 기혈을 가라앉힐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담호가 충보를 펼쳐 쇄도했기 때문이다.

절름발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똑바로 뛰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을 바위를 향해 뛰었다.

남들이 편히 보법을 익힐 때 담호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 순간이, 그렇게 목숨을 걸었던 매일이 담호의 지금을 만들어 냈다.

그의 주먹엔 사부의 눈물이, 담호의 피가 담겨 있었다.

쾅!

크헉!

그 주먹에 다시금 현검 진인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현검 진인의 머리는 온통 풀어지고 흩어져 귀신을 방불케 했다. 항상 단정하기만 하던 현검 진인이 언제 이런 낭패를 경험했을까?

현검 진인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위잉!

이명이 귀를 울리고, 머리가 하얗게 비어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현검 진인을 향해 담호가 다시 파성추를 펼쳤다.

콰아앙!

현검 진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것이…… 당신이 그토록 부정했던 사부와 나의 권이다.”

가슴속의 울분을 모조리 토해 냈다.

담호는 오직 파성추만 펼쳤다.

파성추를 통해 보여 주고 싶었다.

절름발이라는 육체적인 장애가 담호라는 인간의 한계가 아님을.

세상은 오직 완벽한 이들만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다.

모든 이가 현검 진인 같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 선택받지 못한 자도 이를 악물면 선택받은 자들과 동등한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담호의 주먹에 새겨진 상처는 투쟁의 증거이자, 그가 살아온 삶의 증거였다.

콰직!

“커헉!”

현검 진인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이미 그는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팟!

담호가 충보를 펼쳐 날아가는 현검 진인을 따라붙었다.

그의 솥뚜껑 같은 주먹에 강력한 내력이 응집됐다.

똑같은 파성추지만 그 위력은 이전의 파성추와 궤를 달리했다. 이 한 방이면 현검 진인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담호의 파성추가 현검 진인의 머리를 향해 쏘아지는 순간이었다.

“안 돼!”

“사숙! 안 돼요.”

일대에 있던 화산파의 제자들이 일제히 현검 진인의 앞을 막아섰다.

자신들이 하늘과 같이 우러러보던 현검 진인을 박살 낸 담호였다. 그런 담호의 일권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막아섰다. 자신들의 목숨으로 현검 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서.

그래도 담호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앙!

천지가 진동했다.

하늘 높이 먼지가 치솟아 오르고, 대지가 울음을 토해 냈다. 뒤이어 엄청난 풍압이 그들의 전신을 짓눌렀다.

엄청난 고통을 각오했지만, 그 이상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러자 그들 앞에 주먹을 뻗은 담호의 모습이 보였다.

권마(拳魔)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은 흉신악살 같은 모습이었다.

그 광기와 위압감이 그들의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더 이상 손을 쓸 것 같지 않았다.

“사, 사숙! 감사합니다.”

이대제자 원청이 용기를 내서 담호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신호가 되었다.

“사숙! 감사합니다.”

“손속에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담호에게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고개가 한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공손중을 향했다.

공손중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마교의 십리무생 소천산에 이어 화산파의 현검 진인마저 담호의 손에 박살 났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압도적인 행보였다.

담호는 마(魔)이고, 정(正)이고 가리지 않았다. 막는 모든 것을 부술 뿐이다.

오늘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저자는 단순한 마인이 아니야. 패왕(覇王), 그래! 그는 이 시대의 패왕이다.’

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

기존의 질서와 규율로 그를 얽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담호가 입을 열었다.

“찾아내!”

“예?”

“마교와 내통한 자를 찾아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공손중이 부동자세로 힘껏 소리쳤다.

담호가 뒤돌아섰다.

콰르르!

그 순간 화산파 제자들 뒤쪽에 있던 거대한 전각의 벽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화산파 제자들은 깨달았다.

담호의 마지막 일격은 그들이 아닌 뒤쪽의 전각에 작렬했단 사실을.

전신에 오한이 느껴졌다.

“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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