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211화 4장. 바람은 끊임없이 나무를 흔들어 댄다(2)
벽을 뚫고 관제묘로 난입한 자는 등에 공작의 깃을 닮은 검갑을 짊어지고 있었다.
천하에 수많은 무인이 있지만, 이렇게 극명한 특징을 가진 무인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공작귀검(孔雀鬼劍) 신무월이었다.
“잡았다.”
신무월이 금마사자를 보며 말했다. 그에 면구에 가려진 금마사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까지 따라오다니.”
“거지같은 새끼들! 네놈들을 따라잡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신무월, 네놈을 진즉 죽였어야 했는데.”
금마사자의 전신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신무월이 이죽거렸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개새끼야!”
“관제묘가 네놈의 묏자리가 될 것이다. 죽엿!”
금마사자의 명이 떨어지자 혈련귀들이 신무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챠르릉!
혈련귀들이 낫과 쇠사슬이 연결된 기형병기인 철련겸(铁链鎌)을 꺼내 들었다.
수십 개의 철련겸이 신무월을 향해 날아들었다.
“졸개들은 비켜!”
신무월이 양손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공작검갑에서 두 자루의 검이 뽑혔다. 신무월은 두 자루의 검을 혈련귀들을 향해 날렸다.
촤르륵!
두 자루의 검이 맹렬하게 회전을 하며 철련귀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물처럼 막을 형성해 날아오던 철련겸이 두 자루의 검에 부딪쳐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신무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자루의 검을 뽑아 들고 금마사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멈춰라!”
“감히!”
이번엔 일염라와 이염라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이 각자 절기를 펼쳐 신무월을 공격했다.
콰르르!
맹렬한 권기와 검기가 신무월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신무월의 검이 검기를 발산했다.
촤아악!
마치 비단폭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일염라와 이염라가 날린 기운이 두 동강 났다.
일염라와 이염라가 눈을 부릅떴다. 그런 그들의 가슴에 신무월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큭!”
“크흡!”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신무월이 그 사이를 내달렸다. 그 뒤를 혈련귀들이 따라붙었다.
수십 자루의 철련겸이 그의 등 뒤로 날아왔지만 무시했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금마사자 한 명뿐이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금마사자를 제압해야 했다.
‘놈을 잡아야만 전모를 밝힐 수 있다.’
서걱!
철련겸 몇 개가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이 갈라지면서 피가 튀었지만 신무월은 멈추지 않았다.
“건방진 놈!”
금마사자의 눈에서 섬뜩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손이 허공으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손에 수강(手罡)이 생성됐다.
금마사자가 수강을 날렸다.
부수지 못할 것이 없고, 파괴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강기가 날아왔다. 신무월은 맹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챠앗! 선풍혈마참(旋風血魔斬)!”
그의 기합과 함께 나머지 두 자루의 검이 뽑혀져 나왔다.
신무월이 손을 뻗자 세 자루의 검이 손바닥을 중심으로 맹렬히 회전했다. 검에서 흘러나온 기류가 와선을 그리며 뻗쳐 나갔다.
콰콰쾅!
강기와 와선형의 기류가 격돌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큭!”
“흡!”
신무월과 금마사자가 동시에 답답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들의 몸이 충격으로 들썩였다.
그사이 충격에서 회복한 일염라와 이염라가 혈련귀와 합세했다. 그들의 파상 공세에 신무월이 위기에 처했다.
‘제기랄!’
신무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위기에서 벗어난 금마사자가 관제묘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금마사자를 놓친다면 또 언제 잡을 수 있을지 요원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어쩔 수 없다면 팔 하나는 내줄 생각으로 무공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어리석은 생각하지 말거라.”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관제묘 안에 울려 퍼졌다.
쾅!
“크헉!”
밖으로 나갔던 금마사자가 갑자기 튕겨져 들어왔다.
바닥을 나뒹구는 금마사자의 면구엔 실금이 거미줄처럼 나 있었다.
뒤이어 커다란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신무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형!”
보통 사람들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내는 바로 검율천이었다. 신무월이 유일하게 대형이라 부르며 존경하는 남자였다.
검율천이 신무월을 바라봤다.
“조금 늦었다. 괜찮으냐?”
“하여간 빨리빨리 좀 움직이십쇼. 동생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엄살은.”
검율천이 피식 웃었다.
그사이 금마사자가 몸을 일으켰다.
“이 녀석!”
그의 몸에서 가공할 살기가 발산됐다. 하지만 검율천은 그의 살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검율천이 금마사자를 향해 육중한 걸음을 옮겼다.
“금마사자, 드디어 만났군.”
“네놈이 저 녀석을 사주해 우리를 추격한 것이냐?”
“맞아!”
“무슨 이유로 우리를 추격한 것이냐?”
“그걸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검율천이 오히려 반문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검율천의 모습에 금마사자가 이를 악물었다.
검율천이 다가올수록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기세를 느끼기는 권마 이후 처음이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계속 나오는 건가?’
담호나 검율천 모두 금마사자의 계산 밖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의 출현이 금마사자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동안 잘도 분탕질을 쳐 왔군.”
“너?”
탓!
순간 검율천이 대지를 박차면서 금마사자를 향해 쇄도했다. 마치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는 듯한 엄청난 위압감과 기파가 금마사자를 덮쳐 왔다.
“감히!”
금마사자가 노성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에 강기가 어리나 싶더니 검율천을 향해 날아왔다.
검율천이 오른손을 쫙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위에 기의 환(丸)이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쭈욱 늘어났다.
그것은 분명 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검율천은 기로 만든 도(刀)를 휘두르며 권강에 몸을 날렸다.
뇌격술(雷擊術) 제오식 일벌백계(一罰百戒).
콰콰쾅!
백색 뇌전이 작렬했다.
“크아악!”
금마사자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그런 그의 전신이 새까맣게 타서 새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금마사자 님!”
일염라와 이염라 등이 금마사자를 돕기 위해 달려오려 했다.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그들의 앞을 신무월이 가로막았다.
“이익!”
“비켜랏!”
그들이 신무월을 공격했다. 신무월은 다섯 자루의 검을 번갈아 사용하며 그들을 상대했다.
그사이 검율천이 쓰러진 금마사자를 향해 다가갔다.
“끄으! 네놈?”
금마사자가 겨우 고개를 들어 검율천을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수십 번은 더 죽였을 만큼 흉포한 눈빛이었다.
검율천이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천사교, 금마사자 염능천.”
순간 금마사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염능천은 그의 본명이었다. 그의 본명을 아는 자는 거의 없었는데 뜻밖에 검율천이 언급한 것이다.
그가 느끼는 충격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매우 오래전부터 당신들을 추적해 왔거든. 궁금한 게 매우 많아. 그러니까 당신이 이야기해 주어야겠어.”
검율천이 웃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그의 눈에서는 귀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금마사자는 검율천의 눈빛에 압도당했다. 하지만 여기서 기가 죽을 수 없기에 크게 소리쳤다.
“어림없다, 애송이. 누구도 내 입을 열게 할 수 없다.”
“뭐,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더군.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털어놨어. 아마 당신도 다르지 않을 거야.”
“이익!”
“믿어! 난 이런 방면의 전문가니까.”
검율천의 웃음이 짙어졌다.
***
담호가 삭주로 돌아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돌아온 그를 제일 먼저 맞이한 이는 뜻밖에도 지부장인 공손중이었다.
“담…… 대협!”
그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말해!”
“담 대협의 말대로 마교와 연관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를 잡았는데…….”
“그런데?”
“그만 놈들이 모조리 자결했습니다. 지독한 놈들입니다.”
공손중이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결했다고?”
“그렇습니다. 저희가 놈들을 색출했을 때는 모조리 자결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공손중이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는 담호가 화를 낼까 걱정했지만, 뜻밖에도 담호는 말없이 뒤돌아섰다. 그렇다고 그의 심기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예상이 맞아떨어지니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늪에 빠진 기분, 보이지 않는 암류가 자신을 휘돌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눈빛이 더욱 냉혹하게 변했다.
사부와 함께 조용한 곳을 찾아 은거하고 싶었건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있었다.
자신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부는 아니었다.
현소 진인은 그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소 진인을 건드렸다는 것은 곧 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별채로 향하던 담호가 방향을 바꿨다.
그는 지부를 나와 삭주 거리를 걸었다.
“헉!”
“권마?”
사람들이 담호를 알아보고 분분히 길을 비켰다.
삭주에 있는 사람치고 담호를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특유의 엇박자 걸음걸이, 검은 일색의 복장은 담호만의 특징이었다. 그의 얼굴을 모르는 자들도 그런 특징만큼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담호는 모르지만 강호에서는 그를 두고 한 가지 격언이 떠돌고 있었다.
―절름발이 무인을 만나게 되면 두 번, 세 번 확인해라. 그가 만일 권마라면 절대로 건들지 마라. 건들면 그날이 당신의 제삿날이 될 테니까.
그 때문에 다른 절름발이들까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웃지 못할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채우던 인파가 둘로 갈라졌고, 담호가 그 사이를 걸었다.
사람들은 애써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호기심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살그머니 고개를 들어 담호가 어디로 가는지 바라봤다.
담호가 향한 곳은 뜻밖에도 기루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였다. 그에 몇몇 성급한 이들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도 남자였구나.’
‘이 시국에 기루를 찾다니.’
그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호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어느 한 기루 앞에서 멈춰 섰다.
천향루(天香樓)라는 이름의 기루였다.
삭주에 있는 많은 기루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루였고, 규모도 가장 큰 곳이었다.
담호가 천향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총관이 급히 달려 나왔다.
“어, 어서 오십시오.”
총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역시 담호를 알아본 것이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루주에게 안내해”
“예? 무슨?”
“이곳이 하오문의 지부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안내해.”
“아, 알겠습니다.”
총관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