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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14화 (2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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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5장. 난세(亂世)를 헤쳐 가는 남자들(2)

“대형! 괜찮아요?”

명천이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다.”

“휴! 어쩌자고 그렇게 무모하게 모습을 드러낸 거예요? 난 대형이 그와 충돌하는 줄 알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도 원하던 최상의 결과는 얻었으니 다행이지.”

“천사교의 존재를 알린 것 말인가요?”

“그렇다.”

검율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담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의 존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교도, 강호도, 천사교도, 그리고 나도……. 그야말로 완벽한 예외의 존재지.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강호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차라리 우리 쪽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게 가능하다고 보느냐?”

“…….”

“그는 통제 불가의 맹수다. 그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의외성을 가지고 있지.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이고, 힘이다. 그리고 그런 예측 불가의 성향이 우리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때 보면 책사는 제가 아닌 대형이 해야 할 것 같다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우리의 책사는 너지. 네가 없으면 우리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단다.”

“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이젠 나도 어린애가 아니라니까요.”

“누가 우리 막내를 어린애 취급할까? 하하!”

검율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담호를 상대하느라 쌓여 있던 긴장감이 웃음 한 방으로 해소가 되었다. 그런 검율천을 보며 명천이 씨익 웃었다.

검율천이 커다란 손을 뻗어 명천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지 명천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두 사람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먼저 입을 연 이는 명천이었다.

“아까 그 쪽지 진짜인가요?”

“뭐?”

“권마에게 전한 쪽지요.”

“진짜야. 금마사자에게서 얻어 냈지.”

“기어이 그를 붙잡았군요.”

“붙잡았지. 허나 예상보다 독해서 궁지에 몰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문제지.”

검율천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마사자를 사로잡았다면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마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다시 천사교를 추적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명천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차라리 잘됐어요.”

“뭐가?”

“금마사자가 죽은 것을 안다면 그들 역시 경각심을 가지게 될 거예요.”

“그럼 더 은밀히 숨을 것 아니냐?”

“그럴 수도 있겠죠. 허나 이제까지 파악한 그들의 성향상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들은 어떤 방식이든 현 강호의 사태에 개입하려 할 거예요. 금마사자와 같은 자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

“이젠 방법을 바꿔야 해요. 이제까지는 우리가 저들을 쫓아다녔지만, 이제는 저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만들어야 해요.”

“어떻게?”

검율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명천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검율천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검율천.’

삭주 지부로 돌아오는 담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검율천이 그의 가슴에 남겼던 강렬한 잔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검율천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평소라면 검율천의 말 따위는 절대 듣지 않았을 담호였다. 하지만 검율천의 말처럼 사부가 습격을 당하고, 용검방에서 연결 고리가 끊긴 데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기에 검율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담호는 포악하기는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만일 그가 멍청했다면 지금의 독행류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현소 진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의 독행류를 만들어 낸 것은 오롯이 담호의 힘이었다.

담호는 천천히 기억을 반추했다.

천사교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막상 인지하고 나니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화노.’

종리연에게 구명지은을 입은 후 보호자를 자처했던 노인. 종리연도 그를 구하기만 했을 뿐 진실한 신분 내력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화노도 죽기 직전 천사를 언급했었다. 그동안은 잊고 있었는데, 검율천의 말을 들으면서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다.

화노가 진실을 말했다면 검율천의 말도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천사교.’

담호의 눈빛이 더욱 깊이 침잠됐다.

마교뿐만 아니라 천사교도 상대해야 했다.

이로써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마교를 상대하면서도 항상 천사교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 조금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검율천은 거기까지 계산했는지 모른다. 담호라는 맹수를 억지로 조련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담호가 스스로 생각해서 자제를 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한 번은 네가 깐 판에서 춤을 춰 주지. 검율천.’

검율천이 담호를 의식했듯이 담호도 검율천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담호의 피를 들끓게 만든 유일한 존재였다.

지금 당장은 같은 목표를 위해서 손을 잡았지만, 동맹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담호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삭주 지부에 들어왔을 때였다.

저 멀리 초연운이 누군가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귀여워 보이는 얼굴의 여자 무인이었다.

연녹색 경장에 곱게 틀어 올린 머리, 그리고 아직 애티가 가시지 않은 귀여운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여인은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고, 초연운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지막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초연운은 여인에게 포권을 취한 후 뒤돌아서다가 담호를 발견했다.

“아!”

초연운이 반색을 하며 담호에게 달려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담호에게 달려가는 모습에 이제까지 초연운과 이야기를 나눴던 여인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거야? 시내에 나갔다고 들었는데.”

“일이 있었어.”

“무슨 일?”

“사부는?”

“지금 종리 소저가 돌보고 있어. 경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비매당주(秘埋黨主)와 의논하고 있었어.”

“비매당?”

“방금 전 만난 단화란 소저가 비매당주야. 무림맹의 요인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단체지. 무림맹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비매당을 파견하기로 했어.”

“비매당은 믿을 만한가?”

담호의 말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모를 초연운이 아니었다.

“비매당은 무림맹 직속의 조직.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단 소저는 믿어도 좋아.”

“그녀를 믿나?”

“지금은 비매당주를 맡고 있지만, 그녀도 한때 백전문에서 수학했었어. 그녀의 사문인 유검문(柔劍門)에서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보내 줬었거든. 그래서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지. 그녀는 믿을 수 있어. 내 목숨을 걸지.”

초연운의 말에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초연운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음을 옮겼다.

담호와 초연운.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초연운은 담호를 거리낌 없이 대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친구라 부를 만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권력을 가진 자들 중에는 초연운에게 접근해 오는 자들도 꽤 있었다.

담호를 직접 대하는 것은 어려우니 초연운을 통해 우회 접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초연운은 그렇게 접근하는 자들을 모조리 차단했다. 그 때문에 욕도 꽤나 얻어먹고 있었지만, 담호에겐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별채로 들어와서 제일 먼저 본 광경은 앞마당에서 탕약을 끓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종리연이었다.

“종리 소저가 고생을 많이 했어. 한시도 현소 진인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거든.”

꼬박 이틀 밤을 지새웠다. 그러니 몸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담호가 종리연을 안아들었다. 그런데도 종리연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틀 동안 너무나 많은 심력을 소모했기에 아예 혼절하다시피 한 것이다.

“으음!”

담호의 품에 안긴 채 종리연이 미소를 지었다. 담호는 그런 종리연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종리연을 현소 진인이 있는 방 한쪽에 고이 누이고 이불을 덮어 줬다. 종리연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담호는 시선을 돌려 현소 진인을 바라봤다. 가수면 상태에 빠진 현소 진인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사부.’

현소 진인은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담호는 말없이 현소 진인을 바라보았다. 세상 누구보다 냉혹하다는 소리를 듣는 담호였지만, 지금 그의 눈빛엔 언뜻언뜻 따뜻한 정감이 보이고 있었다.

오직 현소 진인에게만 보이는 눈빛이었다.

담호가 현소 진인의 손을 꽉 잡았다.

현소 진인의 거친 손마디가 담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자신이 없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부도 그에 못지않은 고생을 했었다.

가수면 상태에 빠져 전체적인 신진대사가 느려졌기에 체온 또한 평소보다 낮았다. 하지만 담호에겐 그런 체온마저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초연운은 담호와 현소 진인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문득 사부가 떠올랐다.

‘아! 사부 보고 싶다.’

매일같이 타박하고, 투닥거리면서 싸우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사부 장일산은 그를 끔찍이 아꼈다. 장일산이 없었으면 현재의 초연운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부는 언제 합류하려나?’

사제들을 통해 조만간 장일산이 합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고수들이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림맹의 전력 중 상당수가 이곳 삭주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만큼 삭주는 단연 태풍의 핵이 되어 있었다.

초연운은 담호와 현소 진인을 남겨 둔 채 밖으로 나왔다.

“으아아!”

초연운은 크게 숨을 들이키며 기지개를 켰다.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비단 종리연만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기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는 단순한 후기지수가 아니었다. 백전문의 소문주이기도 하기 때문에 불려 다니는 곳도 많았고, 신경 써야 할 곳도 적잖았다.

“어쩔 수 없지.”

초연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삭주 지부 전체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이 파견된 병력이 상주할 건물이 지어지고, 외곽에는 각종 함정과 기관진식이 설치되었다. 경계를 서는 무인들의 수 또한 늘어났고, 출입 절차 또한 까다로워졌다.

삭주 지부는 이제 요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시를 곧추세운 고슴도치 같은 모습이 든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디 술 얻을 곳 없나?”

초연운이 입을 쩝쩝거렸다.

본의 아니게 일에 매진하다 보니 한동안 술을 마시지 못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점이 못내 아쉬운 초연운이었다.

그렇게 초연운이 걸음을 옮길 때였다.

“초 소협.”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해 소저.”

그를 바라보는 여인은 바로 해소월이었다.

해소월이 초연운에게 사뿐사뿐 다가왔다. 초연운은 그녀의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무겁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의 표정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시간이 되시면 저와 어디 좀 함께 가요.”

“어디를 말씀입니까?”

“초 소협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은 곳이에요. 물론 저에게도요.”

“흠!”

해소월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초연운이 잠시 인상을 썼다. 하지만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보죠.”

“고마워요.”

“별말씀을.”

초연운은 해소월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최근에 지어진 조그만 전각 앞이었다.

“여긴?”

“들어가요.”

해소월이 먼저 전각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초연운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커다란 탁자 주위에 앉아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당신들은?”

초연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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