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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17화 (21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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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화 6장. 걷는 길이 다르기에 도착하는 곳도 다르다(2)

“썩을! 구린내가 아직까지 진동하네. 카악! 퉤!”

욕설과 함께 초연운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초연운이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의 곁으로 해소월이 따라붙었다.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세요, 초 소협.”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표정 역시 그리 밝지는 않았다.

“해 소저야말로 괜찮습니까?”

“저는 괜찮아요.”

“젠장맞을!”

“초 소협!”

“왜 항상 저들만 만나면 이리 기분이 더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해해요.”

“벌써부터 공을 탐하다니.”

초연운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각 안에서 이뤄진 모임의 분위기는 끔찍했다. 다들 체면 때문에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간단했다.

마교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나겠다는 것.

그들은 마교와의 전쟁을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세는 영웅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고, 이런 커다란 전쟁에서 공을 세운다면 단숨에 강호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구무룡의 굴레를 벗고 단숨에 강호 최고수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담호처럼 말이다.

그들과 비슷한 나이였지만, 강호의 그 누구도 담호를 구무룡과 동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담호가 보여 준 행보는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후기지수를 뛰어넘어 강호 최고의 고수 중 하나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구무룡이 원하는 것은 담호를 능가하는 명성이었다. 다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욕망이 가득했다.

초연운과 평소 대립각을 세우는 남학은 물론이고, 은연중 구무룡 중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무당의 진무영조차도 말이다.

그들은 초연운에게서 담호에 대한 정보를 얻길 원했다. 다른 사람에겐 별 필요 없는 사소한 정보도 그들에겐 소중했다.

그 집요한 눈빛과 에둘러 용건을 말하는 두루뭉술한 태도에 초연운은 학을 떼고 말았다.

“그렇게 명성이 필요하면 앞에 나서서 싸우면 될 것 아닌가? 담호에 대한 정보가 왜 필요해?”

“그들도 두려운 걸 거예요.”

“뭐가 말입니까? 담호가?”

“그래요. 그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너무 치졸하잖아요.”

“다행이에요.”

“뭐가 말입니까?”

“그에게 초 소협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 사람도 초 소협이 있어 외롭지 않을 거예요.”

“에이! 무슨?”

초연운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에 해소월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해소월은 초연운이 부러웠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 자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아. 나 역시 사문의 명예를 위해 이 전쟁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하니까.’

평소 해소월의 자부심이 되었던 해남파가 이제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해소월이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 냈다.

별채가 저 앞에 보였다. 초연운을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별채에서 진한 탕약 냄새가 흘러나왔다. 종리연이 또다시 탕약을 끓이고 있었다.

“초 사형.”

그때 묘령의 여인이 초연운에게 다가왔다. 비매당주 단화란이었다.

그래도 한때 백전문에서 함께 무공을 익혔던 사이라고 사형이라고 부르는 단화란이었다.

“수고하네.”

“왜 이제 왔어요?”

“무슨 일 있어?”

단화란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초연운이 급히 물었다.

“담 대협과 현검 진인이 밖으로 나갔어요.”

“둘이서?”

“예!”

“언제?”

“두 시진 전에 나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네요.”

“제길!”

초연운이 바로 반응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만일 두 사람이 다시 한 번 싸운다면 이전처럼 그렇게 좋게 해결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어디야?”

“동쪽에 있는 공터 쪽으로 갔어요.”

“먼저 가 볼게.”

초연운이 급히 단화란이 알려 준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단화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초연운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덜렁이. 부디 조심해야 할 텐데.”

단화란의 목소리에는 초연운을 향한 걱정이 물씬 담겨 있었다.

해소월이 단화란을 말없이 바라봤다.

‘단 소저는 초 소협을 좋아하는구나.’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단화란의 눈빛이 그랬다.

초연운은 부디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경공을 펼쳤다. 자칫 잘못해 담호가 현검 진인을 죽인다면 그때는 수습이 불가능했다.

“제발…….”

초연운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동쪽 공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걸음이 멈춰 섰다.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와 서늘한 기분이 뒷목을 간질였다.

턱!

그때 그의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담호!”

초연운이 반색을 했다. 손의 주인이 담호였기 때문이다.

순간 초연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을 붙잡은 담호의 가슴 앞자락이 길게 베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잘려 나간 옷자락 사이로 한 줄기 혈흔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단순히 붉은 선이라고 생각할 만큼 미세한 혈흔이었다.

혈흔을 보는 순간 초연운은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한 검상.’

그가 뭐라 입을 열려는 찰라 담호가 손으로 공터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현검 진인이 우뚝 서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검을 지지대 삼아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석상을 연상케 했다.

슈우우!

갑자기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산발한 현검 진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무슨?”

현검 진인을 중심으로 일대에 휘몰아치던 바람이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찾아온 잠시의 정적.

쏴아아!

갑자기 일대의 공기가 현검 진인에게 빨려 들어가면서 담호와 초연운의 옷자락이 바람에 거칠게 휘날렸다.

“아!”

초연운은 그제야 깨달았다.

현검 진인의 무공이 진일보했다는 것을. 방금 전 이변은 현검 진인의 깨달음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었다.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었기에?’

현검 진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담호는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현검 진인을 바라봤다.

심중인간지도(心中人間之道).

심검즉천검(心劍則天劍).

인간의 도(道)는 마음 한가운데 있고, 마음의 검이 곧 하늘의 검이다.

담호와 싸우면서 현검 진인이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자신도 모르게 심득을 발설한 것이다.

원래 심득이라는 것은 타인이 알아도 그 뜻까지 파악하지 못하면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담호는 달랐다.

현검 진인의 심득은 담호가 익혔던 중천심결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화산의 옛 무공인 중천심결. 이제는 암혼심공에 흡수되었지만, 그 구절만큼은 담호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현검 진인의 심득은 담호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순간 현검 진인이 눈을 떴다.

강렬한 신광이 그의 눈에서 폭사되어 나왔다. 사람의 가슴을 저밀 것 같은 강렬한 안광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평소 현검 진인의 눈빛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빛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더 유순해 보일 지경이었다.

초연운은 현검 진인이 어떤 경지에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현검 진인은 벽을 넘어섰구나.’

그 벽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린아이도 넘을 수 있는 낮은 벽일 수도 있고, 태산만큼이나 높은 것일 수도 있었다.

초연운은 현검 진인이 어떤 성취를 얻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의 겉모습만으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후우!”

현검 진인이 크게 숨을 들이쉬며 모든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가 담호를 향해 걸어왔다.

“고맙다.”

“…….”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마.”

현검 진인이 깨달음을 얻던 그 순간은 완벽하게 무방비상태였다. 멋모르고 누군가 건드린다면 그 즉시 기혈이 꼬이고 심맥이 터져 즉사할 수 있었다.

담호는 그런 현검 진인을 위해 호법을 섰다.

‘졌다. 완벽하게.’

현검 진인이 고졸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하하!”

현검 진인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시기도 없고, 질투도 없었다. 미련도, 집착도 없는 어린아이 같은 맑은 웃음소리가 하늘 멀리 퍼져 나갔다.

‘나쁘지 않군.’

담호가 뒤돌아섰다.

***

별채에 돌아온 담호를 종리연이 제일 먼저 맞아 줬다.

“괜찮아요?”

“괜찮아.”

“정말요?”

종리연이 담호의 몸을 살피다가 가슴의 검상을 발견했다.

“또 상처 입었군요.”

“음!”

“잠깐만 앉아 봐요.”

종리연은 담호를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놀랐다.

“검에 입은 상처 맞나요? 이렇게 예리할 수가…….”

“…….”

상처를 살필수록 종리연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으면 담호의 심맥은 물론이고, 심장까지 두 동강 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리연이 급히 지혈제를 뿌리고 침술을 펼쳤다. 그녀가 조치를 모두 취할 때까지 담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맙군!”

“고마울 것 없어요.”

종리연이 담호를 올려다봤다.

담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치 고통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담호의 일생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태어난 마을이 도적에 의해 참화를 당한 그 순간부터 그의 일생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를 더 살기 위해 싸우고, 그런 날들이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그것도 십 수 년 동안이나 말이다.

누구나 그와 같은 경험을 한다면 담호처럼 성격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에 거슬리는 모든 것을 적으로 생각하는.

그제야 종리연은 담호라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듯싶었다.

‘이 사람은 결코 악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니야. 그저 살기 위해 필요 없는 모든 감정을 모두 봉인해 두었을 뿐이야.’

담호의 몸에서 풍기는 혈향은 그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증거. 아마 앞으로도 그의 몸에서 혈향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강호는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마교와 무림맹의 전쟁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세상에서 담호 혼자 편히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더 많은 고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담호의 성격이라면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

담호는 더 많은 상처를 입고 돌아올 것이다.

갑자기 종리연이 담호의 등을 손바닥으로 갈겼다.

짝!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담호가 바라보자 종리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반드시 살아만 있으라구요. 팔이 끊어져도, 가슴에 구멍이 뚫려도, 살아만 있어요. 숨만 끊어지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려 낼 테니까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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