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219화 (219/500)

 219

219화 7장. 떠나도, 내 의지로 떠난다(1)

“대형!”

송경이 문을 박차고 대연무장으로 뛰어들었다. 대연무장의 분위기는 멸사대가 있는 곳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대연무장 한쪽에는 임시 주방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앞의 좌판에는 맛깔난 음식들이 종류별로 커다란 그릇에 담겨 있었다.

그 앞에는 음식을 먹기 좋게 수많은 탁자와 의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앉거나 서 있었다.

하지만 송경의 눈에는 그런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좌판 앞에 널브러져 있는 피투성이 남자의 모습뿐이었다.

고개가 모로 돌아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송경은 본능적으로 남자가 장일완임을 알아차렸다.

“대형!”

송경이 급히 장일완을 안아 들었다.

장일완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전신에 묻었지만, 송경은 그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대형, 왜 그러세요? 정신 차려요.”

부족한 음식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던 장일완이었다. 그런 장일완이 왜 이곳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단 말인가?

송경이 부릅뜬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이들이 멀뚱한 눈으로 송경과 장일완 등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타인을 바라보는 듯한 무감각한 그들의 눈빛에 송경이 분노해 소리쳤다.

“사람이 다쳤는데 왜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겁니까? 아니, 대형이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의 노성이 대연무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에 몇몇 무인들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무인들은 오히려 노기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때 뒤따라온 우양춘이 누군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자다. 저자가 대형을 이렇게 만들었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칠 척의 거구, 마치 강철을 깎아 놓은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육체와 어울리는 강렬하면서도 오만해 보이는 눈빛.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이는 바로 천뢰무객 남학이었다.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는 구무룡의 일인인 남학이었다. 오만하게 팔짱을 낀 채 송경과 장일완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송경과 같은 낭인은 평소라면 감히 마주 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남학이었다. 구대문파 중 하나인 공동파가 자랑하는 초기재와 낭인에 불과한 송경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격차가 존재했다.

송경이 겁도 없이 남학에게 다가갔다.

“대답하시오. 대체 왜 대형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그는 내 경고를 무시했다.”

“경고?”

“이곳은 무림맹의 정예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공간. 그대와 같은 낭인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그는 내 경고를 무시하고 이곳에 들어와 멋대로 행패를 부렸다.”

장일완은 이곳에 남는 음식이 많으니 조금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남학과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 이 지경이 되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송경의 눈동자가 분노로 물들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마교와 싸우기 위해 각 문파에서 차출된 최정예 무인들이다. 이들의 사기나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면 당연히 전력도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게 말이 됩니까? 우리도 마교와 싸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강호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나섰습니다.”

“흥! 그래 봤자 시류에 편승한 박쥐 심보가 아니겠는가?”

“무슨 말입니까?”

“무림맹이 마교를 압도할 것 같으니 은근슬쩍 합류해 공을 나누려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 말…… 진심입니까?”

송경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설마 남학과 같은 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랬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이왕 내친김이라고 생각했는지 남학이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원래 세상이 불공평한 곳이니까. 이곳에 차려진 음식들은 모두 구파와 오대세가 같은 거대 문파에서 지원하는 비용으로 차려진 것들이야. 당연히 그들을 위해 사용되어야지.”

“어떻게 그런 말을…….”

송경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남학의 말은 강호 정의를 위해 기꺼이 사선으로 뛰어든 낭인들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은 겨우 죽 한 그릇을 먹으며 버티고 있는데, 이곳에 있는 자들은 호화 식단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있는 자들만 별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송경은 이 모든 사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에겐 허여멀건 죽만 배급하는 겁니까? 겨우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싸우라고?”

“억울하면 공을 세우라고. 그러면 혹시 아나? 대접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남학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누가 봐도 명백한 조소였다. 그에 송경이 분노를 터트렸다.

“야! 이 개새끼야. 너만 혼자 강호를 살아가냐? 너희들만 강호인이야? 너희들만 선택받은 거야?”

그의 노성이 대연무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몇몇 무인들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도 남학이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학의 위세가 너무 대단해서 함부로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송경의 욕설에 남학의 얼굴이 노기로 물들어 갔다.

“감히!”

“감히 뭐? 엉? 대형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우리 같은 낭인들 따위야 눈에 차지도 않겠지.”

순간 남학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명문 공동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라 온 남학이었다. 발군의 감각과 오성으로 무공의 성취가 남달랐고, 그를 완성시키기 위해 공동파에서는 장로 여섯 명의 공력을 희생시켜 벌모세수를 시켰다.

그 덕에 단순히 공력 하나만 따지면 거의 천하제일에 근접한 남학이었다. 남다른 공력과 무공의 성취를 보였기에 그 누구도 남학의 비위를 감히 거스르지 못했다.

심지어는 공동파의 장로들조차도 남학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때문에 남학은 누구도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했다.

“이 좆같은 새끼야! 어미 배 속을 찢고 나온 살모사 같은 놈아. 네가 얼마나 잘사는지 두고…… 컥!”

쾅!

욕설을 내뱉던 송경이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남학이 일장을 날린 것이다.

바닥을 나뒹구는 송경의 가슴엔 시커먼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크윽! 이 개 같은…… 커헉!”

억지로 일어나려던 송경이 시커멓게 죽은피를 토해 냈다.

내장이 진탕되고 기혈이 들끓었다. 마치 전신이 해체되는 것처럼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학이 그런 송경의 가슴을 발로 지그시 눌렀다.

“어디 한 번 더 떠들어 보거라.”

“하라면 못 할 줄 아느냐? 제 어미도 몰라보고 접 붙어먹을 새끼야. 너 같은…… 크아악!”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송경의 가슴이 조금씩 함몰됐다. 남학의 발에 눌린 가슴뼈가 부서지려는 것이다.

남학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송경의 가슴은 송두리째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만두시오.”

보다 못한 우양춘이 만류했지만 남학이 가볍게 휘두른 일장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무공을 익혔으면 다 같은 무인인 줄 아나? 너희들은 그저 시간을 벌어 주는 고기 방패에 불과해. 그런 주제에 우리와 똑같은 대접을 받으려는 건가? 주제를 자각하도록.”

“남학!”

그 순간 남학의 등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뭐?”

콰직!

남학이 무심코 뒤돌아보는 순간 강렬한 일격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크윽!”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남학의 볼이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뭐야?”

“이게 뭐하는 짓이냐? 남학.”

남학에게 일격을 날린 남자는 바로 초연운이었다.

그가 노기 어린 시선으로 남학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야말로 무슨 짓이냐? 초연운.”

남학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는 말이냐? 이게 무슨 짓이야? 마교와의 싸움에 힘을 보태겠다고 달려온 사람들을 무슨 자격으로 네가 이렇게 핍박하는 것이냐?”

초연운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어느새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초연운이 주위를 둘러보며 삿대질했다.

“뭐하는 거야? 왜 지켜만 보는 거야? 한 놈이라도 나서서 저 새끼를 말리지 않고. 너희들도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비겁한 새끼들!”

초연운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방관하던 무인들을 싸잡아 매도했다. 남학의 위세가 두려워 침묵하던 이들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지만, 불행히도 그런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뭐야? 지금 낭인 따위를 옹호하는 건가?”

“취운룡이 미쳤구나.”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지금 대연무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딱 그 모습이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무인들 대부분은 강호의 거대 문파 출신들이었다. 그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러서 별다른 소속 문파도 없는 낭인들을 결코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보지 않았다.

초연운은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깊이 좌절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송경 등을 부축해 일으켰다.

남학이 그런 초연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초연운. 그 손 놔라.”

“웃기지 마.”

“너 스스로 백전문의 제자임을 부인하겠다는 거냐?”

“그것과 이게 무슨 연관이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거냐? 남학.”

“백전문의 명예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세워 준 것이다. 지금 네가 부축하고 있는 낭인들이 아닌.”

“개소리! 백전문의 명예는 마교와 맞서 싸워 스스로 쟁취해 낸 것.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같은 거대 문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너?”

“남학! 귓구멍 열고 똑똑히 들어라. 구대문파나 오대세가만이 강호의 전부는 아니다. 강호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강호를 구했던 것은 이들처럼 이름 없는 무인들이었다. 내 사부도 낭인으로 시작해 오늘날의 백전문을 만들어 냈다. 낭인들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라. 그들이야말로 강호의 근간을 이루는 잡초 같은 존재들이니까.”

초연운의 사자후가 대연무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평소 사람 좋은 웃음만 흘리던 초연운이었다.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살아 취운룡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보여 주는 기세는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이 초연운의 기세에 압도당했다.

남학은 그런 초연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연운!”

“남학!”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구나. 내 너의 오만방자함을 응징할 것이다.”

남학의 전신에서 살벌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에 주위에 있던 무인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초연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남학의 기세에 숨어 있는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 공동파의 남학, 백전문의 초연운에게 도전하겠다. 초연운, 너도 남자라면 나의 도전을 피하지 말거라.”

“좋다! 남학.”

초연운은 송경을 내려놓고 남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초연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건방진!’

남학의 턱 근육이 씰룩거렸다.

취운룡(取雲龍) 초연운.

구무룡도 아닌 주제에 용(龍)이 들어간 별호를 받은 남자. 항상 술에 취해 사는 주제에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그 모습이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남학은 이번 기회에 초연운을 쓰러트려 위엄을 바로 세우리라 결심했다.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

남학이 공동파의 비전 심공을 운용했다. 그러자 막대한 공력이 그의 전신 혈도를 치돌았다.

후우웅!

공력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남학이었다. 그가 마음을 먹고 공력을 운용하자 일대의 공기가 공명을 했다. 하지만 초연운은 추호도 위축되지 않았다.

남학이 공동파의 제자라면 자신은 백전문의 제자였다. 역사는 공동파에 비할 수 없지만, 백전문 역시 강호 수많은 문파들의 지지를 받는 곳이었다. 그가 위축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멈춰서 서로를 노려봤다.

그들의 기세에 짓눌린 무인들은 감히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챠앗!”

먼저 움직인 이는 남학이었다.

복마대력수(伏魔大力手), 공동파의 비전 수공이 펼쳐졌다.

촤라락!

허공이 온통 남학의 수영(手影)으로 가득 찼다.

마치 비처럼 하늘을 가득 채우며 떨어져 내리는 남학의 손 그림자. 초연운의 눈에도 남학의 손 그림자가 가득 맺혔다.

초연운은 망설이지 않고 그 속으로 몸을 날렸다.

팔황신권이 펼쳐졌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격돌했다.

두 사람의 몸이 충격으로 들썩였다. 강맹한 부딪침은 내장을 울리고 기혈이 흔들리게 했다.

두 사람의 입가에 옅은 혈흔이 내비쳤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물러서지 않았다.

쩌어엉!

초연운과 남학이 연신 격돌했다.

두 사람의 격돌 소식은 곧 삭주 지부 전체로 퍼져 나갔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