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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20화 (2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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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화 7장. 떠나도, 내 의지로 떠난다(2)

“크, 큰일 났습니다.”

별채로 무인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담호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초연운과 항상 투닥거리는 백전문의 무인이었다.

“뭐지?”

“사, 사형이…… 공동파의 남 소협과 싸우고 있습니다.”

“초연운이?”

“예! 지금 두 사람의 싸움 때문에 삭주 전체가 난리 났습니다. 구무룡과 명망 높은 무인들이 지금 대연무장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담호의 무감각하던 눈동자에 이채가 일렁였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면 언제든 다른 무인과 싸울 수 있다. 그것이 무인의 숙명이었고, 무공을 익힌 이유였으니까.

그러니까 초연운이 다른 무인과 싸운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이유는 되지 못했다. 강호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였으니까.

문제는 초연운이 아무런 이유 없이 타인과 싸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분방하지만, 그렇다고 정도 이상의 선을 넘어가는 일도 없었다. 담호와 달리 타당한 이유가 없으면 싸우는 일이 거의 없는 초연운이었다.

그런 그가 적이 아닌 구무룡의 일원인 남학과 싸운다면 분명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담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백전문의 무인이 급히 따랐다.

대연무장으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많은 이들이 초연운과 남학이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앞으로 나가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때였다.

“헉! 궈, 권마다.”

누군가 담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길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만큼 담호라는 이름 두 자가 주는 위압감은 대단했다.

담호는 갈라진 길을 걸어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양쪽으로 갈라진 사람들이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문을 넘자 대연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대연무장 한가운데서 싸우고 있는 초연운과 남학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담호는 사람들을 헤치고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턱!

“누가? 헉!”

몸을 부딪친 누군가 화를 내려다가 담호의 얼굴을 확인하고 숨을 들이켰다.

“권마다.”

“그가 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담호의 등장은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숨쉬기 힘들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 남자는 그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담호를 우러러보면서도 거북해했다. 자신들이 제어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진 남자. 그런 남자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겐 큰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담호의 시선이 초연운과 남학을 향했다.

쾅! 우르르!

그들이 격돌할 때마다 일대가 진동을 일으켰다.

초연운이 펼치는 팔황신권과 남학이 펼치는 공동파의 절기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때문에 단시간에 승부를 내지 못하고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담호의 시선이 건너편으로 향했다. 그곳에 구무룡이 있었다. 그들 역시 두 사람의 격돌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것이다.

종남파의 금한수부터 해소월, 무당파의 진무영까지 모두가 모였다. 그들은 모두 초연운과 남학의 격돌에 정신이 팔려 담호가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남학이 이기겠지?’

‘초연운은 취운룡, 취한 용은 진정한 용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해소월을 제외한 구무룡의 머리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구무룡이라는 별호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기대처럼 남학은 엄청난 위용을 보여 주었다. 천뢰무객(天雷武客)이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그의 무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초연운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이놈!”

화가 난 남학이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엄청난 기운이 일어나 초연운을 향해 밀려왔다.

콰르르!

공동파의 절기인 대복마장(大伏魔掌)이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대복마장의 위력에 일대의 공기가 거칠게 일렁였다. 그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남학의 가공할 공력이 집약된 대복마장의 위력은 실로 무서웠다. 엄청난 기파 앞에서 초연운의 모습은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모두가 초연운의 패배를 예감했다.

취운룡이 구무룡에 버금갈지는 몰라도 절대로 능가할 수는 없기에 이 정도로 버틴 것도 기적이라 생각했다.

남학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무릎 꿇어라, 초연운.”

그렇지 않아도 막대한 압력이 가중되면서 초연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아직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웃기지 마라, 남학.”

초연운이 팔황신권의 절초인 팔황겁화(八荒劫火)를 펼쳤다.

팔황을 모두 태워 버릴 듯한 강렬한 열기와 강맹한 기운을 두른 채 몸을 날렸다.

쿵!

진각이 대지를 울렸다. 그 충격으로 대연무장에 깔려 있던 청석들이 깨지고 부서져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남학이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 초연운은 이미 그의 가슴팍까지 도달해 있었다.

가공할 공력이 응집된 주먹이 연이어 열두 번이나 남학의 전신을 두드렸다.

퍼버버버벅!

강렬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남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 몇 번은 어떻게 막아 냈다. 그래서 미풍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풍이 폭풍으로 변했다.

충격은 갈수록 배가되었고, 마지막 열두 번째 일격을 허용했을 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증했다.

“크아악!”

결국 남학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런 그의 두 팔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남학의 가슴이 열렸고, 초연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챠앗!”

쾅!

초연운의 주먹이 남학의 가슴에 작렬했다.

남학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초연운은 그런 남학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일단 승기를 잡았으면 확실히 끝을 내야 한다.

초연운이 다시 한 번 팔황신권의 절초를 남학을 향해 펼쳤다. 남학은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다. 겨우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눈에 암담한 빛이 떠올랐다.

팔이 마비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데다가 내장까지 진탕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 초연운에게 다시 한 번 일격을 허용하면 중상을 입고 말 것이다.

쐐애액!

‘제길!’

초연운의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남학은 그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손속에 사정을 두게.”

그 순간 누군가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들었다. 그의 주먹에서 강렬한 권기가 쏘아졌다.

‘이런!’

초연운이 급히 수비식으로 전환해 공격을 막았다.

콰앙!

“크읍!”

굉음과 함께 초연운의 몸이 들썩였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입가에 선혈이 내비쳤다.

초연운이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무단으로 개입한 자를 노려봤다.

“무슨 짓이냐? 금한수.”

“미안하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는 바로 종남파의 무인이자 구무룡의 일원인 천강공자 금한수였다. 그가 남학의 위기 순간에 개입한 것이다.

원래 타인 간의 비무에 끼어드는 것은 강호의 금기 중 하나였다. 강호인들은 정당한 비무를 신성시해서 타인이 개입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수치로 고개를 들 수 없어야 했지만, 금한수는 태연자약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지금 마교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사사로운 감정으로 주요 전력이 상한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그러니 자네가 조금만 이해하고 넘어가게.”

“너?”

초연운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본래 낭인들을 핍박했던 이도 남학이었고, 그로 인해 이 사달이 일어났는데 금한수는 그 모든 것을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괜찮은가?”

사천일성 청운이 남학을 부축해 일으켰다. 하지만 남학은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누가 봐도 명백한 남학의 패배였다.

평소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초연운에게 당한 패배는 남학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다.

“초연운!”

남학의 눈에 살기가 일렁였다. 그런 남학의 모습에 구무룡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초연운에게 패했다고 하지만, 그가 구무룡의 일원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구무룡 사이엔 특별한 유대감이 존재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구무룡 중 상당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남학의 패배가 자신들의 패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초연운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취운룡이 천뢰무객을 이기다니. 그럼 구무룡에서 남 소협이 빠지고 초 소협이 들어가야 하는 것 아냐?”

“쉿! 이 판국에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나?”

“어쨌거나 초 소협이 이긴 것은 사실이잖아.”

주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도 눈앞에서 일어난 예상 밖의 결과에 놀라고 있었다.

사람들의 선입견이란 실로 무서워서 한번 고정되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취해서 구름을 헤매는 용은 진정한 용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선입견이었다.

그 때문에 초연운의 승리가 주는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초연운의 승리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초연운이 남학을 노려봤다.

“저들에게 사과해, 남학.”

“그렇게는 못 한다.”

남학이 단호히 거절했다.

비록 초연운에게 패했지만, 그의 자존심까지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초연운을 노려봤다.

“이제 그만하게. 연운.”

“여기서 이래 봐야 우리 얼굴에 먹칠하는 격. 그쯤 하는 것이 좋겠네.”

엄태천과 청운까지 나서서 초연운을 탓했다.

그들은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는 초연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키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초연운을 압박할 때 해소월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초연운의 곁에 섰다.

“제가 볼 때는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낭인들도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에요. 그들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은 무림맹 전체의 사기를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해 소저! 말을 가려 하시오. 이 사실을 해 소저의 사문에서 알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금한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해소월은 여전히 차분했다.

“저의 사문에서 좋아할지 안 할지 금 소협이 어떻게 알죠?”

“해 소저!”

“해남파는 적어도 낭인이라고 홀대하는 법은 없어요. 적어도 이렇게 먹는 것을 가지고 차별을 두지도 않고요.”

해소월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분하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금한수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도대체 해 소저가 누구 편을 드는지 모르겠구려. 해 소저는 구무룡의 일원이란 사실을 명심하시오.”

“구무룡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뭐요?”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사실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그래 봤자 후기지수 중에서 조금 강하다는 허울 좋은 포장 아닌가요?”

구무룡을 부정하는 해소월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까지 관망만 하던 진무영의 표정 역시 심각하게 변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구무룡이 분열된다. 진무영의 입장에선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쯤에서 그만하지. 연운, 해 소저.”

“진무영.”

“마교와의 격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우리끼리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 하나 없어. 이 문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덮지.”

“그럴 수 없다면?”

“하! 왜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진무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구무룡의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 이상 추한 꼴을 보이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팟!

진무영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유운신법(流雲身法).

구름이 흐르듯 유려하고 거침이 없는 무당파의 보법이 펼쳐진 것이다.

초연운의 눈앞에서 사라진 진무영이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났다. 진무영의 손이 초연운의 혈도를 짚어 갔다.

미처 진무영의 행동을 예상 못한 초연운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제길!’

초연운이 이를 악문 그 순간 강렬한 소성이 울려 퍼졌다.

퍼억!

“으음!”

쿵! 쿵! 쿵!

진무영이 뻗었던 손을 다른 손으로 움켜쥔 채 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뒤로 물러섰다.

주먹이 저릿저릿했다.

그와 초연운 사이에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가 가로막고 있었다.

“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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