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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21화 (2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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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화 7장. 떠나도, 내 의지로 떠난다(3)

진무영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지금 그의 앞을 막고 있는 자는 강호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는 무인이었다.

구무룡보다 한참이나 늦게 강호에 나왔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우위라고 평가를 받는 단 한 명의 무인. 그가 바로 눈앞에 있는 담호였다.

진무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담호가 튕겨 낸 손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찌르르 울리는 그 느낌이 그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단지 담호를 마주한 것만으로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담 대협. 지금 당신의 행동은 오히려 연운을 힘들게 하는 것이란 사실을 모르나 보군요.”

“…….”

“이건 무림맹 내부의 문제입니다. 외인에 불과한 당신이 참견할 사안이 아닙니다.”

“암습하는 것도 무림맹 내부의 문제인가?”

“오해하지 마십시오. 단지 일을 원활하게 수습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니까요.”

“무당은 검호(劍豪) 대신 미꾸라지를 키우는 모양이군.”

순간 진무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연무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담호는 진무영을 미꾸라지라 부르고 있었다. 무당파 백 년 내 최고의 기재라는 진무영을 말이다.

진무영도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담호를 노려봤다.

“지금 뭐라 하였습니까?”

“미꾸라지라 했어.”

“…….”

항상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진무영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반대로 그의 이성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잠시 그가 주변을 돌아봤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무림맹의 고위 인사들도 있었다. 담호의 개입에 그들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무영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하는 산.’

담호는 거대한 산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십리무생 소천산을 죽인 이후 그의 명성은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내심 차기 천하제일인을 노리던 진무영에게는 언제고 넘어야 할 높은 산이었다. 원래 그는 조금 더 차분히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려고 했지만, 이렇게 판이 벌어진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담 대협.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나지막했지만 강대한 공력이 담겨 있어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래서 더욱 쉽게 각인이 되었다.

“당신은 분명 강하고,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위대한 무인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그 어떤 사명감도, 신념도 없습니다. 그저 가로막으니까 부수고 전진할 뿐.”

진무영이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의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어 진무영의 목소리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진무영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패왕인 것은 인정합니다. 허나, 이 전쟁은 정복 전쟁이 아닙니다.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 숭고한 희생정신이 필요합니다. 이건 당신의 전쟁이 아닙니다. 당신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이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이만 물러나 주십시오.”

진무영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 폭풍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휘몰아쳤다.

‘진무영.’

초연운이 이를 꽉 깨물었다.

진무영은 이 자리에 있는 군웅들을 교묘히 선동하고 있었다.

군웅들은 담호를 필요로 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진무영의 언변은 그들의 불안한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고 있었다.

설마 진무영이 이렇듯 교묘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선동할 줄 몰랐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진무영의 언변에 넘어가 동조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건 강호인들의 전쟁이다. 강호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자가 참여할 일이 아니다.”

“이 전쟁에 참여하고 싶으면 권마도 무림맹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

“언제까지 독불장군처럼 제멋대로 행동할 것인가?”

처음엔 한두 명이 떠들었지만, 목소리는 점차 들불처럼 번져가 군중 대부분이 담호를 성토했다.

‘이런!’

초연운뿐만 아니라 해소월도 당황했다.

설마 이 많은 이들이 진무영에게 동조할 줄은 그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군중심리란 참으로 무서워서 일부의 목소리가 대중 전체의 뜻을 대변하는 것처럼 변질됐다.

몇몇 의식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군중의 목소리에 눌려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물러나라.”

“무공만 강하면 다냐?”

“권마도 마인이다. 그 역시 마교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천근 무게가 되어 담호에게 쏟아졌다.

진무영이 담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보셨습니까? 이것이 군중의 뜻입니다. 강호는 당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 역시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토록 원하던 사부를 만났으니까요. 부디 이곳을 떠나서 마음 편히 사십시오. 그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입니다.”

“그런가? 그게 모두가 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담호의 대답에 진무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해소월을 제외한 구무룡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진무영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담호는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정마대전은 구무룡이 여의주를 얻어 비상할 절호의 기회, 하지만 담호의 존재감에 밀려 그들은 빛을 잃었다.

‘반드시 그를 이곳에서 쫓아내야 한다.’

‘이곳에서 공을 세우는 이는 바로 우리여야 한다.’

구무룡이 눈빛을 교환했다.

보다 못한 초연운이 소리를 질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진무영. 담호가 있었기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했다. 그깟 명분이 사람들의 목숨보다 소중한가? 그리고 당신들도 적당히 해.”

초연운이 대연무장에 모인 군웅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무영의 언변에 넘어간 군웅들은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이곳 대연무장에 있는 무인들은 모두 대문파 출신이었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층이었고, 담호를 그들의 권리와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초연운은 그런 군웅들의 모습에 절망했다.

“제기랄!”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의 손이라도 더 필요한 판국에 소소한 이권에 눈이 멀어 분열이나 하다니.

무엇보다 그가 가장 실망한 이는 진무영을 비롯한 구무룡이었다. 그들이 분열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진……무영. 그래도 나는 구무룡의 수장으로 너를 생각했는데…… 정말 실망이다.”

진무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도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면서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그가 담호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엄청난 것이었다.

진무영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그때까지도 담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표정에 변화가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그래도 진무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분위기는 이미 이쪽으로 넘어왔다. 담호가 제아무리 무공이 강하더라도 한번 기울어진 분위기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 거냐?’

진무영이 눈으로 물었다.

이젠 담호가 대답할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곳을 떠나란 말이군. 그런가?”

“그렇습니다. 박수를 받을 때 떠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물러난다고 해서 누구도 담 대협을 욕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대의 행적에 박수를 보낼 겁니다.”

“확실히 그럴듯하군.”

담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에 구무룡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담호가 진무영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그들도 꽤나 골치 아팠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담호는 그런 무인들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 대연무장에 있는 무인들 중 자신이 이곳에 있길 원하는 자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담호의 눈에 기광이 일렁였다.

“그래! 떠나 주지.”

“정말……입니까?”

확인하는 진무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야.”

“탁월한 결정입니다. 모두가 담 대협의 고뇌 어린 결정에 찬사를 보낼 겁니다.”

“그런데…….”

“네?”

“이렇게는 아니야.”

“무슨?”

“겨우 네 세 치 혓바닥에 놀아나서 떠나는 것은 아니란 말이야.”

“그게…….”

순간 담호의 모습이 진무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무영은 오싹한 예감에 급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콰앙!

“크윽!”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진무영의 몸이 주르르 뒤로 밀렸다. 이제까지 진무영이 서 있던 자리에 담호가 주먹을 뻗은 채로 서 있었다.

진무영은 모골이 송연해져 옴을 느꼈다. 십자로 교차한 그의 양팔이 시큰거렸다. 만일 반응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진무영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떠나도, 그냥 떠나지는 않아.”

“당신…….”

“그래도 무당파라면 조금은 더 그럴듯한 무인을 키울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혓바닥에 기름기만 가득한 미꾸라지라니.”

“권……마!”

진무영이 분노했다.

이제까지 날카롭게 유지되던 차가운 이성이 물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천년 무당파에 발탁되어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누구도 진무영에게 이따위 망발을 한 이는 없었다. 심지어는 무당파의 장로들조차도 말이다.

촤앙!

진무영이 허리에 차고 있던 고검을 뽑아 들었다.

무당파의 진정한 절학은 권이 아닌 검에 있다. 진무영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검을 파고들었고, 원하는 성취를 이루었다.

“챠앗!”

진무영의 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선은 담호의 목까지 이어졌다.

태극검(太極劍).

무당이 자랑하는 최고의 검공이 진무영의 손에서 펼쳐졌다. 진무영의 검과 몸이 태극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콰앙!

그러나 진무영의 검은 완벽한 태극을 만들어 내기도 전에 담호에 의해 막혔다.

단양타로 진무영의 검을 튕겨 낸 담호가 충보를 펼쳤다.

쾅!

강렬한 진각과 함께 담호의 몸이 일직선을 그으며 쇄도했다.

“큿!”

진무영이 태극성흔(太極星痕)의 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에 태극 형상의 검막이 생성됐다.

콰앙!

파성추가 검막에 작렬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렬한 충격에 진무영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구무룡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무인이었다.

쉬아악!

재빠르게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순간적으로 그의 검이 수십, 수백 개로 분열해 담호에게 쏘아졌다.

이십여 년을 고련한 무공이었다. 위기 상황이 닥치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태극검의 절초들이 펼쳐졌다.

허공에 수많은 태극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조그만 태극들이 모여 커다란 태극 문양을 만들어 냈다.

태극 문양은 단순한 검기의 선이 아니었다. 검강이 만들어 낸 조화였다.

태극명멸(太極明滅).

쿠와아!

담호를 향해 태극검 최고의 초식이 펼쳐졌다.

혼신의 힘을 다한 초식이었다. 면벽동에서 홀로 수련했을 때도 이만큼 완벽하게 펼친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문득 그의 내면에서 욕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너의 전설을 내가 깨겠다. 그리고 내가 새로운 전설이 되겠다.’

태극검을 익힌 자신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담호가 태극명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담호의 모습은 불길을 찾아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보였다.

진무영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때였다.

쿠와아!

갑자기 담호의 몸 주위로 강렬한 기의 회전이 일어났다. 폭마경(暴魔勁)이었다.

쿠콰콰광!

폭마경이 태극명멸과 격돌하면서 사방으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에 휩쓸린 군웅들이 마치 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진무영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그가 펼친 최고의 초식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태극의 강기는 폭마경에 휩쓸려 튕겨져 나가고 그와 담호를 잇는 일직선의 통로가 열렸다.

담호가 그곳을 가로질렀다.

단 한 걸음에 공간이 단축되었다.

티팅!

진무영이 급히 구명절초를 펼쳐 담호를 공격했지만, 금구자에 의해 튕겨 나갔다.

퍼버버벅!

“커헉!”

그런 진무영의 전신에 담호의 주먹이 쏟아졌다.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새우처럼 굽었다. 숙인 얼굴 위로 주먹과 무릎이 십여 차례나 쏟아졌다.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에 진무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턱!

담호가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어 지천격이 펼쳐졌다.

몸이 뒤집히고 대지가 확대되는 순간 진무영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담호!”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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