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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22화 (2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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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8장. 미련 따윈 남기지 않는다(1)

진무영의 몸이 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모두가 진무영의 머리가 부서진 끔찍한 참상을 예상했다. 그만큼 담호의 지천격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진무영은 머리가 부서지지도, 숨이 끊어지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가 부딪친 곳은 대지가 아닌 누군가의 가슴이었기 때문이다.

“쿨럭!”

바닥에 널브러진 채 거친 숨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 내는 남자는 바로 초연운이었다. 그가 진무영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가슴으로 받아 낸 것이다.

덕분에 진무영의 머리가 부서지는 것은 막았지만, 초연운도 가슴에 큰 충격을 받아 내장이 진탕되고 말았다.

담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왜?”

“크헉! 그……는 이 전장에 반드시 필요해.”

“연운!”

“부……탁이야. 그가 죽으면 무……당파가 이 전쟁에서 빠지게 돼. 그러면 무림맹이 절대 열세가 될 거야. 그러니까 강호를 위해서도 무영을 죽여서는 안 돼.”

진무영이 받았을 충격을 대신 받아 냈다. 온몸이 해체되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진무영은 필사적으로 담호를 만류했다.

진무영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직 강호를 위해서였다. 그런 초연운의 모습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장내를 지배하던 광기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초연운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심지어는 구무룡조차도 말이다.

“연운.”

“쿨럭! 부탁일세.”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면서도 초연운은 담호를 간절히 바라봤다. 담호는 두말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초연운은 그에게 유일하게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두려움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오직 초연운만이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그런 초연운이 자신의 한 몸 내던지면서까지 부탁하고 있었다. 담호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지만 그런 친구의 부탁마저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신 담호의 시선이 진무영을 향했다.

초연운의 개입으로 겨우 목숨을 구한 진무영이 담호를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수치심 때문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런 진무영을 비웃을 만도 하건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감히 누구도 그런 이는 없었다.

진무영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담호가 너무 강한 것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담호가 칠대마인의 일인인 십리무생 소천산을 단숨에 격살한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저자는 인간이 아니야.’

‘괴……물.’

담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지의 존재에게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미지의 존재가 적인지, 아군이지 확실히 구별할 수 없는 상태라면 공포심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군중의 심리 상태가 그랬다. 담호라는 미지의 존재는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제멋대로 행동했으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같은 편이라도 서슴없이 공격했다.

그런 담호를 어찌 믿고 함께 싸울 수 있을 것인가?

같은 편이라면 누구보다 믿음직하겠지만, 담호를 정말 같은 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군웅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담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담호는 군중의 기저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흐름을 느꼈다. 담호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무인들이 놀라 분분히 자리를 비켜줬다. 담호의 앞에 길이 열렸다.

담호는 그들 사이를 걸어갔다. 곧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휴!”

“후아!”

그제야 곳곳에서 억눌렸던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담호는 별채로 돌아왔다.

“왔어요?”

종리연이 해맑은 미소로 그를 맞아 주었다. 그녀는 아직 대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을 모르고 있었다.

“사부는?”

“순조롭게 해독이 되고 있어요. 이 정도라면 생각보다 빠르게 깨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움직일 수는 있나?”

“왜요?”

“삭주를 떠날 거야.”

“무슨 일 있었나요?”

“…….”

“마차를 태운다면 이동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하지.”

“정말요?”

종리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어디로 갈 건가요?”

“멀리…… 사부를 마음 편히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담호의 시선이 현소 진인을 향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현소 진인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담호는 현소 진인의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

그날 대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은 야금야금 삭주 지부 전체로 퍼져 나갔다. 거대 문파에 소속된 무인들은 어떻게든 치부를 감추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입이 모두 무거운 것은 아니었다.

남학이 낭인들을 무시했던 일, 그로 인해 초연운과 충돌한 일이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남학을 비난했다.

만일 남학이 초연운을 이겼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연운에게 패하면서 그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취운룡이라 해서 항상 구무룡보다 낮게 평가를 받던 초연운은 이번 기회로 재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이제 초연운이 구무룡과 대등한, 어쩌면 그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서열을 매기기 좋아하는 강호인들의 특성상 원래는 초연운이 남학을 밀어내고 구무룡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호인들이 그러지 않은 것은 구무룡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은연중 구무룡의 수좌로 불리던 진무영이 담호에게 박살이 났고, 남학이 낭인들을 무시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무룡은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잊혀지겠지만, 현 시점에서 구무룡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특히 곤란하게 된 것은 무림맹의 수뇌부들이었다. 이 일로 인해 무림맹이 거대 문파와 낭인, 소문파의 무인들을 차별 대우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강호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든 시점에 이 같은 소문은 치명적이었다. 그 때문에 수뇌부들이 모여 낭인들과 소문파의 무인들에게도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의 무인들과 똑같은 대우를 하기로 결정했다.

무림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제 담호라는 존재는 무림맹에도 큰 부담이 되었다. 비단 진무영을 박살 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존재감이 너무 커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수습하기도 힘들게 되고, 무림맹의 체면은 또다시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담호의 무력이 아까웠지만 그냥 안고 가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담호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별채에 일단의 무리들이 찾아왔다.

지부장 공손중도 있었고, 익숙한 얼굴의 도사도 있었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무인들도 있었다.

“오……랜만일세.”

힘들게 먼저 입을 연 이는 담호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무당파의 장로인 청허 진인이었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 속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무당이 자랑하는 백 년 내 제일의 기재인 진무영이 담호에게 무참히 깨졌다.

청허 진인과 무당파는 진무영의 패배에 분노했다. 하지만 사정을 모두 들은 뒤에는 분노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다른 이도 아닌 무당파의 촉망받는 기재가 군웅들을 선동해서 담호를 강제로 축출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무당파의 다른 고수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청허 진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담호에게 빚을 진 기분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참담함만이 가슴에 가득했다.

진무영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담호를 몰아내려 했으면 정정당당히 요구했었어야 했다. 군웅들을 선동할 게 아니라.

청허 진인의 눈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단순한 일개인이 아닌 무당파의 장로였다. 무당파의 명예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장로들은 담호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사건의 진실보다 무당파의 명예가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그들은 담호와는 함께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한 삭주에 무당파의 고수들을 파견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휴!”

그가 내쉬는 한숨엔 그만큼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한숨만 내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가 본론을 꺼냈다.

“자네도 알겠지만 삭주 지부의 분위기가 좋지 않네.”

“그래서?”

“이곳을…… 떠나 주게.”

청허 진인의 말에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청허 진인은 그런 담호의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떠나지 않으면 무당파가 무림맹에서 전력을 뺄 것이네.”

“…….”

“미안하네.”

청허 진인의 목소리가 떨려 나올 때였다.

“무당파의 전력을 빼겠다고? 그러라고 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과 함께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현……검 진인?”

청허 진인을 비롯한 수뇌부들의 안색이 싹 변했다.

방 안에 들어온 이는 바로 화산파의 현검 진인이었다. 화산제일검이라는 별호는 무당파의 무게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공손중이 현검 진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천경이 나가지 않으면 무당파의 전력을 빼겠다고 협박하는 것 아닌가? 그러라고 해. 그 자리를 화산파가 대신 채울 테니.”

“혀, 현검 진인?”

공손중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현검 진인은 화산을 대표하는 무인이었다. 그의 명성이나 무게감은 결코 무당파와 청허 진인에게 밀리지 않았다.

현검 진인이 뜻밖에 강경하게 나오자 곤란하게 된 것은 비단 공손중만이 아니었다. 청허 진인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담호 때문에 무당파가 무림맹에서 전력을 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무당파가 강호인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협박을 한 것은 무당파로서도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현검 진인이 청허 진인을 노려봤다.

“실망이군, 청허. 겨우 그런 이유로 무당파의 전력을 빼겠다고 협박하다니?”

“무량수불!”

“그 옛날 마교가 침공했을 때도 너희들은 그랬어. 갖은 핑계를 대고 뒤로 빠졌지. 그래서 전력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지.”

“그건…….”

현검 진인의 독설에 청허 진인의 말문이 턱 막혔다. 현검 진인의 말은 무당파의 역린을 찌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옛날 무당파는 마교와의 전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화산파였고, 그로 인해 화산파는 거의 멸문의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물론 그 안에 숨겨진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당파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겁한 무당파는 빠져라. 화산파는 이번에도 마교와 옥쇄를 할 터이니.”

“현검 진인, 진정하시구려.”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 되도 않는 이유로 사람을 핍박하는데.”

청허 진인과 수뇌부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알기로 담호와 화산파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생판 모르는 남만도 못한 사이였다. 그래서 절대로 나서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담호를 바라보는 현검 진인의 눈빛엔 적의는커녕 따스함만이 가득했다.

담호와 현검 진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야기는 들었다. 부끄럽지도 않나? 명문 무당파의 기재가 그따위로 군웅들을 선동하다니.”

“그 일은…….”

“시끄럽고, 어떻게 할 텐가? 그래도 무당파를 빼겠다고 협박할 텐가?”

현검 진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벽을 뛰어넘은 현검 진인의 눈빛은 청허 진인으로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그에 청허 진인은 현검 진인에게 기연이 있었음을 짐작했다.

‘현검 진인이 벽을 뛰어넘었단 말인가?’

청허 진인 역시 무당파에서 수위를 다투는 고수였기에 현검 진인의 성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의 현검 진인은 어제의 현검 진인과 또 달랐다. 청허 진인도 목숨을 걸기 전에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 그런 현검 진인, 그리고 화산파와 척을 진다는 것은 무당파와 청허 진인도 부담스러웠다.

청허 진인이 그렇게 난감해 할 때였다.

“됐어.”

담호의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담호를 향했다. 그중에는 현검 진인의 시선도 있었다.

“무슨 말이냐? 됐다니?”

“이곳을 떠날 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 저들의 협박 때문이라면 그럴 것 없다.”

“내가 저들의 협박 따위 신경 쓸 거 같아?”

“그럼?”

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지 이곳이 내 전장이 아닐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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