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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29화 (22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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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2장. 공들여 쌓은 탑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1)

“큭! 도대체 어떻게 경계망이 뚫린 거지?”

“지금 그런 한가한 말을 할 시간 따위 없다. 어서 빨리 움직여라.”

“예! 사부.”

갑작스러운 소란에 초연운과 장일산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문주님.”

“사형!”

밖에는 어느새 백전문의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장일산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시간이 없다. 연운은 사제들을 이끌고 내부 경계를 점검하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외부의 습격을 막는다.”

“예! 사부.”

“존명!”

초연운과 백전문의 제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장일산과 제자들이 밖으로 달려 나가고, 초연운과 사제들은 삭주 지부의 심처를 향해 달려갔다.

초연운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손에는 백전전승기가 들려 있었다.

백전전승기 아래 치르는 첫 번째 싸움이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초연운.”

슈아앙!

갑자기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강렬한 검기가 날아왔다. 초연운은 당황하지 않고 검기를 향해 팔황신권을 펼쳤다.

퍼엉!

검기가 권기와 격돌하면서 소멸했다.

초연운의 시선이 검기를 날린 자를 향했다.

“너는?”

“오랜만이군.”

검기를 날린 남자가 싸늘히 대답했다.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가진 남자는 바로 번천대주(翻天隊主) 조자경이었다.

조자경의 주위에는 번천대가 포진하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 그들과 격돌했었기에 초연운의 사제들 또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조자경이라고 했나?”

“아직 기억하고 있군.”

초연운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조자경은 그가 싸운 상대 중 가장 강한 자였다.

“네가 어떻게?”

“너를 찾아왔다.”

“나를?”

“너는 내가 결착을 내지 못한 유일한 상대니까.”

“그런 바보 같은 이유로?”

초연운이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림맹과 마교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교는 무림맹을 무너트림으로써 마도 천하를 이루려 하고, 무림맹은 마교를 물리쳐 강호 정의를 세우려 하고 있었다.

그런 중대한 싸움에서 사사로운 원한을 들먹이다니?

“너, 미친 거 아냐?”

“흥!”

초연운의 어이없는 말에 조자경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그의 눈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조자경이 검으로 초연운을 겨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단 한 명만 살아남을 것이다, 초연운.”

“젠장!”

초연운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삭주 지부 곳곳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중대한 순간에 조자경에게 발목을 붙잡혀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초연운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조자경도 마교의 무인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인. 그렇다면 조자경을 상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좋다.”

대답과 함께 초연운이 백전전승기를 힘껏 내리꽂았다.

쾅!

굉음과 함께 백전전승기가 바닥에 깊이 꽂혔다.

바람이 불어오자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며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깃발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조자경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마교의 무인들에게 백전전승기는 굴욕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조자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됐구나. 그 깃발…… 내가 갈가리 찢어 주지.”

“할 수 있으면 해 봐.”

초연운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백전전승기 아래 우뚝 선 그의 모습은 전신(戰神)을 연상케 했다.

“챠앗!”

조자경이 대지를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전검류(戰劍流).

마교의 수많은 지파들 중에서도 유독 실전에서 빛을 발한다는 검공이 초연운을 향해 펼쳐졌다.

쩌어엉!

두 사람의 격돌을 신호로 백전문의 무인들과 번천대가 격돌했다.

***

삭주 지부가 마교의 침공으로 극도의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 음유경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목적을 달성한 연이 훌훌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천수사가 움직였구나.”

상한천은 마교 내에서도 극비에 속하는 무력 집단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무인들과 달리 한두 가지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었다.

연을 이용해 고공으로 침투하거나, 동굴을 뚫고 비밀통로를 만드는 것 따위는 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비밀리에 적진에 침투한 이들이 내부 혼란을 일으키고, 그에 호응해 외부에서 공격하는 것.

그것이 상한천의 기본적인 계획이었다. 문제는 습격 시기였다. 음유경은 습격이 며칠 뒤에나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상한천 역시 음유경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빨리 움직였다는 것은 역시 나를 믿지 않는다는 뜻인가?”

음유경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의심이 실제로 드러나자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성녀인 음유경에게도 상한천은 버거운 존재였다. 특히 그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성물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태을 진인과 현도문의 거처는 알아냈다. 단지 경계가 너무 삼엄해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음유경은 공령운무행(空靈雲霧行)을 펼쳤다. 공령운무행은 대기 속에 본신과 기척을 감추는 마교의 비전 신법이었다.

공령운무행으로 모습을 감춘 채 경공을 펼치는 음유경의 눈에 수많은 이들의 주검과 싸우는 모습이 들어왔다.

시신이 산을 이루고, 그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루고 있었다. 불과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활력이 넘치던 삭주 지부에는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교의 무인들보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죽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음유경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비록 이념과 소속이 달라 싸우지만 무림맹의 무인들도 엄연히 사람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의 주검을 성채 삼은 신교의 성전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다고 이러는 것인가?’

사람의 원한은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피로 쌓인 원한은 수 대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무공을 익힌 무인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결코 끝이 나지 않을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성물이 필요했다.

음유경은 속도를 높여 태을 진인과 현도문의 무인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놈들을 막아라.”

“이야아!”

그곳에서는 이미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을 타고 삭주 지부에 침투한 검은 인영들이 현도문도와 태을 진인을 공격하고 있었다.

음유경은 그들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환마대(幻魔隊).’

상한천 휘하의 비밀 무력 조직이었다.

환마대의 모든 것은 철저한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신세내력이 어떻게 되는지는 오직 상한천만이 알고 있었다.

음유경 정도의 무력을 갖춘 무인이라면 환마대의 무인 한두 명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환마대가 다섯 이상 뭉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개개인의 무력보다 합격을 했을 때의 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되는 집단이 바로 환마대였다. 무엇보다 환마대의 무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환마대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한천이 팔을 자르라면 망설이지 않고 자르고, 죽으라 명하면 불구덩이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다.

그것이 환마대였다.

환마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나방처럼 현도문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드득!

누군가의 살이 뜯겨져 나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검으로 안 되면 몸이라도 내던져 싸우는 것이 환마대의 방식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만이 남았다.

그때 강렬한 기세를 발산하는 무인이 있었다.

“감히 마도의 역도들이 찾아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창노한 음성과 함께 칠채 보석이 박힌 명검을 휘두르는 노무인은 바로 현도문의 문주인 태을 진인이었다.

쉬아악!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날카로운 검기가 뻗쳐 나갔다.

기둥이 성둥 잘려 나가고, 담벼락을 밀병처럼 산산이 부수는 가공할 검기 앞에서도 환마대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카카카카캉!

다섯 자루의 검이 동시에 태을 진인의 검기를 막아 냈다. 한 자루라면 태을 진인의 검기에 잘려 나가겠지만, 다섯 자루의 검과 내공이 합쳐지자 어렵지 않게 막아 냈다.

태을 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노기가 충천한 그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의 손에 들린 남천검이 부챗살 같은 검기를 토해 냈다.

끼아아아!

일곱 가지 서광이 섞인 듯한 칠채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순간 칠채 검기에 노출된 환마대의 무인들 십여 명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날카로운 귀곡성이 그들의 고막을 자극해 순간적으로 균형 감각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성둥!

칠채 검기가 그들의 몸을 자르고 지나갔다.

잠시 멀뚱멀뚱 서 있던 환마대의 몸에 붓으로 그은 듯한 붉은 선이 생겨났다. 붉은 선을 따라 피가 흘러내리더니 이내 몸이 두 동강이 나서 무너져 내렸다.

귀천마영(歸天魔影)의 초식이었다.

현도문의 최고 무공인 한광탕마검(寒光蕩魔劍)의 최절초로 모든 사마(邪魔)를 제압하는 효능이 있었다.

태을 진인은 연신 귀천마영의 초식을 펼쳤다. 부챗살 같은 칠채 검기가 뻗어 나오면 어김없이 환마대의 무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환마대의 무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태을 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는 그들의 모습에 태을 진인이 눈을 흉흉하게 빛났다.

“그놈들하고 똑같구나.”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삼십여 년 전 마교의 성전에 쳐들어갔던 그때가.

당시에도 이와 같은 자들이 그를 막았었다.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상대하는 자들이 조금 더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을 풀풀 풍긴다는 것이다.

더 비쾌하고, 강했다. 그리고 더 똑똑했다. 삼십 년 전에 상대했던 자들은 합격술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작정 달려들었는데, 지금 상대하는 자들은 교묘하게 합공을 했다.

“간악한 마교도들. 몇 명이 덤벼도 상관없다. 내 오늘 너희들을 모조리 죽여 강호의 정의를 세울 것이다.”

그가 남천검을 높이 쳐들었다. 검에 박힌 칠채 보주가 빛을 발했다.

순간 음유경의 눈빛이 일렁였다.

‘설마?’

그녀가 태을 진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탁! 탁!

단 두 번의 도약으로 태을 진인의 코앞에 도달한 음유경의 검이 무섭게 뽑혀 나왔다.

쉬아악!

그녀의 검이 태을 진인의 손목을 노렸다. 그에 크게 노한 태을 진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검막을 만들어 냈다.

“이 요망한 년! 감히 기습을 하다니.”

쩌엉!

음유경의 검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손목을 교묘히 움직여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태을 진인의 요혈을 노렸다.

슈우우!

오직 성녀에게만 전해져오는 낙월신검(落月神劍)이 펼쳐졌다.

태을 진인은 순간 천지가 검영에 갇힌 듯한 아찔한 고립감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 순간 떨어지는 달을 닮은 검기가 태을 진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먼지가 피어오르고, 태을 진인이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듯 그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음유경은 그를 따라붙어 가슴에 일장을 먹이고 손목을 비틀었다.

“커헉!”

태을 진인이 피를 토하며 남천검을 놓쳤다.

음유경은 금나술로 남천검을 낚아채 순식간에 태을 진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안 돼!”

졸지에 사문의 보물을 잃은 태을 진인의 처절한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이내 환마대에 묻혀 사라졌다.

음유경이 사라진 직후 누군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푸른 장포를 걸친 사십대 초반의 장년인이었다. 마치 평생 햇볕 한번 쬐지 못한 것 같은 창백한 피부가 유독 인상적인 장년인은 바로 마천수사 상한천이었다.

“흠!”

그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음유경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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