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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30화 (2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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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2장. 공들여 쌓은 탑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2)

초연운과 조자경의 싸움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콰쾅!

연신 폭음이 울려 퍼지고, 그들의 몸이 들썩였다.

초연운의 전신에는 적지 않은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조자경의 얼굴에도 피로한 빛이 가득했다.

그들의 무력은 거의 호각이었다. 때문에 누구도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연운의 주먹에선 팔황신권의 절초가 풀려나왔고, 조자경의 전검류는 독이 바짝 오른 뱀처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권과 검이 얽히고 떨어지기를 수차례. 두 사람의 몸은 권기와 검기에 의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희미한 감탄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대단하구나, 조자경.’

‘초연운, 이 정도였나? 역시 너를 없애지 않고선 나의 미래도 존재하지 않겠구나.’

조자경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초연운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유독 마음에 걸렸었다. 그의 본능이 초연운에게 극도로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이제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겠다.

초연운은 그의 천적이었다. 그의 무공, 그의 성정, 그의 모든 것이 조자경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조자경은 단전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공력까지 모조리 끌어 올렸다.

사부는 늘 말했었다.

검은 살아 있다고.

검의 모든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검객이라고.

전장에서 활로를 찾는 검, 그것이 사부가 전수해 준 전검류였다.

조자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초연운도 모든 공력을 끌어 올렸다.

조자경의 살기에 온몸이 아려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사제들이 번천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지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되었다가는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그런 상황만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백전전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백전전승기에 부끄러운 모습 따윈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서 이 초식을 쓸 줄 몰랐는데…….”

그의 양 주먹에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혼신의 공력이 양 주먹에 집중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초연운과 조자경이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챠앗!”

“핫!”

초연운은 팔황멸천(八荒滅天)의 초식을 펼쳤고, 조자경은 자신의 감을 믿고 전검류를 펼쳤다.

쩌어엉!

두 사람이 허공에서 격돌하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사나운 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큭!”

“허억!”

근처에서 싸우던 백전문의 무인들과 번천대가 폭풍에 휩쓸려 날아갔다.

“사형!”

“대주!”

겨우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초연운과 조자경이 격돌한 곳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격돌했던 곳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먼지 너머 흐릿하게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 모두 무릎을 꿇고 있어 누가 이기고 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피를 토했다.

“쿨럭!”

입에서 쏟아진 피가 가슴을 붉게 물들였다.

“크흑 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붉게 물든 가슴을 바라보는 남자는 바로 조자경이었다.

그는 반토막 난 검으로 겨우 상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크으!”

조자경의 앞에 초연운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가슴 역시 길게 갈라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 갈라진 근육과 뼈 사이로 힘겹게 맥동하는 심장이 보이고 있었다.

초연운은 감히 지혈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두 손으로 가슴의 상처를 틀어막았다. 그런데도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초연운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때 조자경이 물었다.

“간발의 차이였어. 그렇지 않나?”

“맞아!”

정신이 아득해져 왔지만, 초연운은 애써 끈을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조자경이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지?”

“그래!”

“재밌었어. 여한 따윈 남기지 않을 만큼. 안 그런가?”

“그래!”

초연운의 대답에 조자경이 웃었다. 입과 가슴이 피로 물든 그의 웃음은 섬뜩하리만큼 처절했다.

초연운은 말없이 웃는 조자경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자경의 웃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조……자경.”

초연운이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조자경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이상하리만큼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시야가 온통 새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대주!”

조자경의 죽음에 번천대의 무인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백전문의 제자들이 그런 번천대를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막앗!”

“사형을 보호해.”

백전문의 무인들과 번천대가 뒤엉켜 더욱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초연운은 대자로 널브러졌다. 그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대지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백전전승기가 동이 트는 붉은 하늘 아래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그날 무림맹은 삭주 지부에서 퇴각을 했다.

초연운, 현검 진인을 비롯한 몇몇 무인들이 승리를 거뒀지만 그것이 전체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특히 환마대에 의한 피해가 컸다. 환마대는 삭주 지부에 있던 무림맹의 수뇌부를 제일 먼저 기습해서 죽였다. 그에 삭주 지부장인 공손중과 현도문의 태을 진인 등 주요 인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제일 먼저 환마대의 침투를 눈치채고 대응했던 종남진검 염중화가 죽었다는 것이다.

염중화를 죽인 이는 칠대마인 중 한 명인 만월선자 진혜원이라고 했다. 그녀는 오십여 초 만에 염중화를 죽이고 수급을 땄다.

칠대마인의 위용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종남파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고, 승리를 낙관하던 무림맹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고 침체되었다.

삭주를 잃은 무림맹 무인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남하하였고, 마교는 그런 무인들을 척살하기 위해 추적대를 편성했다. 뿐만 아니라 중원에서 활동하던 병력을 동원하여 남하하는 길목을 막았다.

졸지에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게 된 무림맹의 무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고, 그들이 흘린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남쪽으로 가는 길은 차단되었고, 결국 살아남은 이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인근의 문파로 몸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화산파로 도주했고, 또 일부는 종남파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하남성의 소림사로도 많은 이들이 일신을 의탁했다.

무림맹에서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급히 병력을 급파했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날의 사건을 혈우낙춘일(血雨落春日), 즉 피 비가 내린 봄날이라고 불렀다.

이날 내린 피의 비는 천하 전체로 번져 나갔다. 바야흐로 천하는 혼돈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그렇게 되었습니다.”

“…….”

“형님?”

묵일광이 조심스럽게 담호를 불렀다.

담호는 무표정했다. 그래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형님.’

묵일광이 숨을 죽였다.

무서웠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저 얼굴이 무서웠다.

방금 전 그는 삭주에서 무림맹의 패배를 담호에게 알렸다. 담호는 묵일광이 하는 모든 말을 묵묵히 들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표정의 변화가 없는 담호가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묵일광은 숨을 죽인 채 담호를 바라봤다.

잠시 후 담호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형님은 더 강해지셨구나.’

묵일광은 전신에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담호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후 단 한 번도 자신의 무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묵일광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담호가 더 강해지고, 무서워졌다는 것을.

묵일광은 전신에 올라온 소름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양팔로 어깨를 문질렀다. 그러자 소름이 조금씩 가셨다.

담호가 물었다.

“연운이 큰 부상을 당했다고?”

“무인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어디 있지?”

“그것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알아내.”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묵일광이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얼 알아내겠다는 건가요?”

그때 앳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모옥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아가씨!”

묵일광이 반색을 했다.

모옥 안으로 들어온 이는 바로 황혜령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과일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

“무얼 알아내겠다구요?”

황혜령의 눈빛을 받은 묵일광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런 그를 구원해 준 사람은 바로 담호였다.

“무슨 일이냐?”

“오라버니 과일 좀 드리려고 왔어요.”

황혜령은 금세 담호를 보며 웃었다.

헤어져 있던 기간 동안 황혜령은 부쩍 성숙한 모습이었다. 예전의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황혜령이 담호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역시 그 일 때문인가요?”

“…….”

“저도 알고 있어요. 삭주에서 무림맹이 대패했다는 것을. 그 때문에 천하가 큰 혼란에 휩싸였다는 것도.”

황혜령이 과일을 깎으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에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묵일광의 몫이었다.

그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황혜령의 앞에 서면 늘 약해지는 묵일광이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이들이 죽어 갈 거예요. 천하는 큰 혼란에 휩싸이겠죠. 반면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워요. 다 오라버니 덕이에요.”

“혜령아.”

“오라버니가 없었다면 아버님이 건재하시지도 못했을 테고, 녹림도 이렇게 태평성대를 누리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오라버니에게 감사해요.”

“…….”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너무 분에 넘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오라……버니.”

“말하거라.”

“과연 이런 행복을 저희만 누려도 될까요? 이렇게 마냥 행복해도 될까요? 천하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황혜령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래서 더욱 깊이 각인이 되었다.

그녀가 다 깍은 과일을 담호 앞에 내놨다.

“드세요.”

“…….”

“어서요.”

황혜령의 재촉에 담호가 과일을 입에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단물이 채웠다.

“달죠?”

“달구나.”

“언제든 산채로 찾아오시면 단 과일을 대접할게요.”

“무슨 말이냐?”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밖으로 나가시라는 말이에요. 오라버니는 그동안 충분히 노력하셨어요. 그동안 오라버니의 삶은 저와 현소 진인이 전부셨어요. 거의 전부의 시간을 저희 둘을 위해 사용하셨죠.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 때문에 망설이지 마세요.”

“…….”

“오라버니의 시간은 오라버니를 위해 사용하세요. 오라버니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오라버니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세요. 친구분을 찾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전 오라버니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지지할 거예요.”

황혜령이 담호를 보며 웃었다.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네! 오라버니가 하고 싶은 대로. 친구잖아요. 단 한 명뿐인.”

황혜령의 목소리가 주문처럼 담호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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