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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33화 (2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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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3장. 바람이 불면 시대가 움직인다(2)

황산을 내려와 안휘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강을 건너면 동릉(銅陵)이 나온다.

동릉은 예로부터 동(銅)의 주산지로 유명했다. 단순히 동만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쇠도 많이 나왔기에 동릉엔 이름난 장인들과 공방들이 많았다.

동릉에서 만들어진 무기들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때문에 구입하고자 하는 무인들과 상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동릉이었지만, 마교와의 전쟁이 벌어진 후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배는 늘었다.

전쟁은 물자를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특히 무기의 소모가 엄청나다 보니 많은 문파들이 무기를 구하기 위해 난리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동릉의 대장간과 공방은 때아닌 호황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위축된 데 반해 이곳 사람들은 어깨를 당당히 펴고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 동릉의 거리를 말을 타고 지나가는 세 사람이 있었다.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흑마를 탄 흑의를 입은 남자와 백마를 탄 소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마를 탄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였다.

그들은 바로 황산을 떠난 담호 일행이었다.

방진보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별세계 같네요. 다른 곳은 다 힘들어 죽으려고 하는데.”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이니까. 어떤 이들은 전쟁으로 힘들어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로 인해 반사이익을 누리지. 이곳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야.”

“세상은 참 부조리하군요.”

“그러게 말이다.”

묵일광이 고개를 끄덕여 방진보의 말에 동의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이 본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난세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세상은 혼란 그 자체였다. 특히 삭주에서 무림맹이 대패를 하면서 민심은 급속도로 냉각됐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갔고, 무인들을 만나면 일단 피하고 봤다. 일반인들에게 무림인들은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 간다.”

담호의 말에 방진보와 묵일광이 반색을 했다.

벌써 이틀째 쉬지 않고 말을 달려왔다. 마음은 급하지만 사람도, 말도 쉬어 줄 때가 된 것이다.

묵일광은 당장 인근에서 가장 큰 객잔을 숙소로 잡았다. 돈이야 산채에서 넉넉하게 가지고 왔기에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동릉 전체가 호황을 누리는 만큼 평범한 객실은 이미 동이 나고 없었다. 그 때문에 묵일광은 비싼 돈을 주고 특실을 구해야 했다.

묵일광은 점소이에게 돈을 더 주며 특별히 말을 잘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특실에 들어온 담호가 말했다.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할 테니 모두 푹 쉬어라.”

“형!”

방진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말하거라.”

“저 잠깐 밖에 좀 나갔다 와도 될까요?”

“왜 그러느냐?”

“주도가 다 닳아서 이제 바꿀 때가 되었거든요. 마침 이곳의 대장간이 유명하니 이번 기회에 장만하려고요.”

“혼자 갈 수 있겠느냐?”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마침 알아봐야 할 것도 있구요.”

때마침 묵일광이 나섰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묵일광이라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락이 떨어지자 묵일광과 방진보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동릉에서도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대흥가로 향했다.

대흥가로 들어서자마자 쇠가 타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고, 힘찬 망치질 소리가 고막 가득 울려 퍼졌다.

무기를 파는 공방마다 상인들이 흥정을 하고 있어 분위기가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방진보는 그런 거리의 분위기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휴우!”

결국 방진보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묵일광이 그런 방진보를 보며 말했다.

“웬 한숨이야?”

“그냥요. 무언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세상은 불공평해.”

“네?”

“그게 세상이야.”

“그게 무슨?”

“세상이 공평했으면 우리 같은 녹림도가 생기지도 않았겠지.”

그의 말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을 느꼈는지 묵일광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저곳으로 들어가 보자.”

그가 가리킨 곳은 대흥가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공방이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모여 있기도 했다.

방진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일광을 따랐다.

공방에 들어가자마자 점원이 나와서 반겨 주었다.

“어서 오십쇼. 무얼 보여 드릴까요?”

“혹시 주도 있나요?”

“주도?”

“주방에서 쓰는 칼요.”

방진보의 대답에 점원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보다시피 우리 공방은 검과 도 같은 무기만 팝니다. 주방에서 쓰는 칼 따윈 취급하지 않아요.”

“네? 이렇게나 칼이 많은데.”

“우리는 무기를 주로 만드는 공방이에요. 주방에서 쓰는 칼을 만들어서는 이득이 되지 않아요. 아마 인근에 있는 대부분의 공방이 저희와 같을걸요.”

“그럼 어디를 가야 주도를 살 수 있을까요?”

방진보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점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럼 대흥가 제일 끝자락에 송가공방에 가 보세요. 그곳 주인분이라면 혹시 만들지도 모르니까.”

“감사합니다.”

방진보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엔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공방에 주도가 없다니. 가장 기본인데.”

“어쩔 수 없지. 그들의 말대로 돈이 되지 않으니까.”

“에휴!”

“그래도 만드는 곳이 있다니까 어서 가 보자. 서두르지 않으면 그마저도 구할 수 없을지 모르니.”

“네!”

방진보가 대답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마치 모래를 삼킨 것처럼 입안이 껄끄러웠다.

점원이 가르쳐 준 송가공방은 다른 공방과 달리 무척이나 초라했다. 그 때문인지 손님도 거의 없었다.

“있다.”

공방 안을 살피던 방진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다른 공방과 달리 송가공방에는 주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주방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방진보는 제일 앞쪽에 진열된 주도를 들고 살폈다.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좋다.”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솜씨 좋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티가 나는 물건이었다.

조금 무겁긴 하지만 균형 배분이 좋은 데다가 날도 잘 서 있었다.

땅!

손가락으로 도신을 튕기자 맑은 쇳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호!”

묵일광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그만 공방이라고 내심 우습게 봤는데, 주도에서 느껴지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때 공방 안쪽에서 두 명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한 명은 공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었다.

깊은 주름살이 얼굴 가득했고, 축 처진 살에 눈이 파묻혀 있어 도무지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었다. 그는 품이 무척이나 넓은 피풍의를 입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름진 노인이 방진보를 슬쩍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 손님이 왔나 보군.”

“그런가 보군요, 노야.”

“뭐하나? 손님이 왔는데 얼른 달려가지 않고?”

“뭐, 사고 싶으면 사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요.”

“쯧! 자네가 그런 정신머리니까 파리를 날리는 게야. 다른 공방을 보게. 다들 호황을 누리고 있지 않나?”

“이제 죽을 날도 머지않았는데 돈은 더 벌어 뭐합니까?”

대장장이 노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주름진 노인이 피식 웃었다. 마치 귀여운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하여간 버르장머리 하고는…….”

“노야야말로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이제 연세도 적지 않잖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젠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덜그덕거려. 그래도 어쩌겠나? 대신 해 줄 사람이 없으니 이 노구라도 어떻게 움직여 봐야지.”

주름진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한편 방진보와 묵일광은 주름진 노인을 보면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같은 공방 안에 있지만 노인 혼자서 다른 세상의 공기를 마시고 사는 것 같이 느껴졌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것 같은 기묘한 느낌과 거리감이 그들의 감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주름진 노인이 방진보를 향해 걸어왔다. 방진보는 그런 노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주름진 노인이 방진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야,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바, 방진보예요.”

“진보?”

“네!”

“좋은 이름이구나. 그 칼을 고른 것을 보니 요리를 업으로 하는 모양이구나.”

“마, 맞아요.”

“그 칼.”

“네?”

“보기엔 투박하지만 저 녀석이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좋은 칼이다. 잘만 사용하면 족히 수십 년은 너끈히 버텨 줄 게야.”

“감사합니다.”

방진보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름진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 칼…… 잠시 줘 보겠느냐?”

“예?”

방진보가 영문을 몰라 멍한 표정을 짓자 노인이 손을 뻗어 주도를 가져갔다.

노인은 두 손가락으로 주도의 날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지잉!

순간 주도가 울음을 터트렸다.

“도, 도명(刀鳴)?”

묵일광이 놀라 눈을 치떴다.

방진보가 들고 있던 주도는 잘 만들어진 칼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방용 칼이라는 한계가 명확했고, 딱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

절대로 도명을 터트릴 만한 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노인의 손길 한 번에 도명을 터트렸다.

‘고……수.’

묵일광의 눈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에 대장장이 노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노야. 저들이 놀라지 않습니까?”

“그런가?”

“에휴!”

대장장이 노인의 한숨에 주름진 노인이 주도를 방진보에게 돌려주었다. 얼떨결에 주도를 돌려받은 방진보가 눈을 끔뻑거렸다.

“잘 사용하거라.”

“예? 예!”

주름진 노인이 방진보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서기 직전 주름진 노인이 대장장이 노인을 뒤돌아봤다.

“고맙네. 자네는 약속을 훌륭히 지켰어.”

“노야!”

“그동안 고생했네. 남은 생, 부디 자신을 위해 살아가게.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니까.”

순간 대장장이 노인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주름진 노인은 그에게 고졸한 미소를 남긴 채 사라졌다.

대장장이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주름진 노인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대장장이 노인이 옷매무새를 정갈히 다듬더니 문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노야! 부디 원하시는 바를 모두 이루소서.”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대장장이 노인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방진보와 묵일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대체 저 노인이 누구기에?’

그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감히 말문을 열지 못했다.

한참 만에야 대장장이 노인이 일어섰다. 노인의 눈가엔 살짝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대장장이 노인은 눈물을 닦은 후 방진보와 묵일광을 바라봤다.

“그 칼…… 살 거냐?”

“예? 예!”

“운이 좋구나. 풍월제(風月帝)의 끝자락을 영접하고.”

“그게 무슨?”

“다섯 냥이다.”

“예?”

“그 칼 은자 다섯 냥이란 말이다. 살 거면 다섯 냥 내놓고 가져가.”

대장장이 노인의 말에 방진보가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은 다섯 냥을 꺼내서 건넸다.

은자를 받은 대장장이 노인은 코웃음을 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졸지에 둘만 남게 된 방진보와 묵일광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대장장이 노인에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주도 한 자루만 들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도대체?”

방진보가 손에 들고 있는 주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도를 잡은 손에서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우웅!

언뜻 환청처럼 도명이 들린 것도 같았다.

방진보는 주도를 품에 꼭 안은 채 담호가 있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날 송가공방은 문을 닫았고, 대장장이 노인도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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