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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34화 (2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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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3장. 바람이 불면 시대가 움직인다(3)

촤하학!

주도가 새빨간 고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결대로 잘려 나가는 고깃덩이 사이로 새하얀 뼈가 보였다.

퉁! 퉁!

주도 끝으로 살과 뼈 사이를 비집고 가볍게 비틀자 너무 쉽게 분리되었다.

“흥흥!”

방진보가 콧노래를 부르며 주도를 움직였다.

삭! 사악!

주도가 고깃덩이를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소성이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마음먹은 대로 주도가 움직였다. 언뜻 보면 주도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담호는 나무에 기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안휘성과 하남성 경계에 있는 계수(界首) 인근의 야산이었다. 그리고 방진보는 묵일광이 잡아 온 토끼 고기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담호의 시선은 방진보의 주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동릉의 허름한 공방에서 사 온 칼이라고 했다. 평범한 쇠로 만든 것이 분명한데 알 수 없는 예기가 느껴졌다.

‘손가락에 집중한 내공만으로 주도의 날을 압연(壓延)했다.’

직접 주도를 만져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주도의 날에는 노인의 공력이 만들어 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지나간 주도의 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응축되어 있었다. 날은 몇 배나 더 예리하게 벼려져 있어 강렬한 예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명장이 수천, 수만 번을 망치질을 해야 나올 수 있는 수준까지 주도가 정련이 된 것이다. 이런 식의 내공 운용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풍월제라고 했던가?’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담호는 강호를 살아가는 자. 강호를 주유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노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담호는 그때까지 노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테니까.

“형님.”

묵일광이 담호에게 다가왔다. 담호가 바라보자 묵일광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초 소협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무슨 말이지?”

“인근의 녹림도에게 수소문해 봤는데 삭주에서 대패한 후 무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답니다. 일부는 화산에, 또 다른 일부는 종남파에, 그리고 나머지는 소림사 같은 거대 문파에 몸을 의탁한 모양입니다. 무림맹에서도 어떤 문파에 어떤 무인들이 몸을 의탁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보의 단절이 심각합니다.”

묵일광의 대답에 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말처럼 현재 중원 북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삭주가 무너짐으로써 산서성 전체가 마교의 영향권에 들었고, 산서성과 인접한 하남성, 섬서성, 하북성에 비상이 걸렸다.

하남성에는 소림사가 있고, 섬서성에는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었다. 이 세 문파는 삭주에서 도주한 무인들을 수용한 후 대문을 걸어 잠갔다. 마교의 침공에 대비를 하는 것이다.

무림맹에서는 이들 세 문파에 예비 전력을 파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너무 먼 거리 탓에 지체되고 있었다.

“초 소협이 아직 살아 있다면 분명 이 세 문파 중 하나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겁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그건 판단하기 힘듭니다.”

묵일광이 솔직히 대답했다.

그나마도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곳이 세 문파지, 다른 문파로 피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일단 그곳에 있었던 무인 누구라도 만나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우린 소림으로 간다.”

“소림 말입니까?”

담호의 대답에 묵일광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의문을 표하지는 않았다.

담호가 결정했으니 따른다. 그것이 묵일광의 생각이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소림사가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마음먹고 말을 달린다면 열흘이면 도달할 거리였다.

그때였다.

“완성되었어요. 다들 식사하세요.”

방진보의 목소리가 야산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니 방진보가 조그만 솥에 화과를 가득 끓여 놓고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묵일광이 잡아 온 토끼로 만든 화과였다.

분명 방금 전에 토끼를 손질하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화과를 뚝딱 끓여 냈다. 거기에다 언제 준비했는지 먹음직스러운 쌀밥까지 준비해 뒀다.

묵일광은 그런 방진보의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햐! 이런 야산에서 노숙을 하면서 이렇게 호사스러운 식사라니. 남들에게 말해도 믿지 못할 거야.”

“이 정도는 기본이죠.”

방진보가 씨익 웃었다. 이젠 여유가 생겼는지 많이 능글스러워진 모습이었다.

방진보는 두 사람의 그릇에 토끼 고기로 만든 화과를 한 그릇씩 떠 줬다.

“후우! 끝내주는걸.”

묵일광이 절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담호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방진보는 두 사람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숙수에게 가장 큰 행복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타인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었다. 그 대상이 방진보가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랬다.

“헤헤!”

이유야 어쨌든 담호와 함께하게 된 이 여정이 좋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담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의 음식은 담호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질 좋은 음식은 육체에 충분한 영양원을 공급하여 최적의 상태를 만들게 해 줬다. 지금 담호의 육체는 최상의 상태였다.

내기는 막힘없이 휘돌고, 근육 한 올 한 올마다 활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단순히 음식 정도가 아니라 훌륭한 보약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음식을 방진보는 매순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담호가 방진보를 바라봤다.

“고맙다.”

“헤헤!”

방진보가 손가락으로 코를 쓱 문지르며 웃었다.

다음 날 새벽 세 사람은 야산을 떠나 하남성으로 들어갔다.

산서성과 인접해서인지 모르지만 하남성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리마다 무인들이 눈에 띄었다.

무인들은 저마다 허리에 무기를 찬 채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묵일광이 방진보에게 그 이유를 말해 줬다.

“소림사……. 저들은 소림사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림사요?”

“삭주가 무너진 이상 하남성도 안전지대가 아니야. 마교의 거센 파도 앞에서 어지간한 문파 따윈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질 거야. 무림맹의 지원이 요원한 지금 그나마 믿고 의탁할 수 있는 것은 소림사와 같은 거대 문파뿐. 그러니 살길을 찾아 소림사로는 몰리는 거지.”

“아!”

그제야 방진보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는 하남성뿐만 아니라 천하에서도 가장 큰 문파였다. 천 년이 넘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고수들이 즐비했고, 하남성에 있는 문파나 무인치고 소림과 연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하남성의 문파와 무인 들이 가장 의지하는 곳 역시 소림사였다. 강호인들이 소림사를 괜히 태산북두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담호가 찬찬히 무인들의 얼굴을 살필 때였다.

“혹시 담 대협 아니십니까?”

낯선 목소리가 담호의 귓전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자 신화상단(晨火商團)이라고 쓰인 커다란 깃발 아래 서 있는 삼십 대 후반의 남자가 보였다. 남자의 뒤로 커다란 마차와 짐을 한가득 실은 수십여 대의 수레가 보였다.

남자가 담호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급히 다가왔다.

“역시 담 대협이 맞군요. 저는 신화상단의 외당주 윤사일입니다. 일전에 한번 뵌 적이 있지요.”

“…….”

“여기서 또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신화상단이 왜 여기 있지?”

“소림사와의 거래 때문입니다. 일전에 거래한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림사에서 장기 거리를 원했거든요.”

“장기 거래?”

“아무래도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들다 보니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려나 봅니다. 일단 쌀 서른 대 분량을 가지고 가지만 이걸로는 턱도 없을 것 같습니다.”

윤사일의 설명에 담호가 커다란 마차를 바라봤다.

“소단주님도 오셨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안에는 신화상단의 소단주인 원설화가 타고 있었다. 그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면사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귀티가 흐르는 하얀 얼굴에 붉디붉은 입술, 그리고 고혹적인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담 대협. 오랜만이네요.”

“그렇군.”

“여기서 또 뵙다니 정말 대단한 인연이네요.”

원설화가 미소를 짓자 마차 안이 온통 환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원설화를 바라봤다.

보통 사람은 담호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한다.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설화는 그런 담호의 눈빛을 무리 없이 받아넘기고 있었다.

“혹시 담 대협도 소림사로 가시는 건가요?”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원설화의 눈에 이채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뜻밖이네요.”

“뭐가?”

“네?”

담호의 반문에 원설화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담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뭐가 뜻밖이라는 거지? 난 소림사에 가면 안 되는 건가?”

“그냥 담 대협은 그런 곳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원설화는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담호는 그런 원설화를 빤히 바라봤다.

포악한 빛이 일렁이는 담호의 새까만 눈동자에 살짝 균열이 가 있는 원설화의 얼굴이 맺혔다.

“마침 담 대협도 소림사로 가신다니 잘되었네요.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게 어떨까요?”

“동행하겠다는 건가?”

“네! 그게 담 대협도 편하시지 않을까요?”

“…….”

“어차피 같은 곳을 가는 거잖아요.”

“왜 굳이 나와 함께 가려는 거지?”

“안전하니까요.”

원설화가 생긋 웃었다.

담호가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가 급히 설명했다.

“보다시피 저희는 많은 식량을 운송하고 있어요. 요즘과 같은 난세에는 누구나 탐을 낼 수밖에 없는 물건이죠. 자체 호상단이 보호하기는 하지만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나를 호위로 쓰겠다는 건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요? 저희야 안전해서 좋고, 담 대협은 편히 소림사로 갈 수 있으니까요.”

“…….”

“공짜로 같이 가자는 것은 아니에요. 충분한 대가는 치르겠어요. 어떤가요?”

원설화의 말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넘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치명적인.

담호가 대답했다.

“그러지.”

“감사해요.”

담호의 대답에 원설화가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화려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담호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담호가 나가고 혼자 남게 되자 원설화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표정이 사라진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무서웠다.

“권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아직도 마차 안에 담호의 체취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강렬해서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한번 맡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내의 체취였다.

원설화는 평소보다 심장이 몇 배는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진정시키려 무척이나 노력해야 했다.

그녀가 겨우 평소의 표정을 되찾았을 때 윤사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윤사일이 마차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권마와 동행하시기로 한 것 정말이십니까?”

“그래요.”

“어찌 그런 결정을……. 권마는 결코 가벼이 볼 자가 아닙니다. 그런 결정을 함부로 내리시면…….”

“이미 전 결정했어요. 윤 당주.”

“알……겠습니다.”

원설화의 단호한 말에 윤사일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한번 결정을 내리면 절대 번복하는 법이 없는 원설화의 성격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원설화는 절대 결정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원설화가 중얼거렸다.

“그런 말이 있지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아가씨.”

“위험한 적일수록 더 가까이에 두고 살펴봐야 해요. 어쩌면 이건 우리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다. 아가씨가 그러시다면야.”

윤사일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권마.’

담호의 별호 두 글자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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