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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35화 (2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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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4장. 거인이 은거하는 작은 숲, 소림사(少林寺)(1)

흔히들 천하제일의 상단을 꼽으라면 누구나 다 신화상단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소금, 포목, 곡물, 무기 등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라도 취급했다.

신화상단이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라면 천하의 그 어떤 상단도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강력한 자체 호상단까지 구축해 놓다 보니 천하제일상단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신화상단의 무인들은 강력한 규율로 통제되고 있었다. 그들의 절도 어린 모습과 행동을 보자면 자유분방한 무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군인에 가까울 정도였다.

등봉현으로 가는 여정 중 노숙을 할 때면 특히 그런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노숙을 할 때면 짐을 실은 수레들을 둥글게 배치해 군진을 만들고, 마차 사이사이마다 병력을 배치해 경계를 하게 하는 모습이나, 각자의 역할에 맡게 음식을 하는 모습은 일사불란하기 그지없었다.

담호 일행의 음식까지 신화상단의 무인이 해 오니 방진보가 할 일이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세 사람은 편히 앉아서 신화상단이 해 오는 음식만 먹으면 됐다.

묵일광이 그런 신화상단의 무인들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거 정말 무섭네.”

“뭐가요?”

“신화상단 말이다. 내 수많은 상단과 표국 들을 만나 봤지만 이렇게까지 규율이 잘 잡힌 곳은 처음 본다.”

“그런가요?”

“그래! 지금 이곳에 있는 무인들 중 수준이 떨어지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어. 놀랍게도!”

“그게 놀랄 만한 일인가요?”

“그럼 놀랍지. 본래 상단을 호송하는 일엔 많은 부류의 사람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단순히 짐을 부리고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상단을 지키는 무인들, 그리고 거래를 하는 상인들까지. 수많은 부류의 인물들이 조화를 이뤄야만 상단이 잘 돌아갈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신화상단을 봐라. 이곳에 있는 자들 중 무공이 약해 보이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느냐? 하물며 허드렛일을 하는 자들도 눈이 빛나고, 행동에 절도가 있는 것이 대단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것 같다.”

“으음!”

묵일광은 누구보다 상단이나 표국에 민감한 녹림 출신이었다. 당연히 신화상단을 바라보는 그의 안목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방진보도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신화상단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조금씩 그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방진보의 시선이 이번에는 담호를 향했다.

담호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방진보가 타 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붉은 모닥불이 일렁이며 그의 얼굴에 깊은 음영을 만들어 냈다.

짙은 음영이 드리워진 그의 눈은 너무나 깊어서 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형!’

방진보는 그런 담호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그때였다.

“담 대협!”

신화상단의 외당주 윤사일이 다가왔다.

담호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윤사일이 말을 걸었다.

“어떻게, 편히 쉴 수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불편하신 곳은 없습니까?”

“없어.”

“다행이군요. 이제 이틀 후면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에 도착할 겁니다. 그 사실을 알려 드리려 왔습니다.”

“…….”

“담 대협이 동행하는 것이 소문났는지 다행히 물건을 노리는 이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마울 것 없어.”

“네?”

“어차피 서로가 좋은 일이니까. 그렇지 않나? 나는 편히 가고, 그쪽은 적들의 습격에서 안전하고.”

“그……렇지요.”

“그럼 됐어.”

그 말을 끝으로 담호가 눈을 감았다.

윤사일은 담호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엔 묘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허나 그는 이내 원래의 눈빛을 회복하고 미소를 지었다.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는 담호에게 포권을 취한 후 물러났다.

윤사일은 물러나면서도 방진보와 묵일광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담호의 무뚝뚝함이 신경 쓰였던 방진보와 묵일광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몰랐다. 윤사일이 물러나는 그 순간 원설화가 타고 있던 마차의 창문이 살짝 열렸음을. 그리고 원설화가 한동안 담호를 은밀한 시선으로 바라봤음을 말이다.

윤사일의 말처럼 등봉현으로 가는 여정은 무척이나 평탄했다. 담호가 나설 사건도 없었고, 경계해야 할 일도 생기지 않았다.

신화상단이 등봉현에 거의 도착할 때쯤 원설화는 담호를 마차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떻게,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는지요?”

“편하게 왔어.”

“다행이네요.”

원설화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마차 안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소림사까지는 머지않아요.”

“알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

“혹시 소림사 이후로 가실 곳은 정해 놨나요?”

“그건 왜 묻지?”

“궁금해서요.”

원설화는 담호의 대답에도 위축되지 않고 화사하게 웃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심장이 떨릴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마주 보고 있는 당사자인 담호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처럼 깊은 담호의 눈빛엔 원설화도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호가 대답했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누구요?”

“내가 꼭 이야기를 해 줘야 하나?”

“그건 아니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 언짢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혹시 시간이 되시면 신화상단을 방문해 주셨으면 해서요.”

“신화상단?”

“예!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신화상단의 단주님이신 제 아버님은 강호에 명성이 널리 알려진 무인들과 교분을 나누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답니다. 담 대협 같은 분과 교분을 나누게 되면 무척이나 기뻐하실 거예요.”

신화상단의 단주인 원회상은 만금충(萬金蟲)이라는 별호만큼이나 무척 탐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 인재 수집욕이 강해서 명망 높은 무인들을 빈객으로 들이는 것을 즐겨 했다.

그 때문에 신화상단에는 십대빈객(十大賓客)과 같은 무인들이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만일 담 대협이 빈객으로 들어오시게 되면 강호 어떤 이도 받지 못한 최고의 대접을 받게 되실 거예요. 막대한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수많은 미인을 손쉽게 품에 안을 수 있을 거예요.”

원설화가 다리를 꼬았다. 그러자 옷이 흘러내리면서 새하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새하얀 피부에 각진 곳이 하나 없는 매끈한 다리는 담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담호의 시선이 다리를 향하자 원설화의 미소가 더욱 화사해졌다.

그녀가 살짝 몸을 움직일 때마다 폭발적인 체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기는 뭇 남성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충분했다.

원설화는 우물(尤物)이었다.

그녀의 미소, 사소한 손짓, 몸동작 하나까지 남자의 심혼을 마비시키는 농염함을 담고 있었다. 남자라면 그녀의 유혹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붉은 혀로 입술을 살짝 핥으며 말했다.

“어쩌면 천하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인이 대협의 여자가 될지도 몰라요.”

“이를테면 당신 같은 사람 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나직했다. 하지만 묘하리만큼 또렷하게 귓전에 울려 퍼졌다. 마치 바로 곁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할 만한 조건이군.”

“그런가요?”

“그래!”

“그러면 넘어오실 건가요?”

“조만간 신화상단을 한번 찾아가지.”

“정말인가요?”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아.”

“믿죠! 담 대협의 말을 믿지 않으면 또 누굴 믿을까요?”

원설화의 눈에 기광이 일렁였다. 묘한 색감이 섞인 그녀의 눈은 너무나 유혹적이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럼 이만 가지.”

“배웅하지 않을게요.”

담호가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원설화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전뇌섭요공(全腦攝妖功) 앞에서는 부처라도 견딜 수 없지. 지금이야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목소리와 모습이 점점 더 깊이 각인될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철석간담을 가진 냉혈한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을.

전뇌섭요공은 그런 남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여인의 모든 것을 이용해서 남자를 유혹하는 희대의 사공(邪功)이 바로 전뇌섭요공이었다.

그녀가 전뇌섭요공을 운용해 남자를 유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담호라는 존재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흐음!”

원설화가 새빨간 보료에 몸을 뉘였다. 그녀의 모습은 놀랄 만큼 육감적이었다.

***

“형!”

“형님!”

방진보와 묵일광이 담호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마차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담호의 표정이 워낙 무뚝뚝해서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자.”

담호는 그들과 함께 행렬의 가장 뒤쪽으로 처졌다.

윤사일이 그런 담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설마…… 아가씨가.”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윤사일의 머릿속에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안 돼! 그는 아가씨의 공부가 통할 만한 상대가 아니야. 자칫하다가는 이쪽의 밑천이 모두 드러날 수 있어.’

윤사일이 급히 마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서 몰랐다. 담호가 잠시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형, 왜 그러세요?”

“아니다.”

대답과 함께 담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 순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등봉현이다.”

“저 앞에 등봉현이 보인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사람들의 말처럼 등봉현이 보이고 있었다. 그 뒤로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산 하나. 바로 숭산이었다. 중원오악의 하나이자, 구대문파의 수장이며 강호의 태산북두라 할 수 있는 소림사가 있는 곳이었다.

불문의 성지답게 숭산에서는 은은한 서광이 비추는 듯했다. 사람들을 절로 숙연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저곳에 소림사가…….”

방진보는 물론이고 묵일광까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소림이란 이름이 가진 무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등봉현은 수많은 무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소림과 관련이 있는 무인들이었다.

거리를 오가는 무인들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아 보였다. 외공을 극한까지 단련한 듯 양쪽 태양혈이 툭 불거져 나온 이도 있었고, 두 눈에서 날카로운 신광을 뿌리는 자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고수들이 이렇게 많다니.”

“이게 소림의 저력?”

방진보와 묵일광이 입을 떡 벌렸다.

단순히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한 문파가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면 어떤 저력을 갖게 되는지 그들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러니까 총채주님이 그렇게 중원의 명문을 견제하고 두려워한 거겠지.’

비록 얼마 전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었지만, 녹림 자체의 힘은 백 년 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수만이나 되는 녹림도는 총채주 황경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구대문파 전체라도 상대할 것 같았지만, 실제론 이곳에 모인 무인들과 소림사만 나서도 위태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황경문은 될 수 있으면 소림사와 같은 중원 명문과는 척을 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사생결단을 내겠지만, 그런 경우가 생기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새로이 등장한 신화상단의 행렬에 집중됐다. 아무래도 수많은 이들이다 보니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화상단이구나.”

그들은 신화상단의 깃발을 확인하고 나서야 경계의 시선을 풀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신화상단이 소림사와 계약을 맺고 전쟁 물자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소림사와 직접적인 계약을 맺은 상단인 만큼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호감 어린 시선으로 신화상단의 행렬을 바라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신화상단을 상징하는 커다란 깃발과 선두의 마차뿐이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행렬의 맨 후미에서 천천히 말을 말고 있는 담호와 일행을.

담호의 시선은 소실봉을 향하고 있었다.

‘소림사.’

그곳에 강호의 태산북두 소림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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