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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42화 (2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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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6장. 갈 길은 먼데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2)

상한천은 심유한 눈으로 벽에 걸린 섬서성 전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도에는 빨간 깃발이 두 개가 꽂혀 있었다.

“섬서 무림의 양대 축은 화산파와 종남파.”

상한천은 손을 들어 남쪽에 꽂혀 있던 빨간 깃발을 뽑았다. 종남산이 위치한 곳에 자리한 깃발이었다.

콰직!

버려진 깃발이 상한천의 발아래 짓밟혔다.

구대문파 중 하나인 종남파였다.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상한천도 각별히 신경 써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한천은 더 이상 종남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종남파 수뇌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모두가 단 한 명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야.’

상한천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천오경의 진신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수십 년 전에도 그는 이미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하물며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천오경은 마교 십삼지파(十三支派) 중 하나인 전검류를 잇고 있는 자.

십삼지파는 마교의 역사와 함께했다. 수많은 유파들이 마교 내에서 명멸하고, 살아남은 열세 개의 지파가 아직까지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 천오경이 잇고 있는 전검류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그들의 저력은 작금 마교의 교주조차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대단했다. 문제는 그들이 교주의 영향력하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검이나 명도면 무얼 하겠는가?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십삼지파는 그런 곳이다. 분명 마교에 소속되어 있지만, 교주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상한천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결과였다.

‘십삼지파,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터. 하지만 당장은 이용해야 한다.’

십삼지파의 하나인 전검류. 그리고 전검류의 당대 계승자인 천오경. 그 한 명에 의해 종남파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무력이었다.

상한천이 어떻게 하면 천오경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군사.”

갑자기 소리도 없이 하얀 인영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나 부복했다.

머리도 하얗고, 눈썹도 하얬다. 심지어는 눈동자와 피부마저 하얬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상한천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일몽(一夢).”

“전서입니다.”

“전서?”

“믿기 힘들겠지만 무……림맹에서 온 전서입니다.”

“무림맹?”

“정확히 군사 앞으로 왔습니다.”

상한천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손을 내밀자 일몽이 급히 품에서 전서를 꺼내 바쳤다. 전서가 담긴 봉투에는 분명 마교군사친전(魔敎軍師親傳)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상한천은 봉인된 전서를 찢어 읽었다.

전서를 읽는 내내 그의 눈에 흥미롭다는 빛이 떠올랐다.

“재밌구나.”

“무슨 내용입니까?”

“권마의 행적. 무림맹이 자세히 조사해서 보냈구나.”

“그게 무슨?”

“무림맹 안에 권마를 불편해하는 자가 있는 것 같구나. 우리의 손을 빌려 처리하고 싶은 모양이지.”

“감히!”

일몽의 눈에 은은한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상한천은 웃었다.

“그렇게 기분 나빠 할 필요 없다. 권마는 우리에게도 큰 걸림돌이니까.”

“하지만…….”

“무림맹에서 권마에게 이 정도의 원한을 가진 자가 누가 있을까? 꽤 많은 후보가 있지만, 나는 한 명밖에 생각나지 않는구나.”

“누가?”

“남궁창.”

“허나 그는 무림맹의 군사입니다.”

“남궁세가의 직계이기도 하지. 그리고 남궁세가는 권마에 의해 커다란 타격을 입었지. 가문의 주인인 남궁천이 죽었으니 그 원한도 엄청날 터. 그 정도 원한이라면 이런 수작을 부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으음!”

일몽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자 상한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뭐, 아니라도 상관없을 터.”

“어떡할까요?”

“전서대로라면 이틀 후에는 놈이 인근에 도착할 터. 자칫하다가는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럼?”

“당연히 제거해야겠지.”

상한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일몽이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너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종남파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하거라.”

“예!”

“참! 성녀는 어떻게 되었느냐?”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런가? 충격이 꽤나 컸던 모양이군.”

상한천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일몽을 뒤로하고 그가 창가로 다가가 이제까지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창밖의 전경이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

거대한 장원 연무장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마교의 무인들. 그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세가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장원의 담 너머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산이 보였다. 산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장원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 은은한 매화향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매화향이 가득한 저 거대한 산을 화산(華山)이라 불렀다.

“종남 다음은 화산 차례다.”

***

담호 일행을 태운 배는 매우 빠른 속도로 황하를 거슬러 올라갔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흐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체력이 소모되는 힘든 작업이었다. 때문에 황마채의 수적들은 전신이 녹초가 된 지 오래였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엔 탈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힘을 내어 배를 모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방진보가 그들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휴! 정말 대단하네요. 이 거친 황하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니.”

“장 채주님이 배를 모는 실력은 가히 신기에 다다랐지. 아마 그 어떤 이들도 물 위에서 장 채주님과 수하들처럼 배를 몰수는 없을걸.”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나중에 뭍에 내리면 그들을 위해 보양식이라도 해 주려무나. 그러면 좋아할 거야.”

“시간이 나면 반드시 그럴게요.”

“그럼 됐어.”

묵일광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장산우가 그들을 향해 다가와 말했다.

“앞으로 한 시진 정도만 더 가면 마지막 고비가 나타날 거야. 모두 단단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고비라뇨?”

“뱃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옥협(地獄峽)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지옥협?”

방진보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름에서부터 불길함이 물씬 느껴지고 있었다.

“얼마나 위험한 곳이기에?”

“삼문협은 그나마 물길이 세 갈래로 나뉘기나 했지, 지옥협은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거센 물결이 합쳐져 흘러. 때문에 물살이 삼문협보다 세 배는 더 거세지. 거기에다 물속에 암초가 숨겨져 있어 자칫하다가는 배 바닥이 부서져 침몰하기 십상이야.”

“으음!”

방진보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기 때문이다.

그에 장산우가 활짝 웃었다.

“하하!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설마 이 장산우가 귀한 손님이 타고 있는 배를 침몰하게 놔둘 것 같으냐? 위험하긴 하지만 내 말대로 행동하면 분명 무사히 지옥협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장 채주님만 믿을게요.”

“흐흐! 그래! 대신 무사히 지옥협을 넘으면 네 음식 좀 맛볼 수 있을까? 일광이 네 솜씨가 대단하다고 어찌나 칭찬하던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그럼요. 지옥협만 무사히 넘어서 시간만 단축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드릴게요.”

“약속한 거다.”

“네!”

“그럼 네 약속만 믿고 간다.”

장산우가 다시 수적들을 향해 되돌아갔다.

묵일광이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방진보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장 채주님이라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다.”

“네!”

“그나저나 형님도 대단하시구나. 꼬박 하루가 지났는데 꼼짝도 하지 않으시다니.”

묵일광이 질렸다는 얼굴로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는 여전히 배의 선수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느라 배가 미친 듯이 요동치는 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끔씩 격류가 덮쳐 왔지만 담호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했다.

휘몰아치고, 역류하고, 끌어당기고, 밀고…….

언뜻 보기엔 단순히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물결 속에는 수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지할 곳 없이 배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죽했으면 배를 모는 수적들조차 난간이나 벽을 짚고 움직일까? 하지만 담호는 의지하는 곳 하나 없이 선수에 우뚝 서 있었다.

쾌속선 내에서도 가장 크게 움직이는 곳이 바로 선수였다.

그런 곳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보통의 내공과 균형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담호는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물의 흐름을 느끼며 그때그때 반응했다. 단순히 발과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닌 내공의 분배를 통해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물을 느끼고 그 흐름에 자신을 동조시켰다.

물길이 거세질수록 담호는 흔들림이 없었다. 담호는 눈을 감은 채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옥협이다.”

수적들의 목소리가 담호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저 앞에 커다란 협곡이 보였다.

지옥의 입구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협곡은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위태했다. 마치 해일처럼 몰아치는 격류와 곳곳에서 삐져나와 있는 암초가 짐승의 어금니처럼 보였다.

장산우가 외쳤다.

“간다.”

“옛!”

장산우가 직접 키를 잡았다.

이런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키잡이의 능력이 필수였다.

“돛을 활짝 펴라. 바람을 가득 안아야 한다.”

“옛!”

“용일아. 그쪽 줄을 더 팽팽하게 당겨라.”

“알겠습니다.”

장산우는 마치 노련한 지휘관 같았다. 휘하의 수적들을 일사불란하게 다루는 솜씨가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의 지휘에 따라 배는 거센 격류를 조금씩 헤치고 전진해 갔다. 장산우를 비롯해 수적들의 팔뚝에 힘줄이 툭 불거져 나오고 근육이 팽창했다.

그그극!

쾌속선의 선체가 커다란 암초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선체에 조그만 구멍이 뚫리고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적들이 달려들어 판자와 망치로 구멍을 틀어막았다.

“크윽!”

방진보와 묵일광도 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텨 섰다. 그들의 몸은 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형은?”

방진보가 고개를 들어 간신히 담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담호는 아직도 꼿꼿이 서 있었다. 그토록 거세게 몰아치는 물결도 담호를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듯싶었다.

촤하학!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어나 선수를 덮쳐 왔다. 방진보는 이번에도 담호가 정면으로 맞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미동도 없이 버티던 담호가 물결에 휩쓸려 뒤로 날아갔다.

“형!”

놀란 방진보가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담호가 강물에 휩쓸려 강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츄화학!

갑자기 물길을 가르며 단창이 나타났다. 시퍼렇게 벼려진 단창은 방금 전까지 담호가 서 있던 곳을 가르며 날아갔다.

“무슨?”

방진보와 묵일광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이었다.

슈슈슉!

물속에서 단창이 튀어나와 담호를 노렸다. 담호는 갑판에 착지를 하며 단창을 하나하나 쳐 냈다.

단창을 쳐 낸 손목이 찌르르 울렸다. 그만큼 실려 있는 힘도 범상치 않다는 뜻이었다.

담호의 눈빛이 황톳빛 물결만큼이나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습격이다.”

장산우와 수적들이 놀라 소리쳤지만 담호는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권마!”

살기가 담긴 음성이 지옥협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옥협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핏빛 장포의 무인. 그는 바로 혈해판관 등천소였다. 그의 곁으로 만월선자 진혜원이 보였다.

칠대마인 중 두 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단창과 활을 든 수백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등천소처럼 붉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

마교에서는 그들을 혈명대(血冥隊)라 불렀다.

물속과 물 위에서 최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혈귀들. 그들이 담호를 노리고 습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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