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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45화 (2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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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7장. 화산은 피에 잠기고, 권마는 혈로를 걷는다(2)

사람들은 화산파 하면 연화봉에 있는 상궁을 떠올린다. 그리고 상궁에 화산파의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림사나 무당파처럼 중원의 명문 대파들은 대부분이 커다란 터에 화려한 전각군을 지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산파는 달랐다.

험한 화산에는 그렇게 많은 전각군이 들어갈 만한 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화산파의 주요 조직들은 화산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화산파 무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진무궁(眞武宮)은 운대봉 정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금천궁(金天宮), 보현궁(寶玄宮), 영보궁(靈寶宮) 등의 중지는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나마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화산 초입에 있는 옥천원(玉泉院)과 중턱에 있는 태평궁(太平宮) 정도였다.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도 옥천원이 한계였다.

옥천원은 화산으로 올라가는 관문이었다. 때문에 옥천원에는 항상 수많은 고수들이 상주해 있었다. 화산파의 관문을 지키는 곳답게 옥천원에 있는 고수들은 화산파 내에서도 정예에 속했다.

특히 당대 옥천원주인 현우 진인은 화산파에서도 내로라하는 수준의 고수였다. 당연히 무공이 고강할 수밖에 없었다.

화산파 무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현검 진인을 제외하면 화산파 내에서도 그와 대적할 수 있는 무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현우 진인이 지금 차가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온몸은 난도질당했고, 부릅뜬 눈에는 생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청강석이 깔린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원주님.”

“흐윽!”

곳곳에서 화산파 제자들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상태는 현우 진인 못지않게 처참했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채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 위로 마교의 무인들이 지나갔다.

콰직!

그들의 울음소리가 마교 무인들의 발에 짓밟혀 사라졌다.

마교 무인들은 마치 거대한 해일 같았다. 그 어떤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들은 순식간에 옥천원을 쓸어버렸다.

화음현 일대는 화산파의 영역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화산파와 음으로 양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때문에 낯선 외지인이 나타나면 바로 화산파로 전해진다.

화음현과 일대에 기거하는 모든 이의 눈과 귀가 바로 화산파가 자랑하는 정보망이었다. 그런데 마교의 무인들은 그런 화산파의 눈과 귀를 감쪽같이 속인 채 전격적으로 옥천원을 기습해 전멸시켰다.

그 중심에 상한천이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무차별적으로 습격한 것 같았지만, 이날을 위해 상한천은 꽤나 많은 사전 작업을 했다.

우선 마교의 무인들을 서너 명씩 짝을 이뤄 꾸준히 화음현 일대로 들여보냈고, 그들을 이용해 정보를 조작하게 했다.

다행히 화음현 일대에는 삭주에서 도주한 무인들과 인근의 무인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어 누구도 마교의 침투를 눈치채지 못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화산파의 눈과 귀를 가리자 이차 병력을 은밀히 옥천원 일대에 배치했다.

그렇게 모든 병력의 배치가 끝나자 마교의 정예들을 이끌고 전격 기습했다. 안과 밖에서 호응해 몰아치니 옥천원의 무인들로서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상한천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선풍도골의 노인이 보였다. 상한천이 노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노야! 정리가 모두 끝났습니다. 화산으로 오르시지요.”

“글쎄! 아직 끝난 것 같지 않구나.”

살짝 고개를 젓는 노인은 바로 천오경이었다.

상한천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무슨 말씀을?”

“느껴지지 않느냐?”

“예?”

“하긴! 아직은 네게 무리겠구나. 화산에 대단한 고수가 있어.”

천오경의 시선이 화산으로 향했다.

저 멀리 연화봉이 보였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한 줄기 강력한 기파가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저 먼 곳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상대는 강력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오는가?”

자신이 그를 느꼈듯 그 역시 자신을 느끼고 움직이고 있었다.

상한천이 뒤를 돌아봤다.

보통 사람들보다 족히 머리 두어 개는 더 큰 엄청난 크기의 거인이 보였다.

거인이 이름은 황렬. 마교의 내원 조직 중 하나인 광마전(狂魔殿)을 이끄는 전주였다.

광마전은 말 그대로 싸움에 미친 마인들만 모아 놓은 곳이었다. 성정이 천성적으로 사나운 데다가 싸움에 미친 광인들을 한곳에 몰아넣으니 사건 사고가 끊일 일이 없었다.

때문에 마교 내에서도 가장 시끄럽고 문제가 많은 조직이 바로 광마전이었다. 황렬은 그런 광마전을 완벽하게 장악한 싸움꾼이었다.

황렬의 등 뒤로 이천 명의 마인들이 보였다. 그들이 바로 옥천원을 전멸시킨 원흉들이었다.

광마전의 마인들은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마전뿐만이 아니었다. 칠대마인 중 한 명인 무적창 단호상과 그 외에도 수많은 고수들이 참전했다.

무엇보다 상한천 자신이 참전한 전쟁이었다. 일부러 지려고 해도 절대로 질 수가 없는 전력이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광기에 천오경이 문득 혀를 찼다.

‘쯧! 마(魔)에도 도가 있는 법인데…….’

저들에겐 그런 것이 없다.

저런 자들 때문에 그가 사랑하는 신교가 마교라 불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탓할 자격이 자신에겐 없었다. 자신 역시 사적인 원한 때문에 이 피의 전장에 참여를 했으니까.

그때였다.

“멈춰라!”

사자후와 함께 산 위에서 수많은 무인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화산파의 무인들이었다.

“왔군.”

천오경이 상념을 접고 화산파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그곳에 있었다.

완성된 신검을 연상케 만드는 중년의 무인 현검 진인이.

그의 등 뒤로 현천 진인을 비롯한 화산파의 고수들과 제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옥천원의 참상을 보며 분노하고 있었다.

현천 진인이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감히 마교도가 도문의 성지를 짓밟다니.”

그의 목소리는 사자후가 되어 옥천원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화산파가 대수던가? 그때도 짓밟았었는데.”

황렬이 이죽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동종이 울리는 것처럼 크고 우렁차서 사람들의 귓전에 또렷이 들렸다.

순간 현천 진인의 눈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황렬의 말은 현천 진인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패배감을 자극했다.

어떻게 그날을 잊을까?

화산이 무너지던 그날의 기억을.

그의 사부와 사숙들, 그리고 수많은 사형제들이 그날 목숨을 잃었고, 그 일은 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그 상흔은 아직도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현천 진인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지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 절치부심해 왔다.

제자들을 강하게 단련시키려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그 과정에서 담호와 같은 자들이 밀려나서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로 돌아가도 난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현천 진인이 소리쳤다.

“이곳은 천년 화산이다. 선조들의 영령이 어려 있는 이 성스러운 곳을 또다시 마교도의 발에 짓밟히게 할 것인가?”

“아닙니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호응해 힘껏 소리쳤다. 그들의 외침이 화산파의 골짜기마다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화산파의 제자다. 오늘 이곳에서 마교를 몰아내고 강호의 의기를 세운다. 우리는 강호의 역사가 될 것이다.”

“와아아아!”

현천 진인의 외침은 화산파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이 토해 낸 함성이 화산 전체를 뜨겁게 만들었다.

화산파 제자들이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들의 시야에 쓰러진 옥천원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과 함께 수학한 화산파의 제자들이었다. 당연히 도명도 얼굴도 알고 있었다.

‘이 악독한 마교도들! 오늘 사생결단을 내고 말겠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반면 마교 무인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분노와 광기를 꾹꾹 눌러 담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들은 차분히 상한천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제까지 침묵하고 있던 천오경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화산파 측에서도 현검 진인이 나왔다.

그들이야말로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최고수였다. 그 사실을 알기에 양측의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천오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노부는 신교의 천오경이라고 하네. 도장은 뉘신가?”

“현검……, 그것이 내 도명이오.”

“역시 현검 진인이었군. 화산파의 현검 진인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

“과찬이시오. 노야.”

현검 진인이 정중히 대답했다. 평소 광오하기 그지없는 현검 진인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천오경과 대면한 순간부터 그의 육신이 멋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현검 진인만큼은 천오경의 강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강함은 현검 진인으로 하여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천오경은 현검 진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소문이 진실을 반도 담지 못한 것 같군. 최근에 빼어난 성취가 있었던 것 같네만.”

“최근에 기연이 있었소이다.”

“기연이라. 그것 참 부럽군. 어떤 기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무력이 상승했는지.”

“무인의 기연이라는 것이 따로 있겠소이까? 싸우면서 심득을 얻는 것이지요.”

“과연 누구와 싸웠기에 그 정도 심득을 얻었는지 궁금하구먼. 알려 주실 수 있겠는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친분이 돈독한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들의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현검 진인이 말했다.

“정히 궁금하다면 나를 이기십시오. 그러면 자연 알게 되실 거외다.”

“화산……. 정말 대단한 곳일세. 현소라는 거목에 이어 도장과 같은 신검을 세상에 내놓다니.”

“현소 사제를 아시오?”

현검 진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천오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네. 나는 그처럼 도력이 높은 사람은 처음 봤네.”

“확실히 현소 사제는 도력이 높소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근래에 그 사실을 깨달았소이다.”

“현소 아우에겐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화산은 그가 정말 사랑하는 곳인데 이렇게 검을 들고 쳐들어오게 돼서.”

화산으로 올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바로 현소 진인이었다. 그와는 불과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지만 그 어떤 지인보다 더 깊은 친분을 쌓았다.

현소 진인이 사랑한 대지에 검을 겨눠야 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하지만 제자의 복수는 그의 눈을 멀게 했고, 결국 이곳에 오게 만들었다.

현검 진인이 그런 천오경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곳이 강호 아니겠소이까?”

“그렇지! 그런 곳이 강호지. 그래서 더 무섭지. 한 번 얽힌 은원은 절대 풀 수 없으니.”

천오경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현소 사제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그냥 물러갈 수는 없겠소이까?”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러고 싶네. 허나 그럴 수가 없군. 혹시 이곳에 백전문의 소문주가 머물고 있는가?”

“그건 왜 물으시오?”

“강호에서 사람을 찾을 때는 단 한 가지 이유뿐이지.”

“은원(恩怨).”

“맞네! 그 아이가 내 제자를 죽였다네.”

“으음!”

현검 진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강호에서 은원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와 같았다. 일단 한 번 엮이면 자력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였다.

“내가 백전문의 소문주인 초연운입니다.”

장내에 초연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뒤늦게 화산을 내려온 그의 손에는 거대한 백전전승기가 들려 있었다. 백전전승기를 보는 순간 마교 무인들의 눈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마교에겐 수치의 상징인 백전전승기였다. 그들의 어깨가 수치심으로 덜덜 떨렸다.

천오경의 시선이 백전전승기를 들고 있는 초연운을 향했다.

“초연운……. 그렇구나. 네가 초연운이구나.”

“노인장께서는 뉘신데 그렇게 저를 찾는 겁니까?”

“나는 너에게 제자를 잃어 분노하고 있는 못난 사부란다.”

“제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노인장에게 사과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강호에서의 싸움은 필수적으로 은원을 동반하게 마련이니까.”

“안다. 만약 네가 그랬다면 나도 섭섭했을 게다.”

초연운의 당찬 대답에도 천오경은 담담히 미소 지었다. 그의 모습은 도저히 제자의 원수를 보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초연운은 느낄 수 있었다. 천오경의 눈빛 속에 담긴 살의를. 깊은 슬픔을. 그의 모습에서 초연운은 누군가의 얼굴을 겹쳐 떠올렸다.

“조자경……. 노인장은 그의 사부군요.”

“그렇다.”

“그는 내가 싸워 본 그 어떤 무인보다도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당한 승부로 그를 이겼기에 난 한 점의 부끄럼도 없습니다.”

“넌 부끄러울 게 없단다. 허나 난 부끄럽구나. 제자의 복수에 눈이 멀어 네 사부를 죽였으니.”

“지금 뭐라 하였습니까?”

“제자를 잃은 단장의 고통을 네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네 사부를 죽였다. 어떻느냐? 나와 같은 아픔을 느끼겠느냐?”

“무슨 헛소리야? 사부가 죽었다고?”

“그것이 내가 네게 할 수 있는 복수다. 너 역시 평생을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려무나.”

“으아아아!”

초연운의 절규가 화산에 울려 퍼졌다.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다.

그가 천오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이 전쟁의 시발점이 됐다. 화산파와 마교가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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