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249화 8장. 친구여……(3)
“크윽!”
초연운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엔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저 멀리 현검 진인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에 검이 꽂힌 채 무너지는 현검 진인의 모습은 곧 화산의 무너짐을 의미했다.
현검 진인의 죽음은 화산파 제자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 사숙이…….”
“어떻게?”
현검 진인은 화산의 하늘이었다. 현검 진인의 죽음은 곧 화산의 하늘이 무너짐을 의미했다.
사기가 떨어진 화산파 제자들은 손발이 어지러워졌고, 마교의 고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현검이 죽었다.”
“화산도 별것 아니다.”
마교 무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마치 해일처럼 화산파 무인들을 휩쓸어 갔다.
초연운은 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단호상에게 막혀 그럴 수가 없었다.
콰콰콰!
단호상의 창법은 실로 무서웠다.
그가 창을 한번 내찌를 때마다 십여 개의 창영이 초연운을 압박했다.
“팔황섬망(八荒閃網).”
초연운은 팔황신권을 펼쳐 창영을 소멸시켰다.
“제법이구나. 허나 설익었어. 그 정도 실력으로는 본좌의 옷자락 하나도 스치지 못한다.”
단호상이 초연운을 비웃었다.
벌써 수십여 차례나 손속을 교환했다. 초연운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손에 들고 있는 백전전승기 때문이었다. 한손으로 백전전승기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 팔황신권을 펼치려니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전전승기를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적들이 호시탐탐 백전전승기를 노리고 있었다. 백전전승기를 내려놓는 순간 적들에게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큭!”
초연운이 입술을 질겅 깨물며 옷소매를 길게 찢었다. 백전전승기를 등에 댄 채 길게 찢은 천으로 칭칭 동여맸다.
그 모습을 본 단호상이 초연운을 비웃었다.
“끝까지 어리석구나. 그깟 깃발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발목을 묶어 둘 셈이냐?”
백전전승기를 몸에 묶음으로써 잠시 동안 보호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길게 보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타닥!
단호상이 빠른 속도로 초연운을 향해 쇄도했다. 그의 손에 들린 창이 무서운 속도로 자전(自轉)을 했다.
단호상은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쐐애액!
공기를 발기발기 찢어 버리며 그의 창이 초연운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죽어랏! 백전문의 애송이!”
순간 초연운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골참육단(骨斬肉斷),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초연운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공력이 극한까지 주입된 그의 주먹은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리석은!”
맨주먹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창에 맞서려 하다니. 같은 위력의 공격이라면 창이 든 쪽이 훨씬 더 유리한 것이 상식이었다.
콰득!
“큭!”
거친 파열음과 함께 초연운이 나직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왼 손바닥이 창날에 꿰뚫려 있었다. 손바닥의 뼈가 으스러지고, 뚫린 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단호상의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거보라니까.”
“잡았다.”
“뭐?”
콰직!
초연운이 씨익 웃으며 창날에 꿰뚫린 손을 꽉 움켜잡았다.
단호상이 놀라 창을 잡아 뺐다. 하지만 초연운의 손에 잡힌 창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호상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찰나 초연운의 반격이 시작됐다.
“챠앗!”
팔황신권의 절초가 연이어 펼쳐졌다.
팔황복마(八荒伏魔), 팔황무극(八荒無極)의 초식이 쏟아져 나왔다.
“크윽!”
단호상은 하는 수 없이 창 자루를 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후퇴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
창을 주 무기로 사용하지만, 창이 없다고 해서 그의 무력이 크게 낮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맨손으로 추혼창법(追魂槍法)을 펼쳐 냈다.
쩌어엉!
주먹과 주먹이 격돌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들썩였다. 내상을 입은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응방식은 사뭇 달랐다.
초연운은 전진했고, 단호상은 물러났다.
단호상은 후퇴하면서 방어식을 펼쳤고, 초연운은 앞으로 달려들면서 공격했다.
파스스!
그의 왼손은 여전히 창에 꿰뚫린 채였다. 그래도 초연운은 개의치 않고 최강의 절초를 펼쳤다.
이제까지 내공이 모자라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초식 팔황개천(八荒開川)을.
내공이 전신을 치달았다. 불같은 거력이 양 주먹에 모였다. 그 대가로 심맥이 크게 흔들리고 내장이 진탕되었다.
공력이 모자라기에 일단 한 번 펼치면 전신이 탈진되어 완벽한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래도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한 수에 나의 모든 것을 건다.’
강기가 일점에 응축됐다.
단호상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절초를 펼쳤다.
비록 창이 아닌 맨손으로 펼쳤지만 그 위력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쿠콰콰강!
강기와 강기가 격돌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크아악!”
“케엑!”
일대에 있던 무인들이 강기의 폭발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눈앞에서 일어난 엄청난 참화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놀란 것은 격돌한 당사자인 초연운과 단호상이었다.
“크윽!”
“큽!”
그들의 안색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서로에게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힌 것이다.
그들의 전신 곳곳엔 엄청난 상처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고, 흘러내린 선혈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의 중상이었다. 그런 엄청난 상처를 입고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들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들을 버티게 만들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어린놈!”
단호상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제까지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무인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특히 초연운처럼 젊은 무인은 더더욱 없었다.
“흐으!”
초연운이 웃었다. 드러난 잇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의 몸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은 초인적인 의지와 백전전승기였다.
등 뒤에 묶은 백전전승기가 지지대가 되어 그의 몸을 받쳐 주고 있었다.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가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백전전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백전전승기를 지지대 삼아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적인 단호상조차도 진정으로 감탄하게 만들었다.
“와아아!”
거대한 백전전승기 아래 우뚝 서 있는 초연운의 모습은 꺼져 가던 화산파 무인들의 사기를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반대로 한참 기세를 올리던 마교의 무인들은 초연운의 모습에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초연운과 백전전승기를 묶었던 천이 끊어졌다. 초연운은 하는 수없이 바람에 펄럭이는 백전전승기를 한손으로 굳게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천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위풍당당했다.
“화산을 짓밟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와 백전전승기를 넘어서라.”
그의 거대한 외침은 사자후가 되어 화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일당천의 기세였다.
지치고 다친 젊은 사자는 그렇게 오롯한 존재감으로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묶어 놓았다.
“초 사형!”
멀찌감치 떨어져 싸우던 단화란이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백전문의 제자들 역시 그런 초연운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그때였다.
푸욱!
“커헉!”
갑자기 초연운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가슴에 기다란 칼날이 삐죽 빠져나와 있었다. 누군가 등 뒤에서 기습을 한 것이다.
“누구냐?”
분노 섞인 노성을 토해 낸 이는 초연운이 아닌 단호상이었다.
초연운과의 대결은 두 사람만의 싸움이었다. 그곳에 누군가 끼어드는 것을 그는 바란 적이 없었다.
단호상의 물음에 답한 이는 바로 상한천이었다.
“미안하오, 단 장로.”
“무슨 짓이오? 군사.”
“지금은 전시 상황, 한가하게 시간을 허비할 시간이 없소.”
상한천의 차가운 대답에 단호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상한천은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무감각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한천은 전장을 주재하는 자.
정파와의 전쟁이 벌어진 이상 그는 마교 내의 그 누구보다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교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인이 그의 지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칠대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만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단호상은 꾹꾹 눌러 참았다.
상한천은 단호상을 지나쳐 초연운에게 다가갔다.
“크앗!”
초연운이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기를 방출했다. 그에 등 뒤에서 기습했던 무인이 가슴이 터져 나간 채 뒤로 나가떨어졌다.
초연운을 기습한 이는 바로 군사 상한천의 직속 부대인 환마대(幻魔隊)의 무인이었다. 환마대는 오직 상한천의 명령만 듣는 살귀들이었다.
어느새 상한천과 초연운의 주위에는 환마대가 소리도 없이 포진하고 있었다.
상한천이 초연운은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놔라.”
상한천의 시선이 꽂힌 것은 바로 초연운의 손에 들린 백전전승기였다.
정파에겐 영광의 신물이었지만, 마교에겐 패배와 굴욕의 상징이었다. 마교에 몸을 담은 자라면 누구나 백전전승기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상한천도 마찬가지였다.
“내놔라! 백전전승기.”
“좆……까.”
초연운이 욕설과 함께 상한천의 얼굴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끈끈한 붉은 침이 상한천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상한천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다. 하지만 상한천을 잘 알고 있는 이라면 지금 그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한천이 뒤돌아서며 말했다.
“백전전승기와 함께 세상에서 지워 버려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환마대가 움직였다.
사사삭!
소리도 없이 다가온 환마대의 검이 초연운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크헉!”
초연운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옆구리가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쩍 벌어진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초연운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공격한 환마대의 머리를 붙잡았다.
퍼석!
환마대의 머리가 수박처럼 부서져 나갔다.
“나는 초연운이다.”
푹!
그 순간 등 뒤에서 다시 검이 꽂혔다. 또 다른 환마대가 암습한 것이다.
초연운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두 손으로 백전전승기를 잡은 채 겨우 버티고 선 것이다.
“크흑! 내가 백전전승기의 주인이란 말이다.”
그의 시선이 손에 들린 백전전승기를 향했다.
아직 백전전승기는 힘껏 휘날리고 있었다. 백전전승기에 빼곡히 서명한 수많은 문파들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저 깃발 하나만 바라보고 이곳까지 달려왔다.
백전전승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꺾여서는 안 된다.
초연운이 백전전승기를 휘둘렀다. 암습하던 환마대의 무인 두 명이 백전전승기에 걸려 나가떨어졌다.
그들이 흘린 피가 백전전승기를 붉게 물들였다.
초연운이 온힘을 모아 소리쳤다.
“나는…… 초연운, 나는 백전전승기를 지키는 자. 나는…… 커헉!”
서걱!
그 순간 환마대의 검이 다시 한 번 초연운의 복부를 관통했다. 초연운이 울컥 토한 피가 백전전승기를 붉게 물들였다.
‘사부!’
초연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종남산에서 죽은 사부가 눈에 아른거렸다. 사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깃발이 부끄럽지 않은 무인이 되거라. 연운아.
초연운이 백전전승기로 몸을 지탱하며 외쳤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