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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51화 (2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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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화 1장. 화산엔 권마가 있다(1)

담호는 초연운의 입에 구전활독단 한 알을 넣어 주고 일어섰다. 신의 종리연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구전활독단의 약효는 실로 대단해서 단숨에 초연운의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형!”

담호의 뒤를 조용히 따라온 방진보와 묵일광이 급히 초연운의 상처를 지혈하며 보살폈다. 하지만 장내의 누구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온통 담호, 단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담호란 인간의 존재감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시선을 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담호에게서 잠시라도 시선을 떼는 순간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그들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수많은 무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담호는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화산을 둘러보았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봄의 화산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녹음이 가득했고, 곳곳에 매화가 피어나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십 수 년을 떠나 있었지만 아직 그 광경은 눈에 생생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억과 전혀 달랐다.

울창하던 산림은 무참히 파괴되어 있었고, 곳곳에서 불길과 초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흘린 피가 화산을 붉게 물들였고, 피비린내가 봄의 매화 향을 잡아먹고 있었다.

화산에 감흥 따윈 없었다. 이곳에 좋은 기억이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사부는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 화산을 사랑했다.

사부가 사랑한 화산이 마교에 처절하게 짓밟히고, 그의 유일한 친구가 피바다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담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오한을 느끼고 몸을 흠칫 떨었다.

그때 이제까지 담호를 지켜만 보고 있던 상한천이 앞으로 나섰다.

“권마 맞나?”

“…….”

“맞는가 보군. 내가 듣기로는 화산에 그리 큰 애정이 없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군.”

상한천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담호의 전신은 피로 목욕을 한 듯 새빨갰다. 그만큼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왔다는 뜻이다.

‘등천소와 진혜원, 거기에 혈명대까지 보냈는데도 모조리 전멸했단 말인가?’

상한천은 그제야 자신이 담호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칠대마인 중 두 명과 혈명대를 보냈음에도 전멸했다면 이자의 무력은 사대군장과 호각, 혹은 그 이상…….’

상한천의 눈동자에 격랑이 일었다.

사대군장은 마교에서도 최강의 무인들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교주의 양 날개라 할 수 있는 흑백사자가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본다면, 실질적인 마교 최강의 전력과 동급의 무력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화산에서 자네 같은 무인이 나온 줄 모르겠군. 무림맹이 포용하기엔 너무 흉포해. 그러니 그들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상한천이 손을 내밀었다. 담호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상한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화산은 자네가 머물기엔 좁네. 그가 있는 이상 무림맹은 자네를 절대 포용할 수 없어. 차라리 본교로 들어오게. 이제까지 자네 때문에 당한 피해는 불문곡직할 터이니 본교에서 나래를 활짝 펴시게나.”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나직했지만 이상하리만큼 귀에 또렷이 들렸다.

상한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많은 이들이 담호가 그의 말을 따를 거라 생각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런 예감이 들었을 뿐이다.

담호는 물끄러미 상한천이 내민 손을 바라봤다.

그 어떤 굳은살도 박이지 않은 매끄럽고 하얀 손. 단순히 손만 놓고 봤을 때는 여인의 섬섬옥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상한천이 내민 손을 잡는다면 온갖 부귀영화가 따라온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며 담호와 상한천을 번갈아 바라볼 때였다.

쾅!

갑자기 마른하늘에 뇌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상한천이 비칠거리면서 물러나고 있었다. 단정하던 그의 머리칼은 산발이 된 채 흩날리고 있었고,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졌다.

상한천의 눈앞에 주검이 생겨나 있었다. 언제나 그를 호위하던 군사부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상한천의 곁에서 담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담호가 움직이는 그 순간 그들은 몸을 던져 상한천의 앞을 막았다.

그 덕에 상한천은 겨우 목숨을 구했지만 몸을 던졌던 무인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미친!”

상한천이 치를 떨었다.

그 어떤 대화도 통하지 않는 미치광이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다짜고짜 공격해 올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담호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팟!

충보가 펼쳐졌다.

점과 점을 잇는 최단의 거리 끝에 상한천이 있었다.

담호의 목표는 바로 상한천의 머리였다. 그의 머리를 향해 담호의 파성추가 펼쳐졌다.

상한천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군사부의 다른 무인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담호보다 빠를 수가 없었다.

쩌엉!

“크흑!”

순간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상한천은 죽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앞을 새하얀 인영이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도 하얗고, 눈썹도 하얬다. 심지어는 눈동자와 피부마저 하얬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상한천을 대신해 담호의 주먹을 막은 남자는 바로 일몽이었다. 평소 절대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법이 없는 그였지만, 상한천의 위기에 불문율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몽의 입가에 선혈이 내비쳤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기이잉!

그 순간 담호의 다리가 기묘한 곡선을 그리더니 일몽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앙!

“커헉!”

일몽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머리를 피했지만 어깨가 걸린 것이다.

왼쪽 어깨가 탈골되어 덜렁이고 있었다.

“미친놈!”

“멈춰라!”

그제야 마교의 무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담호에게 덤벼들었다.

콰쾅!

연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교의 무인들이 피 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 덕에 일몽은 잠시나마 숨을 돌릴 여유를 얻었다.

일몽이 급히 탈골된 어깨를 잡고 상한천의 곁으로 물러났다.

“무사하십니까?”

“덕분에.”

상한천이 이를 악물었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상한천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엔 당혹감과 은은한 공포가 여과 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담호의 공격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담……호. 반드시 죽여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비록 일순간이긴 했지만 그는 담호의 주먹에서 자신의 죽음을 봤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것이 일상인 마교에서 일상을 보낸 상한천이었지만 이렇게 흉험한 순간을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느끼는 심리적인 충격은 더욱 컸다.

상한천의 시선이 황렬과 단호상을 향했다.

일몽을 제외하면 화산에 오른 무인들 중 가장 강력한 이들이 바로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광마전주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칠대마인의 일인이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자부하는 두 사람이 지금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큼 담호가 보여 준 모습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상한천이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반드시 저자를 죽여야 하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가 말한 희생 안에는 황렬과 단호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두 사람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크읏! 어쩐지 쉽다 했지.”

“화산은 멍청이들의 집단이었군. 저런 괴물을 거두지 못하고 포기하다니.”

두 사람이 중얼거리며 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담호의 주위에 커다란 공터가 생겨나 있었다. 공터 바닥에는 수많은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얼핏 봐도 오십 구가 넘는 시신들. 그 잠깐 사이에 담호에게 죽은 마교 무인들이었다.

마교 무인들의 얼굴에 짙은 공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은 마교를 위해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나 처참했다.

담호에게 죽은 이들치고 멀쩡한 시신이 하나 없었다. 가슴이 터지거나 머리가 쪼개져 회백색 뇌수를 흘리는 시신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모든 이에게 죽음은 공평하다지만 저런 꼴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속에 공포가 자라났다.

반면 모든 것이 무너진 화산파의 무인들에게 담호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중에서도 화산파의 장문 제자인 무경이 느끼는 감정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천……경.”

자신이 천금마옥에 버려두고 왔던 담호였다.

다른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그 한 명을 포기한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항상 커다란 바위가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담호가 화산에 있을 때 누구보다 담호를 잘 챙겨 주었던 것은 단순히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었다. 다리를 저는 주제에 무공을 파고들던 담호가 불쌍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담호를 돌봄으로써 화산파의 대제자라는 위신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화산파의 대제자는 이렇게 무기력한데, 내가 버린 저 아이는 화산의 빛이 되었구나.”

무경이 비틀거리더니 갑자기 피를 왈칵 쏟아 냈다.

“사형!”

“대사형!”

근처에 있던 운경이 달려왔다.

운경이 급히 무경을 부축하며 물었다.

“사형, 괜찮으…….”

무경의 상처를 확인하던 운경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경의 복부에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어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라신선이 와도 치료할 수 없는 중상이었다. 그런 중상을 입고도 이제까지 서 있었던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무경이 힘겹게 운경을 올려다보았다.

“사……제.”

“말하지 마십쇼. 상처가 벌어집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치료할 테니까.”

“흐흐!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을까?”

“사형?”

“날 구하려 하지 마. 내 상처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크흑!”

운경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평소 누구보다 냉철한 운경이었지만, 처참하게 무너진 화산파와 무경의 모습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운경의 품에 안긴 채 무경이 힘없이 말을 이었다.

“사부도 돌아가셨고, 장로님들도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손실은 화산제일검인 현검 진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화산은 구심점과 힘을 잃었다. 다행히 오늘 마교를 물리치더라도 화산에 남은 것은 쇠락의 길뿐. 운경.”

“사형?”

무경이 운경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천경을 중심으로 뭉쳐라. 오직 그만이 화산에 남은 한 줄기 빛이니까.”

“크윽!”

운경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구나. 너에게 이런 큰 짐을 지어서. 특히 천경에게 미안하구나. 이제 와서 이런 부탁이라니…….”

무경이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담호가 걸려 있었다. 몇 번이나 그를 만지려고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담호는 만져지지 않았다.

“천경…… 권마여…… 부디 화산을…….”

“사형?”

무경의 손이 덜컥 떨어져 내렸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운경은 무경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다. 아직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운경은 무경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누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외쳤다.

“화산의 제자들아!”

바닥난 내공까지 모조리 끌어서 외친 사자후였다.

화산파 제자들의 시선이 운경에게 집중됐다.

“대사형이 돌아가셨다. 장문인도 돌아가셨다. 그리고 현검 사숙도 돌아가셨다. 그리고 수많은 문도들이 죽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크흑!”

아직 살아 있는 화산파 제자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죽는 것이 두려우냐?”

“아닙니다.”

“몰락한 화산이 부끄러우냐?”

“아닙니다.”

싸우는 와중에도 화산파 무인들이 목이 터져라 대답했다. 그들의 외침이 화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는 끝까지 싸우겠다. 이 한 목숨 다 바쳐서라도 화산을 침범한 악도들을 끝까지 죽이다 죽겠다.”

운경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에 담호가 있었다.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이 화산파의 제자들이 운경을 따랐다.

운경이 담호의 뒤에 섰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그 뒤에 섰다.

전신에 상처를 입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눈빛엔 독기가 가득한 그들의 모습은 이제 거의 포기하고 있던 군웅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 중심에 담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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