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252화 1장. 화산엔 권마가 있다(2)
담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자신을 따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 명 상한천에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상한천에게 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있었다.
황렬과 단호상이 바로 담호가 넘어서야 할 관문이었다. 그들이 침중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담호도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츠으으!
그의 몸 주위로 붉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가 뒤집어쓴 피가 증발하는 것이다.
붉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담호의 모습에 단호상이 고개를 내저었다.
“휴! 산 넘어 산이군.”
초연운을 상대한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가하게 앉아서 쉴 수도 없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강호에서 가장 위험한 자였다. 그런 자를 상대로 몸이 안 좋다고 엄살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호상이 창을 힘껏 움켜잡았다.
반대로 투지를 불태우는 자도 있었다. 그는 바로 광마전주 황렬이었다.
싸움에 미친 광마전을 이끄는 주인답게 그는 어떤 경우에도 투지를 누그러트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담호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 권마라더니. 제법이구나.”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올라왔다. 이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래서 더 즐거웠다.
팟!
그 순간 담호가 대지를 박찼다.
“흐읍!”
콰드득!
황렬이 공력을 끌어 올리며 담호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근육이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야수마공(野獸魔功).
황렬을 광마전의 전주로 만든 마교의 비전절공이었다. 천생의 괴력과 강인한 근골을 타고 태어나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괴공이었다.
담호의 공격이 처음으로 막혔다. 황렬은 손바닥으로 막은 담호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잡았다.”
황렬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호상이 창을 날렸다.
쐐애액!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사람들은 담호가 단호상의 창에 꿰이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그 순간 담호의 몸이 팩 돌아갔다. 동시에 담호의 팔을 쥐고 있던 황렬의 거대한 몸체가 거짓말처럼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천격이 펼쳐진 것이다.
까앙!
단호상의 창은 황렬의 등에 격중 했다. 다행히 야수화가 된 황렬의 몸은 강철보다 단단해서 단호상의 창을 튕겨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충격은 단호상의 창격에 비할 수 없이 엄청났다.
콰아앙!
황렬의 거대한 몸통이 대지에 그대로 직격하며 마치 벽력탄이 터진 듯한 폭음이 화산에 울려 퍼졌다.
“크으!”
황렬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토록 엄청난 충격을 입었음에도 황렬은 그리 큰 내상이나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야수화가 되었을 때 그의 육체는 무적이었다.
“이놈!”
황렬은 노성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콰직!
그 순간 그의 턱에 담호의 무릎이 작렬했다. 황렬의 고개가 용수철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육체에 상처는 없었지만 뇌가 흔들려서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그런 황렬의 관자놀이에 담호의 팔꿈치가 다시 작렬했다.
쾅!
“크으!”
황렬이 비칠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물이 두세 개로 겹쳐 보이고 이명이 고막을 파고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멈춰랏!”
단호상이 황렬의 위기에 창을 날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담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새 황렬의 등 뒤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쾅!
단양타의 일격이 황렬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이 교활한 놈!”
단호상이 치를 떨었다.
담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황렬을 엄폐물 삼아서 공격하고 있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가 바위를 뚫기 마련이었다. 지금 담호가 하고 있는 공격도 그와 같았다.
얼핏 보면 무작위로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담호는 집요하게 황렬의 머리만 노리고 있었다.
쾅! 쾅!
황렬의 머리가 주판알처럼 이리 튕기고, 저리 튕겨 나갔다.
단호상은 담호의 손에서 황렬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렬의 거대한 몸체 뒤에 몸을 숨긴 담호를 일순간에 어찌할 수는 없었다.
“크으!”
그때였다. 담호에게 정신없이 일격을 허용하던 황렬이 정신을 차렸다. 위기의 순간 야수마공이 혼란에 빠져 있던 그의 뇌를 일깨운 것이다.
농락을 당했다고 생각한 황렬이 온 내공을 폭발시켰다. 호신강기를 펼쳐 담호를 떨쳐 내려고 한 것이다.
쿠콰콰!
호신강기가 순식간에 영역을 확장하며 담호를 엄습했다.
상식적으로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호신강기를 피해 뒤로 물러나 다시 기회를 노릴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쿠우우!
담호의 몸 주위로 한 줄기 기류가 휘돌았다. 폭마경이었다.
폭강과 호신강기가 격돌하며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쿠콰콰쾅!
“큿!”
연이어 일어나는 폭발은 너무나 강렬해서 틈을 노리던 단호상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기의 폭발이 그의 시야를 가렸다.
콰가각!
거대한 폭발 속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소음이 섞여 나왔다.
‘타격음?’
단호상의 초인적인 감각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두들겨 팰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냈다.
“제기랄!”
단호상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폭발 속으로 연이어 창을 찔러 넣었다.
추혼창법(追魂槍法)의 절초 중 하나인 추혼광멸(追魂光滅)이 펼쳐졌다.
마치 창이 수십 개로 분열한 듯 동시에 수많은 공간을 찔렀다.
얼핏 보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창을 찌르는 것 같았지만, 그는 교묘히 황렬을 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믿었다.
강기가 어린 창격이 비처럼 쏟아졌다.
순간 단호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창대를 쥔 손에 반응이 느껴졌다. 창날이 육체를 파고들 때의 그 느낌이었다.
‘잡았다.’
그가 내심 쾌재를 부르며 창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마치 거대한 바위틈에 낀 것처럼 창날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큭!”
그제야 단호상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앵!
단호상이 굳건히 잡고 있던 창대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했다. 단호상은 맹렬한 회전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창대를 놓고 말았다.
그의 손바닥은 가죽이 벗겨져 나가 시뻘건 살점이 드러나 있었다. 단호상의 얼굴에 고통보다 수치스러운 빛이 어렸다.
창을 무기로 삼는 무인이 창을 놓쳤다. 자부심이 강한 무인에게 그보다 수치스러운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단호상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쐐애액!
그 순간 창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왔다. 단호상 자신의 창이었다. 단호상은 양 손바닥에 공력을 집중해 자신의 창을 받았다.
쾅!
“커흑!”
가공할 충격에 단호상이 피를 토해 냈다. 막대한 충격에 전신이 찌르르 울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창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
그때 폭발이 끝나고 장내의 전경이 드러났다.
단호상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릅떠졌다.
황렬이, 그 거대한 육체가 담호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과 몸은 터지고 일그러져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들 만큼 끔찍했다.
강철보다 단단하던 육체가 흐물흐물한 것이 꼭 육지에 올라온 문어 같았다.
굳이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광마전주 황렬은 맞아 죽었다.
극강의 초식이나 절초가 아닌 단순한 주먹질로 천하의 황렬을 때려죽인 것이다.
“맙소사!”
“말도 안 돼!”
담호는 무자비하면서도 끔찍한 폭력의 끝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도 천하의 황렬을 상대로 말이다.
담호의 옆구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것이 단호상의 창격에 의한 상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중상을 입은 채 황렬을 때려죽인 담호의 모습은, 마교 무인들의 기를 질리게 하기 충분했다.
담호의 시선이 단호상을 향했다.
칠대마인 중 둘에 혈명대와 황렬까지 상대했다. 그의 전신엔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일어서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실제로 담호가 입은 내상은 심상치 않았다.
기혈이 흔들리고, 내장이 진탕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안에 입은 상처가 더 끔찍했다.
그런데도 담호는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단호상의 심령 기저를 흔들었다.
털썩!
담호가 황렬을 잡은 손을 놓았다. 거대한 황렬의 동체가 힘없이 무너졌다.
너무나 끔찍한 결과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황렬은 광마전주였다. 싸움에 미친 투귀들의 정점에 서 있는 자. 누군가를 패 죽이면 죽였지, 절대로 맞아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황렬이 압도적인 폭력에 맞아 죽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그들의 눈앞에서 일어났다.
부르르!
마교의 무인들 눈에 비친 담호는 인간이 아니었다. 폭력의 화신이었고, 무자비한 짐승이었다.
다리를 저는 짐승이 쓰러진 황렬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백전전승기로 휘감은 그의 양팔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언뜻 보이는 글자 역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백전전승기를 타고 흐른 핏물이 담호의 주먹 끝에 맺히는가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뚝!
바닥에 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만큼 화산에는 지독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담호가 다가오는 만큼 단호상이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창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그제야 단호상은 자신이 담호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크윽!”
단호상의 얼굴에 굴욕감이 떠올랐다.
마교의 칠대마인이라는 자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생사투 끝에 쟁취한 영광된 자리였다. 그만큼 수많은 싸움을 했고, 많은 이들의 피를 손에 묻혔다.
감정은 마모되었고, 인성은 파괴되었다. 때문에 두려움은 물론이고, 그 어떤 인간적인 감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담호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담호가 한 걸음 다가왔다. 단호상은 두 걸음 물러섰다. 그러다가 발에 무언가 걸려 멈춰 섰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시신이었다.
그제야 단호상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교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화산파의 무인들까지도 말이다. 더 이상 물러났다가는 무인으로서의 삶도 끝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단호상이 애써 창을 힘껏 움켜잡았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창 한 자루뿐이다.
그때였다.
“위축될 것 없소. 단 장로.”
누군가의 음성이 단호상의 귀를 파고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상한천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모두 다 허세요.”
“허세?”
“저 상처들이 보이시오? 지금 저자는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소.”
상한천의 음성에 단호상이 담호를 자세히 살폈다.
언뜻 냉막한 듯 보이는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그만큼 그의 전신은 엄청난 상처로 도배되어 있었다.
특히 옆구리에 난 구멍에서는 아직도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추혼창이 낸 상처였다.
담호의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등천소와 진혜원과의 사투, 그리고 악착같이 따라붙던 혈명대와의 전투 후에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담호는 단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피륙으로 이뤄진 인간인 이상 그도 언젠가는 체력이 다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담호의 한계는 극한에 봉착해 있었다.
그제야 단호상은 자신의 공격이 담호에게 통했음을 상기했다. 그의 눈에서 사그라들었던 투지가 다시 떠올랐다.
상한천이 그 모습을 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광마전의 무인 백여 명이 단호상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합공을 할 작정인 것이다. 평소라면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단호상이었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했다.
단호상과 광마전의 무인들이 투지를 불태우며 담호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담호가 말없이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잡히는 단환 하나, 바로 구전활독단이었다. 담호는 망설임 없이 구전활독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창백하기만 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담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종리연이 그에게 준 구전활독단의 약효는 진짜였다.
지쳐 있던 그의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저, 저?”
단호상이 놀라는 그 순간 담호가 그와 광마전 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간다.”
“와아아!”
그 뒤를 화산파의 무인들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