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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53화 (2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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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화 1장. 화산엔 권마가 있다(3)

콰앙!

제일 먼저 피 떡이 되어 날아간 것은 광마전의 무인이었다. 마치 거대한 바위에 얻어맞은 것처럼 그의 안면과 상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져 바닥을 굴렀다.

비명도, 반항도 없었다. 담호는 어육이 된 그의 시신을 짓밟고 몸을 날렸다.

쿠와앙!

다시 한 번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서너 명의 광마전 무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달려오는 속도보다 튕겨져 나가는 속도가 배는 빨랐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여유도 없었다. 폭음이 울려 퍼지면 여지없이 광마전의 무인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폭풍에 휘말린 자들은 무공의 고하에 관계없이 목숨을 잃었다.

휘류류!

담호의 몸 주위로 한 줄기 기류가 휘돌았다. 폭강을 동반한 폭마경이었다.

폭마경을 두른 채 담호는 자신의 몸을 적에게 내던졌다. 그의 폭마경에 닿은 모든 것이 터져 나갔다.

인간의 육신이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광경은 마교 무인들에게 끔찍한 공포를 선사했다.

“으아아!”

“저런 괴물이…….”

급기야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는 무인들까지 나타났다. 담호는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일직선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목표는 상한천이었다.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상한천을 처단해야 오늘의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챠아앗! 추혼십자강(追魂十字罡).”

그런 담호를 단호상이 막아섰다. 단호상의 창이 강기를 토해 냈다.

쉬쉬쉭!

순간 담호의 몸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분명 일직선으로 질주를 하고 있는데 상체만 흔들어 단호상의 창격을 모조리 피해 낸 것이다.

“헛!”

단호상이 눈을 부릅뜬 그 순간 담호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담호가 오지암파경을 펼쳤다. 그의 다섯 손가락이 가슴에 흡착되기 직전 단호상은 겨우 창대로 막을 수 있었다.

터엉!

“크흡!”

단호상이 창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담호가 그런 단호상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었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 그 사이로 번뜩이는 감정 없는 눈동자. 그리고 눈동자에 비친 단호상의 경악한 얼굴.

그 순간 단호상의 뇌리에 든 생각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분명 절름발이 아니었나? 절름발이가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온전치 못한 담호의 왼쪽 다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왼발을 축으로 삼고 오른쪽 다리가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쐐애액!

담호가 주로 사용하던 혈천각이나 탄마각과 전혀 다른 궤도의 각법이었다. 그래서 단호상은 미처 대응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복부에 내공을 집중하는 것뿐.

단호상은 몰랐다. 그것이 자신의 가장 큰 패착이었음을.

콰지끈!

담호의 다리가 단호상의 복부를 뚫고 나왔다. 복부에 집중한 내공도 소용이 없었다.

“꺼걱!”

복부로부터 느껴지는 전율적인 통증에 단호상이 입을 떡 벌렸다.

충각(衝脚)이었다.

충보의 발전형이자 완성형이었다. 성벽을 무너트리는 충보, 그 강력한 힘을 일점에 모은 각법이 바로 충각이었다.

그간 즐겨 사용하던 탄마각이나 혈천각과는 다른 담호만의 독문 각법이었다. 담호의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게 만든 결과물이 바로 충각이었다.

단호상의 몸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생명의 빛이 사그라지는 그의 눈엔 아직도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단호상은 어떻게 자신이 죽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담호는 단호상을 뛰어넘어 질주했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어둠이 일렁였다.

“저럴…… 수가!”

상한천의 얼굴에 다급한 빛이 떠올랐다.

황렬에 이어 단호상까지. 광마전의 마인들도 담호의 발목을 붙잡지 못했다.

그가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담호가 파죽지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를 상한천이 아니었다.

“마, 막아!”

자신도 모르게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평소 누구보다 냉철한 상한천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상한천과 같은 군사는 모든 인간을 종류별로 분류해 놓고 예단한다. 무력과 성격, 그리고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토대로 한 인간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상한천의 방식이 통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상한천은 자신의 방식을 맹목 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그의 상식을 부정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담호라는 인간은 그가 규정한 방식과 계산에 포함이 되지 않았다.

담호라는 인간 자체가 그의 상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담호가 허공 높이 몸을 띄웠다. 올라간 것은 언젠가 내려오기 마련. 몸이 추락하는 그 순간 담호는 천근추를 운용했다.

쐐애액!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담호의 몸이 그대로 상한천을 향해 내리꽂혔다.

“위험합니다.”

위기의 순간 일몽이 상한천을 껴안고 급히 자리를 피했다. 상한천이 피한 자리에 담호의 신형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콰아앙!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가공할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라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잠시 후 바람이 불어와 먼지가 사라지고 드러난 광경은 그야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방원 오 장여의 거대한 구덩이가 움푹 패여 있었고, 그 주위로 수십 구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 모두 상한천을 호위하던 군사부의 무인들이었다.

마치 벽력탄이 터진 듯 죽은 이들의 시신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으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상한천이 앓는 듯한 신음성을 토해 냈다.

이제까지 뛰어난 두뇌 하나로 마교를 좌우한 상한천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은 자의 수가 수백 명을 가뿐히 넘어갔다. 하지만 그 어떤 죽음도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보다 끔찍하지 않았다.

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삐그적거리고 있었다. 구전활독단으로 활력을 끌어 올렸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상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런 몸으로 무리를 하자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담호는 움직였다. 눈앞에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와아악!”

“아, 악귀다.”

일대에 있던 마교의 무인들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거대한 방죽이 무너지는 데는 주먹만 한 구멍 하나면 충분했다. 담호는 온몸을 던져 구멍을 만들었다.

“놈들을 처단해.”

“죽어랏!”

화산파의 무인들과 군웅들이 담호가 만든 구멍을 파고들었다.

이제까지 밀리기만 하던 무인들이 용기를 얻어 덤벼들었고, 한번 기울어진 저울추를 되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담호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혈향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충분했다.

단 한 명의 고수가 기울어진 전황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상한천은 넋을 잃고 말았다.

“이럴 수가!”

“퇴각해야 합니다.”

일몽이 상한천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몽에게 끌려가면서도 상한천은 담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권……마.”

혼탁하기만 하던 눈동자에 점점 초점이 돌아왔다.

상한천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화산의 중심은 현천이나 현검 따위가 아니었구나. 바로 권마였어. 저자가 곧 화산이고, 화산이 저자야. 저자를 제외하고 화산을 예단한 것이 나의 가장 큰 패착.’

그의 가슴속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담호는 상한천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평생 공포라는 감정을 모르고 살아온 상한천의 가슴에 두려움을 심어 줄 만큼.

상한천이 주위를 둘러봤다.

화산 곳곳에서 초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목표로 한 화산의 중요 인사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상한천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퇴각한다.”

“존명!”

일몽이 마교의 무인들에게 상한천의 명을 전했다.

곳곳에서 퇴각을 알리는 전고가 울려 퍼졌다. 그에 마교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담호와 화산파 무인들의 추적을 막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군사부의 무인들은 자신의 온몸을 던져 담호를 막았다.

“너는 절대로 군사를 해하지 못한다.”

담호의 주먹에 쓰러지면서도 군사부의 무인들은 끝까지 그를 붙잡고 늘어졌다.

한 명이 안 되면 두 명이, 두 명이 안 되면 네 명이, 그렇게 수십, 수백 명이 담호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이 담호를 막아서는 사이 상한천은 일몽의 호위를 받으며 화산을 내려갔다.

‘지금은 그냥 가지만 이 굴욕은 반드시 갚아 주리라.’

상한천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났다.

담호의 걸음이 멈춰 섰다.

스르륵!

끝까지 그를 붙잡고 있던 무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담호가 지나온 자리엔 그를 막아서던 무인들의 시신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진 것이다.

담호의 서늘한 눈빛이 더욱 깊이 침잠됐다.

이 이상 상한천을 쫓아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이미 마교 무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화산을 벗어났을 것이다.

“천경.”

“사숙!”

담호의 주위로 살아남은 화산의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살아남은 무인들의 수라고 해 봐야 겨우 수십여 명에 불과했다. 현 자 배의 장로들은 아예 씨 몰살을 당했고, 경 자 배의 일대제자들 역시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그보다 무공이 약한 이대제자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 현천 진인의 빠른 판단으로 명경과 한소유가 삼대제자들을 무사히 보호하긴 했지만 그들의 무공은 아직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이로써 화산의 정기와 전력은 크게 손상이 되고 말았다. 화산파가 다시 예전의 성세를 되찾으려면 족히 수십여 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울었다. 화산파의 몰락보다도 그들을 슬프게 한 것은 스승과 사형제들의 죽음이었다.

그들에겐 화산파의 내일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스승의 시신을 부여안고, 사형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은 울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운경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단순히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울기엔 그에게 남겨진 책임감이 너무나 컸다.

화산은 그에게 모든 것이었다. 화산이 철저하게 몰락한 이상 그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지금 화산엔 구심점이 필요했다.

‘천경.’

운경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

화산이 습격받던 날 동정호 악양에 있는 무림맹의 본단 역시 기습을 받았다.

칠대마인 중 두 명인 질풍신권 이선창과 철살신편 윤광이 수백여 명의 정예들을 이끌고 기습한 것이다. 그들은 상한천에게서 별도의 명을 받고 무림맹의 본단을 기습해서 큰 타격을 입혔다.

무림맹의 군사인 남궁창이 주요 전력을 이끌고 소림사로 파견 나간 사이 일어난 참사였다. 다행히 맹주인 남천산과 부맹주인 조의명이 나서서 마교의 기습을 물리치긴 했지만, 이로 인해 무림맹의 사기는 크게 저하되고 말았다.

종남이 무너지고, 화산파가 큰 피해를 입었다. 거기에 무림맹의 본단까지 타격을 입었다.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참혹한 패배였다.

이로 인해 정파의 기세는 크게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권마 담호.

그가 화산에서 보여 준 압도적인 무위는 그곳에 있었던 정파의 군웅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멸문 직전의 화산을 단신으로 구한 남자.

그는 홀로 칠대마인 넷을 척살했고, 수많은 마교 무인들을 죽임으로써 화산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에 그만이 홀로 창연하게 빛났다.

권마의 전설은 그렇게 천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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