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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60화 (2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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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화 4장.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1)

은가보의 호상단은 빠른 속도로 관도를 질주했다. 다행히 화산 초입까지는 관도가 잘 깔려 있었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화산의 초입이었다.

“다 왔다.”

적용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히힝!

갑자기 앞쪽에서 달리던 말들이 거친 울음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여파로 말들이 끌던 수레도 뒤집어지며 길을 막았다.

“멈춰라!”

뒤따르던 마차들이 그 광경을 보고 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냐?”

적용천이 급히 말에서 내려 앞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고꾸라져 발버둥을 치는 말들과 뒤집어진 마차의 잔해가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길을 가로지르며 묶여 있는 굵은 철사였다.

질주하던 말들은 굵은 철사에 다리가 걸려 고꾸라진 것이 분명했다.

“이건? 모두 경계하라.”

경호성과 함께 적용천이 검을 뽑아 들었다.

파팟!

그 순간 길 양쪽에 있던 수풀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뛰어나왔다. 황적청흑백의 복장을 입은 백여 명의 무인들이었다.

“웬 놈들이냐?”

적용천이 그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습격자들은 대답 대신 공격을 했다.

채채챙!

“큭! 막아!”

“이 새끼들이…….”

곳곳에서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욕설이 울려 퍼졌다.

습격자들은 바로 오행멸살대였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은가보의 호상단을 공격했다.

“으아악!”

“살려 줘!”

장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난무하고 쇳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은소청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요?”

“습격입니다, 아가씨.”

“습격?”

“나오지 마시고 안에 계십시오.”

“하지만……. 알겠어요.”

은소청이 이를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재가 뛰어난 은소청이었지만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도움은커녕 민폐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그녀의 곁에는 항상 호위하던 은검귀수(銀劍鬼手) 종리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은소청은 음유경을 떠올렸다.

‘미안하다고 한 이유가 이것이었나?’

이들은 분명 음유경을 따라온 추적자들이 분명했다.

그 순간에도 전투는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자들은 대부분 호상단의 무인들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 차였다.

오행멸살대는 실로 무서웠다. 그들은 마치 벙어리처럼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적용천이 그 광경을 보며 치를 떨었다.

“이놈들은 인간 백정이구나.”

무공의 형(形)을 보면 만든 의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오행멸살대가 펼치는 무공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인간을 죽이게 고안되었다. 그 안에는 그 어떤 도(道)도 의(意)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단순함의 극치를 달리는 도살자의 무공 그 자체였다.

적용천에게는 다섯 명의 오행멸살대가 붙었다.

카카캉!

그들의 공세는 마치 수레바퀴처럼 숨 돌림 틈도 없이 이어졌다. 때문에 적용천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그들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어느새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적들의 공세에 담긴 역도(力度)는 매우 강렬했다. 적용천이 절정의 고수였지만 그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파상공세엔 등골이 절로 서늘해졌다.

“크헉!”

“억!”

그 순간에도 호상단의 무인들은 비명과 함께 쓰러져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의 눈에 마차로 다가가는 오행멸살대가 보였다.

“멈춰라!”

적용천이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그에게 달라붙은 오행멸살대의 무인들이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그사이 마차에 접근한 오행멸살대의 무인들이 검을 곧추세웠다. 그대로 마차에 검을 찔러 안에 타고 있는 은소청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본 적용천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안 돼!”

그의 처절한 외침이 울려 퍼지는 찰나였다.

“감히 화산에서 살육을 자행하다니.”

차가운 음성과 함께 십여 명의 무인들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마교도가 분명하다.”

“마인들을 모조리 참하라.”

전장에 뛰어든 무인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호상단을 습격한 오행멸살대를 쓸어 갔다.

쐐애액!

매서운 파공음이 공기를 갈랐다.

호상단을 도륙하던 오행멸살대가 새로이 전장에 뛰어든 무인들의 기세에 밀려났다.

“도대체?”

적용천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새로 전장에 나타난 이들은 평범한 득라의를 입은 도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풍기는 기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뚫고 자라난 설중매처럼 고고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이 그들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허공에 매화가 피어나는 듯했다.

“매, 매화검(梅花劍)?”

적용천은 그들이 펼치는 무공을 한눈에 알아봤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이 펼치는 이십사수매화검(二十四手梅花劍)은 화산파에서도 가장 유명한 무공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이십사수매화검은 화산파의 최고 정예들인 삼십육매화검수(三十六梅花劍秀)만이 익힐 수 있었다.

“하, 하지만 삼십육매화검수는 모조리 전멸했을 텐데.”

적용천이 협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망연히 중얼거렸다.

삼 년 전 화산파가 대혈겁을 당했을 때 삼십육매화검수를 포함한 일, 이대제자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강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화산파의 주축이 되던 일대제자를 비롯해 허리 역할을 하던 이대제자들까지 씨 몰살을 당했기에 두 번 다시 예전의 성세를 회복할 수 없을 거라던 것이 강호인들의 생각이었다.

한번 잃은 비전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화산파의 삼십육매화검수 정도 되는 무인을 비급만으로 키워 낼 수는 없었다.

전대의 경험과 가르침, 그리고 문파의 총력 지원이 동반되어야만 겨우 키워 낼 수 있는 것이 삼십육매화검수와 같은 무인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화산파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예전과 같은 성세를 찾으려면 수십 년도 더 걸릴 거라는 것이 강호의 중론이었다. 그마저도 천운이 따라 줄 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강호의 중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십사수매화검을 펼치는 도사들이 등장했다. 삼십육매화검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쐐애액!

“크윽!”

“컥!”

그들의 검은 실로 무서웠다. 호상단을 도륙하던 그 악귀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맙소사! 삼십육매화검수라니.”

적용천뿐만 아니라 호상단 전원이 그들의 막강한 무위에 혼이 쏙 빠졌다.

쉬가악!

그들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보통 그 정도 수준의 무인들이라면 흔히 뽑아내는 검기도 맺혀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검의 묘리를 최대한 살릴 뿐, 쓸데없이 공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삼십육매화검수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반드시 한 명의 오행멸살대가 목숨을 잃었다. 마치 가을날 추수를 하는 농부처럼 그들은 오행멸살대의 목숨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크헉!”

“컥!”

비명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호상단의 무인들은 감히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맙소사! 정말 저들이 화산파의 도사들이란 말인가?”

“화산파는 이미 몰락한 것이 아니었나? 어떻게 저 정도의 전력을…….”

“세상은 잘못 알고 있어. 화산은 결코 몰락한 것이 아니야. 저런 무인들을 소유한 문파가 어떻게 몰락했단 거지?”

그들은 넋이 빠진 채 삼십육매화검수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봤다.

삼십육매화검수가 펼치는 검은 지극히 효율적이었다. 잔가지들을 모조리 쳐 낸 나뭇가지처럼 최단거리로 쏘아져 적의 목숨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기존의 이십사수매화검과는 다른 검법이었다.

그 본질은 같지만 최대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기 최적의 형태로 변형된 것 같았다.

“이놈들!”

결국 오행멸살대의 대주 야혼이 노성을 터트렸다.

겨우 십여 명 정도의 매화검수들이 그가 이끄는 오행멸살대를 압도하는 광경을 믿기 힘들었다.

“말도 안 되는……. 화산은 모든 정기를 잃지 않았던가?”

“분명 그랬었지.”

매화검수 중 한 명이 야혼에게 다가오며 싸늘히 말했다.

야혼이 물었다.

“정말 삼십육매화검수 맞느냐?”

“그렇다. 우리는 삼십육매화검수가 분명하다.”

“그런? 분명 삼 년 전에 전멸했을 텐데.”

“그랬지. 네놈들에 의해 전대의 삼십육매화검수는 몰살당했다. 우리는 그분들의 유지를 이은 새로운 삼십육매화검수다.”

“새……로운 삼십육매화검수?”

“그렇다.”

도사 원명이 싸늘히 대답했다.

원명은 화산파의 삼대제자였다.

삼 년 전 대혈겁이 일어났을 때 그는 다른 삼대제자들과 함께 비동으로 몸을 피해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를 가르쳐 주던 사부가 죽고, 사부의 사부도 죽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만큼 울어 본 적이 없었다. 울고 또 울어 더 이상 울음이 나오지 않게 될 때까지 울었다.

그때는 정말 절망밖에 남지 않았었다. 사문의 존장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기에 화산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산은 끝나지 않았다. 화산의 저력은 겨우 세상에 알려진 정도가 아니었다.

화산은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탄 대지에서 다시 무인들을 키우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그 결과물이 새로운 삼십육매화검수였다.

삼십육매화검수 전부도 아니고 일부만이 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전력은 오행멸살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원명이 노성을 터트렸다.

“감히 화산에 그 더러운 발을 디디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크윽!”

원명이 야혼에게 달려들었다.

쐐애액!

그의 검이 공기를 가르며 야혼의 목을 노렸다. 야혼은 수비식을 펼쳐 겨우 원명의 검을 쳐냈다.

따앙!

원명의 검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검은 어느새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다시 야혼의 목을 노렸다.

강력하지만 유려하고, 부드럽지만 강맹했다.

야혼은 이를 악물며 원명의 검을 다시 쳐 냈다. 하지만 원명의 검은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야혼을 노리고 쏘아졌다.

선과 선이 겹치며 허공에 잔영이 생겨났다. 수많은 실선이 겹치면서 만들어 낸 것은 바로 한 송이 매화였다.

이십사수매화검 중 최절초인 매화난혈풍(梅花亂血風)이었다.

원명이 허공에 만들어 낸 매화가 혈풍에 어지럽게 흩날렸다. 야혼은 이를 악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최강의 절초인 묵령공공(墨靈空空)의 초식을 펼쳐 냈다.

그의 검에 눈부신 검기가 일어나 원명이 만들어 낸 매화를 짓쳐 갔다.

매화와 검기가 격돌했다.

쿠콰콰!

야혼이 만들어 낸 검기는 매화가 몰고 온 칼바람에 촛불처럼 힘없이 꺼졌다.

“크엑!”

전신을 휘도는 칼바람에 야혼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런 그의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가 무릎을 털썩 꿇은 채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매화……검수 따위가 이 정도의 무위를?”

전대의 매화검수도 이 정도의 무력은 소유하지 못했었다. 매화검수가 화산파에서 손꼽히는 무인이긴 했지만, 오행멸살대의 대주인 자신을 이렇듯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젊은 매화검수는 오히려 예전의 매화검수를 뛰어넘는 막강한 무력의 소유자였다. 야혼은 그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어떻게?”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지옥을 거쳐 왔는지. 우리는 매일같이 그분과 생사를 오가는 비무를 하고 있다.”

“그……분?”

“그래! 화산권마. 우리는 그분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싸워 왔다.”

원명의 눈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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