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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63화 (2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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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화 5장. 사람이 바뀌면 환경도 바뀌기 마련이다(1)

은소청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방진보를 바라봤다. 아무리 시간이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지만 방진보의 변화는 너무 극적이어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으응!”

“한 삼 년 만인가? 와아!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네.”

방진보는 정말 반가운 듯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제야 예전의 방진보를 보는 것 같아서 조금 안심이 되긴 했다.

‘정말 많이 변했네. 살이 빠지니까 이목구비도 또렷해지고.’

살이 빠진 방진보의 턱선은 무척이나 날렵해 보였다. 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던 눈도 무척이나 컸고, 코 또한 오뚝했다. 삼 년이란 시간 동안 키도 많이 커서 제법 멋져 보였다.

은소청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래? 피곤해. 하긴 먼 길을 왔으니 피곤하겠다.”

“으응!”

“조금만 기다려. 내가 피로에 좋은 음식을 해 줄 테니까. 마침 오늘 좋은 약초들을 구했거든. 잘만 이용하면 아주 좋은 음식이 나올 거야.”

“고……마워!”

은소청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방진보는 영문도 모르고 은소청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소 진인이 혀를 찼다.

“쯧쯧! 저런 둔한 녀석 같으니라구.”

“네?”

“아니다. 됐다. 넌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할 팔자 같구나.”

“제가 왜요?”

방진보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현소 진인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너무 순진무구해서 현소 진인은 그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것은 적용천이나 원명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은소청만이 방진보를 고운 눈으로 살짝 흘겨볼 뿐이었다.

‘멋있어졌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가 찾아온 것은 그저 막연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녀의 일생 동안 누구도 방진보처럼 계산 없이 대해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호의를 보여 줬다. 그 모든 것이 그녀가 은가보의 무남독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에 지쳐 갈 때 떠오른 이가 바로 방진보였다.

그냥 무작정 보고 싶다는 마음에 왔을 뿐, 이렇게 멋있어졌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방진보는 현소 진인과 격의 없이 웃고 떠들었다. 현소 진인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진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다정해서 꼭 친조손처럼 보였다.

간간이 원명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한마디씩 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냥 평범한 시골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격의가 없었다. 일반적인 무파가 배분과 규율에 엄격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한참 담소를 나누던 방진보가 일어서며 말했다.

“저는 먼저 가 볼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느냐?”

“예! 요즘은 다들 식성이 좋아져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분량을 맞출 수 없어요.”

“그게 어디 제자들 탓이냐? 네 음식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지.”

“히히! 그건 그래요.”

방진보가 부끄러움도 없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에 원명이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무어라 말하지는 않았다.

‘괜히 찍혔다간 맛있는 음식은 평생 못 얻어먹는다. 이럴 땐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다.’

실제로 화산파의 제자들 중에서 방진보에게 찍힌 이들도 몇 명 있었다. 물론 방진보가 금방 용서해 주긴 했지만, 그들은 한동안 돌덩이처럼 딱딱하고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인간의 입맛이란 게 무척이나 간사해서 한번 고급스러운 맛에 길들여지면 격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워진다. 현재 원명과 화산파 제자들의 상태가 그랬다.

지난 삼 년간 그들은 방진보의 음식에 길들여졌다. 때문에 누구도 방진보에게 밉보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방진보가 은소청을 바라봤다.

“소청, 오늘 자고 갈 거지?”

“으응!”

“잘됐다. 이따 너도 고월전(孤月殿)으로 와.”

“고월전?”

“화산파의 전 제자들이 모여 식사하는 곳이야. 태상장로님을 따라오면 될 거야.”

“알았어.”

“그럼!”

방진보가 싱그러운 미소를 남긴 채 밖으로 나갔다. 은소청은 그런 방진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현소 진인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또 무슨 맛난 음식을 해 줄꼬.”

“그러게 말입니다. 이것 참!”

원명이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은소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진보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기에?’

그녀도 진보의 음식 솜씨가 무척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방진보의 음식 솜씨에 반했었으니까. 하지만 화산파의 태상장로와 매화검수가 이렇게 입맛을 다실 정도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잠시 고개를 젓던 은소청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호 오라버니는요?”

***

“이곳이 화산파?”

음유경이 포룡령 위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공룡의 등뼈 같은 포룡령 위에서는 화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산파는 구대문파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했다.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한때는 이곳이 사람이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문파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담호는 포룡령을 지나 운대봉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대봉에는 그래도 화산파에서 몇 안 되게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진무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무궁은 화산파 무(武)의 상장이었다. 역대 진무궁주는 모두 화산파의 제일검이었다. 이전의 현검 진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진무궁은 고요했다. 그래서 음유경은 진무궁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무궁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짐작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진무궁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그들은 진무궁 앞 연무장 곳곳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음유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은 고요했다. 그런데 뜨거웠다.

마치 억누른 불꽃처럼 강렬한 열기가 느껴지는데도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담호를 보자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돌아오셨습니까?”

수십 명의 무인들이 마치 한 몸처럼 인사를 했다.

담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지나쳐 갔다. 그런 담호를 바라보는 무인들의 눈빛에는 극도의 공경과 두려움, 그리고 투지라는 전혀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 이런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을 받을 수 있을까? 음유경은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말없이 담호를 따랐다.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이 나타났으면 궁금해할 만도 하건만 진무궁에 모여 있는 무인들 중 담호에게 이유를 묻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음유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해!’

음유경은 그들의 시선 속에 담긴 강한 힘을 느꼈다.

그녀 정도 경지에 오르면 상대의 눈빛만 보고도 경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 눈에 보이는 화산파 제자들의 경지는 실로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들의 나이라고 해 봐야 겨우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화산파가 정상적이었다면 삼대제자 정도였을 앳된 얼굴들이었다. 다른 문파였다면 이제 겨우 입문 무공을 익히고 있을 젊은 무인들의 눈에서는 예리한 정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 문파의 일대제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눈빛과 기도였다.

‘어떻게?’

음유경의 눈에 의문의 빛이 떠올랐다.

저들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화산파는 중견 무인들이 전멸당했다.

무공을 전수해 줄 허리가 사라진 상황. 무공의 심득이란 것은 단지 비급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담호와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 사부로부터 심득을 이어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취를 이루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화산은 바로 심득을 전해 줄 일대제자들과 이대제자들이 거의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아무리 삼대제자들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부에게서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결코 좋은 성취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음유경은 담호에게서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기에 묻지 못하고 조용히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진무궁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아!”

음유경을 보며 탄성을 내뱉는 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음유경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인상의 미인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약이 담긴 그릇이 들려 있었다.

“시, 신의?”

음유경이 그녀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쟁반을 들고 있는 단아한 미인은 바로 종리연이었다. 삼 년이란 시간 동안 종리연은 더욱 아름다워졌고, 완숙한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그녀가 음유경에게 인사했다.

“손님이 오셨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데리고 오다니.”

종리연이 살짝 담호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담호는 여전히 목석같은 모습이었다.

“손님이야.”

“알고 있어요. 저는 종리연이에요.”

“음유경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음 소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종리연은 담호 뒤쪽에 있는 젊은 무인에게 약이 든 그릇을 내밀었다.

“들어요. 내상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신의 님.”

쟁반을 받은 제자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무척이나 쓸 텐데도 그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약을 마신 제자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보통 심법의 운용은 조용하면서도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곳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칫 운공 중에 방해를 받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자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마치 그의 호위라도 서듯이 주위에 몰려들어 경계를 섰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들의 결속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구나.’

이렇듯 모든 무인이 하나 된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담호와 종리연은 익숙한 듯 별 감흥 없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음유경을 놀라게 한 광경도 담호와 종리연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담호가 진무궁 안으로 들어갔다. 음유경과 종리연이 총총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화산파 무(武)의 상징인 진무궁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쓸데없는 기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현검 진인의 거처였던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담호가 사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담호가 이곳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달에 겨우 오륙 일 정도뿐이었다.

담호와 음유경이 자리에 앉자 종리연이 말했다.

“그럼 두 분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저는 차 좀 준비해 올게요.”

그녀는 두 사람이 대답하기도 전에 밖으로 나갔다. 알아서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다.

둘만 남게 되자 장내엔 잠시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삼 년 만의 재화라고는 하지만 사적으로는 그 어떤 감정도 없는 두 사람이었다.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이는 음유경이었다.

“구해 주신 것 감사해요.”

“마교에 쫓기고 있는 건가?”

“그래요.”

“결국 들통이 난 모양이군.”

담호의 추측에 음유경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참담한 표정이 그대로 떠올라 있었다.

“맞아요.”

“성물은?”

“…….”

“못 찾았나 보군”

“네!”

현도문의 태을 진인에게서 탈취한 남천검에 박혀 있던 보주는 그녀가 그렇게 찾던 성물이 아니었다. 그저 비슷한 보석에 불과할 뿐 진짜 성물은 아니었다.

“상한천은 제가 성물을 찾는단 사실을 알아차리고 함정을 펼쳤어요. 그리고 전 함정에 빠졌어요. 신교에는 제가 성물을 찾아 배신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더군요. 제가 알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고, 전 신교의 추적대에 쫓겨야 했어요.”

상한천의 함정은 실로 치밀했다. 음유경이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상한천의 은밀한 공작에 등을 돌린 후였다.

그녀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호교원주조차도 상한천의 공작에 기반이 통째로 날아갔다. 덕분에 신교 내에 있던 그녀의 기반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다.

“자세히 말해 봐. 그동안 마교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음유경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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