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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264화 (2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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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화 5장. 사람이 바뀌면 환경도 바뀌기 마련이다(2)

마교는 강자존(强者尊)의 대지였다. 오직 강자만이 정점에 설수 있었고, 단 한 명의 강자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였다.

마교에서 최고의 강자는 곧 교주를 의미했다.

“현 신교의 교주의 이름은 척관혈이라고 해요.”

“척관혈?”

“네! 그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 한 명으로 인해서 초토화가 되었던 마교가 다시 부활했어요. 인재를 찾아내어 무공을 전수하고, 은거하다시피 했던 전대의 거마들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왔어요.”

원월신마(元月神魔) 척관혈.

마교가 무너질 때 그는 겨우 십 대 후반의 소년에 불과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무림과 맞서 옥쇄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비 척무정이 그를 막았다.

척무정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 자신이 어떻게 하든 되돌릴 수 없음을 직감했다.

“너는 살아야 한다. 살아서 복수를 해야 한다. 그 눈으로 지켜보거라. 본교가 무너지는 모습을. 그리고 살아남거라. 반드시 살아남아서 본교를 재건하거라.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척무정은 척관혈의 혈도를 짚어 은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공력의 대부분을 원정으로 만들어 척관혈에게 넘겨주었다.

혈도가 짚여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볼 수는 있었다. 그렇게 척관혈은 마교가 무너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그를 아껴 주던 많은 이들이 죽는 모습을 봤다. 아비가 피를 토하며 죽는 모습을 봤다.

척관혈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했다.

“척 교주는 아비가 남겨 준 원정을 바탕으로 본교의 절학을 익혔어요. 본래도 그는 천재라고 불렸던 남자였어요. 그런 남자에게 아비의 가공할 내력이 담긴 원정이 주어졌어요.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나 다름없죠.”

척관혈은 무서운 속도로 마교의 모든 무공을 익혔다. 수많은 마공을 익히고, 엄청난 심득을 얻었다. 그렇게 얻은 심득으로 무공을 다시 재창조하며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은거한 전대의 거마들을 끌어들이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을 다시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심득을 전수해 줬다.

척관혈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마교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수많은 전대 거마들이 모여들어 마교의 주축을 이뤘다.

“교주야말로 본교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가 있기 때문에 신교가 존재할 수 있어요.”

“반대로 말하면 교주가 없으면 마교가 와해된다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교주는 그렇게 녹록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자신이 없어도 마교가 돌아갈 수 있도록 체계를 확실히 만들어 뒀어요. 단지 세상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에요.”

음유경의 음성이 살짝 떨렸다.

교주인 척관혈을 언급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척관혈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척관혈은 그만큼 불세출의 무인이었다. 단지 마인이라는 단어로 폄하할 수 없을 정도로 척관혈은 대단했다. 그리고 공포스러웠다.

대적불가(對敵不可)의 존재.

음유경의 뇌리 속엔 척관혈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감히 직접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성물을 찾아 대항하려 했을 정도였다.

음유경이 마음을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삼 년 전, 바로 당신이 칠대마인 중 네 명을 죽이면서 일어났어요. 칠대마인 중 네 명이 한꺼번에 죽으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겼어요. 당연히 신교에서는 빈자리를 채우려 했어요.”

칠대마인은 마교의 주축이 되는 영광스러운 존재였다. 당연히 마교의 수많은 무인들이 칠대마인이 되기 위해 도전했다.

그 때문에 마교는 공세를 잠시 멈추고 칠대마인을 뽑기 위한 비무 대회를 열었다. 마교 내의 모든 시선이 당연히 비무 대회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음유경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큰 행사였기에 음유경도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비무 대회에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저의 패착이었어요.”

“패착?”

“그게 상한천의 함정이었어요. 제 시선을 돌려놓고, 저와 조력자들을 처리하려고 했던 거예요.”

음유경이 눈을 감았다.

상한천의 심계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마치 고구마 뿌리를 캐내듯 그는 음유경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줄줄이 색출해 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음유경과 조력자들은 별다른 대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구석으로 몰렸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척관혈과 상한천은 피를 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음유경의 행보를 지지하고 있다지만 그들 역시 다 같은 마교의 형제들인데도 말이다.

때아닌 칼바람이 몰아쳤다.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갔고, 그중에는 음유경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호교원주 화무의도 있었다.

북명마제(北冥魔帝)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인 화무의였다. 오래전에 절대지경에 오른 화무의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노고수였다.

그는 균형과 견제를 중요시했다. 호교원이 교주의 월권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밀히 음유경을 후원했다.

그런 화무의조차도 척관혈이 불러온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교주 직속의 척살대의 합공에 오체분시를 당했다.

잘려진 머리는 마교의 정문 장대에 높이 걸렸고, 몸뚱이는 멀리 바닷가에 버려지고, 나머지 팔다리도 천하 각지에 버려져 짐승의 먹이가 됐다.

화무의의 죽음은 곧 마교 내에서 척관혈의 권위에 대항하던 잔존 세력의 멸망을 뜻했다.

“화 원주께서 죽임을 당한 후 전 신교를 탈출했어요. 그리고 교주는 추적대를 보내 저를 죽이려 했지요.”

음유경의 눈가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단지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기에 그녀는 입술을 질겅 깨물어야 했다.

“모두 죽었어요. 모두…….”

음유경도 필사적으로 탈출하지 않았다면 마찬가지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척관혈이 파견한 추적대는 실로 집요했다. 그들은 마치 사냥개처럼 끈질기게 음유경을 추적해 궁지에 몰아넣었다.

빠져나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땅도, 강도 모두 막혔다. 그녀가 절망에 빠졌을 때 의외의 인물들이 그녀를 도왔다.

북명마제 화무의는 목숨을 잃기 직전 수하들에게 그녀의 탈출을 도우라고 명을 내렸다. 그들이 돕지 않았다면 음유경은 절대로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순간 겨우 지혈해 두었던 전신의 상처가 터져 선혈이 흘렀다. 피는 곧 그녀의 옷을 붉게 적셨다.

“이런!”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던 종리연이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급히 쟁반을 놓고 달려와 음유경의 상처를 살폈다.

“중상을 입었잖아요? 어떻게 이런 상처로…….”

벌써 정신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중상이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전혀 표를 내지 않고 있는 음유경의 모습에 종리연은 질린 표정을 짓고 말았다.

실제로 음유경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도 애써 단단히 정신 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와 함께 사천성으로 가 줘요. 부탁이에요.”

“사천성?”

“율천이 반드시 당신을 찾아 같이 오라고 했어요.”

“검율천이?”

담호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곳에 강호의 운명이 달렸다고 했어요. 반……드시 당신을 찾아 같이 오라고 했어요. 반드시……. 그러니까……. 허억!”

말을 마친 음유경이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무너지는 그녀의 몸을 종리연이 안아 들었다.

“음 소저!”

***

“으음!”

나직한 신음과 함께 음유경이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었다.

음유경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직 무리하면 안 돼요.”

음유경을 제지하는 여인은 바로 종리연이었다.

“난 괜찮아요.”

“괜찮긴요. 아직 무리하면 안 돼요. 이건 의원의 충고예요.”

종리연은 억지로 음유경을 다시 뉘였다. 워낙 강경한 종리연의 태도에 음유경은 하는 수 없이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 어떻게 움직인 거예요? 다행히 제때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조금만 치료를 하는 것이 늦었다면 폐인이 되었을 거예요.”

“고마워요. 치료를 해 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나요?”

“사흘이에요.”

“그렇게나 오래 정신을 잃고 있었단 말인가요?”

음유경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만큼 상처가 심했어요. 다행히 치료가 잘되었지만, 아직 무리해서는 안 돼요.”

“난 이렇게 누워 있어선 안 돼요. 나는…….”

“아무리 급해도 음 소저의 건강이 우선이에요. 먼 길을 떠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해요.”

종리연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거부하기 힘든 힘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품에서 은침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금방 멀쩡하게 만들어 줄게요. 사천성을 가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종리연은 음유경이 반항할 여지도 주지 않고 침술을 펼쳤다. 그녀의 침술은 이제 신기에 달해, 이백여 개의 은침을 순식간에 음유경의 전신에 빼곡히 꽂았다.

은침이 전신에 꽂히자 음유경은 순식간에 수마에 빠져들었다. 종리연이 잠든 음유경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잠에서 깨어나면 한결 개운해질 거예요.”

음유경이 다시 잠에서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였다. 종리연은 이번에는 음유경이 움직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콰직!

“크헉!”

그 순간 창밖에서 둔탁한 타격음과 누군가의 답답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음유경이 급히 공력을 끌어 올려 경계했다.

“경계할 것 없어요.”

종리연이 급히 그녀를 만류했다.

음유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종리연이 미소를 지었다.

“늘 있는 일이에요.”

“무슨 일이기에?”

“직접 볼래요?”

음유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리연이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끄으으!”

“제길!”

수많은 이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음유경이 화산에 올라왔을 때 보았던 화산파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하나같이 어딘가 깨지고 상처가 나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누워 끙끙대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빛이 죽은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눈에 떠오른 것은 지독한 독기였다.

“도대체?”

음유경의 시선이 화산파 제자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드넓은 연무장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남자. 그의 주위로 수많은 화산파의 제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담……호.’

그는 바로 담호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짐승 같은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뒤루룩!

그의 눈동자가 아직 멀쩡히 서 있는 화산파의 제자들을 향했다.

“다음!”

거칠고 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제자들 중 한 명이 쏜살같이 뛰쳐나왔다.

그가 담호를 향해 포권을 하며 소리쳤다.

“제자 원충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덤벼!”

“예!”

원충은 한시도 망설이지 않고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산파의 절기 중 하나인 배운검(排雲劍)이 원충의 손에서 펼쳐졌다. 구름을 밀쳐 없앤다는 이름처럼 배운검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원충이 휘두르는 검은 진검이었다. 일반적인 비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쉬앙!

원충은 전심전력으로 배운검을 펼쳤다.

배운검은 매화검수라면 누구나 배우는 검법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매화검수가 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서 화산파 내에서 오직 서른여섯 명밖에 익히지 못하는 상승의 절기이기도 했다.

쉬쉬쉭!

원충의 검이 공기를 발기발기 찢으며 담호의 요혈을 노렸다.

“훌륭하구나.”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음유경이 절로 탄성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원충의 배운검은 전성기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뛰어났다.

무엇보다 원충의 검술은 집요할 정도로 담호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죽자 살자 덤벼드는 것은 예전의 화산파 무인들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치잇!”

배운검이 통하지 않자 원충이 이십사수매화검(二十四手梅花劍)으로 검법을 바꿨다.

츄화학!

허공에 매화가 피어났다.

매화 문양의 검기가 담호를 덮쳐 갔다.

순간 담호가 움직였다. 그의 몸짓에 매화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푸화학!

매화를 뚫고 담호가 나타났다.

원충이 이를 악문 그 순간 엄청난 충격이 그를 덮쳤다.

콰앙!

“큭!”

원충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면서도 원충은 담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었으면서도 그의 눈에 어린 독기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순간 담호가 뒤돌아봤다.

“다음!”

“제자 원공입니다.”

원공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음유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에요. 오늘은 그가 좀 심하게 손을 쓰네요. 하! 얼른 들어가서 내상약을 만들어야겠네요.”

종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음유경은 깨달았다. 첫날 종리연이 화산파 제자에게 주었던 약의 정체를.

이들은 매일같이 목숨을 걸고 담호를 상대로 실전을 치르고 있었다. 종리연의 내상약이 없었다면 이들은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것이 화산파가 힘을 되찾은 진정한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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