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265화 5장. 사람이 바뀌면 환경도 바뀌기 마련이다(3)
“으으!”
“큭!”
음유경의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피만 흘리지 않았다 뿐이지 화산파 제자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배를 붙잡고 꺽꺽거리는 자, 얼굴이 깨진 채 퉁퉁 부운 자,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인 채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리는 자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들은 바닥에 누워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제기랄!”
“크윽!”
개중에는 분하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분루를 흘리는 무인들은 악귀처럼 홀로 서 있는 담호를 노려봤다.
담호에게 당해 쓰러진 것은 부끄럽지 않았다. 워낙 실력의 격차가 크니까. 하지만 담호에게 제대로 된 타격 한 번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분하게 만들었다.
종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왜 그러세요?”
음유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종리연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오늘따라 저 사람이 유독 거칠게 손을 쓰는 것 같아요. 다들 내상이 심상치 않으니 내상약이 많이 들어가겠어요. 약재도 거의 떨어졌는데.”
그제야 음유경은 깨달았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저렇게 전력으로 담호에게 덤벼들 수 있는 것은 종리연이 어떤 상처를 입어도 치료해 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신의 종리연이 화산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엄청났다.
종리연을 발견한 제자들이 엉금엉금 기어 왔다.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신의 님, 저 죽겠습니다. 크윽!”
그들은 저마다 종리연에게 자신의 아픔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종리연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참아요. 당장 죽지는 않을 거니까.”
“우왁! 너무해요.”
“이럴 수가! 신의 님이 이렇게 냉정할 줄이야.”
제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종리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입이 멀쩡한 것 보니 앞으로도 이삼 일은 더 견딜 수 있겠네요.”
“크!”
“그렇게는 못 견뎌요. 제발 살려 주세요.”
화산파 제자들이 애원하자 종리연이 피식 웃고 말았다.
이들과 함께 지낸 지 벌써 삼 년이었다.
처음에 보았을 때 그들은 애송이 무인에 불과했다. 화산의 무공을 익혔지만 그 수준은 극히 미미했다. 강호에 나가면 딱 칼 맞아 죽기 좋은 수준이었다.
원래 그것이 정상이었다. 화산이 멀쩡했다면 말이다. 사부와 장로들이 그들을 이끌어 줬을 것이고, 갈수록 성취는 높아졌을 테니까. 하지만 장로들과 일, 이대제자들이 씨 몰살을 당한 후였기에 그들을 이끌어줄 선배가 없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단기간 안에 그들의 무력을 끌어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담호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그 자신과 대련을 하는 것.
담호는 무자비했다. 애송이 무인들을 상대로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팔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내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고 생사지경을 헤매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러면 종리연이 붙어서 그들을 치료했다.
상처가 어느 정도 나으면 다시 담호와 붙었다. 그리고 박살이 났다.
처음엔 미친 듯이 두려우면서도 아팠다. 고통을 호소하느라고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하려고 했다. 도주하는 자도 속출했다. 하지만 담호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담호는 도주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잡아 왔다. 그렇게 도주하다 잡힌 자들은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제 화산파의 제자들은 도주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담호와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흐리멍덩하기만 하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고 어느 순간 독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하도 당하다보니 오기와 분노가 생긴 것이다.
담호에게 죽을 지경까지 맞았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귀신처럼 종리연이 살려 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었지만, 애송이 무인이 성장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사람을 당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화산파 무인들은 매일같이 사투를 벌였고, 그 덕에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직접 치료해 준 종리연이었다. 때문에 그녀가 화산파 제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화산파 제자들 역시 종리연을 깊이 믿고 신뢰했다.
그들의 결속력은 무척이나 끈끈해서 이런 격의 없는 농담을 쉽게 주고받았다. 덕분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종리연이 고쳐 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우와! 오늘은 더 격렬했나 보네요.”
소년의 감탄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했다. 그곳에 주도를 든 소년, 방진보가 있었다.
방진보는 널브러진 화산파의 제자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전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본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진보가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원충을 쿡쿡 찔렀다.
“괜찮아요?”
“괜찮은 것 같냐?”
“헤헤!”
“무슨 일이냐?”
“식사하라구요.”
“식사? 해야지. 끄응!”
원충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억지로 일어났다. 그것은 다른 화산파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방진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이럴 줄 알고 오늘은 보양식을 준비했어요. 얼른 고월전으로 오세요.”
“알았다.”
“고맙다. 진보야. 너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화산파의 제자들이 어기적거리며 일어섰다. 그렇게 엉망이 되고도 식사를 하려는 모습이 음유경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도 가요.”
“네?”
“고월전요. 오늘은 또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되네요.”
종리연이 음유경의 손을 잡아끌었다. 음유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고월전은 화산파에서 가장 큰 전각이었다. 이름만 보면 무언가 대단한 곳인 것 같았지만 사실 이곳은 그저 식당에 불과했다. 단지 다른 객점과 차이가 있다면 크다는 것이다. 천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도 될 만큼 거대한 전각이 송두리째 식당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사형, 오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전각 안에는 이미 많은 제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월전 안에 들어오는 원충 등을 보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만큼은 씩씩하기 그지없었다. 몰락한 문파의 제자들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종리연과 음유경이 고월전에 들어섰을 때였다.
“언니, 여기요.”
고월전 한쪽 탁자에 앉아 있던 소녀가 종리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유난히 활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소녀는 바로 은소청이었다.
“우리 저기 가요.”
종리연이 미소를 지으며 은소청이 있는 탁자로 갔다.
은소청의 시선이 음유경을 향했다.
“여기서 또 보게 되네요.”
“휴! 미안해요.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음유경의 사과에 은소청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때문에 저희 은가보의 호상단은 횡액을 맞았어요. 화산파의 무인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 끔찍하네요.”
“미안해요.”
음유경이 거듭 사과하자 은소청도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종리연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체하겠다. 은 매는 어떻게 지냈어?”
“저야 뭐 화산파 구경하고 진보가 해 주는 음식 먹으며 지냈죠. 덕분에 이렇게 살이 쪘다니까요.”
은소청이 두 손가락으로 볼을 꼬집었다. 그러자 종리연이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어디가 살이 쪘는데? 더 예뻐지기만 했구먼. 피부 고와진 것 좀 봐.”
“정말요?”
은소청이 반색했다.
“그럼! 진보가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안 봐도 알겠네.”
“에휴! 진보 때문에 화산을 내려가긴 글렀어요.”
“나도 그래!”
동시에 두 여인이 한숨을 내뱉었다. 음유경은 그런 그녀들의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그때였다.
“자, 식사 나왔습니다.”
힘찬 목소리와 함께 방진보가 커다란 수레를 밀며 등장했다. 그 뒤를 화산파의 제자들 몇 명이 마찬가지로 수레를 밀고 따라왔다.
방진보가 밀고 온 수레에는 커다란 솥이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다른 제자들이 밀고 온 수레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귀한 손님도 오셨고 해서 특별히 보양식을 준비했어요. 모두 드시고 힘내세요.”
“와아아!”
방진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월전 안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줄을 섰다.
“자, 줄을 서.”
화산파의 제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섰다.
은소청이 종리연과 음유경에게 말했다.
“우리도 줄을 서요.”
세 여인은 줄 중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음유경은 도무지 화산파의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교에서는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모두가 어울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열에 따라 음식의 질이 차이가 나고, 같은 편끼리도 견제하느라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음유경은 항상 혼자 식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혼자가 익숙했다. 이런 떠들썩한 풍경은 그녀에겐 무척이나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방진보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줄을 선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 줬다. 그가 국자로 음식을 풀 때마다 진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음유경은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음유경 등의 차례가 되었다.
방진보가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아, 안녕!”
“형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원기가 많이 상했다고. 드시고 모자라면 또 말하세요.”
방진보가 솥 안에 든 음식을 그릇에 담았다.
“다섯 가지 색깔을 가진 열두 가지 약초에 사슴 고기를 볶은 오색녹향육(五色鹿香肉)이라고 해요. 제법 드실 만할 거예요.”
“어? 어!”
음유경은 오색녹향육이 든 그릇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음식을 받아 오는 사이 다른 제자들이 밥과 각종 찬을 탁자 위에 차려 놓고 있었다.
뒤이어 종리연과 은소청이 돌아왔다.
“우리 식사해요.”
종리연의 말에 세 여인이 일제히 젓가락을 들었다. 음유경은 조심스럽게 오색녹향육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사슴 고기가 입안에 들어가자 씹을 사이도 없이 그대로 녹았다. 동시에 육즙이 흘러나와 그녀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맛이었다. 그런데 황홀했다. 음식이 입에 닿는 순간 등골이 쩌릿해질 정도였다.
음유경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젓가락질을 했다. 밥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젓가락을 놀렸다.
순식간에 음식이 절반이나 비워졌다. 그제야 음유경은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음유경의 눈동자가 불신으로 흔들렸다.
단순히 맛만 있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방진보가 만든 음식에선 선기가 느껴졌다. 음식이 뱃속에 들어간 그 순간 따스한 기운이 일어나 온몸을 편하게 만들었다. 경직되어 있던 근육이 풀리고, 단전에 있던 기운이 부드럽게 요동쳤다.
단순히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마치 영약을 복용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기사였다.
음유경의 시선이 종리연을 향했다. 종리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놀랍죠?”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한낱 음식에 어떻게 이런 효능이…….”
“약식동원(藥食同源). 진보가 그토록 갈구해 온 일생의 목표예요. 진보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보다 몸에 이로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그리고 최근에 깨달음을 얻어 음식에 약초의 기운을 융합시킬 수 있게 되었어요. 진짜 영약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음식을 꾸준히 장복하면 적잖은 내공을 얻을 수 있게 돼요.”
“그럴 수가…….”
음유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리연은 그런 음유경을 부드럽게 바라볼 뿐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방진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는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낮에는 음식을 만들고, 밤에는 종리연을 찾아와 약초학을 배웠다. 약초학에 어느 정도 통달하자 그는 밤낮으로 화산을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캔 약초들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 수없이 실패를 거듭했다. 그래도 방진보는 포기하지 않았다.
음식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그의 집념은 필사적이기까지 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이 무공을 필사적으로 파고들 때 방진보는 요리를 죽어라 팠다.
그렇게 한길만 걸어왔다. 그 결과 얼마 전부터 그는 음식에 약초의 약효를 그대로 녹여 낼 수 있게 됐다. 아니, 약초와 음식의 조화를 통해 본래 가지고 있던 약효를 몇 배나 더 증폭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화산파 제자들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 것이.
담호와 싸우고, 종리연에게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방진보의 음식으로 몸을 보호하고 내력을 상승시켰다. 일련의 과정이 연일 순환되면서 그들의 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헤헤!”
방진보가 손가락으로 코를 문지르며 웃고 있었다. 그런 방진보의 모습이 눈부시게 보였다.